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명한 선택 (166/200)

현명한 선택

“회장님, 대성그룹의 장태식 회장님 전화입니다.”

“장태식 회장님?”

장태식 회장이라면,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을 인수한 이후로는 거의 처음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장태식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카로스이노베이션, 즉 예전의 대성이노베이션을 인수했던 것은 장태식 회장의 그룹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그러니까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어서 이래저래 두 사람이 직접 다시 만나는 일을 피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이었는데, 장태식 회장이 먼저 불쑥 비서실로 연락을 한 것이었다.

“통화 가능하시겠습니까?”

“예, 연결해 주세요.”

“여보세요, 장태식,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저에게 연락을 다 하시고요.”

“하하, 최진수 회장님이 요새 너무 잘나가서 만나기 힘들군요.”

만나기가 힘들다기보다는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아무튼, 장태식 회장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안부 전화를 했을 리는 없고, 뭔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 식사라도 한 번 해야 할 것 같네요.”

“식사요? 그러면 제가 간만에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네요.”

“저녁요?”

“오늘 저녁에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나요?”

***

한남동, 하이엔드 레스토랑, 솔베이지.

전에도 장태식과 만났던 적이 있던 솔베이지에서 다시 저녁 약속을 잡게 되었다. 고급 레스토랑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프라이빗한 공간들이 잘 구분이 되어서 비밀스럽게 누군가를 만나기 좋은 장소였다.

장태식 회장도 그렇고 나도 이제는 유명 인사가 되었기 때문에 조용하게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는 이곳에 적당한 느낌이었다.

솔베이지에 도착했을 때는 장태식 회장이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와 계셨군요?”

“하하, 제가 먼저 와서 기다려야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쉬운 소리라? 역시 나에게 뭔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인가?

장태식 회장과는 나름 예전부터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크게 보면 문위 우표를 처분하기 위해서 만났었고, 그 후에는 대성이노베이션을 인수하게 되면서 나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 장태식 회장과의 만남에서는 한국 최고의 대기업 회장과 평범한 대학생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확연했고 그래서 뭔가 이 장태식이라는 사람에게 엄청난 위압감과 카리스마를 느끼기도했다.

하지만 장태식 회장에게 빌딩을 구매하기도 하고, 그의 상속세 대납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장태식은 대단한 재벌회장이지만 어느새 진수와 레벨이 비슷해진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이제 진수는 이카로스그룹이라는 대기업 집단의 수장이 되어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기도 했고 거기에 야마시타 골드에 이어 나치의 약탈 황금, 늑대의 눈물까지 찾게 되어서 자산의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장태식 회장도 역시 한국 최고의 재벌기업의 회장이라는 점에서는 전과 다를바가 없었지만 이제는 진수 앞에서도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인 것이다.

“하하, 뭐, 먼저 식사부터 하시죠.”

솔베이지의 음식들의 퀄리티는 두말할 것 없이 최고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솔베이지에 올 때마다 누군가를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음식의 맛을 음미할 여유는 없는 편이었다.

대충 식사가 끝나자 장태식 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빈 살만 왕세자와 합의했다는 지잔의 인공섬 프로젝트 말입니다.”

“아, 그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군요.”

뭐, 이미 언론을 통해서 대서특필된 내용이니 장태식 회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태식 회장이 오너로 있는 대성그룹이라면 반도체 사업도 유명하지만 건설 쪽에도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건설의 명가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대성그룹도 그렇고 신성그룹도 그렇고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외에 건설업들도 상당한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 다른 재벌그룹들도 마찬가지여서 한때 한국에서 재벌로 인정을 받으려면 건설사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모 그룹에서는 무리하게 건설사를 인수했다가 경영이 크게 악화된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아무튼, 한국의 재벌들이 태동하던 70년대와 80년대는 건설경기가 크게 활황이었을 시기이기도 하고 거기에 더해 해외건설 진출도 활발하면서 한국의 대기업들이라면 건설을 통해서 큰 성장의 기회를 잡기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성그룹의 계열사인 대성건설도 국내외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우량 건설사 중에 하나였다.

“예, 어쩌다보니까, 제가 사우디아리바아에 인공섬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은 계속 실무진을 통해서 조율을 할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이카로스그룹에는 아직 건설사는 없지 않나요? 지난번에 경도의 이카로스리조트의 건설은 신성에서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하하, 뭐, 그렇습니다. 건설 사업은 아직 경험이 없습니다. 이번에 지잔의 인공섬도 일종의 리조트 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인공섬의 건설은 어떤 회사에서 맡길 생각입니까?”

“하하, 대성그룹에서 그쪽에 관심이 있으신가보군요?”

장태식 회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300억 달러짜리 건설사업이라면 엄청난 사업이죠, 최근에 국내외의 건설 경기가 최악이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인공섬이의 건설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대성그룹은 두바이에 인공섬 건설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죠.”

장태식 회장은 두바이에서 이미 대성건설이 인공섬을 건설했던 경험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대성건설이라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건설사고 이미 중동에서의 경험도 많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쪽에도 인맥도 있고요. 대규모 건설이라는 건 기술적인 부분도 문제가 되지만 현지 정치권과 유착관계도 필요한 일이죠.”

