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가다
이집트, 후르가다.
비행기는 홍해에 접한 항구 도시 후루가다 국제공항에 착륙하고 있었다. 빈 살만 왕자의 초대로 진수는 멀리 이집트까지 온 것이었다.
옆에는 김지현 비서가 동행하고 있었다. 외국어 실력도 출중하기 때문에 해외 출장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같이 온 것이었다.
“이집트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좋은데요.”
후루가다 국제공항을 나와 홍해에 접한 항구 도시 후루가다로 행했다. 주변은 황량한 건조지대의 모습이었지만, 해변에 자리 잡은 항구 도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놀라운 일이군요. 80년대만 해도 인구 수백 명 수준의 어촌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나코 못지않은 휴양 도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후루가다는 이집트 남부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지만, 이집트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인 들의 투자를 받아들이면서 이 작은 어촌 마을은 서유럽의 자본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휴양 레저를 위한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루가다가 가진 천해의 입지 조건이 이 작은 어촌 마을이 유럽 자본의 선택을 받은 이유라고 하는데, 30킬로미터가 넘는 아름다운 자연 백사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홍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상아빛 모래가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변, 거기에 유럽의 자본과 기술이 합쳐져서 리조트와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지중해 못지않은 휴양 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주로 유럽과 러시아인들이라고 한다.
아름답고 조용한 휴양 도시지만 이집트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돈 많은 유럽의 부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고 홍해를 사이에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이어지는 곳이라 중동의 부호들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라 본국에서 가까운 후루가다에서 진수를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물론, 진수를 개인적으로 얼굴을 보자는 것은 아니었다.
빈 살만이 원하는 것은 진수가 새로 건조한 최신형 호화요트 아틀라스호였다. 원래 사치스런 생활로 유명하던 빈 살만 왕세자는 유럽 각지에 호화 대저택을 비롯해서 고가의 슈퍼카와 전용기, 그리고 초대형 요트들을 소유하고 있는 걸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사우디 내부의 사정, 왕위 계승 문제로 부담을 느껴서 그런 사치스런 물건들을 정리하고 사우디로 귀국해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한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왕위 계승 문제가 완전히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는 왕이 되시는 겁니까?”
후가가다의 호텔에서 만난 빈 살만 왕세자는 진수의 질문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아직은 건재하시니까요. 하지만 왕세자로서 왕의 계승 문제는 정리가 된 셈입니다. 이제 그 논의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왕족과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율법 학자들 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죠.”
빈 살만을 만나기 전에 사우디아라아비아의 정치 구조를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는 세력은 크게 왕족들과 그 외의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이슬람 율법 학자들 정도로 나눌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왕족들이었다. 하지만 왕가의 왕세자가 차기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력들의 합의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자질에 대한 검증도 있어야 하고 말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금까지 그런 검증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평소 자주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사치스러운 생활도 잠시 접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위 승계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이 된 이후에는 다시 예전의 그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럼, 차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이 되시는 것은 확실한 거군요?”
“하하, 그런 셈이죠. 그래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사업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사우디아라바아는 석유산업이 이제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석유산업은 가난한 유목민의 나라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다른 산업은 발전을 하지 못하고 말았죠.”
“그럼, 어떤 대체 산업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일단은 노동집약적인 그런 산업은 좀 곤란하죠. 사우디 국민들이 그다지 근면한 편은 아니거든요.”
중동의 산유국들의 특징이지만, 비교적 넓은 국토와 적은 인구 그리고 끝없이 생산될 것 같았던 석유 자원 덕분에 대부분 국민들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상당히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과도한 국가의 복지 같은 것들이 국민들을 나태하게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국유화된 석유산업이 이런 국가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검은 황금이라고도 불리던 석유산업이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석유의 고갈보다 더 앞서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경제학자들이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고갈로 경제가 붕괴할 것을 경고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석유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화석연료의 사용이 급격하게 제한이 되는 추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중립이라는 이슈가 부각되면서 전세계가 이제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일 수밖에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석유산업은 이제 곧 사양길로 접어들 것 같은데 국민들은 노동을 꺼린다? 좀 곤란한 일이군요.”
“그래서 이곳 후루가다처럼 관광산업을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죠.”
“관광산업을 말입니까?”
“사우디아라비아도 지금은 종교적인 문제로 개발이 안 되고 있지만, 홍해와 아라비아 같은 아름다운 바다와 접해있는 반도 국가입니다.”
보통은 사우디아라바아는 열사의 나라, 혹은 사막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따지고 보면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고 인구의 대부분은 중부의 사막 지역이 아닌 해안 지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건조한 내륙과 해안 지역이 만나는 후구가다와 비슷한 지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는 하군요.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광산업이라는 건 좀 어색해 보이는데요.”
