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호
“기자들이 많이 모였군요.”
아니, 저 녀석은...
카메라 기자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서울에서 봐도 민영민, 거제도에서 봐도 민영민이 분명했다.
“선배님, 아니, 회장님.”
녀석은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창피하게, 왜 손을 흔드는 거야?
“영민이구나, 거제도에는 웬일이야?”
“웬일은요? 오늘 아틀라스호의 진수식이 있는 날이 아닙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
“최진수 회장님의 역사적인 진수식을 제가 놓칠 수는 없죠. 그나저나 최진수 회장님의 진수식이라? 뭔가 라임이 맞는데요.”
“쓸데없는 소리를..”
아무튼, 민영민을 비롯해서 카메라 기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초호화 요트의 진수식,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히 고급 요트라는 것도 있고, 한국에서 뭔가 기존의 조선업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던 고부가 가치의 선박을 건조했다는 것도 한국 조선사에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물론, 요트의 전반적인 설계나 내부 인테리어 자재들은 이 분야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아즈무트 베테니가 담당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술 이전이나 기술 공유가 이루어지면서 이카로스조선도 요트 제조 분야의 기술력을 상당히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수식에 앞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최기현 이카로스조선 사장도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번 아틀라스호는 아즈무트 베테니와 협업을 통해서 건조한 선박이지만, 앞으로는 자체적으로 고급 메가 요트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조만간 한국이 세계 요트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요트를 개발하고 실제로 멋진 최고급 초대형 요트가 만들어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대당 가격이 1조 원이 넘고, 사실상 개인이 레저용으로 사용하는 요트라고 한다면 이런 배의 판매가 쉬울까요? 기술적인 문제와 별개로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제 첫 시작이니까요. 기자님들도 좀 긍정적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하하하..”
“기자분이 질문하신 것처럼 이런 메가 요트들은 그 자체로 수익성이 나는 그런 선박은 아닙니다. 저희가 기존에 생산하던 유조선이나 LNG 선박과는 철학 자체가 다르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입니다. 한편에서는 휘발윳값 100원을 아껴야 하는 서민들도 있지만 수백, 수천억, 그리고 수조 단위의 돈을 개인적인 취미를 위해서 쓰는 슈퍼 리치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죠.”
“슈퍼 리치요?”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들이죠. 슈퍼 리치는 돈이 많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재산의 증식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수익이 많은 사람들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자신의 자산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알 수 없게 되죠.”
“양자 물리학의 불확정성의 원리 같은 것인가요?”
“하하, 비슷합니다. 양자 입자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본의 특성 때문에, 특정 시점의 자산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그 사이에 이미 자산에 변동이 생겨서 자산의 규모는 더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거죠. 아무튼, 그 정도로 막대한 자산가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최진수 회장님도 그런 케이스인가요? 경제부 기자들도 최진수 회장님의 자산 규모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하던데요?”
“음, 뭐, 그건 저희 그룹 회장님 일이라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네요.”
“하하하...”
“하하하..”
“최진수 회장님이 아틀라스호의 주인이 되는 건 확실한 거죠?”
“그렇습니다. 첫 번째로 건조한 국산 메가 요트라는 상징성도 있고, 일단은 최진수 회장님이 이 배를 인수해서 사용하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배려로 기자분들을 비롯해서 찾아오신 유튜버나 관심 있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님들에게 진수식이 끝나는 대로 배의 내부와 외부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최기현 회장은 기자들의 질문 몇 개를 더 받고 프레젠테이션과 뒤이은 기자회견을 마쳤다.
사람들은 이카로스그룹의 회장이자 아틀라스호의 새로운 주인이 된 나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았지만 내가 언론 앞에 직접 나설 일은 없었다.
앞에 나가는 것도 좀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고 이것저것 질문에 답하다 보면 쓸데없는 실언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내가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서 키우고 있는 이카로스그룹의 자금력의 출처 같은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뒤에서 좀 신비로운 회장으로 남기로 하고 언론을 상대하는 것은 최기현 사장이 맡기로 한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진수식이 시작되었다.
도크 안에서 건조 중이던 배는 이제 버팀목을 제거하고 조선소 앞 바다로 입수를 하게 될 예정이었다.
원래 선박의 진수식에는 샴페인 병을 깨뜨리는 전통이 있다. 이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고대의 바이킹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위험한 곳이고 생명을 빼앗아 가는 초자연적인 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일종의 그런 바다의 괴물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가장 좋은 제물, 아름다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의 전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의 이름에 여자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런 제물로 바쳐진 여성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예를 들면 메리라는 이름의 여자를 바다의 신 또는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 배의 이름을 메리호라고 짓는 것이다.
바다의 괴물에게 이미 바친 여자의 이름이니 이 이름을 가진 배는 안전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꼭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의 진수식에서는 여성이 샴페인 병을 진수하는 배에 내리쳐 병을 깨는 전통이 남아 있다.
그런 전통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소에서 흔히 하는 관습이라 이번 진수식에도 민소희가 샴페인을 깨뜨리는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이다.
“회장님, 이제 병을 내리치면 되는 거죠?”
“걱정할 거 없어요. 그냥 힘껏 배를 향해서...”
‘펑..’
