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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162/200)

찌라시

종로, 센트럴 빌딩 26층, 진수의 사무실.

“한국에서 전례 없는 초호화 메가 요트, 아틀라스호가 진수되었다. 진수식에는 작년 최고의 드라마였던 재벌 변호사의 여자 주인공인 민소희가 참가해서 행사를 한 층 더 빛을 내주었다. 아틀라스호는 이카로스그룹 계열사인 이카로스조선의 첫 번째 메가 요트로 이탈리아의 명품 요트 제조사인 아즈무트 베네티가 요트의 내부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를 했다. 거제도 조선소에서 진수된 아틀라스호는 진수식 취재를 온 기자들을 태우고 남해안을 항해해서 여수 경도의 이카로스리조트의 슈퍼마리나에 도착해서 정박하게 되었다. 당분간 아틀라스호는 경도에 머물면서 배의 정비와 크루들을 보충해서 다음 행선지를 향한 항해 준비를 하게 된다.”

윤아영은 신문기사를 천천히 읽어 내리고 있었다.

“회장님 기사가 대서특필 되었어요.”

“그래요. 기사꺼리가 없었던 거 아닌가요. 주요 일간지의 일면이 이런 기사라니 말입니다.”

“왜요? 1조짜리 초호화 요트라? 그것도 한국에서 이런 초대형 요트와 리조트와 마리나 같은 사업을 벌이는 것은 회장님이 처음이라잖아요.”

윤아영의 말대로 각종 일간지에 일면 내지는 주요 뉴스로 아틀라스호의 진수식 기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대형 뉴스꺼리가 없기도 해서였겠지만 어쨌든, 아틀라스호의 진수식에 참석한 기자들의 숫자가 많았고 그만큼 기사도 많이 작성된 모양이었다.

김지현 비서가 매일 스크랩을 하는 주요 일간지는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아틀라스호는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원래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보통을 넘어서는 거인 같은 것들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공룡인데, 냉정하게 공룡이 귀여운 동물은 아니다. 파충류에 속하고 뱀과 악어의 사촌으로 사실상, 기괴하고 징그럽게 생긴 녀석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공룡을 특별히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룡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거대함이다. 어마무시하게 큰 빅씽인 것이다.

크고 거대하고 비현실적인 존재인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거대한 빌딩이나 건축물, 아니면 거대한 선박을 볼 때 느끼는 그런 감정들에게는 그런 공통점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사람들은 공룡처럼 큰 거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아이들도 별로 귀엽지도 않은 공룡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니까요.”

윤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우리 조카들도 공룡을 가장 좋아하더라고요. 브라키오사우르스 그런 거 말이에요.”

“사실, 공룡들은 엄청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이잖아요. 그거에 비하면 아틀라스호는 거대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답죠.”

뉴스 기사에 첨부된 아틀라스호의 사진들도 진짜 아름답고 멋진 것들 뿐이었다. 특별히 사진을 잘 찍었다기보다는 아틀라스호가 완벽한 배라는 편이 맞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인기가 좋은 건 사실이네요.”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니까요.”

“참, 그나저나 민소희가 이카로스그룹에 사내 신문이 있냐고 물어보던데요.”

“사내 신문요?”

민영민이 졸업 후에 이카로스그룹에 들어오고 싶다더니 그 이야기인가?

“사내 신문은 없지만 홍보를 위해서 신문사를 하나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윤아영은 어딘지 진지한 얼굴이었다.

“정말, 사내 신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예, 뭔가 이카로스그룹은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이나 이카로스조선 그런 첨단, 대기업 그런 곳들과 드림엔터테인먼트가 같이 있는 이질적인 그룹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드림엔터테인먼트의 비중이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매출이나 사원 수로 보면 말이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사업이 드림엔터테인먼트여서 그런지 나도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이나 조선 같은 회사의 임원들보다는 드림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윤아영이나 민소희와 더 가깝게 지내고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말 그대로 첨단기업들이라 내가 뭔가 지시할 만한 일들도 그다지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크게 기업의 진행 방향을 정해주는 정도...

그에 비해서 드림엔터테인먼트는 작은 규모의 회사지만 뭔가 경영하는 재미도 있고, 드라마 제작이나 영화 촬영, 콘서트 같이 내가 참여할만한 소소한 일들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음, 결국, 드림엔터테인먼트도 오너인 내 입장에서 보면 주요 기업인가?

“이질적인 회사들이 모여서 창설된 이카로스그룹이니까, 내부단결을 위해서 뭔가 사내 분위기를 이끌어갈 신문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 거군요?”

윤아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사내 방송국도 좋지만, 아무래도 회사는 일하는 곳이라 방송을 다 챙겨볼 수는 없는 일이고 그에 비해서 신문 같은 건 로비나 휴게실에 비치해 놓으면 지나가다가 한 번씩 훑어볼 수도 있고, 그렇게 그룹 내의 다른 기업 상황도 좀 알고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사내 신문 같은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던, 나의 당초 계획과 달리 어느 사이에 윤아영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럼,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신문사를 만들어 볼까요?”

“정말로 만들어 보고 싶은 거예요?”

“예, 그리고 사내 신문도 그렇고 연예 관련된 언론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진짜 신문사를요? 인터넷 신문 같은 거 말이죠?”

“예, 연예계라는 곳이 워낙 사건 사고도 많고 연예인들이 보통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윤아영의 말대로 연예인들은 방송 같은 곳에 나와서는 멋지고 아름다운 외모와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재밌는 사람들 정도로 묘사가 되지만, 실제로는 자유분방함을 넘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마디로 보통내기들이 아닌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유명한 사람들이 많고 다들 개성들도 강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상상도 못 한 일들을 벌이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연예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정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죠.”

