S 클래스
무진시, 진수의 집.
“이게 다 무슨 차야? 커다란 트럭이 왜 우리집 앞으로 오는 거냐?”
생일 잔치는 소박하게 차려져 있었다. 원래 우리집이 생일상을 거하게 차리는 집도 아니고, 아들인 내가 큰 돈을 벌기는 했지만, 그저 생일이라고 해도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식사를 하면서 기념을 하는 정도였다.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다가 우리집 쪽으로 큰 트럭이 들어오는 걸 보자 약간 놀라시며 일어나셨다. 한영모터스에서 보낸 탁송 트럭이었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선물이에요.”
“뭐, 트럭을 선물로 가져온 거니?”
“하하, 아뇨, 트럭에 실린 저 자동차요. 저게 벤츠에서 새로 출시한 S클래스라는 차인데 아버지 생신 선물로 가져왔어요. 이제 아버지 차예요.”
“어머, 세상에 벤츠라고? 그거 되게 비싼 거잖아?”
약간 멋쩍어하시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벌써부터 신이 나신 모양이었다.
“아니, 시골에 저런 좋은차 탈 일이 뭐가 있다고. 전에 사준 차도 잘 타는데.”
“일하실 때는 SUV를 쓰시고 읍내에 관공서 같은 곳에 갈 때 저걸 타고 가세요. 아마 사람들 대우가 틀릴 거예요.”
“아니, 무슨 시골 촌놈이 좋은 차 타고 간다고 읍사무소 공무원들이 태도가 달라지겠어?”
“어때요? 당신이라고 아니, 우리라고 좋은 차 타지 말라는 법 있어요. 이제 진수가 크게 성공해서 돈도 잘 버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냥, 고맙다고 하세요.”
“허허, 참, 당신은..아무튼, 고맙다 진수야, 아들 덕분에 이런 좋은 차를 타보는구나.”
아버지에게 선물한 차는 벤츠에서 새로 출시한 S클래스 중에서 가장 상위급인 S580 모델이었다. 가솔린을 쓰는 차라 고급차의 특유의 정숙성이 뛰어나고 벤츠의 최신 기술이 집대성된 최고급 모델이었다.
차가 탁송 트럭에서 내려지자 생각보다 큰 차의 크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짝 놀라신 얼굴이셨다.
“무슨 자가용이 이렇게 길어? 이거 진짜 비싼 차인가 보네?”
“그러면 진수가 큰 회사 사장님이 됐는데 싸구려 차를 선물로 주겠어요? 당연히 비싼 거지. 이거 1억쯤 하는 건가?”
“1억? 그렇게 비싸?”
“하하, 뭐, 그냥 가격은 따지지 마세요. 그냥 좋은 차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벤츠 S580은 기본 가격이 2억을 넘고 풀옵션이 들어간 이 차는 2억 4천 정도는 하지만 뭐, 부모님들에게 그런 것들까지 다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벤츠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형 S클래스는 인기도 상당해서 이 차를 사려고 국내에서 2년 전부터 예약을 했다는 말이 있는 차였다.
“역시, 벤츠가 좋기는 좋구먼..”
한영모터스의 직원이 내부를 설명하기 시작하지 안에 타보신 부모님들도 만족감을 드러내셨다. 특히, 처음에는 어색해하시던 아버지도 시동을 어떻게 거는 거냐고 호기심을 보이셨다.
“시동은 이 버튼을 누리시면 되는 겁니다. 한 번 눌러보세요. 아버님.”
“독일차라 시동 거는 것도 다르구먼..어디 이거 누르면 되는 건가?”
처음이라 조작이 서투르시기는 하지만 아버지도 나름 운전 경력이 30년이 넘는 분이라 차를 운전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차가 다 비슷하죠. 뭐, 운전하시기는 편하실 거예요.”
“차야 좋지. 내 분수에 이런 차가 어울리나 싶어서 그렇지만 아무튼 고맙다. 이 차 평소에는 잘 모셔놓았다가 엄마랑 어디 좋은 데 갈 일 있으면 같이 타고 가고 그래야겠어.”
“하하, 평소에도 타고 다니세요. 제가 나중에 더 좋은 차도 사드릴게요.”
