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펜트하우스
일단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나는 일단 쪽지에 적힌 번호를 눌러보았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아, 최진수라고합니다.”
“절 아시나요?”
“하하, 아뇨. 다른 분에게 소개를 받아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혹시 시나리오 작업 경험이 있으신가요?”
“시나리오요? 영화 시나리오를 말하는 건가요?”
***
홍대 앞, 카페 썬플라워.
홍대 앞의 작고 아담한 카페였다. 김성진은 이곳에서 자주 커피를 마시러 온다고 했다.
“집이 이 근처입니다.”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홍대라면 젊음의 거리라고 하나요? 활기가 넘치는 곳이죠. 좀 시끄럽고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나보군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이 동네 토박이입니다. 예전에는 조용하던 곳이었죠. 기찻길로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기도 했고.”
“아,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이 동네가 지금처럼 유명하지는 않았죠. 그저 미대생들이 벽화도 그리고 그런 분위기였고 한적하던 곳이었는데, 아무튼 지금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세상이라는 게 다 그런 거죠. 멈춰 있는 곳은 없으니까요.”
“시나리오 작가시죠?”
“예, 몇 개 작업을 하기는 했었죠.”
김성진은 홍대 근처에 살면서 요즘은 라면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식 라멘 그런 거 말인가요?”
“아뇨, 그냥 한국 라면을 파는 곳입니다. 대신에 조리법을 좀 다양하게 해서 이색적인 라면을 만들어 보는 거죠. 정확하게는 이색 라면이라기보다는 이색 라면 조리법이라고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는 왜 그만두신 겁니까?”
“일단, 돈이 안 되니까. 생계 문제로 때려치운 거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말입니다.”
“제가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남자는 잠시 생각해 보는 듯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지 않아도 가게가 좀 안정이 되니까, 다시 시나리오든 뭐든 예전에 그만둔 일을 해보고 싶더군요.”
김성진이라는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짧은 머리에 단정한 모습이었다. 언뜻 봐서는 군인 같은 느낌도 있었다.
전직 시나리오 작가로 지금은 홍대에서 이색적인 라면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라고 했다.
아무튼, 이 사람이 채은성 감독의 시나리오를 수정해 줄 적임자인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누가 쓴 겁니까?”
“채은성 감독이라고 아시나요?”
“아, 영화감독 채은성 씨요? 와, 유명한 감독님인데.”
“이번에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3백억짜리 영화를 제작할 생각입니다.”
“정말요?”
김성진이라는 남자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3백억짜리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예, 채은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 계획입니다. 문제는 시나리오가 좀 부실하다는 겁니다.”
“하하, 뭔가 영화 제작 방식이 독특하네요. 저도 이제 영화판을 떠난 사람이라 업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3백억짜리 영화라면 상당한 규모인데, 시나리오도 완성하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김성진 씨를 찾아온 겁니다. 기본 설계부터 다시 하려고요.”
김성진은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시나리오의 수정 작업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아무튼, 저도 다시 시나리오 수정이든 뭐든 영화계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한남동 진수의 빌라.
오랜만의 주말이었다. 날씨는 점점 더 완연한 봄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진수의 빌라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 주위의 풍경도 초록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여기에 처음 이사올 때만 해도 한강이 보이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고 조용한 주변 분위기도 좋았는데, 계속 살다 보니 좀 지루해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유럽이나 브라질의 넓고 화려한 곳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한남동의 느낌도 전과 같지 않은 것도 있었고 말이다.
멋진 풍경도 매일 보면 지루해지게 마련이다. 한강의 풍경이 멋지기는 하지만 좀 더 화려한 도시의 풍경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돈은 충분했다. 한국에서 내가 사지 못할 집이라는 것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디, 괜찮은 곳이 없으려나?
사실, 한남동의 고급 빌라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넓은 공간, 주차장도 충분하고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미녀와 사귀더라도 다른 여자에게 흥미를 느끼는 남자의 본능이랄까?
보통 사람들이야 집이라는 것은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함부로 거래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라면, 나에게 이런 고급 빌라라는 것은 이사를 가기 위해서 따로 처분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 집을 산다고 해서 이 빌라를 팔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세금 같은 문제도 나에게는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서울에 고급 주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인 것은 서울에서 가장 고층 건물이라는 스카이 타워의 레지던스 아파트인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였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즐기는 환상적인 시티뷰라?”
마음에 드는 것은 이 건물이 서울에서도 최고층이라는 점이었다. 종로의 센트럴 타워의 최고층이 26층인데 그곳을 사무실로 쓰면서 사무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 상당히 만족을 하고 있는 진수였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것은 그런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대단한 볼거리가 아니어도 말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과는 또 다른 그런 높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층 빌딩의 장점이다.
뭐랄까? 심리적인 만족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고층의 빌딩에서 바라보는 시티뷰는 진수가 가장 즐기는 뷰라고 할 수 있었다.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라?”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라면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한 번쯤을 바라보게 되는 거대한 빌딩인 스카이 타워, 그리고 그런 압도적인 높이의 건물에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가 있는 것이다.
가격도 상당하다고 들었고, 나름 최고층 레지던스 아파트라는 희소성과 철저한 보안시설 등이 더해져서 돈 많은 부자들이나 연예인들 같은 고소득층이 이런 고가의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예전 같으면 부동산 회사에 따로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했겠지만, 지금은 대기업의 회장 신분이었다. 직접 나서기보다는 비서실을 통하기로 했다.
***
센트럴 타워, 26층, 진수의 사무실.
“스카이 캐슬 타워의 레지던스 아파트를요?”
“그래요, 김지현 씨가 좀 수고좀 해줘야겠어요.”
