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아일랜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리나 데 글로리아
“한국에서 금방 돌아오셨네요?”
플라잉 폭스의 수영장에서는 한나와 에니카가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즐기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건 좀 지루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자, 여기저기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 드라마 제작에서부터 아버지의 생신 선물, 거기에 김동혁이 새롭게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을 제안하고 말이다.
바쁜 서울에서의 업무들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온 브라질은 천국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화창한 날씨와 바쁜 것이라고는 없는 한가한 일상들이 너무 좋은 것이다.
“이번에는 포클랜드로 갈 거라면서요?”
“그래요. 준비가 되면요.”
“거긴 추운 곳 아닌가요? 남극에 가깝다고 하던데? 펭귄도 있고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즐기며 포클랜드 쪽의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플라잉 폭스를 타고 포클랜드 섬까지 갈 생각이었다.
플라잉 폭스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탐사 장비들을 채워 넣고 각종 필요한 보급품들도 충분하게 확보한 상태였다.
그리고 날씨가 춥다고 해서 겨울옷들도 준비했고 말이다.
“에니카와 한나는 어때? 추운 곳은 별로인가?”
“크로아티아도 겨울이 있으니까요. 겨울에는 춥다고요. 겨울에는 스키 같은 걸 타면 좋지 않을까요?”
“스키?”
포클랜드가 브라질에 비해서는 추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눈이 내리고 스키를 탈 정도는 아닌 걸로 알고 있었다.
거기에 이번 탐사의 목적지는 제이콥 섬이라는 무인도 제도였다. 포클랜드의 서부에서도 가장 외진 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스제미오스에서 찾은 좌표가 가리키는 12개의 지점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 엔젤라 누네스에게 연락을 해서 제이콥 섬에 장비와 베이스 캠프로 쓸 건물들을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를 했었다.
시간도 촉박하기도 해서 건물들은 조립식 가건물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진짜 황금이 존재한다면 제대로 된 건물을 지어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국에서 브라질로 와서 피곤하기도 하고 그렇게 플라잉 폭스에서 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 빈둥거리고 있을 때, 마리나 데 글로리아로 엔젤라 누네스가 도착했다.
“어서 와요. 엔젤라.”
엔젤라는 붉은색이 감도는 미니 원피스 차림이었다. 뭔가 강렬하고 섹시한 느낌...
“부탁하신 포클랜드의 건물들은 완성이 되었어요.”
“잘 됐군요.”
“그런데 포클랜드에서는 뭘 하실 생각이신 거예요. 조립식 창고들을 지어서 뭘 하시게요?”
“하하, 호기심이 많군요. 뭐, 괴짜 재벌의 괴상한 취미라고 해두죠.”
핑곗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엔젤라라면 대충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것이다.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예, 회장님은 언제나 비밀스러운 분이시니까요. 더 이상은 묻지 않을게요.”
엔젤라는 그런 면에서 편리한 여자였다. 원하는 것은 해주고 쓸데없는 것은 묻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포클랜드 쪽에 베이스 캠프는 대충 준비가 된 것 같고, 이제 포클랜드로 출발하기로 했다.
***
포클랜드 제도.
제이콥 섬은 완도 정도의 크기의 본섬과 그 주위로 여러 개의 무인도가 퍼져 있는 제도였다. 포클랜드 전체가 두 개의 큰 섬과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포클랜드 본섬의 주민들은 주로 동쪽 섬의 스탠리 항에 모여 있는 편이었고, 그 외에는 서부 지역 등에서 목양 산업, 즉 양을 키우는 농가들이 산재해 있는 정도였다.
리우데자네이루를 출발한 플라잉 폭스가 포클랜드 제도에 접어들자, 벌써부터 날씨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와, 추워요. 이제 비키니는 못 입겠는데요.”
뭐라고?
“하하, 에니카 여기는 남극에 가까운 곳이니까요. 옷은 좀 따뜻하게 챙겨 입어요.”
사실, 그렇게 추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바닷바람도 거세고 워낙 따뜻한 곳에 오래 있어서였는지는 에니카는 벌써부터 점퍼를 꺼내 입고 있었다.
