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회장님, 루브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프랑스로 보냈던 살바토르 문디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문가들이 살바토르 문디를 감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국립 박물관, 연구복원 센터의 최고 전문가들이 형광 X레이와 적외선 스캔으로 분석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떤가요? 김 비서.”
“예, 루브르에서는 감정 결과, 살바토르 문디의 뒷면의 나무판자가 다 빈치가 즐겨 쓰던 롬바르디아의 호두나무라는 것과 그림의 물감에서 발견된 유릿가루 성분이 다 빈치의 후기 기법의 특징인 것으로 보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품이라고 감정을 했습니다.”
“하하, 기뻐해야 하는 건가요?”
설마, 살바토르 문디가 가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인을 받은 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루브르 박물관의 전문가팀에게서 진품이라는 공인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진품으로 판정되었기 때문에 다음 주부터는 루브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특별전이 열릴 거라는군요.”
“그래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가 배출한 최고의 천제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2020년이 다 빈치의 500주기 되는 해라서 유럽에서는 다 빈치의 재평가가 활발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최고의 예술가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또 500주기라는 기념비적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아무튼, 살바토르 문디는 그런 세계적인 명성의 천재 화가의 몇 점 안 되는 미술 작품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르네상스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그림은 20여 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살바토르 문디가 최근에 발견이 되면서 그 진위 여부에도 논쟁이 있었던 것인데, 이제 가장 공신력 있는 루브르의 공인을 받은 것이니까. 그동안의 논쟁에도 종지부가 찍힌 것이다.
***
센트럴 타워, 26층, 진수의 사무실.
그리고 정말 그다음 주부터 루브르에서는 다 빈치 특별전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새롭게 루브르 박물관으로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품으로 인정을 받은 살바토르 문디였다.
“살바토르 문디가 출세를 했군요.”
KBC의 박영수 사장은 자신의 와이프와도 관련이 있는 살바토르 문디가 다 빈치 특별전에 전시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출세요?”
“예, 말 그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의미도 있고, 다 빈치의 적자로 모나리자와 나란히 전시되는 영광을 얻은 거 아닙니까?”
살바토르 문디가 다 빈치의 진품으로 공인을 받은 것은 한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프랑스 쪽에서 먼저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 언론도 그걸 받아 적으면서 기사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다 빈치 특별전이 열리면서 살바토르 문디는 모나리자의 바로 옆에서 전시가 되었다. 모나리자라면 다 빈치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루브르의 상징과도 같은 예술품이다.
그런 모나리자와 나란히 전시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살바토르 문디의 가치는 몇 배로 뛰어 올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5천을 주고 산 그림인데, 가격이 더 오를 거라는 말입니까?”
빈 살만에게 지불한 금액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미술품으로는 최고가, 하지만 빈 살만 왕자가 소장하고 있었을 때는 다 빈치의 위작 논란이 계속되는 중이었고, 항상 진위 여부에는 논쟁이 있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루브르 전문가들이 과학적 기법으로 다 빈치의 진품임을 증명하면서 이제 위작 논란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셈이었다.
“와이프 말로는 다 빈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다 빈치라는 거군요?”
“미술계에서는 언제나 슈퍼스타를 찾고 있죠.”
“슈퍼스타요?”
박영수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박 사장의 말로는 결국 미술품 시장도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으로 항상 가격의 상승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기가 소유한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듯이 미술품 소유자들도 계속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 내지는 바람이 있죠. 실제로도 고가의 미술품 시장은 가격이 계속 폭등하는 중이고요.”
하지만 진수 입장에서 미술품의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큰 의미는 없었다. 이미 돈이라면 충분했다. 필리핀의 야마시타 골드 발굴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상당한 자금이 수혈되었고 남미 일대의 다른 약탈 황금들도 조만간 모두 발굴이 완료될 예정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살바토르 문디는 팔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 사무실에 걸어놓을 생각이죠.”
“하하, 어찌 되었든 이번에 그림 가격도 감정가가 크게 올랐더군요.”
박영수 사장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그림의 가격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언론은 좀 달라서 이카로스그룹의 최진수 회장이 소유한 이 살바토르 문디가 빈 살만에게 나에게 올 때 거래 금액인 5천억을 훌쩍 넘어서 2조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전망을 하고 있었다.