“왜요?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만 해도 이미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죠. 두바이라고 별 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후루가다도 마찬가지고 자본의 힘으로 건물들을 짓고 환경을 정비해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인 곳들이죠.”
“차이라면 후루가다는 유럽 자본이 주도를 했고 두바이는 중동 자본이 주도했다는 차이가 있겠네요?”
“맞습니다. 두바이는 대표적인 성공사례죠.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 내부적으로는 그런 개발 사업에 반발이 크기는 합니다. 외국인들이 관광을 하러 온다는 것도 서구문화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종교계에서의 반대하는 이유 중에 하나고요.”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님의 의지가 강하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이죠. 이제는 석유산업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지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죠.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고, 그게 아니어도 화석연료 특히 석유의 사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그건 그렇죠. 시대의 큰 흐름 말입니다.”
“그래서, 어설프게 거대한 조류를 역행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거죠. 오히려 거대한 물결이 다가올 때는 그 파도의 방향으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관광산업을 위해서 요트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는 건가요?”
빈 살만 왕세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를 위한 차세대 산업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틀라스호를 직접 보고 싶다는 데는 개인적인 욕망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빈 살만 회장이 요트와 리조트 호텔, 그런 해양 레저 산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어떤 목적인지 와는 별개로 말이다.
“요트는 언제나 나의 관심사였죠. 이곳 후구가다에도 중동에서는 드물게 대형 마리나 시설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두바이가 더 규모가 크지만 두바이 전에는 후루가다가 중동의 요트들이 모이는 곳들이고요.”
진수와 김지현은 일정상 비행기로 나중에 출발했지만 경도 슈퍼마리나에 머물던 아틀라스호는 미리 출발해서 인도양을 지나 홍해의 항구 도시인 후구가다에 먼저 입항에 있었다.
빈 살만의 말대로 후구가다도 유럽의 자본에 의해서 개발되어서인지 어딘지 고급스러운 유럽 스타일의 아름다운 도시였고, 호텔이나 리조트들도 다들 그 수준들이 유럽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해양 레저 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요트들을 위한 마리나도 잘 정비되어 있어서 2백 대 이상의 중대형 요트들이 후루가나 정박해 있는 모습들은 이곳이 이집트가 아니라 지중해의 어느 항구 도시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곳으로 아틀라스호를 초청하신 거군요?”
“예, 최진수 회장님에게 후루가다를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저에게 이곳을 말입니까?”
“아트라스호도 건조하셨지만 한국에 경도라는 곳에 해양 리조트 단지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 머니로 돈은 많지만 직접 뭔가를 생산하거나 건설하는 국가는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다 사면 되는 거겠죠?”
“맞아요. 자본주의 시대에 돈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기는 하죠. 아무튼, 그래도 실재하는 건물들, 그러니까 리조트와 마리나, 호텔, 도로, 공항 같은 것들을 건설하려면 건설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그 분야의 경험들도 필요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도 필요합니다.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죠.”
“돈이라면 빈 살만 왕세자님이 저보다 더 많으신 거 아닙니까?”
“하하, 나의 재산이라는 것이 사우디 왕실의 자산이니까, 개인적인 돈은 아니죠. 물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내가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내가 직접 움직이게 된다면 내부 반발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죠.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관광객이라는 건, 이슬람 율법에 반하는 외계의 침입자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있으니까요.”
빈 살만 왕세자는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리조트 사업에 투자해 줄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말대로 자신이 직접 투자를 해서 사업을 벌이게 되면 내부에서의 강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제가 투자를 한다고 해도 리조트와 마리나를 사우디에 개발하는 것에 대한 종교적인 반발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차이가 있죠. 서구 문화가 들어오는 창구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반발에 더해서 미래가 불확실한 사업에 왕실 재산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반발 두 가지가 합쳐지는 거죠. 하지만 그 최진수 회장님이 투자를 하신다면 그 중 하나는 사라지는 거니까요. 나머지 반대 세력은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얻게 되는 이익은 뭔가요?”
“하하, 여길 보시죠. 세계 어디에 가도 이렇게 아름답고 이국적인 휴양지는 없을 겁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아직 미개발지인 홍해에 유럽 자본이 투입되어서 가능했던 일이죠. 아직, 아라비아해 일대는 서구적인 레저 사업의 처녀지 같은 곳입니다.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이슬람이라는 특성 때문에 관광산업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지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죠. 천해의 자연 조건과 더불어 유럽과도 가까워서 여기에 아름다운 리조트와 호텔, 마리나를 건설하게 된다면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곳이죠.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제가 얼마든지 유리한 조건으로 파격적인 개발권을 드릴 수 있습니다.”
“특혜를 주시겠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파격적인 특혜를 드릴 수 있죠.”
“흥미로운 제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