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페르노
필리핀, 산 페르노 앞바다, 아틀라스호.
이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이카로스조선에서 아즈무트 베네티와 콜라보로 만든 초호화 요트 아틀라스호는 산 페르노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었다.
아틀라스호는 아직도 브라질에 바타타 인근에 있는 플라잉 폭스를 대신해서 아시아 지역의 발굴 사업을 지휘하는 셈이었다.
나는 갑판 위에서 잠시 일광욕을 즐기다가 선실로 돌아왔다. 선실에는 호화로운 침대에 대형 TV 소파와 테이블도 있었지만, 선실 가운데에 원형으로 표시된 구역이 있었다.
이곳은 VR 헤드셋을 끼고 작업을 하기 위해서 설정해 놓은 공간이었다.
진수는 헤드셋을 끼고 리모콘을 잡아 들었다.
이전에도 무인도를 돌면서 야마시타 골드를 찾는 작업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로봇슈트라는 신문물을 장착한 것이었다.
지금 여러 군데의 무인도 보내진 로봇슈트들을 이 증강현실 로봇 제어 시스템을 이용해서 조정할 수 있었다.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하고 쾌적한 VIP 룸에서 헤드셋을 끼고 증강현실을 작동시키면 주위는 로봇슈트가 있는 무인도로 바뀌어 버린다.
마치, 진짜 무인도에 와 있는 것처럼 주변 환경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손목에 걸친 리모컨과 발목의 센서의 움직임에 따라 로봇슈트가 움직이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면 360도의 영상으로 주위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무인도에 직접 와 있는 것과 다른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로봇슈트를 움직이며 야마시카 골드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직접 가는 것보다 여러 모로 작업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한 곳의 작업을 마치고 바로 다른 곳에 미리 보낸 로봇슈트를 움직여 작업을 할 수도 있고,
그리고 육체적인 피로도 면에서도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작업을 하는 것도 편한 장소에서 쉬엄쉬엄 할 수 있었고, 온도나 습도, 음료수와 마사지까지 필요한 것은 모두 아틀라스호에 있었다.
약간 눈이 피로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는데 그것도 특별 마사지를 받으면서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되고 있었다.
증강현실 헤드셋을 끼고 금괴 발굴 작업을 마치고서 조금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틀라스호와 플라잉 폭스의 차이라면 더 화려해진 최고급 인테리어나 시설들도 있지만 크루들이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크로아티아인들로 구성된 플라잉 폭스에 비해서 아틀라스호는 좀 더 편안한 느낌이기는 했다. 하지만 딱 한 분야에서는 외국인을 고용했다.
요트에 필수 요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사지사들이었다. 엘레나는 러시아 출신이었고 마르티나는 스페인 출신이었는데, 그냥 봐서는 금발의 스웨덴 미녀들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마사지는 스웨디시 마사지였다.
습식 마사지로 오일을 몸에 바른채 부드럽게 몸을 문질러주는 방식인데 보통 한국에서 하는 누르는 지압 마사지보다 뭉친 근육을 더 편안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마사지를 하는 사람들도 좀 편하다고 하고, 받는 입장에서도 더 몸이 잘 풀리는 것 같아서 기왕이면 정통 스웨디시 마사지를 하는 마사지사를 고용하고 싶었다.
오리지널 스웨덴인으로 말이다. 북유럽의 엘프 같은 금발의 스웨덴 미녀 마사지사를 구하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스웨덴 출신으로 금발에 마사지 능력과 미모, 그리고 요트 근무 지원자를 구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대충, 스웨덴 느낌이 나는 금발 미녀 마사지사 둘을 고용했다.
VIP 룸에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마사지실로 바로 직통되는 호출 버튼이었다.
그러자 인터폰이 연결되었다.
“회장님 무슨 일이세요?”
“어, 엘레나인가요?”
“아뇨, 마르티나예요.”
“아, 미안해요. 목소리가 비슷해서.”
사실, 둘은 러시아와 스페인 출신이지만, 그냥 봐서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사람처럼 생긴 금발 머리의 백인 미녀였다. 물론, 둘을 헷갈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끔 인터폰으로 통화를 할 때는 좀 목소리가 혼동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지금 내 방으로 좀 와주겠어요. 눈이 좀 뻑뻑해서, 안구 마사지를 받고 싶은데.”
“예, 또 게임을 하신 거예요? 가상현실 게임요?”
“하하, 게임이 아니라 비즈니스라고요. 아무튼, 좀 와주세요.”
마르티나는 스페인 출신으로 홍콩에서 패션 모델을 한 경력도 있었다. 하지만 본업은 마사지 쪽으로 자격증도 있고 특히 스웨디시 마사지에 능숙한 편이었다.
마르티나는 얼마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마사지 도구들을 들고 들어왔다.
“안구 마사지가 필요하시다는 거죠?”
“예, 아무래도 눈이 좀 아프고 뻑뻑한 것 같아요.”
“어머, 저런..조심하셔야죠. 눈은 나빠지면 회복되기도 어렵다고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마르티나는 엘레나보다는 키가 작았지만 170은 넘는 장신이었다. 거기에 힐까지 신고 있어서 언뜻 나보다 더 키가 더 커보였다. 아무튼,
마르티나의 손에 잡혀 침대에 눕자 마르티나가 눈에 부드러운 천을 덮고 천천히 눈 주위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VR 헤드셋을 끼고 작업을 하다보니, 일은 쉽고 빨라졌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 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루테인도 먹어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고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것은 눈 주위를 마사지로 풀어주는 일이었다.
