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블록버스터 (169/200)

블록버스터

드론은 한강 위로 솟아올랐고 이내 강 위를 비행하기 시작했다.

“와, 드론에 사람이 타고 날고 있잖아? 이거 굉장한데.”

“그러게, 이제는 드론헬기 시대가 열리는 건가?”

사람들은 4명의 연구진을 태운 드론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연신 스마트폰으로 드론의 비행 장면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들이 대단한데요.”

“신기한 구경거리기는 하죠. 하지만 앞으로는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실생활에 저런 드론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을 겁니다.”

서종수 사장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드론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지금 이카로스항공에서 만들고 있는 농업용 화물 드론 같은 경우에는 기존의 드론의 크기와 화물 적재량을 크게 향상시킨 모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론은 다양한 형태와 모양 그리고 새로운 기능들을 계속 추가하고 있었다. 초기의 드론이 신기한 장난감 정도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최근 몇 년 간의 드론 기술은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거기에 전기차에도 적용되는 자율주행 기술은 드론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동차의 자율주행도 드론의 자율비행 기술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장애물들이나 지형지물의 영향을 받고 사람들의 위치도 파악해야 하는 자율주행 기술이 드론의 자율비행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서종수 사장과 드론의 기술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반대편까지 날아갔던 옥토퍼스 2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비행이 성공적이어서 그런지 옥토퍼스 2에 타고 있는 네 명의 표정도 밝았다.

다시 마리나로 돌아온 드론에서 네 명이 내리고 나자 서종수가 나에게 드론의 좌석을 권했다.

“나보고 타라는 겁니까?”

“안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직접 저랑 비행을 해보시죠.”

뭐, 나쁠 건 없겠지..

“좋습니다. 이카로스항공의 오너가 직접 타보고 평가를 해봐야겠죠.”

좌석에 앉자 일반 자동차와 큰 차이는 없었다. 컨버터블을 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드론은 옥토퍼스를 베이스로 만들기는 했지만 4개의 좌석을 고려해서 전체적으로 더 사이즈가 컸다. 일반적인 세단 승용차와 비슷한 사이즈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엔진룸과 트렁크는 제외하고 말이다.

“나쁘지 않네요. 일반 오픈카를 탄 느낌인데요.”

승차감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진동은 없으니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드론은 기본적으로 따로 조정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리모컨과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제어되고 있었다.

지금 위치에서는 이미 비행을 하면서 데이터가 저장되어서 자동으로 자율비행이 가능한 상태였다.

자율비행 모드를 작동시키자 옥토퍼스 2는 천천히 하늘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드론에 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헬기와 비교해서 뭔가 불안정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드론자동차에 승차한 느낌은 내가 가지고 있는 슈퍼 푸마 같은 대형 헬기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부드럽다는 것이었다.

진동이나 흔들림도 거의 없고 굉장히 부드럽게 비행하고 있었다. 거기에 날씨도 화창한 편이었다. 겨울도 끝이 나고 봄이 오는 계절의 초엽이었다.

약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비행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안정적이네요. 뭐, 기상이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오픈형이지만, 비가 오거나 추울 때는 루프를 닫을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와 비슷하죠.”

“그래요? 컨버터블을 타는 느낌이군요. 진동도 거의 없어서 승차감이나 이런 쪽은 합격인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서종수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일단 단거리 비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개선해야 할 문제도 있죠. 지금 이 옥토퍼스 드론은 충전식 배터리를 통해서 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비슷하죠.”

“역시, 충전이 문제가 되겠군요.”

“시제품을 비행하는 데는 불편할 게 없지만 이런 드론이 늘어난다면 전기차처럼 충전소를 찾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죠. 그 외에 아무래도 드론의 크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전용 이착륙 시설도 필요할 테고요.”

“음, 그렇겠네요.”

드론형 자동차라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도달한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자유롭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비행기술의 완성만으로는 부족했다.

안정적으로 드론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고 전용 주차시설 내지는 이착륙장도 필요할 것 같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군요.”

여의도에서 출발했던 옥토퍼스 2는 한강을 횡단해서 잠시 반대편을 선회하다가 다시 여의도의 서울 마리나로 돌아왔다.

“즐겁고 흥미로운 비행이었습니다.”

***

센트럴 타워, 26층, 진수의 사무실.

“새로운 영화는 잘 되고 있습니까?”

“예, 윤아영 사장님과는 시나리오 검토를 마쳤는데 최진수 회장님에게도 한 번 보여드리려고 말입니다.”

채은성 감독은 전에 제작하기로 약속한 영화 시나리오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멜로 영화인가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액션 영화를 찍어볼까 하고요.”

“하하, 채은성 감독님이 말입니까?”

채은성 감독이라면 천재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예술적인 부분에서 평단의 평가가 좋았던 감독이었다.

그런 채은성 감독이 지난번에 찍은 로맨스 영화에 이어서 이번에는 액션 장르에 도전한다는 것인가?

“좀 의외인가요? 하지만 저도 이제는 상업적인 감독이 될 생각입니다.”

“예술성은 포기하고 말인가요?”

