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백제호텔 연회장.
새해가 시작되었다.
“해피 뉴 이어..”
송년회에는 이카로스그룹의 계열사의 임원들과 드림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연예인들도 대거 참석해서 약간은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대충 사람들과 인사는 다 나누었고, 나는 연회장 옆쪽의 VIP룸으로 이동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갔군요.”
윤아영은 샴페인 잔을 들고 VIP룸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드라마도 성공적이고 드림엔터테인먼트도 자리잡은 것 같군요.”
“예, 예상 외로 잘 된 것 같아요.”
윤아영 외에도 각 계열사의 사장단들과 임원들이 모여서 연말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보신각의 종소리가 울리면서 잠시 신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지만,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었다.
윤아영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사라지자 민소희가 들어왔다.
“회장님, 작년에는 감사했어요.”
“하하, 드라마가 잘 돼서 말인가요?”
“예, 덕분에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에도 지명이 됐으니까요.”
연초에 하는 시상식 중에 규모가 가장 큰 시상이라는 것 같았다. 민소희가 나름 경력이 있는 아이돌 가수지만, 연기자로는 신입급이라 이번에 연기자 부분에 신인상 후보에도 오른 것이다.
“그 이야기라면 들었습니다. 축하해요. 후보에 올랐으니 수상도 노려볼만 하겠죠.”
“회장님이 도와주시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내가요? 하하, 그거야 심사위원단이나 뭐 그런 게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원래 상이라는 게 다 힘 있는 기획사나 그런 쪽에서 나눠 먹는 거잖아요.”
연예계 생활을 제법해서인지 민소희는 이바닥의 사정을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상을 받고 말고는 기획사의 힘이다?”
뭐, 내가 연예계에서 사정까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보통 그렇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어차피 연예계라는 곳도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일종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상들의 수상자가 결정이 되는 구조인 것이다.
특이한 것이라면 예술계에서의 상이라는 것은 명예인 동시에 돈과 성공으로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인들에게 주어지는 훈장이나 각종 상들이 그저 보기 좋은 명예를 나타내는 트로피라면 연예인들은 수상 경력을 발판으로 자신들의 홍보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뭐,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힘쓸 일이 있으면 힘을 써보죠. 소희 씨가 신인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그 외에도 각자 나에게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의 이동준 사장과 이카로스항공의 서종수 사장도 나란히 나를 찾아왔다.
마치 영화 대부의 한 장면 같은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떠들썩한 파티 와중에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회장인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고 개인적인 프라이빗한 이야기도 있어서 VIP룸에서 사람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종수 사장과 이동준 사장은 대학 동문이기도 하고 서종수 사장의 추천으로 이동준이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의 사장에 취임하면서 더더욱 사이가 각별해져 있었다.
“두 분은 여전히 친하게 잘 지내시나 보군요.”
“하하, 대학 때부터 절친이니까요.”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신성그룹과의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은 어떻습니까?”
포클랜드로 떠나기 전에 김동혁 사장과 약속했던 사업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신성자동차그룹과 이카로스그룹, 특히 이카로스이노베이션과 이카로스항공이 주축이 되어서 신성자동차와 전기차와 드론형 자동차 개발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신성 쪽에서 제안한 사업이고 김동혁이 그쪽으로는 적극적인 것 같았다. 이카로스그룹에서 기술력과 20조의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번에 포클랜드에서 가져온 황금과 보석들의 가치만 30조쯤 되니까, 자금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회장님의 지시로 사업을 검토해 봤는데 드론 자동차는 모르겠지만 전기 충전 인프라 사업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전기차 인프라가 중심인가요?”
진수의 말에 이동준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신성자동차에서도 충전 기술과 인프라 구축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고요.”
신성자동차는 드론 자동차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 드론 택시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한강 드론 택시오?”
“드론으로 한강 남과 북을 연결한다는 거죠.”
서종수 사장은 약간 취기가 올랐는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강이라면 다리도 많은데..”
“하하, 뭐, 저도 그게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신성자동차에서는 과거에 수상 택시 사업을 본따서 드론 택시를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그건 망한 사업 아닌가요?”
“그때는 보트를 이용해서 한강을 넘는 개념이었죠. 아시다시피 선착장에서 또 다른 교통으로 연계되는 시간이 너무 소요되는 방식이라 의미가 없었던 것인데, 드론이라면 다르죠. 바로 지하철역이나 택시 승강장 이런 곳으로 연결되니까 말입니다.”
“실용적일까요?”
진수의 말에 서종수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술을 연구하면서 미래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드론을 움직일 수 있는 드론 정거장을 만들자는 거고, 그 드론 정거장에 전기 충전 시설이 들어오는 개념이니까요. 한강을 따라서 전기 충전소 인프라가 깔리는 겁니다.”
한강을 따라서? 충전소가 들어선다?
한강이 서울의 중심이고 교통상의 요지인 것은 사실이니까, 한강에 대규모 충전 인프라가 건설된다면 드론 자동차 외에도 전기차 충전 시설로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에 한강 수변 공원 일대는 서울시의 허가만 있다면 그런 인프라를 설치하는 문제도 없을 테고...
“전기차 충전소가 한강을 따라 건설되면 전기차 산업에서는 큰 도움이 되겠군요?”
“신성자동차에서도 그런 걸 노리는 거죠. 서울시는 예전에 실패한 수상택시 사업에 흥미가 있는 모양이고요.”
공무원들의 특징인지, 실패한 사업이라도 어떻게든 다시 회생시켜보려는 의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실패한 사업은 경력에 큰 도움이 안 되니까 말이다. 대신 수상택시가 아니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드론 택시로 바꿔서 말이다.
