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섬
불확실한 미래를 결정하는 방법은 역시 행운의 과자겠지, 후루가다의 마리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테라스에서 나는 행운의 과자 병을 집어 들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제안한 3백억 달러짜리 사업, 간단히 말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연안에 제2의 두바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세부 조건들은 좀 더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지만 이 사업 자체가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또 내가 이 사업으로 이익을 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3백억 달러라는 금액도 대충 36조 정도 되는 액수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돈이기는 했지만,
어마어마한 돈인 것은 분명했다.
거기에, 최근에 신성자동차그룹과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하기로 한 액수도 20조에 달하고 있었다.
두 가지를 합치면 56조나 되는 돈이 필요한 것이다. 포클랜드 제도의 제이콥 섬에서 찾아낸 황금의 매각 작업이 순조롭게 끝난 덕분에, 30조 이상의 현금이 추가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에 가지고 있던 9조 정도의 현금에 이번에 30조를 더해도 39조 정도다, 그 외에 부동산이나 주식들도 있지만,
당장 처분할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모자라는 17조 정도는 필리핀이든 브라질이든 아직 찾지 않는 야마시타 골드나 늑대의 눈물을 찾아서 마련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만약에 빈 살만의 제안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잔 앞바다에 인공섬을 개발한다면 말이다.
선택지를 만들어 보았다. 선택지는 아주 심플했다. 1은 빈 살만의 제안을 받는다, 2는 거절한다.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나서, 행운의 과자 하나를 꺼내서 입에 밀어 넣었다.
아라비아해, 물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라비아해는 아니고 홍해다, 홍해라는 말은 바다 아래쪽에 해조류 때문에 낮은 곳은 붉은빛이 나기도 해서라는데, 그냥 봐서는 아름다운 에머럴드빛 바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풍광들이 건조한 사막지대가 많아서인지 뭔가 빛이 파스텔톤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햇살이 강하고 전반적으로 온도가 높은 뜨거운 날씨였지만 건조한 사막의 공기 때문인지 습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상당히 쾌적한 느낌이었다.
어디든 햇살만 피하면 서늘해지는 그런 기후인 것이다. 관광이나 레저 산업에는 이런 아라비아 지역이 확실히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태양과 뜨거운 여름을 즐길 수도 있고 그러면서 열대의 습기를 피할 수 있어서, 후루가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청량한 느낌이 나는 수채화 같은 느낌이었다.
지중해의 그리스와도 비슷하지만 또 그곳과는 다른 아프리카 대륙의 느낌도 있고 거기에 더해 중동 지역이라 그런지 아라비아 특유의 독특함도 있었다.
사실, 지잔이라는 곳은 직접 가보지 않아서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보기로는 지잔이나 파라산 아일랜드도 후루가다와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았다.
거기에 지잔 항구와 파라산 아일랜드 사이에 3백억 달러짜리 인공섬을 만든다? 두바이도 그렇고 인공섬을 만드는 것이 장점이 있는 것인가?
일단, 이 지역들은 아시아처럼 태풍 같은 것도 없고 전반적으로 낮고 잔잔한 바다에 기후도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는 안정적인 기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바다 위에 인공섬을 만들면 원하는 형태로 각종 인공 구조물들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은 있는 것 같았다.
자연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인간에게 편리한 것은 역시 계획적으로 구성된 인공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인공섬을 만드는 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에게 이익을 될지 여부는 지금 상황에서는 속단할 수 없었다. 그것은 행운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입안에 들어간 과자에서는 어딘지 신비롭고 아련한 고소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라비아라는 곳은 오래된 역사의 땅이다. 중동이라는 곳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독특한 장소인데, 종교적으로 봐도 그렇고 최초의 문명, 수메르가 탄생한 이라크도 이 근처고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서양 문화의 탄생지이기도 한데, 지금은 서구 문명의 중심이 된 유럽이 밀려서 완전히 변방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어쨌든, 조금 쇠락한 느낌은 있지만 인류의 문명과 기원이 시작된 곳이라서 그런지 어딘지 신비로운 아름다움 있는 곳이고 그래서인지 행운의 과자에서도 아주 오랜 추억 같은 아련한 맛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독특한 아라바아의 맛이 사라질 때쯤, 입 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온 것은 1이라는 숫자였다.
***
다음날...
“어떻게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예, 오래 생각한다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빈 살만 왕세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계약 조건은 실무진들이 만나서 좀 조율을 해야겠죠.”
“하하, 역시 화끈하시군요. 최진수 회장님에 대해서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신비로운 투자가로 아주 공격적인 투자를 한다고요? 지잔에 투자를 하는 일은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를 위한 아주 중요한 개발 계획입니다.”
“사우디를 위해서도 반드시 성공을 해야겠군요?”
“맞습니다. 국운이 걸린 일이죠.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최고의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물론, 제가 그 보증을 할 겁니다.”
어떤 식의 보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빈 살만 왕세자의 태도는 아주 진지했다. 단순히 리조트와 관광지를 개발하자는 가벼운 발상이 아니라, 석유 산업 이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진지한 미래 비전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그리고 저도 요트 구매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저도 최진수 회장님을 믿고 요트를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하하, 아틀라스호 같은 초호화 요트를 말이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더 화려하고 독특한 요트였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아틀라스호보다 더 화려한 요트를 원하시는 건가요?”
“예, 뭐,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이슬람 스타일은 좀 더 화려하고 강렬하죠.”