벤츠 S클래스보다 상위의 차라면 롤스로이스 정도인데 그건 좀 너무 튀는 차라서 아버지가 좋아하실지 모르겠다.
아무튼,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타실 차로는 최고 수준의 차를 잘 고른 것 같았다.
시골의 좁은 농로에서는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도 이런 좋은 차를 타시면 좋고 어머니도 뒷좌석이 너무 좋다고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걸 보니 진즉에 사드릴 걸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시기가 잘 맞아서 신형 벤츠 S클래스를 사드릴 수 있어서 뭔가 효자가 된 기분이었다.
원래는 한영모터스 이진석 사장이 자기가 타려고 주문한 거라는데 막상 S클래스가 나왔을 때는 다른 슈퍼카가 더 맘에 들어서 처분할까 고민하던 참에 내 전화가 온 것이라고 했다. 이진석 사장이 주문한 S클래스는 모두 2대로 한 대는 내가 타기로 했다.
어쨌든, 서로 인연이 되어서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이 된 셈이었다.
“그나저나, 진수 너 장가갈 생각은 없냐?”
“예, 결혼을요?”
“요새,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온다. 진수 네가 서울에서 어마어마하게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져서 말이야. 이 동네에서 다 큰 처녀 있는 집들은 다들 진수 네 신부감으로 어떠냐고 한 번씩 넌지시 물어보더라는 말이지.”
“하하, 어디 그 중에 맘에 드는 처녀가 있나요?”
“농협 다니는 아가씨가 있는데 서울에서 대학도 나오고 내가 농협에 가서 슬쩍 보고 왔는데 얼굴도 갸름하고 아주 미인이야.”
“하하, 나중에 농협에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봐야겠네요.”
“뭐, 당장 급하게 할 일은 아니고, 혹시 생각 있으면 만나보라는 거지.”
“당장은 일들이 좀 바빠서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요.”
“아이고, 당신은 우리 진수가 얼마나 바쁘고 또 잘 나가는데, 어련히 서울에서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 알아서 다 잘 만날까? 그깟 농협 아가씨가 대수예요.”
“농협 다니면 신부감으로는 최고지. 그 이상이 어딨어? 돈이야 진수가 잘 벌고, 안 그래?”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사업 문제도 있고.”
“그래, 아버지가 그냥 해본 말이니까, 너무 신경쓰지는 말고 일 바쁠 텐데 어서 가봐라. 그리고 차는 잘 타마.”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집을 나가려는데 우리집 앞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이구, 진수 아버지, 이게 대체 다 뭐야? 진수가 차 선물을 했구만.”
“아, 어떻게 알고 이렇게 다들 모였어?”
“지나가다가 큰 트럭이 마을로 들어오는 걸 보고 뭔가 하고 물어보니까, 기사가 벤츠를 배달하러 간다고 하잖아. 진수네 집으로 가는 걸 보고 딱 느낌이 오던데. 진수가 벤츠를 선물했겠구나 하고 말이야. 그래서 마을 회관에서 사람들 모아서 구경하러 온 거지.”
“아이고, 오지랖들도 남의 차 사는 걸 뭘 구경을 하러 와. 나중에 보면 되지.”
“시골에 이런 고급차 보기도 힘들잖아? 그리고 진수 얼굴도 한 번 볼까해서 온 거지.”
“차는 구경해도 되는데 진수는 바빠서 지금 올라가 봐야 해.”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아버지의 벤츠 S클래스를 구경하느라 일대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다행히 부모님이 바쁜 아들의 길을 열어주셔서 다시 어렵지 않게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조금 번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 생신 선물을 잘해드린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
한남동 유엔빌리지, 진수의 빌라.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좀 쉬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김영석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예, 지난번에 지시하신 포클랜드 아일랜즈 말입니다.”
“오, 어떻게 됐나요? 회사 인수가 가능한 겁니까?”
“그쪽 경영진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포클랜드에서 오랫동안 목양 수집을 하던 회사라 외국인이 당장 인수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래요?”
“예, 경영진은 아무래도 영국 국적이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영국 정부와의 문제도 있고요. 영국 정부로부터 사업 허가권을 갱신하는 문제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우리가 그쪽에 포클랜드 아일랜즈를 통해서 사업을 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우리가 투자를 해서 지분의 49%로만 취득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포클랜드 아일랜즈의 사업권을 이용해서 개발 사업을 하는 거죠.”