“좋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신성과의 사업을 진행해 보세요.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은 어떻습니까? 배터리에 이어서 충전장비 개발을 하고 있다면서요?”
“예, 아무래도 이번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의 핵심은 전기 배터리 충전 기술과 인프라 확보니까요. 이카로스이노베이션에서도 배터리 생산에서 이제 인프라 사업으로 사업 확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 첫 시작점이 이번 한강 드론 택시가 될 겁니다.”
“좋아요. 뭐, 기술적인 부분은 내가 들어도 잘 모르는 거니까, 공대 출신인 두 분이 알아서 잘 해주리라 믿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가자, 김지현 비서가 들어왔다.
“어, 김 비서 무슨 일이에요?”
“예, 잠깐 쉬고 다음 분을 들어오라고 할까 해서요.”
계속해서 계열사 임원들이나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연말 송년회라고 하지만 다들 자기들의 목적이 있어서 참석한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뤄줄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 최진수 이카로스그룹 회장인 것이다.
“커피 한 잔만 줘요. 그리고 다음 사람을 들여보네요.”
“예, 회장님.”
커피 한 잔의 여유 그리고 다음 면담이 이어졌다.
“채은성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예, 잘 지내셨죠?”
전에 영화를 제작했던 채은성 감독이었다.
“채 감독님이 다음 작품을 준비하신다고요?”
“예, 그래서 시나리오를 좀 가져왔습니다.”
“시나리오는 됐습니다. 윤아영 사장이 검토해봤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음에 들어요.”
“아, 정말이십니까? 역시 시원시원하시네요. 윤아영 사장은 결정하기 어렵다고 회장님을 찾아가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채은성 감독님이 혹시 백상예술대상이나 그런 쪽으로 아시는 게 있나요?”
“백상예술대상요? 그거라면 해마다 하는 권위 있는 상이죠.”
“그거야 알죠. 민소희 잘 아시죠? 이번에 신인상 후보라더군요.”
“예,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수상 가능성이 몇 프로나 될까요?”
“하하, 글쎄요. 이번에 여자 신인 배우들이 쟁쟁한 친구들이 많아서..”
“민소희가 신인상을 좀 타야겠습니다. 채은성 감독님이 좀 도와주시죠.”
민소희의 수상을 도와달라는 말에 채 감독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인가요?”
“저..그게...”
“아시겠지만 이카로스그룹이 이제 드라마와 영화 이런 쪽으로 계속 진출하게 될 겁니다. 그룹의 자금력도 충분하고 투자할 여력이 많다는 거죠. 영화 제작도 활발하게 할 생각이고요.”
채은성은 잠시 골똘하게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민소희가 수상할 수 있도록 힘을 써보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뭐 일단 한 번 노력해 보고,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저에게 개인적으로 말하세요. 제가 해결을 할 테니 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영화는?”
“제작하는 걸로 하죠.”
“감사합니다. 회장님.”
채은성 감독 다음은 최기형 이카로스조선 사장과 이성호 베네티 코리아 사장이었다.
“반갑습니다. 두 분이 요새 같이 일을 하시는 거죠? 아틀라스호 때문에 말입니다.”
“하하, 뭐, 같이 일을 하기에는 급이 다르죠, 최기형 사장님은 대기업 경영자시고 저야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요.”
“이성호 사장님이 지금 아틀라스호의 마무리 작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내부 인테리어 쪽은 베네티가 하고 있는데 기술력이 대단하기는 하더군요.”
“그래요?”
배를 한평생 만들었다는 최기형 사장도 이번 아틀라스호 같은 초호와 요트는 처음이라 새로 배우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솔직히 배를 만드는 것보다는 고급 호텔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느낌입니다. 전에 우리들이 만들던 그런 배들은 말그대로 물 위에 떠다니는 기능에 충실했다면 이번 아틀라스호는 뭔가 화려한 호텔 느낌이죠.”
“그래요? 아무튼, 이제 곧 진수식인 거죠?”
“예, 다음달이니까요.”
“참, 그런데 회장님 베네티 본사에서 아틀라스호라는 이름에 대해서 좀 불만인 것 같습니다.”
“왜요?”
“보통 배의 이름은 여성형을 쓰거든요. 서양쪽의 전통이죠. 배에는 여자를 잘 태우지 않지만 배 자체에는 여자 이름을 붙이거든요.”
“하하, 지금이 21세기인데 그런 게 의미가 있나요? 요새는 태풍 이름도 남녀 양성평등으로 가고 있다고 하던데요.”
“하긴, 그런 걸 따지기는 좀 그렇죠. 아무튼 그런 의견이 있어서 말씀을 드린 겁니다.”
이탈리아쪽 관계자들이 배 이름에 대해서 약간 미신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배의 이름으로는 여성적인 단어가 들어가는 게 좋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일종의 미신의 영역으로 과거에 배가 자주 침몰하던 시대의 생긴 비과학적인 믿음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은 여러 가지 미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박 기술의 발달로 이제 해상에서의 위험성은 많이 줄어들었고 오히려 본격적인 바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아틀라스호는 그런 기념비적인 전환기의 상징이 될 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아무튼, 두 분이 애써 주신 덕분에 아틀라스호가 성공적으로 완성이 되었네요. 이제 진수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진수를 찾은 것은 서기호 동진 마리나 사장이었다.
“대경도 리조트는 어떻습니까?”
“일단, 올해는 성공적입니다. 올여름에는 사실 개장 준비로 그다지 재미를 못 봤지만 이번에 재벌 변호사도 성공이고 온라인 쪽에서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작년에도 수고하셨지만 올해도 좀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특히, 아틀라스호가 진수가 되면 대경도 마리나에 정박할 테니까 신경도 좀 써 주시고요.”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