김지현 비서는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를 알아봐 달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동산 회사쪽으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
김지현에게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를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윤아영이 어떻게 알았는지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이야기를 꺼냈다.
“아영 씨가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는 왜요?”
“회장님이 거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서요. 마침, 제 친구가 부동산 회사에 다니거든요.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도 거래를 하고 있어요.”
“그래요?”
윤아영의 친구라, 듣고 보니 예전에 같이 배우 지망생을 하던 친구라고 했다. 윤아영도 마찬가지지만 연예계에서 성공하는 게 쉽지 않아서 진로를 바꾼 케이스로,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고급 부동산 거래를 하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친구라고 했다.
“고급 부동산 쪽 담당이라는 거군요?”
“예, 맞아요. 써니가 그쪽으로는 재능이 좀 있거든요.”
“써니요?”
“본명은 장선희인데, 친구들끼리는 그냥 써니라고 불러요.”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라면 평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백억 이상의 고가의 아파트였다. 윤아영도 몇몇 연예인들이 사는 곳이라 몇 번 가본 적도 있다고 하고, 친구라는 장선희라는 여자도 연예인들을 상대로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의 아파트 거래를 성사시킨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았다. 어차피, 수십조의 자산가인 내 입장에서 몇백 억대의 아파트 거래에 그다지 신경을 쓸 것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아파트를 구매할 때도 미래 가치 같은 것을 따져보기 위해서 행운의 과자를 통해서 좋은 거래가 될 것인지 확인하기도 했지만,
야마시타 골드를 찾은 이후로는 부동산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 일에도 좀 시큰둥해져 버려 있었다.
그보다는 아파트니 빌라니 하는 것들은 그냥 주거 목적 외에는 다른 것들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잘 됐네요. 나도 거기에 아파트를 사고 싶던 참인데, 아는 지인을 통해서 거래를 하면 더 편하겠죠.”
“정말요? 그럼 선희한테 연락을 할까요?”
“그래요. 빠를수록 좋죠.”
***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70층, 슈퍼펜트하우스.
장선희와 만난 곳은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의 70층 슈퍼 펜트하우스였다.
“여기가 스카이 캐슬에서 가장 비싼 끝판왕이라는 건가요?”
“예, 보시면 아시겠지만, 면적이 356평으로 이곳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에서도 최고가의 슈퍼펜트하우스입니다.”
장선희는 윤아영의 친구라서 그런지 어딘지 윤아영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늘씬한 몸매 그리고 뭔가 남자를 편하게 해주는 말과 태도, 고급 부동산 업계에서도 잘 나가는데는 나름 그런 장점들을 잘 이용하는 느낌이었다.
윤아영에게 장선희를 소개해 달라고 하고 바로 몇 시간 후에 전화가 왔고, 그 다음날 바로 임장을 온 것이었다.
외국의 고급 저택이나 초호화 요트를 소유한 진수로서는 따로 놀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규모도 규모지만 70층 높이의 고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 특히 강남의 전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진 경관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크기야 그다지 감흥이 없지만 70층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시티뷰는 정말 멋지네요.”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의 슈퍼펜트하우스, 공급 면적이 356평으로 한국에서도 가장 비싼 아파트라는 이곳 스카이 캐슬에서도 가장 크고 비싼 펜트하우스였다.
“가격이 얼마나 되나요?”
“분양가가 370억으로 책정이 되어 있습니다.”
“370억요?”
이번에 채은성 감독과 만들려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비 수준의 아파트였다. 70층과 71층의 복층 구조인데 일단, 기본 면적이 넓어서인지 고층 아파트임에도 답답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탁 트인 전망이 굉장히 독특한 뷰를 만들어 주고 있었고,
70층이라는 압도적인 높이 때문인지 센트럴 타워에서 내려다보는 강북의 시티뷰와는 또 다른 강남의 화려한 모습을 즐길 수도 있었다.
“낮에도 굉장히 화려한 느낌이네요.”
“밤이면 훨씬 더 멋지죠. 강남은 밤에 더 멋진 곳이잖아요?”
“윤아영 씨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예전에 배우 지망생이었죠?”
“예, 하지만 연예인이 되기에는 재능이 부족했나 봐요.”
“그래요? 배우를 하셨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요.”
“후훗, 뭐,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연예계에서 성공하려면 재능과 외모 말고도 필요한 것들이 많으니까요.”
“그렇겠죠. 운도 필요할 테고요. 아무튼,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셨군요.”
“아직, 성공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업계에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중이죠. 저보다는 아영이가 더 성공한 거 아닌가요? 이제는 사장님이 되었더라고요.”
“하하, 윤아영 씨도 열심히 노력을 했으니까요. 아무튼, 생각보다 전망이 아주 좋은데요. 맘에 들어요. 그리고 진짜 장선희 씨 말대로 밤이 되면 더 화려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직, 내부 인테리어가 완성되지 않아서 좀 횅하기는 하지만 워낙 큰 공간이고 가격도 엄청난 곳이라 일부러 누드 인테리어를 유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누드 인테리어요?”
“예,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최고의 아파트잖아요? 이름도 슈퍼펜트하우스고, 가격이 370억이니까요. 정말 최진수 회장님 같은 스페셜한 분들이 아니고는 이런 고급 펜트하우스에 살 사람은 없는 셈이죠. 그래서 나중에 분양이 되면 이곳의 주인이 되실 분이 모든 인테리어를 선택해서 꾸밀 수 있도록 누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거죠.”
“그래요? 누드 인테리어라? 뭐든지 내 상상대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건가요?”
“후훗, 그런 셈이죠. 최진수 회장님은 선택받은 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