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택시
“오디션이라고요?”
“예, 아무래도 공개 오디션이 좋을 것 같아서요.”
내가 필리핀에 가서 금을 캐고 있는 동안 아시아 익스프레스의 제작 일정이 잡히고 있었다. 남우 주연은 정수현으로 가닥이 잡혔고 나머지는 조연급의 여자 캐릭터들이었는데, 윤아영은 걸그룹 멤버들을 염두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드림엔터테인먼트 출신들로만 채워 넣어도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회사에서 민소희를 제외하면 아직 그다지 존재감 있는 아이돌이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드림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지 꽤 되었지만 성공한 가수들이라면, 예전부터 인기 아이돌이었던 민소희의 솔로앨범과 그 이후에 연기자로의 성공 사례 정도였다.
오히려 드라마와 영화에 치중하면서 신인 아이돌그룹들은 빛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무명이고 인지도도 없는 드림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들을 무리하게 영화에 캐스팅하는 것도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이번 영화에서는 큰 배역이랄 역할도 없고 잠시 나와서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들인데 대중들이 얼굴도 모르는 무명 아이돌들을 내보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윤아영은 그보다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다른 기획사의 아이돌 중에 인기 멤버를 캐스팅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공개 오디션이라면 다른 소속사 출신들도 참가할까요?”
“물론이죠. 아이돌 가수들이라면 특히, 여자아이돌들이라면 연기를 할 기회를 마다할 애들은 없을 걸요.”
남자 아이돌들도 많지만 여자 아이돌들이라면 수명이 더 짧은 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번 마음에 들면 오래가는 쪽은 여자팬들이어서 남자아이돌그룹은 인기가 좀 떨어져도 팬덤의 힘으로 그럭저럭 여러 가지 수익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콘서트 티켓도 잘 나가는 편이고 굿즈 판매나 각종 유료 회원 가입같은 수익원들이 많은 것이다. 그에 비해서 여자 아이돌들은 순간적으로는 반짝하더라도 인기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것이다.
뭐랄까?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여자아이돌들은 수명이 짧다는 말이겠죠.”
“그렇죠. 주 팬층이 남자들인데 남자 팬들은 오래가지 못 하거든요. 원래 남자들은 한 여자에게 오래 머물지 않잖아요.”
“하하, 남자들이 다 바람둥이는 아니죠. 아무튼, 공개 오디션을 개최하기로 하죠. 이번 영화에 필요한 배역들은 어쨌든 나름 인지도도 있고 얼굴이 알려진 아이돌 그룹 멤버가 필요한 거니까요.”
***
신성자동차 사장실.
“어서오시죠. 영광입니다. 누추한 저의 사무실을 방문해주시고요.”
김동혁은 넉살 좋게 웃으며 진수를 맞았다.
“한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 사장실이 누추하다뇨?”
“하하, 모든 일은 상대적인 것 아닙니까? 최진수 회장님의 사무실은 화려하기로 유명하죠. 드라마에서도 소개가 되어서 유명한 곳 아닙니까?”
그냥 립서비스기는 하겠지만 김동혁 사장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재벌 변호사의 배경이 되었던 나의 센트럴 타워 26층 사무실은 드라마에 나오면서 일약 국민적인 관심을 받은 사무실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 후에 언론사들과 인터뷰도 이루어지면서 각종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에는 드라마의 세트 정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실제로 그 사무실이 실존하는 공간이고 이카로스그룹의 최진수 회장의 사무실이라는 것에 놀라워하는 일들도 많았고,
아무리 대기업의 회장의 사무실이라지만 너무 크고 화려한 나의 사무실에 호기심과 관심, 혹은 과도한 사치라며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이유는 다양하지만 관심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김동혁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누추하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김동혁의 사장실도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크고 럭셔리한 사무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저희로서는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를 신성건설이 독점했으면 좋았을 텐데 대성과 경쟁이 되어서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하, 뭐, 어쩔 수가 없더군요. 대성그룹과의 인연도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신성에게도 기회를 준 셈이죠.”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뭐, 아틀란티스 프로젝트가 워낙 큰 사업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새로 시작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산 페르노 말인가요? 필리핀에 리조트 건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예, 맞습니다.”
산 페르노 리조트 계획이라면 이미 서기호 사장을 통해서 신성에게도 전달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신성건설이야, 경도 마리나 리조트부터 시작해서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도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이카로스그룹과는 인연이 깊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 페르노 리조트 사업도 좀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하, 뭐, 저희야 일거리를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데 들어보니, 산 페르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 리조트 사업을 구상하고 계시다면서요?”
김동혁은 신성자동차의 사장으로 신성건설과는 형식적으로는 무관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한국의 재벌그룹의 오너 경영이라는 특징과 아들에게 상속되는 재벌가의 경영권을 생각하면 현 회장의 아들이자 차기 오너로 유력한 김동혁이 사실상의 신성그룹의 여러 경영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 그렇습니다. 경도 리조트 사업도 굉장히 성공적이고요. 리조트 산업이라는 게 유망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드라마 때문인지 내국인들은 물론이고 아시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린다면서요?”
“예. 문화의 힘이 참 대단하죠. 전혀 한국의 리조트에 특히, 경도 같은 지방의 리조트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드라마의 영향으로 경도 리조트를 찾아오니 말입니다. 외국에서 말입니다.”