“찌라시 같은 곳에 나오는 연예인들 사생활 같은 거 말인가요?”

“예, 찌라시라고는 하지만 주로 그런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게 연예부 기자들이거든요. 그리고 근거 없는 소문도 있지만 사실로 밝혀지는 일들도 많으니까요.”

연예 찌라시라? 꼭 연예인들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연예인과 관련된 개인의 사생활들이 많이 나오는 사설 정보지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 누구와 누가 사귄다거나, 누가 누구의 스폰서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은데,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특히 젊은 여배우들의 사생활들, 그리고 그런 여자 연예인들과 연관된 돈 많은 사업가, 기업가나 권력자들에 관한 정보들이 많이 공유되는 편이다.

연예계라는 곳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실제로 수익을 얻고 돈을 버는 것은 몇몇 탑스타들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서 지망생이나 무명의 연예인들은 거의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나름 연예인이라 소위 말하는 품위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연예인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돈이 궁한 연예인들과 돈 많은 사업가들이 연결되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대부분 정상적인 연예 관계는 아니고 나이 많은 유부남 회장님과 젊은 신인 여배우의 스캔들 같은 일들이 발생하는데,

이런 연예인들이나 회장님들의 정보가 여러 분야의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오너의 지배력이 강한 한국 기업들의 특성상 오너 리스크는 항상 상존하는 것이다.

기업의 왕 같은 존재로 군림하는 오너들은 경영권 외에도 기업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그룹은 회장 누구, 또 어떤 기업의 누구 회장, 이런 식으로 대중에게는 기업이라는 것이 오너의 소유물이자 아바타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오너들의 사생활 관리는 기업 경영이나 투자에도 항상 고려해야 하는 주요 정보들이고, 사생활의 영역이라 찌라시 같은 어둠의 경로를 통한 정보가 유일한 정보의 창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거야, 찌리시를 구해서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돈만 지불하면 구하는 거 아닙니까?”

“돈으로 사는 거 말고, 진짜 고급 정보는 몇몇 멤머들만 공유한다고요. 그리고 그 그룹에 들어가려면 우리도 그만한 정보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고요.”

윤아영 말로는 증권사 직원들이나 연예 전문기자, 혹은 각 기업들의 언론홍보 담당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고 정보력이 좋은 사람들이 보여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고급 정보들은 이런 소수들만 공유하고 말이다.

“음, 고급 정보에 접근하려면 우리도 고급 정보망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말인가요?”

“예, 아무래도 사생활 부분이고 연예인들과 재벌가 사람들이 많이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라 연예 전문기자들이 유리해요.”

진수도 윤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재벌들, 혹은 정치인들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본능에 충실한 남자들이 대부분이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젊고 매력적인 여자들과 연관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성공을 꿈꾸는 매력적인 여성들이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곳이 바로 연예계, 필연적으로 연예인들, 특히 성공에 목마른 신인 연예인들과 이런 재벌과 권력자들 간의 거래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악취가 나는 썩은 세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악취가 나는 썩어 가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고도로 발달한 풍요로운 자본주의 세계의 이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연예 기자들을 보유한 언론사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게 도움이 되겠군요?”

“물론이죠. 사내 신문이든, 인터넷 신문이든, 뛰어다니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자들이 있으면 정보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거니까요.”

평소에는 예쁜 얼굴에 비해 약간 어리바리한 편인 윤아영이지만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직 여배우 출신이라 그런 이쪽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그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윤아영의 말을 듣고 보니, 비공식적인 정보들을 수집할 정보원들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았다. 윤아영의 말대로 작은 인터넷 신문사라도 하나 창간을 해서 정보력을 키워 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음, 그런데, 그런 일을 맡길 사람이 있을까요?”

“마침, 민영민 씨가 기자 일에 흥미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뜻밖에도 윤아영의 입에서는 민영민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민영민요?”

그건, 좀 곤란하지 않나? 녀석과 엮이는 것은 그다지...

“민영민이 사진 찍는 건 좋아하지만, 기자는 좀 무리가 아닐까요?”

“왜요? 나름 명문대, 그러니까 회장님과 동문이잖아요?”

“흠, 뭐, 그렇기는 하죠.”

생각해보면 민영민이 이카로스그룹에 들어온다고 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윤아영의 말대로 민영민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라면 찌라시든 뭐든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평소에도 카메라로 화려한 물건들을 찍는 걸 좋아하는 민영민이라면 연예인들이나 재벌가의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뒤를 캐는 일도 적성에 맞는다고 할 수 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 말도 잘 듣고 나름 믿을 만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녀석의 단점들은 다 알고 있으니 내가 컨트롤 하는 데는 오히려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고 말이다.

“민소희 사촌 오빠이기도 하고, 나름 우리와는 같이 작업을 했던 일도 많고요. 사진을 찍는 게 특기라고 할 수 있지만, 블로그나 동호회 게시판에서 오랫동안 활동에서 글 솜씨도 괜찮은 편이더라고요.”

“윤아영 사장님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아, 저도 요즘에 슈퍼카에 관심이 생겨서 민영민 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봤거든요.”

“그래요?”

“뭐,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렇게 사내 신문사든, 인터넷 신문사든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때, 회장실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빈 살만 왕세자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 가능하시냐고 물어보시는데요.”

“빈 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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