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편한 현실 (155/200)

불편한 현실

신성 자동차 본사.

“본사 건물이 좋군요.”

“예, 돈을 많이 썼죠.”

신성자동차 그룹의 본사 건물은 시내의 강남의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토지 구매 비용도 엄청난 건물이었다.

“브라질에 갔다 오셨다는데 일은 잘되신 겁니까?”

“하하, 뭐, 그렇죠. 일이라기보다는 휴식을 위해서 좀 다녀왔습니다.”

“그러시군요. 볼 때마다 최진수 회장님은 부러운 분입니다.”

“제가요?”

“하시는 일도 여유가 있으신 것 같고, 거기에 원하시는 일들을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보여서 말입니다.”

“하하, 뭐 제가 누구 눈치를 보고 살지는 않죠.”

“이번에 건조하고 계시는 아틀라스 호만 해도 어마어마한 초호화 요트 아닙니까?”

“그렇죠. 조만간 김동혁 사장님도 보시게 되면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마음에 든다고 해도 살 수 있는 배는 아니겠죠. 판매 가격이 조 단위가 넘을 거라는 말이 있던데요.”

아틀라스 호는 지금 거제도에서 선박 건조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카로스조선에서 맡은 선박의 건조 작업은 거의 끝난 상태고, 이탈리아의 베네티와 협력해서 요트 내부의 인테리어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생산비만 7천억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초호와 요트였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판매 가격도 1조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카로스조선의 첫 번째 초호화 요트인 아틀라스는 당장 판매보다는 내가 직접 타고 다니면서 일종의 홍보를 할 셈이었다.

이카로스조선과 배네티요트의 합작으로 탄생한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호화 요트인 셈이었다. 소위 말하는 메가 요트급의 요트들이 기존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차이라면 전문적인 기술력과 요트 생산 경험을 가진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양산한 초호화 요트인가 하는 차이였다. 기존의 세계적인 대부호들이 소유한 요트들은 기존의 선박업체들에서 주문을 직접 해서 주문 생산을 한 요트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전세계적으로 자산 거품이 커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 하지만 이런 고가의 요트를 판매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인지도 몰랐다.

“생산 비용이 7천억 이상이고 판매 가격은 1조 수준입니다.”

“하하, 듣기만 해도 어마무시하군요. 그런 초고가의 배를 살 수요가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최근에 자산 버블이 상당하지 않습니까?”

“부자들이 늘어난다는 건가요?”

“그렇죠. 원래부터 부자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최근에는 규모가 큰 세계적인 부자들이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김동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죠. 2천 년 초반의 IT버블이 재현되고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세계화와 거기에 각종 첨단 기술들이 어느 정도 실용화되고 수익 모델을 찾으면서 거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수의 부자들에게 세계의 부가 집중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기에 중국의 성장도 있죠. 아무튼, 이제 돈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각국의 정부들도 재정지출을 늘려서 경제성장이나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늘어난 부가 갈 곳을 못 찾고 부동산 같은 실물의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하하, 제가 경제학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결국 이런 자산가치가 상승한다는 건 어디에선가 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요?”

“돈이 만들어져요?”

“뭐, 비트코인 같은 거 말입니다. 코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거대한 새로운 형태의 자본이 등장하기도 한 셈이니까요.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금이나 은이 갑자기 유입되자 인플레가 일어났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자본이라?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걸 현대의 금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그런 비트코인들이 새로운 종류의 자본재가 되는 걸까요? 과거의 황금처럼 말입니다.”

“하하, 알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황금이든 코인이든 어디선가 누군가가 계속 채굴한다면 자본주의 세계에 어떤 불균형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죠.”

비트코인도 그렇고 어쩌면 내가 필리핀과 브라질, 그리고 포클랜드 등지에서 찾아낸 과거에 사라졌던 황금들이 다시 국제 금 시장에 등장하면서 뭔가 인플레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수백조 정도의 황금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지는 못 할 테지만, 나비효과처럼 어떤 거대한 결과의 시발점이 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경제 문제야 경제학 교수들도 있고 경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있을 테니 알아서 하겠죠. 그보다 저는 늘어난 슈퍼리치들에게 배를 팔고 싶습니다. 초호화 요트의 가격이 1조가 넘겠지만 그걸 살만한 부자들도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신성자동차의 고급 차종이라고 해봐야 1억을 넘는 정도인데, 한 대에 1조짜리 배라 스케일이 어마어마하시군요.”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죠. 자본주의가 고장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되고 반대로 돈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고, 착취당하는 구조라고나 할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좋은 건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군요. 물론, 최진수 회장님이야 점점 더 부자가 되시고 있으니 좋은 거 아닌가요?”

“글쎄요. 뭐, 잘은 모르겠군요.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걱정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죠.”

***

KBC 사장실.

“드라마가 제작이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고요?”

“예, 재벌 변호사가 이제 편집 작업까지 완료를 하고 방영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영수 사장도 이번 드라마의 성공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였다.

