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
“방법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나의 질문에 서종수 사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기존의 파워슈트 기술을 응용해서 새로운 VR 기술과 접목을 시켜보면 어떨까 합니다.”
“VR요”
VR이라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했다. 가상현실 기술을 말하는 걸로 게임 같은 걸 하는 거 아니었나?
“게임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하하, 보통은 게임을 많이 하기는 하죠.”
서종수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게임을 하면서 가상의 현실을 만드는 거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파워슈트를 입고 회장님이 하는 일이 일종의 게임이라면요?”
“파워슈트를 입고 하는 것이 게임이라고요?”
“예, 회장님이 파워슈트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거 아닌가요? 뭐, 커다란 상자라든가 말입니다.”
“하하, 상자라고요?”
물론, 서종수 사장이 내가 파워슈트를 입고 금괴 상자를 나른다는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파워슈트로 뭔가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작업을 할 거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서종수 사장의 말대로 파워슈트를 입고 땅을 파고 지하에서 금괴상자를 들어올리고 다시 외부로 이동시키는 것도 일종의 게임과 비슷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정한 목표물을 특정 장소로 옮기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파워슈트는 제가 입고 직접 움직이는 거 아니었나요?”
“파워슈트를 조금 개량해서 그러니까, 기존의 파워슈트는 인간의 움직임과 판단에 의해서 종속적으로 움직이면서 인간의 근육을 보조해주는 역할이었다면, 이제 좀 더 로봇에 가까운 파워슈트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하하, 사실은 거의 완성단계입니다.”
“벌써요?”
“예, 세진로보틱스 시절부터 이미 그런 기술들이 상당히 개발된 상태였습니다. 물론, 실용화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기 때문에 제품 생산은 보류가 되었지만 회장님이 이제 세진로보틱스를 합병한 이카로스테크의 오너이시니까. 회장님의 결단만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로봇형 파워슈트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상현실과 무슨 상관인가요?”
“로봇형 파워슈트는 기존의 로봇과는 달리 인공지능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조정을 하는 방식인데 차이라면 VR 기술을 접목해서 일종의 가상환경에서 로봇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겠군요.”
“하하,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
이카로스테크, 로봇 사업부
“이곳은 기존의 세진로보틱스의 연구인력들이 연구를 하는 곳입니다.”
과거에 이카로스 항공이 이카로스테크로 사명을 바꾸고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특히 중점 분야라면,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이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자동차나 항공기, 드론 같은 기존의 운송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이동 및 수송 수단을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이 모빌리티 사업의 핵심은 배터리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모빌리티용 배터리 셀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게 신형 로봇형 파워슈트입니까?”
내가 전에 쓰던 파워슈트와 비슷한 형태의 로봇이 보였다. 차이라면 파워슈트는 인간의 몸에 장착되도록 슈트 형태를 하고 있었다면, 이것은 내부가 로봇으로 채워진 형태였다.
“로봇에 가깝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정 장치입니다.”
서종수 사장이 내민 것은 요즘에 유행하는 VR 기기의 헤드셋 같은 것과 양쪽에 손에 쥐는 형태의 리모컨이었다.
“VR 게임기 아닌가요? 저도 하나 가지고 있기는 한데,”
최근에 유행하는 물건이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구매했던 적이 있는 물건과 비슷한 형태였다. 헤드셋 같은 걸 쓰면 주변이 가상현실로 변하면서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느낌이 무척이나 신기했지만, 그래픽으로 구현된 게임이 아니라면 별로 할 것도 없는 것 같아서 요새는 창고에 처박아둔 물건이었다.
“게임은 별로 취미가 없어서 말입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단순 게임기가 아닙니다. 여기 보시면 로봇슈트, 저희는 이걸 그렇게 부르죠. 아무튼, 로봇슈트의 장착된 여러 개의 카메라에 의해서 360도 영상을 촬영하고 그걸 바탕으로 가상현실 영상을 전송하는 겁니다.”
“예?”
서종수 사장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언뜻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헤드셋을 써보기로 했다.
“일단 이걸 써보죠. 뭐가 어떻다는 건지는 그 후에 알게 되겠죠.”
VR 헤드셋을 쓰자 잠시 주변 환경을 설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보통은 VR 기기는 가상현실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정 구역을 표시한다. 움직여도 안전한 구역을 정하고 그 구역을 벗어나면 시각적으로 표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로봇슈트 VR도 안전을 위해서 제한구역을 설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상현실 아니 현재 내가 있는 주변 환경과 비슷한 일종의 증강현실이 구현되고 있었다.
“어, 이게 뭐죠?”
설정이 끝나자 VR로 구현된 가상현실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지금 있는 연구실과 똑같았다.
“이건 일종의 증강현실이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도 증강현실의 개념을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현실과 다른 것이라면 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로봇슈트라고 불리는 신형 로봇형 파워슈트의 관점, 정확히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가 있고, 그 외에 360도의 방향으로 다양한 영상을 촬영해서 일종의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카메라가 달린 로봇과 차이라면 카메라가 인간의 눈처럼 한 방향만을 보는 것 외에 다른 카메라들이 모든 방향을 촬영해서 동시에 주변 환경을 하나의 가상현실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제 리모콘을 움직여 보시죠.”
