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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원의 문제 (174/200)

11차원의 문제

“와, 진짜 요트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에요. 하늘에 떠 있는 요트라고나 할까요.”

민소희는 요트풍으로 꾸며진 슈퍼펜트하우스의 내부 모습과 거실에서 펼쳐지는 70층 높이의 시티뷰에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정말 그렇네요. 천공의 성, 라퓨타 같기도 하고. 하늘에 떠 있는 그런 느낌도 있죠. 여기서는 새들도 저 아래로 날아다닐 정도니까.”

고층 아파트의 매력이라면 약간 과장을 보태 하늘 위를 나르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이 우습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고층 체질인가 봐요.”

“고층 체질요”

“어렸을 때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거든요.”

“아파트에 살았어요?”

윤아영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한지 되물었다.

“아뇨, 시골에 살았으니까. 아파트는 없었죠. 하지만 집의 옥상에 올라가서 하루종일 물탱크 위에 올라가 있을 때도 있었죠. 옥상 위에 물탱크가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 내 기억으로는 꽤 높았어요. 옥상도 그때 기준으로는 꽤 높은 곳이었고, 옥상옥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물탱크 위에 올라가면 진짜 세상의 꼭대기 올라와 있는 기분이었죠.”

“시골이라면..아니에요. 계속 하세요.”

윤아영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멈추었다. 나의 신상에 관한 일이 좀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윤아영도 나의 사생활에 대해서 묻는 경우는 없었다.

“아무튼, 어렸을 때, 그런 상상을 많이 했죠. 물탱크 위에 올라가서 여기가 올림포스 산이고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곳이라고요. 그리고 그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거죠.”

올림포스 산은 실제로는 야트막한 그리스의 산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라는 나라가 그다지 고지대는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든, 70층 높이의 이곳 스카이 캐슬도 이름처럼 하늘 위의 궁전 같은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밖 풍경도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지나면서 도시는 어둠이 내려앉으며 화려한 밤의 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높은 곳에서 보면 세상 일들이 단순해 보이죠.”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본 것인데 어떤 물리학자가 안 풀리던 복잡한 물리학 문제에 지쳐서 놀러간 놀이공원에서 그 문제를 간단하게 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우연히 내려다본 바닥 쪽의 그림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풀던 문제의 차원을 한 단계 더 늘리면 쉽게 풀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2차원의 바닥 위에 그려진 미로를 쉽게 통과하는 방법은 3차원의 해결책, 쉽게 말해서 미로 위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카로스도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하늘을 날아서 탈출했던 것이다. 2차원의 문제는 3차원에서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나 할까요? 저 아래 있는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최상층 위에서 보면 그런 문제들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안 되죠.”

“돈 문제 말이군요.”

윤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면 말했다.

“맞아요. 나 같은 자산가에는 거의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치를 썩히는 문제들도 나에게는 아주 쉽게 해결 할 수 있죠.”

끈 이론이던가? 아무튼, 우주는 11차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11차원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이미 야마시타 골드와 늑대의 눈물 만으로도 이 자본주의 시대의 문제를 다 풀어낸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는 나의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11차원의 문제를 해결했는지도 모르겠다.

“맞아요. 회장님은 어마어마한 부자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영화도 제작하시는 거잖아요.”

진수도 처음이지만 다들 럭셔리하게 꾸며진 나의 펜트하우스, 그리고 해가 지는 황홀한 스카이 캐슬 펜트하우스에서의 일몰을 멋지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붉은빛으로 물들었던 세상은 어둠과 함께 화려한 도시의 야경으로 변신을 했다.

“와인이라도 한 잔 할까요?”

민영민은 나의 펜트하우스 여기저기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내가 부르자 와인잔을 들고 다가왔다.

“멋진 새 집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그나저나 이번 영화에 캐스팅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대충 집을 둘러보고 나자 민소희가 궁금했던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 배우는 정수현 씨가 하기로 했습니다.”

“정말요? 그럼, 여자 배우는요?”

내심 민소희도 이번 영화의 배역을 탐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수현과 최근에 드라마를 같이 촬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둘이 만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소희 씨도 관심이 있나요? 이번 영화.”

“뭐, 그렇죠. 블록버스터 영화고 꽤 규모가 크다고 하던데요.”

“하하, 3백억 정도가 투입될 예정이니까. 이 집의 가격 정도는 되겠네요.”

“그래요?”

글쎄, 3백억짜리 영화와 3백억 대의 주택, 비교 대상인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가격 상으로는 이 펜트하우스가 더 비싸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진 것을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말이다.

“하지만 소희 씨는 정수현과 한 번 같이 연기를 했으니까. 이번 영화에도 같이 출연하는 건 무립니다.”

“왜요?”

민소희는 약간 아이같은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나이도 어리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신적인 성숙함이 약간 모자란다고나 할까? 귀여운 외모와 잘 어울려서 그런 단점이 귀여움으로 커버가 되는 편이지만

보통 그 또래와 비교해도 생각이 깊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머, 소희 씨는 정수현하고 매번 같이 연기할 수는 없는 거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예요. 둘이 부부도 아니고, 실제 부부라고 해도 매번 같이 연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것도 직전에 히트친 드라마에 같이 나왔는데 관객들도 좀 식상하고 말이에요.”