내 손으로 해도 되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미녀 마사지사의 부드러운 손길이라면 더 눈이 쉽게 회복될 것이 틀림없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 부드러운 손길이 안구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다소 충혈되어 있던 안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어때요? 좀 시원한 것 같아요? 회장님.”
“음, 아주 좋은데요. 눈이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전에는 육체 노동을 했다면 이제는 가상 현실 기기로 로봇을 조정만 하면 되기 때문에 어깨나 허리에 부담이 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가상 현실 기기라는 특성 때문에 눈에 좀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깨나 허리 같은 일반적인 마사지 외에도 안구 마사지라는 특별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안구 위와 이어서 안구를 둘러싸고 있는 안면의 골격뼈들도 부드럽게 눌러주고 그렇게 코와 귀까지 마사지는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꿈을 꾸듯 눈을 감고 편안하게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죠?”
안구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 눈에는 천을 대고 눈을 감은 상태였다.
“엘레나예요. 마사지를 한다고 하셔서.”
“하하, 그래요. 그러면 엘레나도 같이 해주면 고맙죠.”
가장 피로감이 오른 곳은 눈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목에도 좀 부담이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잘 못 느꼈는데 VR 헤드셋의 무게도 만만치가 않아서 목에 긴장이 많이 가는 것 같았다.
안구 마사지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눈에 대었던 천이 벗겨졌다.
눈 앞에는 역시 금발의 늘씬한 러시아 미녀인 엘레나가 활짝 웃고 있었다. 마르티나는 약간 마른 체형이라면 엘레나는 러시아 스타일의 풍만한 몸매였다. 그렇다고 뚱뚱한 건 아니고, 대신 약간의 의학적 힘을 빌린 것인지 날씬한 허리에 비해서 글래머라는 것이었다.
아무튼, 두 명의 미녀가 본격적으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옷을 벗고 침대에 엎드리자 아래 위에서 부드러운 손길들이 뭉쳐진 근육들을 부드럽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문소리가 들렸다.
젠장 누구야?
“흠, 아, 제가 안 좋은 타이밍에 들어온 건가요.”
김민성 사장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마사지는 이제 그만 해야겠네요.”
“아뇨, 그냥 하시죠. 저는 상관없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뭐, 그렇게 하시던지요.”
김민성 사장은 야마시타 골드가 매장된 섬들에 리조트 개발 사업 허가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필리핀의 매장된 야마시타 골드들은 여러 개의 작은 무인도에 분산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섬을 돌면서 발굴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황금을 캐기 위해서는 무인도 내지는 인구가 극소수인 그런 섬들에 필요한 시설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외부에는 위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리조트를 건설하는 사업을 하는 것으로 하고 있었다.
“최진수 회장님이 지시한 섬들은 대부분 토지를 매입하거나 사업권을 받아 놓았습니다.”
“잘 됐군요.”
침대에 누운 상태로 서류 몇 개를 확인해 보았다. 뭐, 자세하게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전에도 김민성 사장이 허가받은 대로 리조트 건설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작은 리조트들을 개발하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하,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제가 알아서 다 계획을 세운 일이니까요.”
사실, 무인도 하나당, 1조에 가까운 황금이 발굴되고 있었다. 리조트 개발에 필요한 토지 구입이나 허가, 건설 비용으로 제법 돈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발굴되는 야마시타 골드에 가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체 수익에 몇 프로 정도니까,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투입되는 자금보다 수십 배의 수익이 나오는 사업이었다.
나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굴작업이 끝난 리조트 시설들을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었다.
김민성 사장에게 말한 것처럼 처음부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런 무인도의 리조트 시설도 전처럼 방치하기보다는 소형 리조트로 개발해서 관광객에게 공개해도 될 시점이었던 것이다.
“섬들에 있는 작은 리조트들은 개인에게 대여해서 사용하기에는 괜찮을 것 같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회장님,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단체 관광객들보다는 돈 많은 소수의 개인들에게 단기든 장기든 임대를 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 페르노에는 좀 큰 규모의 리조틀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요새 김민성 사장의 관심사라면 산 페르노에 새로운 리조트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작은 섬들의 리조트 시설들은 아무래도 무인도라는 제약이 있어서 규모에 한계가 있었다. 조용하게 무인도 투어를 즐기려는 수요도 제법 있을 것 같지만 그보다는 해안이 발달한 산 페르노에 대규모 리조트를 개발하고 싶은 것이 김민성 사장의 야망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야망을 실현시키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김민성 사장은 필리핀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1조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는 대규모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필리핀에의 무인도들에서 30조 가까운 수익을 내고 있는 나로서는 1조 정도 투자하는 것이 큰 부담은 아니었다.
“산 페르노의 리조트가 성공할까요?”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리조트가 개발되면 한국이나 아니면 다른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올 테고요.”
“조용하던 산 페르노도 시끄러워지겠군요?”
“활력이 생기는 거죠. 관광객은 곧 돈이니까요.”
진수 입장에서도 손해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이미 무인도 리조트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업과 연계를 할 필요성도 있었다. 무인도의 리조트들이 하나하나로는 나쁘지는 않지만,
뭔가 너무 방만하게 퍼져 있는 시설들이라 중심을 잡아줄 시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산 페르노는 예전에 왔을 때처럼 약간은 쇠락한 느낌의 항구 도시였다. 그다지 발전하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오히려 휴양을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경쟁에서 벗어난 듯한 그런 여유로움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산 페르노도 변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그 변화를 주도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식으로 말이다.
“좋습니다. 이제는 때가 된 느낌입니다. 산 페르노를 본격적으로 리조트로 개발해 보죠, 그 외에 작은 주변의 무인도들의 리조트들까지 합쳐서 해안과 도서가 연결되는 광대한 해양 리조트를 만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