“어차피 모든 영화는 상업영화죠. 자본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요. 젊은 영화학도 시절과는 아무래도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좋습니다. 채은성 감독님의 연출력이야 이미 입증이 된 부분이고 상업적으로도 더 신경을 쓰신다면 좋은 영화가 나오겠죠.”

채은성이 가져온 시나리오는 아시아를 무대로 범죄조직과 싸우는 형사들 이야기였다. 주제는 국제 범죄조직과 싸우는 형사들이 주인공이지만 특별히 깊은 주제 의식 같은 것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냥, 단순 액션물이군요. 볼거리 위주의 말입니다.”

“예,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도 그런 걸 원하는 거 아니었나요? 단순하고 재밌는 거 말입니다.”

왠지, 조금 걱정스러운 느낌이었다. 채은성 감독은 이제 상업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잡고 싶었는지 다소 억지스러운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어딘지 급조한 듯한 시나리오는 감독의 개성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고, 너무 평범하고 단순한 스토리였다.

“윤아영 사장은 이걸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심플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윤아영은 이 시나리오를 오케이 했다는 건가? 윤아영이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을 맡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윤아영도 영화나 드라마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이돌 가수를 키우던 음반 기획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에 도전해서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에 제작한 영화, 산토리니의 사랑과 재벌 변호사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흥행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경험 삼아 만든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주인공들이 모두 재벌 3세들로 극 중에서 나온 화려한 소품들로 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고 말이다.

산토리니의 사랑에서는 진수의 샤토 루이 14세와 부가티 에르메스 같은 것들이 등장했고 드라마 재벌 변호사에서는 진수의 빌딩과 사무실, 경도의 이카로스리조트, 전용 헬기와 요트 등 화려한 진수의 자산들이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아무튼, 전작들과는 좀 다른 스토리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 많았다. 액션 장르의 블록버스터로 제작비도 이전에 만들었던 로맨스 영화에 비해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고 말이다.

“제작비가 3백억이 넘는군요?”

“요즘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그 정도는 투입이 됩니다.”

아직, 제작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추산한 영화의 제작비가 3백억 이상으로 한국 영화로는 상당한 편이었다.

“일단, 시나리오부터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채은성 감독이 나가고 나자 진수는 윤아영을 호출했다.

“회장님, 무슨 일이세요?”

“채은성 감독이 만들겠다는 영화 말이에요. 윤아영 사장님이 보기에는 어때요?”

“뭐, 저야, 영화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괜찮은 거 아닌가요? 채은성 감독이 준비한 시나리오를 보니까, 신나는 액션 영화인 것 같던데요.”

역시나 윤아영도 영화 쪽에 그다지 전문성은 없는 것 같았다.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진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어설퍼도 너무 어설픈 시나리오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채은성 감독 말로는 이번 영화는 이미 회장님과 이야기가 끝난 거라고 하던데요.”

채은성은 지난번에 백상예술대상에서 민소희가 수상하도록 도와준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 부탁을 들어준 대가로 새로운 영화 제작에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던 것이다.

“새로운 영화에 투자를 하겠다고 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영화는 좀 시나리오부터 부실한 것 같아서요. 알다시피 시나리오는 건물로 치면 설계도 같은 거 아닙니까? 설계도부터 건물이 불안하다면 일단 설계부터 고쳐야 하지 않겠어요?”

“설계를 고친다고요? 시나리오를 수정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아무리 내가 영화에 문외한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엉성해요.”

“하지만 채은성 감독이 나름 유명한 실력파 감독인데 어련히 시나리오를 잘 썼겠어요?”

“채은성 감독이 연출력이 좋은 건 알지만 액션 장르는 경험이 없잖아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어서 성공하고 싶은 건지, 갑자기 액션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본 것 같은데,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시나리오를 수정할 사람을 찾아야겠어요.”

윤아영이 나가고 나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행운의 과자병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려면 다른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섣불리 아무나 데려다가 시나리오를 수정한다고 하다가는 채은성 감독의 반발만 살 것 같고, 뭔가 제대로 된 전문가가 필요했다.

채은성도 자기 시나리오가 수정된 것을 보고도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수정할 수 있는 전문가 말이다.

일단, 그런 일을 할 사람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없는 상황이고 결국 행운의 과자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과자의 병을 열자, 향긋한 봄 향기가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한강에 갔을 때 느낀 거지만 어느새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향긋한 봄꽃의 향기처럼 어딘지 달콤한 과자의 향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과자 하나를 천천히 입에 밀어 넣었다.

봄은 부활의 계절이다. 고대에는 겨울을 일종의 죽음으로 그리고 봄을 죽음에서 소생하여 부활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봄을 대표하는 계절, 봄을 알리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 4월, 에이프럴의 어원은 아프로디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중동의 대모신 아스타르테 혹은 바빌론의 최고 여신,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죽음과 관능의 여신 이슈타르와 같은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 것이다.

행운의 과자에서는 죽음에서 부활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 같은 달콤한 인생의 맛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사라질 때쯤,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온 것은...

“전화번호군. 시나리오 작가의 번호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3백억이 투자될 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구원해줄 구세주가 될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마치 죽음에서 소생하듯, 앞날이 불안한 이 영화를 구원해줄 새로운 구원자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