“그렇죠, 한류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도 자동차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한류나 케이팝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오너도 한류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자동차 산업도 결국 마켓팅이니까요, 결국 상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구매를 유도하려면 제품의 이미지도 중요하고 그런 홍보 효과에 최적인 것인 바로 문화 컨텐츠니까요.”
김동혁 회장에 의하면 최근의 자동차 산업도 한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 미국이나 유럽, 남미, 아시아 전역에 자동차를 판매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고전을 했었다고 했다.
“한국이라면? 어딘지 잘 모르거나 아니면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정도였죠. 동남아시아의 섬나라 아니야? 이렇게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 정도였나요?”
“예, 물론,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치르면서 어느 정도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그다지 큰 효과는 없죠, 남아공에서 월드컵을 했지만, 남아공을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보다는 인종차별이나 그런 안 좋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거죠.”
“하긴, 그렇겠네요. 국제행사라는 것도 단기적인 이벤트일 뿐이고 보여지는 것도 스포츠 스타들의 경기 모습 같은 거니까, 그다지 그 나라나 도시가 기억에 남는 일은 아니죠.”
“맞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올림픽이나 월드컵으로 도시를 홍보한다는 개념도 효과는 없다는 평가죠. 그보다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도시든 국가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미지의 외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가 있는 거죠.”
진수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영화 제작이나 드라마 제작에도 관심을 갖는 거고요.”
“최진수 회장님을 볼때마다 부러운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하하, 저를 말인가요? 신성자동차 사장님이 부러운 것이 다 있으신 줄은 몰랐군요.”
“저도 소위 말하는 재벌 3세로 많은 걸 누리고 살지만, 최진수 회장님처럼 자유로운 인생은 살지 못하니까요. 하시는 사업도 즐기면서 하는 거 아닌가요? 요트나 마리나 리조트 이런 것들도 본인 취향대로 사업을 벌이시는 느낌도 드니까요.”
“하하, 제 취향의 사업이라? 뭐, 저의 관심사가 반영되기는 했겠죠. 그렇지만 제가 사업을 하는 건 취미로 하는 건 아닙니다. 미래의 사업 발전 가능성도 신중하게 따져보고 있으니까요.”
일단, 김동혁과는 산 페르노의 리조트 개발 사업에 대해서 신성건설이 리조트를 건설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리고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에도 좀 더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특히 드론자동차의 시범 비행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서울시에서는 함께 한강을 횡단하는 드론택시 사업을 시범적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말입니까?”
“예, 이번 시장이 특히 한강을 개발하는 사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드론택시도 그 중에 하나고요?”
현 서울 시장인 김현석 시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50대 초반으로 차기 대선 1순위를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차기 대선을 노리고 눈에 띄는 사업을 많이 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김현석 시장이 대선을 노린다 그런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여론 조사에 항상 1위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거겠죠. 정치인들의 최종 목표라면 대권 아니겠습니까?”
“아직, 대선에 도전하기에는 젊은 거 아닌가요?”
김동혁은 정치인이라면 최종 목표가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단선제인 한국에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동안 해왔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김현석 시장은 아직 50대 초반으로 대통령이 된다고 한다면 60대 이전에 임기가 끝나게 된다. 대통령이 될 때는 좋겠지만 사실상의 은퇴시기가 50대 후반이라면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50대면 충분한 나이 아닌가요? 본인도 의지가 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카로스그릅의 후원으로 파파라치뉴스가 설립되면서 다양한 비공식적인 정보들이 진수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정치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들도 많은 편이었는데,
김현석 시장이라면 젊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편이라 연예인들이나 각종 셀럽들과의 스캔들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고 가정도 있었지만 다양한 소문이 나오고 있어서, 나중에 대선 국면이 된다면 불륜 같은 사생활 문제가 터져 나올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죠.”
“기회라고요?”
“김현석 시장이 한강에 관심이 많은 건 한강이 눈에 띄이는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서울의 중심을 지나는 거대한 강으로 서울 시민이라면 매일 보게 되는 것이 한강 아닙니까? 남과 북을 연결하는 다리들도 많고요.”
“그런 한강에서 드론택시가 날아다닌다면 정치적으로 큰 성과가 될거라는 거군요?”
“아무래도 눈에 많이 보이니까요. 아무리 서울시에서 좋은 사업을 해도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에 비해서 한강에 드론이 날아다니면 신기하기도 하고 서울 시민들이 자주 보게 되면서 관심도 끌고 시장의 치적이 되는 거겠죠.”
“하지만 임기도 얼마 안 남았고, 그 이후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어차피 서울 시장 시절부터 자신이 지원한 사업이라면 대통령이 되어서도 더 키워주려고 할 거 아닙니까?”
김동혁은 김현석이 내심 대통령까지 되기를 바라는 건 같았다. 지금도 드론택시 같은 모빌리티 사업을 지원하려고 하고 있고 나중에 대통령이 된다면 더 큰 지원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선은 드론택시 사업을 시작해서 한강 일대에 전기 충천시설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드론택시나 전기차나 충전시설은 공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드론택시 스테이션이라고 불리는 충전시설을 개발해서 차세대 전기차 사업에도 적용하자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일단 서울시의 요청도 있고 하니까. 드론택시 사업부터 시작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