그러면서 빈 살만은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빈 살만의 별장이나 왕궁의 실내 인테리어들이었다. 뭐랄까? 내 눈에는 너무 원색적이고 화려한 인테리어들이었다. 약간 촌스럽게 보이는 것들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빈 살만은 중동의 왕족이었다. 그 사람들의 취향에는 이런 것들이 더 좋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인테리어 문제라면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겠죠. 디자이너들에게 말해 놓겠습니다.”
“하하, 그럼 이걸로 계약을 채결하는 걸로 하죠.”
두 가지 계약이었다. 하나는 빈 살만에게 이카로스조선이 9억 달러짜리 초호화 요트의 수주 계약을 하게 된 것이었고,
그보다 더 큰 계약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잔과 파란산 섬 사이에 인공섬을 만드는 300억달러짜리 인공섬 개발 계획을 체결한 것이었다.
물론, 두 번째 인공섬 계약은 아직 사인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두로 큰 틀의 투자 계획에는 합의가 되었다.
***
한국, 센트럴 타워 26층. 이카로스그룹 회장실.
“대체 이집트에서는 뭘 하신 거예요? 메가 요트 계약을 하러 가신 거 아니었어요?”
한국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이카로스그룹의 사우디아라비아 인공섬 프로젝트라는 뉴스가 대서특필이 되어 있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언론에 미리 정보를 흘렸고, 그걸 CNN이 보도를 하고 마지막으로 국내 언론들이 크게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요트 계약에 대해서는 안 나오나요? 1조짜리 메가 요트를 수주했는데 말입니다.”
“그건 모르겠고. 이카로스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300억 달러 규모의 인공섬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나오고 있어요.”
윤아영은 내 얼굴과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얼굴이 나란히 나온 신문을 들고 기사를 읽어주고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한국의 이카로스그룹의 젊은 오너인 최진수가 이집트 모처에서 빈 살만 사우디왕세자를 만나 대규모 인공섬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를 약속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번에 건설된 인공섬은 한화 36조가 투입되는 거대한 인공섬으로 두바이의 팜 아일랜드보다 더 큰 규모로 조성될 것으로 한국 기업인 이카로스그룹이 이 인공섬의 개발 사업권을 따낸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중동발 한국 건설붐이 다시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윤아영은 기사를 읽다가 잠시 멈추었다.
“회장님, 정말, 사우디에 36조짜리 인공섬을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두바이처럼요?”
“뭐, 그런 셈이죠. 아직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 규모는 될 겁니다.”
“정말요? 36조를 투자하신다는 거예요?”
36조라는 말에 윤아영은 실감이 안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두바이의 팜 아일랜드를 능가하는 인공섬을 만드는 거죠.”
“인공섬은 왜요?”
“흠, 그..그건..”
그거야, 빈 살만이 짓겠다고 하고 사우디 정부가 투자를 하겠다고 하니까, 나도 동참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운의 과자가 그 투자 사업의 성공을 보증하고 있으니까, 실패할 염려도 없고 말이다.
나도 인공섬을 지어서 뭐가 어떻게 될 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두바이에도 팜 아이랜드 같은 인공섬들이 여러 개 지어지고 있는 걸로 봐서는 부동산 개발이나 각종 마리나, 리조트 같은 해양 레저 시설을 개발하기에는 이런 인공섬들이 장점이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무래도 바다를 테마로 하는 해양 레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다와 육상 공간이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죠. 지형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연적인 입지조건들은 제한적이죠. 그보다는 인공적으로 섬을 조성하게 되면 원하는 지형을 자유롭게 창조해 낼 수 있으니까요.”
“음, 그렇기는 하겠네요. 원래 있던 섬들을 개발하는 것보다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으니까요.”
윤아영이 나가고 이번에는 동진 마리나 개발의 서기호 사장이 들어왔다.
“회장님, 뉴스는 저도 봤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인공섬을 만드실 거라면서요?”
“예, 맞습니다. 그래서 서 사장님을 부른 겁니다.”
“저를요?”
나는 간단하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거군요?”
“예, 원래 계획에 있던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동에 인공섬을 만들고 거기에 해양 레저 시설을 건설한다? 쉽지 않은 일 아닐까요?”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이 항상 그런 거죠. 그래도 우리 이카로스그룹에서 해양 레저 리조트 사업 쪽에 경험이 있는 건, 서기호 사장님 아니십니까?”
“그럼, 설마 저보고 그 사업을 맡아 달라는 말씀인가요?”
“예, 건설 쪽이야 다른 기업과 협력을 하면 될 테고, 서기호 사장님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해 주셨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하하, 글쎄요.”
서기호 사장은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서기호 사장이라면 한국에서는 마리나와 리조트 분야에서 꽤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해운대의 마리나 재개발 사업을 시작으로 이번에 경도 이카로스리조트의 개발에도 관여해서 성공적으로 리조트와 마리나를 개발하고 관리 운영까지 맡아서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름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서기호 사장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한국에서 하던 리조트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큰 사업이고 우리 이카로스그룹으로서도 한국을 넘어서 세계로 진출하는 첫 번째 사업이 되는 겁니다.”
“음, 그건 알겠는데. 워낙 스케일이 큰 사업이라.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거라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서기호 사장님이 잘 해낼 거라는 건 제가 보증을 하죠.”
“예? 저의 성공을 회장님이 보증한다고요?”
뭐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번 인공섬 프로젝트를 서기호 사장이 잘 해낼 것은 분명했다. 그거라면 이미 내가 행운의 과자로 확인을 한 사항이었다. 그래서 서기호 사장에게도 보증이니 뭐니 말할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예, 아무튼,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서 사장님은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말이죠. 결과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음, 그러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결정한 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