항상 비키니나 핫팬츠를 입은 모습만 보다가 청바지에 니트 그리고 점퍼까지 입은 에니카를 보니까, 뭔가 신선한 느낌이었다.
진짜 스웨덴의 금발 미녀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스톡홀롬의 거리에 가면 흔하게 있을 것 같은 스웨덴 미녀 말이다.
“그런데 당나귀는 왜 데리고 오신 거예요?”
“어, 스바딜파리 말인가?”
한동안 허리 부상 후유증으로 요양 중이었던 스바딜파리의 건강이 좋아지기도 했고. 포클랜드에 가는 핑계로 괴짜 재벌의 괴상한 취미라는 이유를 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그런 괴상함이라는 이미지는 더 강화하기 위해서 스바딜파리를 대동하기로 한 것이었다.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당나귀를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아시아에서 온 재벌이라면 뭔가 진짜 괴짜로 보일 테니 말이다.
일단은 포클랜드에 머물기 위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 스탠리 항으로 향했다.
***
동포클랜드 스탠리 항.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예, 최진수라고 합니다. 이카로스그룹의 회장이죠.”
“음, 한국의 배터리회사의 CEO 시군요.”
스탠리에 항구에 도착하자, 스탠리 시의 항만 관리 직원이 입항 목적과 포클랜드에 일정에 대해서 세세하게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 포클랜드에 가장 큰 기업이자 유일한 기업인 포클랜드 아일랜즈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그렇게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폴, 대충 해드려. 이분은 포클랜드 아일랜즈의 대주주라고.”
포클랜드 아일랜즈의 현지 직원인 스티브 힝스턴이 옆에서 한마디를 했다.
“스티브, 이건 어디까지나 규정이라고? 이 분을 귀찮게 하려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조금만 참아.”
폴이라는 뚱뚱한 항만 관리원은 웃으면서 몇 가지를 더 묻기는 했지만 대충 끝내주는 느낌이었다.
“저 당나귀는 뭔가요?”
플라잉 폭스에 승선한 유일한 동물인 스바딜파리를 보며 폴이 물었다.
“제 애완동물이죠.”
“당나귀가요? 대단한 분이시군요. 초호화 요트에 금발의 미녀들도 있고, 거기에 당나귀까지, 한국에서 오신 재벌이고요?”
“예, 좀 특이한 편이죠. 전 평범한 건 지루해서요. 언제나 특이한 곳을 찾아다니죠.”
“그러면 잘 오셨네요. 지구상에 포클랜드처럼 특이한 곳도 없을 겁니다.”
“하하, 그런 것 같네요.”
대충, 입항 심사가 끝나고 스티브 힝스턴이 나에게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걸로 포클랜드 어디로든 가실 수 있는 허가가 난 겁니다.”
“제이콥 섬에 가려는데 거기도 문제 없겠죠?”
“물론이죠. 그런데 그 무인도에는 왜 가시려는 건가요?”
“호기심이죠.”
“호기심요?”
“예전에 해적들이 출몰하던 그런 곳이라면서요? 해적의 소굴 그런 곳 말입니다.”
나는 김덕수 소장에게서 들은 독일 해적 이야기를 꺼냈다.
스티브 힝스턴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마른 체형의 영국 남자였다. 영국식 억양이 강한 것으로 봐서는 영국 본토 출신인 것 같았다.
약간 무표정하고 가끔씩 얼굴을 찌푸리는 습관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말수가 적고 일 처리는 빠른 편이었다.
“그런 이야기도 있기는 하죠. 제이콥 섬에 해적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보물 탐사라도 하러 가시는 건가요? 해적의 보물 말입니다.”
“하하, 그런 셈이죠. 뭔가 찾았으면 좋겠네요.”
스티브 힝스턴의 안내로 스탠리 인근의 포클랜드 아일랜즈의 본사를 찾았다.
스탠리는 평범한 항구 느낌이었지만 스탠리 외곽으로 들어서자 낮은 목초 지대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회장님은 멋진 인생을 사시는군요.”