“대성건설이라면 한국 최고의 건설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장태식 회장과 나의 관계는 예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던 하늘 위의 존재 같았던 장태식 회장이 이제 나와 평등했진 것을 지나 이제는 나에게 건설 프로젝트의 수주를 부탁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장태식 회장이 나에게 저자세를 보인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장태식 회장이야, 태생이 재벌가의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는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니까 말이다.

여전히 자신만만하고 특유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장태식 회장이었지만, 어쨌든, 나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입장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말처럼 아쉬운 소리를 하는 쪽은 장태식 회장이었던 것이다.

“일단, 회장님의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대성건설의 시공능력이야 두말할 것 없다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워낙 큰 건설 프로젝트라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말이죠. 일단은 좀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하하, 뭐, 간단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죠. 아무튼, 잘 좀 부탁드립니다. 최진수 회장님.”

***

지잔 인공섬 건설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건설사는 대성건설만이 아니었다. 국내외의 여러 건설사들이 이카로스그룹의로 관련 문의를 해왔고, 그 중에서도 신성그룹 계열의 신성건설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김동혁이 직접 나를 찾아올 정도로 말이다.

“김동혁 사장님이 건설 사업에도 깊게 관여를 하는 지는 몰랐군요.”

“한국의 재벌기업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건설사업은 그룹의 핵심 사업 중에 하나입니다.”

“건설업이요? 신성은 자동차쪽이 주력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수도 있고, 재벌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것이 건설사업이죠. 특히, 중동에 이카로스그룹이 만들려는 인공섬이라면 신성건설이 경험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죠.”

“하하, 얼마 전에 만난 대성그룹 장태식 회장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태식이 형도 지잔 인공섬 프로젝트를 탐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신성그룹의 김동혁과 장태식이라면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사업에 대해서는 개이적인 친분 같은 것을 따질 것은 없었다.

물론, 진수 입자에서도 장태식 회장이나 김동혁과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지잔 인공섬 프로젝트의 시공사를 선정할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신성건설은 지난번 경도리조트 개발도 참여를 했고 나름 리조트와 해양 레저 부문에서는 장점이 있는 회사입니다.”

“알겠습니다. 참고하도록 하죠.”

신성그룹과 대성그룹, 한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들로부터 인공섬 사업에 참가시켜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이었다.

한화로 36조가 들어가는 거대한 건설사업이니, 국내외의 대형 건설사들이 수주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수 스스로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건설사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일이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았다.

그보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요청대로 자본을 투자하고 지잔 개발 사업의 시발점이 될 인공섬을 건설하는 정도로 만족을 해야 할 것 같았다.

***

센트럴 타워, 26층, 진수의 사무실.

“빈 살만 회장쪽과는 협상이 어떻습니까?”

이번 지잔 인공섬 사업을 총괄하게 될 이카로스그룹의 책임자는 동진마리나개발의 서기호 사장이었다.

동진 마리나는 그리고 이름을 이카로스 리조트 개발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기존의 회사는 그대로 유지가 되지만 이름을 바꾸고 이카로스그룹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로 한 것이었다. 서기호 사장은 새롭게 사명을 교체한 이카로스리조트개발의 사장으로 이번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잔 인공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하게 되었다.

“뭐, 일단은 인공섬이 만들어져야 그 외에 지잔 항구와 근처의 공항이나 도로 개발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그렇죠. 회장님이 말씀하신대로 후루가다와 두바이를 모델로 그들보다 더 아름답고 편리한 관광지를 만들도록 여러 가지 조건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어 보였던 서기호 사장이지만 일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이번 프로젝트에 확실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았다.

“중동의 휴양지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유명한 명소들의 우리의 경쟁자가 될 겁니다. 이제 글로벌한 시대가 되었고 전세계가 사람들의 생활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다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공섬의 설계는 외국 업체에게 맡기야겠죠?”

“예, 아무래도 설계 분야는 아직 국내 건설사들이 외국 업체들을 따라잡지 못 하고 있으니까요. 시공은 한국 건설사가 맡고 설계는 외국 업체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업체에게 기회를 주고 싶기는 하지만 아직 창의적인 설계 능력을 가진 건축가가 한국에는 없는 것 같더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놔두는 문화가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유럽이나 미국쪽의 건축가들의 창의력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기업들은 정해진 설계에 따라 효율적으로 빨리빨리 건설을 시공하는 것은 잘하지만 아직 독창적인 설계 분야에서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잔의 인공섬의 설계도 유럽 쪽의 건축 설계 능력을 가진 외국계 회사에 설계를 의뢰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외에 시공사는 어디가 좋을까요?”

서기호 사장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대성건설과 신성건설 두 곳을 선정해서 경쟁을 붙이면 어떨까요?”

“경쟁요?”

“두 업체가 가장 능력이 좋은 업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한쪽에 몰아주기보다는 반씩 시공을 하도록 해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만드는 거죠.”

“음, 그것도 괜찮아 보이네요. 두 회사는 라이벌 관계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경쟁을 유도하면 자존심 싸움도 될 테고, 두 회사가 경쟁을 벌인다면 우리에게는 유리한 거니까요.”

결국, 서기호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지잔의 인공섬 건설 시공은, 대성건설과 신성건설 두 곳에게 절반식 나누어서 시공을 의뢰하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