“드라마의 완성본은 아직 못 봤지만 굉장히 화려한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박영수 사장의 말처럼 이번 드라마에서는 어지간한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장소나 소품들이 많이 등장을 하고 있었다.

여수의 이카로스리조트를 비롯해서 센트럴 타워에 있는 내 사무실이나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이나 거제도의 이카로스조선소 같은 나의 사업체들도 드라마의 배경으로 활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내가 가진 고급 수퍼카들이나 각종 고가의 사치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플라잉 폭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최고급 요트인 루머니시티 같은 것들도 모두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었다.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벌써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어떤 이야기들 말입니까?”

“드라마에 너무 특정 기업들이 많이 등장한다거나 아니면 부가티 같은 초호화 자동차들이나 호화 요트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고 말이죠.”

“하하, 그거야 재벌 변호사라는 제목처럼 재벌가의 후계자인 동시에 정의로운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라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박영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는 하지만 약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거 말인가요?”

“세트가 아니라, 진짜 재벌들의 사무실과 집, 화려한 자동차와 요트, 헬기, 럭셔리한 일상들이 그대로 묘사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거야 흔한 설정 아닌가요?”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 그리고 신데렐라형의 여주인공, 이런 이야기는 너무 흔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범한 설정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재벌이라는 설정이었고 그런 재벌들의 집이나 사무실, 자동차, 요트 같은 것들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라마는 없었죠.”

박영수 사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동안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은 사실상 여성향의 로맨스물로 재벌로 통칭되는 돈 많고 성공한 남자들과 결혼을 하고 싶은 젊은 여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벌들이 수도 없이 등장을 했지만 대부분은 설정만 무슨 재벌가의 아들, 해외파 출신의 실장님 정도로, 고급 자동차 정도를 타고 강남의 좋은 집 정도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

드라마 제작진 입장에서도 두 남녀의 로맨스가 주축이지 재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재벌 변호사의 경우에는 공교롭게도 내가 소유한 빌딩과 요트들, 헬리콥터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촬영 장소로 활용했던 것이다.

별다른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윤아영이 드라마 제작을 지휘하면서 촬영 장소나 소품 같은 것들을 진짜 재벌인 나에게서 빌려서 촬영을 진행한 것이었다.

마침, 나도 브라질에서의 일들로 자주 해외에 나가 있는 일들이 많아서 내 집과 회사의 사무실, 요트, 헬기 같은 것들을 그리 많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겸사겸사 드라마의 촬영에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벌 변호사에 등장하는 사무실이나 주인공의 집, 자동차, 요트 같은 것들은 이전의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스케일과 럭셔리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화려한 영상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없던 진짜 재벌의 럭셔리한 일상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고 박영수 사장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재벌 주인공이 호화 요트와 리조트를 가지고 있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요?”

“위화감을 조성한다고나 할까요. 드라마에서 재벌이나 부자들은 단골 소재들이지만 너무 적나라하게 빈부격차가 표현되는 모습들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죠. 그거 아시나요? 사실은 드라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표현할 때도, 너무 리얼하게는 그리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불행이나 가난도 너무 리얼하게 나오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할 거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니까요.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죠. 재벌이든 거지든, 이 정도 수준이겠구나 하는 그런 가이드 라인이 있는 거죠.”

“하하, 그러면 이번에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재벌 변호사는 선을 넘은 건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온 건 아니지만, 편집본을 본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너무 재벌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해서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미 촬영을 마치, 재벌 변호사를 다시 찍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는 대기업 사무실과 리조트, 빌라, 슈퍼카, 요트, 헬기, 명품들의 모습은 한 두 장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들이라 편집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제 회사에서 제작한 드라마니까요.”

“책임이라면?”

“드라마가 나가고 박영수 사장님 말씀대로 시청자들의 비난이 폭주한다면, 드라마를 내리도록 하죠. kbc에는 일절 손해가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하셔도 되는 건가요? 드라마 제작비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그래 봐야, 제게는 그리 큰 돈은 아닙니다. 수백억이라고 해도 제가 가진 자산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죠. 사실, 드라마는 일종의 취미랄까요, 사업적인 마인드로 드라마를 제작한 것은 아닙니다. 진짜 사업들은 따로 있죠.”

“배터리 사업과 조선업 같은 것들 말이군요. 저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성자동차 그룹과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에도 20조를 투자하신다면서요?”

“뭐, 그렇습니다. 제가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재벌 변호사를 방영하지 못 하게 되도, 제게는 큰 문제는 아니죠. 그리고 방송국 입장에서도 그리 큰 타격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체 편성을 하면 되는 일이겠죠.”

“대체 편성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최진수 회장님이 그렇게까지 책임을 지시겠다고 하니까. 드라마는 최진수 회장님 의견대로 그대로 방영하기로 하죠.”

“예,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는 항상 운이 좋은 편이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