“내가요?”
운전을 하고 있던 스티브 힝스턴이 나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가지신 거 아닙니까?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멋진 배도 가지고 계시고 배 안에는 아름다운 금발 미녀들에, 그리고 귀여운 당나귀도 있고요.”
귀여운 당나귀라? 멋진 배와 금발 미녀까지만 맞는 걸로 해두지.
“하지만 저도 시간이 없으니까요. 하루하루가 정말 바쁘죠.”
“하하, 그래요? 하지만 이렇게 포클랜드까지 여행을 오실 정도로 인생을 즐길 시간도 충분하신 거 아닌가요?”
“이것도 일종의 일이죠.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나의 말에 힝스턴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괴짜 재벌의 포클랜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오히려 나로서는 편한 셈이었다.
한동안 목초 지대를 통과하던 차가 도착한 곳은 5층 규모의 빌딩과 주변에 커다란 창고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여기가 바로 포클랜드 아일랜즈 스탠리 지사입니다.”
“일종의 창고군요?”
“예, 우리가 하는 일이 양털을 모아서 영국으로 보내는 일이니까요.”
힝스턴의 소개로 본사 사무실 직원들과도 대충 인사를 하고 창고들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힝스턴의 말대로 창고 안에는 양털들이 포장된 상태로 트럭에 실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면서 도로가 널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탠리 항으로 양털을 나르는 트럭들이 오가는 길이어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하네요.”
“이곳의 목양 농가라고 해봐야, 500가구 정도니까요. 작은 시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니, 스탠리 항구 외곽으로는 인가도 거의 안 보이더군요?”
“예, 아주 드문드문 목장들이 있는 정도죠. 아무튼 세상에서 이렇게 고립된 세계도 드물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남극과도 가깝고 영국 본토와 멀리 떨어진 곳이고 아시겠지만, 아르헨티나와는 영토 분쟁이 있어서 그쪽과 교류도 없고요. 가장 가까운 곳이 브라질이나 칠레 정도죠. 하지만 거기도 엄연히 외국이라 사실상, 이 지역은 고립된 외진 섬이라고 할 수 있죠.”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그렇고 고립된 섬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딱히 자체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전라남도 정도 크기의 포클랜드 제도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산재해 있는 황량한 초원지대라고 할 수 있었다.
섬이라 그런지 바람도 강하고 낮은 잡목도 자라지 않는 낮은 목초 지대가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충, 포클랜드 아일랜즈 지사를 살펴보고는 본격적으로 제이콥 섬으로 출항을 했다.
***
제이콥 아일랜드
스탠리 항을 출항한 플라잉 폭스는 포클랜드 해협을 지나 서포클랜드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좀 더 서쪽으로 움직여 도착한 곳이 제이콥 섬이었다.
과거에는 해적들이 이 섬을 점거하고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어서 해적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어쨌든, 그것도 다 지난 일이고 지금은 무인도에 불과한 곳이었다. 포클랜드 전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살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라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었고 그나마 그런 포클랜드에서도 가장 외진 지역으로 말그대로 무인도, 사람이 전혀 상주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하지만 조립식으로 급조한 듯한 건물들이 몇 개 보이고 있었다.
내가 엔젤라에게 부탁해서 브라질에서 파견 온 건설인력들이 임시로 만든 조립식 건물들이었다.
그렇게 잘 지은 건물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당분간 제이콥 섬에서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시설들이었다.
“정말, 섬에 혼자 계실 생각이십니까?”
“예, 뭐, 전에도 자주 해봐서 익숙하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선장은 짐을 내려주고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여기는 날씨도 변덕스럽고요. 바다도 거칠고.”
“위험요?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 위험할 일이 있겠습니까? 가장 위험한 건 바로 인간이죠.”
“하하, 그런가요?”
선장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내 쓴웃음 지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무인도는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선장의 말대로 거친 바람과 변덕스러운 날씨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탐사에는 더더욱 철저하게 장비들을 챙기고 보온용품이나 식량에도 신경을 썼다.
그렇게 제이콥 섬의 탐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