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예술대상
세종문화회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당일.
“수아 씨, 다음 수상 부문은 뭐죠?”
“예, 올해 역시도 아주 경쟁이 치열했던 드라마 신인 연기상입니다.”
“신인 연기상이라면 이수아 씨가 작년에 수상했던 상이죠?”
“어머, 기억하시네요. 기억력도 참 좋으세요.”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라 여기 대본에 적혀 있습니다.”
카메라는 객석을 비춰주며 웃고 있는 몇몇 연예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
한남동, 유엔빌리지, 진수의 빌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지만 나는 집에서 TV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라마 재벌 변호사가 흥행에서 성공을 하면서 주연 배우인 정수현은 탑스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전에도 인기는 있었지만 그저 잘생긴 남자 연예인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번 재벌 변호사로 완벽하게 최고의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해외에서도 재벌 변호사의 판권 판매가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한류 스타로 성장 가능성도 크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수현을 드림엔터테인먼트로 스카웃을 할 생각이었다. 앞으로도 쇼비즈니스에 상당한 투자를 할 생각이었고 그래서 드림엔터테인먼트를 대형 기획사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중소 기획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금력은 충분했다. 지금도 수십 조의 여유자금이 있었고 앞으로 필리핀이나 브라질, 포클랜드까지 발굴 가능한 황금의 양도 수백조에 달하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채굴할 수 있는 금들이 충분했고 그간의 경험으로 채굴 노하우도 쌓여서 채굴과 매각을 통해 얼마든지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오늘의 수상자를 발표해야죠. 이수아 씨?”
“예, 올해의 수상자는 바로, 재벌 변호사의 민소희, 축하드립니다.”
객석에서 후보들의 얼굴들이 분할되어 보여지다가, 호명과 동시에 민소희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되었다.
민소희는 감격을 했는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천하의 민소희도 시상식에서는 별수 없군요. 감격을 한 건가요?”
윤아영은 TV를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연기가 많이 늘었네요. 민소희도 이미 자기가 수상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하하, 민소희의 귀에까지 들어간 건가요.”
사실, 채은성의 주선으로 백상예술대상의 심사위원들에게 로비가 시작되었고 어렵지 않게 민소희의 수상을 미리 통보 받을 수 있었다.
개개인에게 뇌물을 준 것은 아니고 내가 지배하는 이카로스그룹이 영화에 쇼비즈니스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할 것이라는 풍문 정도로도 충분히 그쪽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예술이라는 분야는 돈이 부족한 곳이다.
쇼비즈니스라고는 하지만 예술을 상업화하는 것이고 창작자인 예술가들은 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주역이라기보다는 조연 내지는 판매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본의 힘이 있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자본에 종속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모차르트 같은 최고의 예술가들도 당대의 권력자들의 경제적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예술 작업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자본과 결탁하지 않은 예술이라는 것은 존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속성들을 잘 알고 있는 예술계의 인사들이 새로운 투자 계획을 가지고 막대한 자금력을 투입하고 있는 진수의 눈치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무 영광입니다. 수상을 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 했는데, 우선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신 이카로스그룹 최진수 회장님, 드림엔터테인먼트 윤아영 사장님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재벌 변호사를 연출해 주신 홍성진 PD님, 정수현 오빠..그리고 매니저 일을 해준 민영민 오빠에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민소희가 최진수 회장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하네요.”
“하하, 뭐, 그냥 여러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멘트를 하는 거죠.”
어쨌든, 민소희가 도움을 준 사람들 중에서 진수의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민소희의 수상에 가장 큰 힘을 써준 사람이 나라고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민소희가 상을 받는 일은 나로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어쨌든 영화와 드라마 시장에서 나의 영향력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민소희 수상을 했고 정수현은 어떻습니까?”
“스카웃 말씀이신가요? 그거라면 물밑에서 작업이 진행 중인데 아마 이번 시상식이 끝나고 결정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정수현도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 연기 부문 우수상을 받게 될 것이다. 대형 기획사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이었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에게는 권위가 있는 시상식으로 알려져 있고 언론도 백상예술대상 수상자들에 대해서 기사들을 많이 쓰기 때문에,
연예인들 입장에서는 입지를 다지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몸값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대형 기획사들이나 영화 투자 업체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수상자들이 결정되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형 기획사들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잠재력 있는 연예인들이 수상자로 선정된다고 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편협한 예술 논리가 아니라 시장에서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자본의 논리가 개입해서 보다 대중적인 평가가 가능한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정수현도 최근의 인기도 있고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까지 해서 더 한껏 몸값을 높여서 드림엔테테인먼트와 협상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개 연예인의 몸값 같은 것은 나에게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몸값을 좀 높여보겠다는 거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인기가 좋으니까요. 회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쇼비즈니스 분야에도 상당한 투자를 할 생각이니까요. 어쨌든 우리가 가진 건 돈뿐이니까, 자금력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겠죠.”
진수의 말에 윤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정수현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겠습니다.”