“정수현 씨하고는 드라마 한 번 찍은 것뿐인데 뭐가 식상해요?”

“자자, 그만하고. 어차피, 이번 아시안 익스프레스는 여주인공이 없는 영화입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여배우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요. 주연인 정수현이 원톱으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자 캐릭터들은 말하자면 007의 본드걸 정도 역할이죠. 물론, 본드걸 치고도 비중이 작은 본드걸들이 여러 명 나오는 구조라는 겁니다.”

“그래요?”

“회장님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주연급 여배우는 없고 단역 캐릭터가 여러 명 필요하다고요. 소희 씨는 그런 작은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그런 건 필요 없어요.”

민소희도 이제 슬슬 연기자로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었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번 영화에는 민소희가 할 만한 배역은 없는 셈이었다.

“소희 씨는 이제 주연급이니까. 차기작에서 좋은 배역을 찾아보기로 하죠.”

“약속하시는 거예요. 차기작 주연 자리 꼭 주시기로..”

“하하, 걱정할 거 없어요. 앞으로 드림엔터테인먼트에도 투자를 많이 할 생각입니다.”

“정말요?”

“그럼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카로스그룹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창밖의 멋진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올림포스 산의 꼭대기 올라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의 신들이 있다면 아마, 진수 같은 대자본가가 아닐까? 거기에 이제 황금에서 나온 막대한 자본의 힘으로 다른 사업에도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예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그 중에 하나였다. 별생각 없이 흥미로운 취미 정도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이제 점점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노하우도 쌓이고 드림엔테터인먼트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자본을 더 투자해서 한국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시킬 때가 온 것 같았다.

진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재벌 변호사의 해외 판매도 영향을 주었다. 재벌 변호사가 국내에서도 정수현을 스타로 만들어주며 대히트를 했지만 정작 대박이 난 건 해외 판권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남미와 중앙아시아, 미국, 유럽까지 한류 드라마의 매니아층이 형성이 되면서 각국으로 판권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특히 넷플릭스에서도 고가에 판매가 되며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진수의 사업 전체에 비하면 작은 비중이었고, 황금 발굴로 얻는 것과는 수익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정도였다. 하지만 사업의 미래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해외에서의 한류의 인기가 엄청나더군요. 사업도 사업이지만 한국어로 만든 드라마를 자막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한국 문화가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고요.”

“맞아요. 제가 연습생일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한류가 성장할지는 몰랐는데, 케이팝도 그렇고 이제는 한국 문화의 전성기인 것은 분명해 보여요.”

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류의 전성시대고 또 한류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급성장기라고 할 수 있었다.

드림엔터테인먼트도 이런 고도 성장기에 한류와 케이팝에 빠르게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서 새로운 사업을 키워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업들,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서, 차세대 배터리 사업이나, 사우디에 건설할 인공섬 같은 프로젝트들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더 많은 황금을 찾는 것이었다.

***

센트럴 타워 26층, 진수의 사무실.

이카로스항공의 서종수 사장과 함께 찾아온 것은 세진로보틱스의 오현준 사장이었다.

“파워슈트 기술을 완전히 이전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아무래도 기술은 좋지만 제 능력 부족인지 회사 경영은 좀 어려운 실정입니다.”

나의 황금발굴 작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파워슈트를 제작해주는 세진로보틱스였지만 파워슈트는 나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다지 수요가 없는 편이었다.

물론, 미래의 로봇 기술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기는 했다. 오현준 사장은 이참에 회사를 나에게 넘기도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아쉬운 일이네요. 외국으로 가신다니요.”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로봇 관련된 것도 연구를 하고 싶고요.”

“뭐, 그것도 좋겠죠. 그럼, 세진로보틱스의 기술은 이카로스항공으로 이전하기로 하죠.”

오현준과 서정수는 서로 대학 동문 사이라 세진로보틱스를 합병하는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카로스항공을 이카로스테크로 사명을 바꾸기로 했다. 드론 외에도 세진로보틱스에서 흡수한 로봇기술이 합쳐져서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었다.

드론이나 로봇이라는 구분 없이 특정한 목표를 해결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었다.

***

“파워 슈트가 더 필요하시다고요?”

“예, 사실은 파워 슈트보다 로봇이 필요합니다. 드론과 같이 작업을 할 로봇이요.”

파워 슈트 덕분에 그동안 황금 발굴 작업들을 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세계 도처에서 발굴할 황금의 양이 어마무시하게 늘어나 있었다.

필리핀에도 아직 미발굴된 야마시타 골드가 있었고, 브라질의 자구아눔 제도와 포클랜드에도 발굴해야 할 황금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뭔가 혁신적인 작업속도의 개선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나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황금의 비밀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원칙이었다.

그래서 나의 황금 발굴 작업의 속도를 가속해줄 신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로봇을 제어하는 기술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닙니다. 인공지능도 아직 인간에 비하자면 유아들 수준 정도죠. 단순한 환경에서 단순한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낯선 장소에서 복잡하고 새로운 작업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인공지능으로 통제할 수 있는 로봇이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해도요?”

“현재로서는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죠.”

“방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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