“그래요?”
“예, 그런 식으로도 어느 정도 사업은 가능할 겁니다. 포클랜드 아일랜드도 목양 사업을 오래 하기는 했지만 재정이 안정적이지는 않으니까요. 투자만 하면 우리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포클랜드 아일랜즈를 통째로 인수하고 싶었지만 분쟁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약간의 제약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포클랜드 아일랜즈가 가진 독점적인 개발 사업권은 영국인 경영진이라는 조건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분의 49%만 가지고도 그럭저럭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문제는 없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서포클랜드 제도에 있는 몇 개의 무인도에서 황금을 발굴하는 조사 작업과 내가 찾는 황금이 존재한다면 그걸 발굴해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임시 저장 시설을 만드는 정도였다.
“좋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설들만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일단 지분의 49%를 우리가 인수하고 포크랜드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걸로 하죠.”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지시대로 실행하겠습니다.”
***
문화 대학교, 강의실.
“와, 최진수 선배님이시다.”
“저분이 최진수 선배님이구나.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얼굴은 처음보는데.”
일년 정도 해외를 자주 돌아다녔더니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워낙 유명인사가 되어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최진수 선배님은 수업에는 잘 안 들어오시나 봐요?”
“사업이 바쁘잖아.”
“하긴,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이 최진수 선배님 회사라죠?”
“최대 주주니까, 사실상의 오너 아니겠어?”
“그리고 종로에 있는 센트럴 타워라는 빌딩도 최진수 선배님의 빌딩이잖아요?”
내가 바빠서 학교에 잘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나에 대한 관심들은 여전했다. 오히려 내가 자주 학교에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나를 전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들 속에서 존재하는 전설의 유니콘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학교에 나오자 특히 신입생들이 나를 진짜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선배님, 오랜만이시네요.”
민영민이었다.
“하하, 그동안 좀 바빴지.”
“그런데, 선배님 아까보니까, 흰색 벤츠 S클래스를 타고 오셨던데. 저거 이번에 새로 나온 신형 S클래스죠.”
“맞아. 벤츠가 풀체인지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 하나 구입했지.”
한영모터스에 갔을 때 두 대의 벤츠 S580을 구입했다. 이진석 사장이 최초에 주문한 것은 두 대였다. 검은색과 흰색 두 대를 주문했던 것인데 검은색은 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리고 흰색은 내가 인수하기로 했었던 것이다.
벤츠 S클래스는 비교적 무난한 편이라 회사에도 학교에도 무난하게 타고 다니기에 괜찮은 차였다. 물론 대학생 신분에 벤츠 S클래스를 타는 건 좀 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워낙 유명인사라 그런 걸 신경쓸 이유도 없었고,
슈퍼카나 럭셔리카라고 하기에는 살짝 급이 떨어지는 차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벤츠를 대표하는 플래그쉽 모델이기도 하고, 최신형 모델로 한창 대중의 관심이 있는 모델이라 나도 마음에 들어서 타고 온 것이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민영민답게 신형 벤츠를 알아보고 관심을 보인 것이다.
“역시, 최진수 선배님이시네요. 워낙에 좋은 차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지만 요새 가장 핫한 신형 벤츠 S클래스라니, 저거 워낙 대기자가 많아서 몇 년 전부터 예약을 해서 받았다고들 하던데 선배님도 미리 예약을 하신 겁니까?”
“뭐, 그런 건 아니고.”
사실, 벤츠 S클래스가 새로 풀체인지가 되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미리 예약을 했을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신형 S클래스를 구하신 거죠?”
“뭐, 한영모터스라고 수입차 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금방 구해주시더라고.”
“와 대박, 정말요? 정말 부러운데요.”
민영민 입장에서는 부러운 것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고 싶은 차들을 마음대로 사는 것은 정말 민영민이 부러워할만한 일이었다.
“영민이가 차라면 정말 좋아하지, 어때, 사진도 좀 찍고 한 번 드라이브 좀 할까?”
“정말요?”
젠장, 내가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오랜만에 민영민을 만나서 뭔가 말이 헛나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