내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민소희는 들고 있던 샴페인 병을 냅다 후려쳤다. 산산이 조각난 병 사이로 샴페인이 거품을 내며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마지막 버팀목이 제거되고 배는 슬라이딩 레일을 따라 바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닷물이 출렁이며 크게 파도가 일었다. 흡사 샴페인처럼 하얀 파도 거품이 조선도 도크 앞쪽으로 밀어닥쳤다.
폭죽이 터지고 흥겨운 음악까지 흘러나오며 진수의 새로운 메가 요트, 아틀라스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배는 바다에 입수한 충격으로 크게 휘청이고 있었지만, 이미 줄을 연결한 견인선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한번 크게 흔들렸던 배는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크게 튀어 오른 파도에 잠시 뒤로 피했던 기자들도 일제히 다가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와, 역시 굉장한데요. 일단 배가 어마무시하게 크고 말입니다.”
민영민도 기자들 큼에 껴서 열심히 아틀라스호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단지 크기만 한 배가 아니라고 안에 실내는 최고급 호텔 이상이라니까.”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최진수 회장님이 만드신 최고의 배니까, 당연히 세계 최고의 요트겠죠?”
“편하게 선배님이라고 불러, 민영민 너는 우리 회사 직원은 아니잖아? 안 그래?”
“아, 그게..이제 졸업도 가까워 오고, 혹시 이카로스그룹에서 사내기자 자리 같은 건 없을까요.”
“사내기자?”
뭐야? 설마, 이 녀석 이카로스그룹에 취업을 하고 싶다는 건가? 물론, 그건 어림없는 일이지...
“예, 이카로스그룹도 이제 대재벌그룹의 반열에 들어갔으니까요. 사내신문 같은 것도 필요하고 그러지 않나요? 그리고 이제는 디지털 시대, 신문이라고 해도 텍스트보다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니까, 당연히 사진 기자도 필요하겠죠?”
“글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흠, 아무튼, 아틀라스호의 촬영을 하게 돼서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그래, 일단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영민이 네가 좋아하는 사진이나 마음껏 찍으라고..”
흔들리던 아틀라스호는 이제 완전히 안정을 찾고 고요하게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아틀라스호로 올라가기 위해서 스텝카가 설치되고 나를 선두로 민소희와 최기현 사장 그리고 기자들이 아틀라스호 승선하기 시작했다.
배에는 미리 승선한 크루들이 진수 일행을 환영해 주었다.
“아틀라스호에 승선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배가 건조되는 것은 계속 보고를 받고 있었고 설계 단계부터 이 배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실제로 완성된 아틀라스호의 모습은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항상 크다고 한다.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지만, 전체에는 부분에는 존재하지 않은 판타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틀라스호의 판타지는 거대한 초호화 요트라는 그래서 럭셔리의 끝판왕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그런 판타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나 혼자 느끼는 것은 아니어서, 최기현 사장을 비롯한 민소희와 다른 기자들도 화려한 요트의 모습에 다들 감탄을 하고 있었다.
요트 내부는 흡사 최고급 호텔을 방불케 하는 아니 그 이상의 고급스러운 외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안에 꾸며진 것이라는 것이 더더욱 그 특별함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일반적인 건물인 호텔과는 달리 배가 가지는 개방감은 상당한 것이어서 아틀라스호의 아름다운 선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의 풍광들, 특히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는 다른 유명 호텔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진수도 내심 만족스러운 느낌으로 아틀라스호를 둘러보고 있었다.
“선배님, 역시, 최고의 요트인데요.”
민영민이었다. 어느새 녀석은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 녀석은 왜 내 뒤를 따라다니는 거냐고...
“뭐, 이제 막 진수한 배니까. 아무래도 신형 요트라 깨끗하고 디자인도 최신 트렌드가 반영되어서 멋지기는 하지.”
“플라잉 폭스도 처음 봤을 때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플라잉 폭스조차도 아틀라스호에는 비교과 안 되는 느낌이네요. 뭐랄까? 10년 된 중고차와 최신 세단을 비교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하, 뭐, 플라잉 폭스도 이제 연식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무리 좋은 배고, 호화요트라고 해도 배라는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부식이라든가, 내부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선박의 기술 자체도 끊임없이 발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십 년 전에 건조된 플랑잉 폭스와 아틀라스호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라잉 폭스만해도 크로아티아의 대형 선박 조선소에서 특별히 주문을 받아 생산한 정도로 선박 건조 기술에 비해서 내부 인테리어의 럭셔리함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워낙 큰 배라 화려한 요트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베네티의 고급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설계부터 참여해서 완성시킨 아틀라스호와는 차이가 확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민영민이나 내가 보기에도 아틀라스호는 럭셔리의 끝판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다른 기자들은 처음 접해보는 화려한 대형 요트의 화려한 인테리어에 말 그대로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있었다.
“와, 역시, 대단한데.”
“이런 요트는 처음인데, 역시 1조짜리 배라 다르긴 다르네.”
“이 배가 최진수 회장이 개인 소유하게 될 거라는 거지?”
“그래, 이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파티 같은 걸 즐기는 거지,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워낙 돈은 많은 슈퍼 리치니까, 가능한 거 아니겠어.”
“진짜 부럽기는 부럽다. 내가 어지간한 거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이건, 정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최진수 회장은 이 배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거지?”
기자들도 다들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궁금해하고 있었다. 내가 이 배를 타고 어디로 갈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