TV에서는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객석을 카메라가 비춰주지만 다들 굳은 얼굴로 별다른 반응들이 없었다.
“배우들 반응이 시큰둥하네요.”
“후훗, 원래 연예계가 그렇죠. 배우들이 아이돌 가수보다 더 안정적이고 롱런하는 직업이잖아요.”
“자기들보다 아래로 본다는 건가요?”
“그럴 거예요. 연예계라는 곳이 원래 폐쇄적이고 편협한 곳이라, 일반인들 상식과는 많이 다른 세상이죠.”
진수도 아이돌 가수의 무대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TV를 끄자 윤아영이 익숙한 동작으로 와인들 가져왔다.
“그래, 좋아요. 와인이나 한잔 합시다.”
***
센트럴 타워, 26층.
“회장님, 최근에 회장님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한 내용입니다.”
김지현 비서가 일간지에 난 내 기사들을 스크랩한 파일을 가져왔다. 이미 신문 기사를 지면으로 읽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보는 것이 더 익숙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온라인 쪽은 워낙 난립한 언론사들도 많고 여전히 주요 일간지들은 지면에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문의 지면상에 기사가 나오는 것의 권위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수는 비서실을 통해서 이카로스그룹이나 최진수 개인의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보관하라는 지시를 내려 놓고 있었다.
“음, 연예 엔터 분야의 기사가 많군요?”
“예, 아무래도 드림엔테테인먼트가 활발하게 중소 기획사들을 인수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기사들의 공통된 내용은 이카로스그룹의 최진수 회장이 영화와 드라마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중소 연예기획사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공룡이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기사들도 많았다.
“정수현 씨가 드림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할 거라는 기사도 있던데요.”
김지현은 짧은 베이지색의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위에는 푸른색의 깔끔한 블라우스, 세련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도시적인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김 비서도 정수현 씨에게 관심이 있나요?”
김지현은 어딘지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촬영을 하러 자주 왔었으니까요. 매력 있는 배우던데요.”
“그래요? 하긴, 정수현의 매력이 있으니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거겠죠.”
“하지만 정수현은 가짜고 진짜는 최진수 회장님 아닌가요?”
“정수현은 가짜고 진짜는 나라고요?”
김지현은 약간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정수현 씨가 인기를 끈 이유는 재벌 변호사에서 이미지 때문인데, 재벌 변호사에 나온 센트럴 타워의 26층 사무실도 그렇고 부가티나 요트, 헬기 같은 것들요. 모두 회장님의 소유물들이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하긴,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정수현이 원래 잘생긴 꽃미남 배우기는 했지만 이전에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인기는 그저 그런 정도...
탑스타로 주목을 받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재벌 변호사에 출현하면서 단숨에 최고의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그 주요한 이유는 바로, 정수현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화려한 소품들, 실제로는 나의 소유였던 파텍필립 그랜드 차임이나, 살바토르 문디 같은 고가의 명품 내지는 예술품들, 그리고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리조트와 요트, 빌딩, 대기업 사무실 같은 이미지들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재벌을 다룬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이 다른 감도 있었지만 그런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재벌은 그저 돈이 많다는 설정에 머물렀지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이나 자산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진짜 재벌이기도 한 나의 물건들이 대거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현실적으로 혹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단지, 소품이나 설정이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 최고가의 자동차나 요트, 나의 실제 사무실 공간이 공개되면서 온라인 상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드라마에서는 정수현의 사무실과 정수현의 자동차라는 설정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의 주인은 바로 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정수현의 인기에 한편으로는 약간 질투가 생기기도 했지만 정수현이야말로 나의 또다른 분신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도 대중의 관심을 간접적으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정수현 씨의 이미지의 대부분은 최진수 회장님에게서 따온 거라고 홍성진 PD님도 말씀하시던 걸요.”
“하하,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홍성진은 나의 센트럴 타워 26층 사무실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김지현에게도 연예계로 데뷔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했다.
“김 비서에게 캐스팅 제안을 했다는 겁니까?”
“농담이었겠죠. 저보고 연예인 상이라고 하기는 하더라고요.”
연예인이 될 상이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김지현 비서가 화려한 외모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섹시하고 차가운 이미지가 있어서 한국 연예계에 자리가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런 스타일의 배역이 좀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카리스마와 섹시함이 공존하는 그런 배역 말이다.
“아무튼, 정수현 씨는 이제 우리 회사 소속이니까, 정확히는 드림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죠. 오늘쯤 기사가 나올 겁니다.”
“그것도 스크랩을 할까요?”
“아뇨. 됐어요.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기사는 아니니까요.”
아무리 인기 스타니 한류 스타니 해봐야 일개 연예인일 뿐이었다. 내가 하고 거대한 사업들에 비하면 드림엔터테인먼트는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보다, 다음 주에는 거제도에 가봐야겠군요.”
“예,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거제도에서 아틀라스호의 진수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드디어 내가 최초로 건조한 차세대 초호화 요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