리모콘을 쥔 손의 버튼을 누르자 로봇슈트의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리모콘을 움직이는 방식은 VR 게임과 같았다. 리모콘이나 헤드셋은 무선통신을 하면서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파악하는 시스템인데 그래서 사용자의 움직임도 시스템이 파악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손을 움직이면 로봇슈트의 손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리에도 감지 센서가 달린 발찌를 달겠습니다.”
서종수 사장은 양해를 구하고 나의 발목에 뭔가를 걸었다.
원리는 손에 달린 리모컨과 비슷해서 센서가 나의 발목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로봇슈트를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리모컨과 발목 센서를 움직이자 가상현실에서 로봇슈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실제 현실의 로봇슈트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굉장한 물건인 건가?
물론, 지금은 연구실 바로 앞에 있는 로봇슈트를 VR 헤드셋을 쓰고 마치 VR 게임을 하듯이 작동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원거리 통신을 하면서 더 먼 거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기술이군요. 이건 얼마나 멀리에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인터넷망을 이용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가능하죠.”
“세계 어디에서라도요?”
그렇다면 그동안은 내가 일일이 세계를 그러니까 아시아의 필리핀과 남미의 자구아눔, 포클랜드 같은 곳에 가서 하던 일들을 이 로봇슈트를 보내서 대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로봇 하나만 달랑 보내기에는 좀 불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하던 작업의 시간이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예, 로봇슈트로 몇몇 특수한 작업을 하는 데는 유용할 겁니다. 특히, 회장님이 혼자서 하시는 무인도 개발사업이라고 하나요? 그런 일들에는 효과적이겠죠.”
“그렇겠군요, 아무튼, 마음에 드네요. 이것들은 당장 사용할 수 있겠죠?”
“시제품이기는 하지만 필요하시다면 추가로 더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한 20대 정도요. 일단은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20대의 로봇슈트를 말입니까?”
서종수 사장은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가져가서 연습용으로 좀 써봐도 되겠죠?”
“아, 예, 물론이죠.”
***
필리핀, 산 페르난도, 킹스 리조트
필리핀에 돌아온 것은 몇 년 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김민성 사장님.”
“하하, 최진수 회장님 소식은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필리핀에서 무이무이섬을 시작으로 발굴과 리조트 개발사업을 시작했었지만, 브라질의 자구아눔에서 더 많은 야마시타 골드가 나오면서 필리핀의 황금 발굴과 각종 리조트 사업들은 일시 중단이 된 상태였다.
혼자서 발굴을 해야 하는 진수로서는 필리핀의 작은 섬들에 분산된 황금을 찾는 것보다는 브라질에서 규모가 큰 황금을 발굴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도처에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약탈 황금들이 대부분 위치가 파악이 된 상태였다. 이제는 새로운 황금을 찾는 것보다는 기존에 발견한 황금들을 천천히 차근차근 거둬들이는 수확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필리핀의 황금들도 모두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서종수 사장이 새로운 신개념의 로봇슈트를 개발해서 황금발굴 작업에도 일대 혁신이 이루어졌고 그걸 바탕으로 필리핀의 황금 수거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저게 아틀라스호군요. 저도 한국 뉴스는 많이 봐서 최진수 회장님과 이카로스그룹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김민성 사장은 킹스 리조트 앞바다에 떠 있는 나의 초대형 요트 아틀라스를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지난번에 타고 왔던 요트보다 좀 큰 걸 타고 왔습니다.”
“큰 정도가 아니라, 초대형인데요. 무슨 항공모함 같습니다.”
“항공모함요? 그런가요?”
실제로 항공모함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이즈겠지만 일종의 항공모함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항공모함처럼 전쟁을 지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틀라스호는 단순히 호화요트를 넘어서 필리핀에서의 나의 황금 발굴 작업들을 총지휘하게 될 모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여전하군요?”
“뭐,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발전이 없으니까요. 여기는 좋게 말하면 옛 정취가 오래 보존되는 곳이고 나쁘게 말하면 발전이 없는 곳이죠.”
“이곳 주민들은 불만이겠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네요. 자연이라는 건 더 개발한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최진수 회장님은 다양한 리조트 개발 사업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건 그대로 놔두는 거지만, 그래서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가 없으니까요. 비즈니스의 관점에서는 개발이 필요하죠.”
“산 페르난도에도 투자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전에는 무인도에 리조트를 만드셨지 않습니까?”
김민성 사장은 사업가답게 리조트 사업에 내가 더 투자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실, 필리핀에 만들었던 작은 리조트들은 야마시타 골드를 옮기기 위해서 만든 것들이었지만, 외형상 소형 리조트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야마시타 발굴을 더 진행하면서 다른 무인도들에도 비슷한 시설을 더 만들고 있었다.
“예, 한동안 사정이 있어서 중단을 했지만 이제는 자금도 충분하고 시간도 좀 있으니까요. 여기저기 다른 리조트들도 건설 중입니다. 산 페르난도에도 대형 리조트를 개발할 생각도 있고요.”
한국에서의 경도 리조트 개발도 있어서 기회가 되면 필리핀의 산 페르난도에도 대형 리조트를 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정말이신가요? 그런 생각이시라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일단은 무인도 개발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김민성 사장님이 각종 인허가나 무인도 소유권 문제 같은 것들을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필리핀은 외국인들에게는 제약이 많은 곳이라 말이죠.”
“걱정 마십쇼. 뭐든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