“2조라는 겁니까?”
“뭐, 사실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원래 미술품 시장이 그렇죠.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바람잡이들이 있는 것처럼 가격을 부추기는 전문가들 있게 마련이죠.”
“그래요?”
박영수 사장의 말로는 이번 살바토르 문디의 진품 감정이 미술품 시장 전체적으로도 호재라는 것이다. 사실, 미술계에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이슈는 많지 않은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새로운 그림이라는 것, 그리고 이미 세계 최고가를 찍은 엄청난 고액의 미술품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미술품으로 끌어들이고,
이런 기회를 활용해서 미술계에서도 다른 미술품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다 빈치가 슈퍼스타이기는 한가 보군요.”
“그럼요. 역대 최고 수준의 슈퍼스타죠.”
사실, 박영수 사장이 오늘 나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살바토르 문디 때문은 아니었다. 박영수 사장과 드림엔테테인먼트 소속 가수와 연기자들을 KBC에 출연시키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예능 쪽 PD들에게는 이미 얘기를 해 놓았습니다.”
“PD들이 반발하거나 하는 건 없습니까?”
“이런 일이야 비일비재하니까요. PD들도 자기들 개인적으로 꽂아주는 애들이 많아서 이런 일로 큰 소리를 내지는 못 하죠.”
“그렇겠군요.”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박영수 사장은 어딘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연배로 보면 나보다 한참 위고 거기에 기자 출신에 방송국 사장으로 평소에는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나의 눈치를 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나의 눈치를 살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박 사장님답지 않게 조심스러우신 것 같네요. 어떤 일로 그러십니까?”
“김현석 시장님과 어떤 관계인가 해서요.”
“김현석 시장요?”
김현석 시장이라면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서로 둘 다 유명인사니까, 서로의 이름이나 얼굴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뉴스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최근에 서울시와 이카로스테크, 신성자동차 등이 한강택시 사업, 그러니까 드론형 자동차를 이용한 한강 횡단 택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정도였다.
“같이 최근에 사업을 하고 있죠. 박영수 사장님도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한강드론택시라고 대형드론으로 한강 양쪽을 횡단하는 일종의 택시 서비스를 준비 중이죠. 그런데 박 사장님은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하하, 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김현석 시장은 차기 대선 유력주자니까요. KBC라는 곳이 정부 입김이 센 곳이 아닙니까?”
“그런가요?”
박영수 사장은 좀 운 좋게 정치권과의 인맥 없이도 사장까지 올라간 케이스라고 했다. 전임 사장이 정치권 인맥으로 들어왔다가 크게 사고를 치고 쫓겨난 케이스라 가능했던 일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정권이 바뀌면 정치권과의 인맥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방송사의 사장인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그럭저럭 눈치껏 버티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대통령이 바뀌면 사장 자리에 그냥은 버티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연줄을 찾으시군요?”
“정치권에서도 선거를 앞두고는 언론의 힘이 필요하죠.”
약간 지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세상만사가 여러 이익을 공유하는 세력들의 합종연횡인 셈이었다.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서 경제, 언론, 군사, 문화, 법률 같은 여러 분야에 다양한 변화들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힘을 가진 세력들이라면 차기 대통령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그런 지원 세력들이 필요하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아직 김현석 시장을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드론택시 사업도 있고 해서 며칠 후에 신성자동차의 김동혁 사장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갖기로 약속을 하기는 했죠.”
“역시, 최 회장님이시군요. 당연히 김현석 시장도 최 회장님을 만나려고 하겠죠. 최진수 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니까요.”
“제 도움요?”
박영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듣기로는 김현석 시장이 한강드론택시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하, 그 정도인가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특히, 서울 시장이 할 수 있는 이벤트가 그리 많지는 않아요. 대중에게 어필할 기회가 많지가 않다는 겁니다. 시정이라는 게 잘 처리한다고 해도 티가 나는 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기는 하죠. 공무원들이 뭘 하는지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고 세금을 절약하고 해도 일반 시민들은 그런가 하는 정도죠. 대신 잘못돼서 뉴스가 나오면 쉽게 분노하고 말입니다.”
“그에 비해서 한강드론택시는 눈에 잘 뜨인다는 말이겠군요?”
박영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홍보라는 게 참 중요하죠. 포장을 어떻게 해서 어떻게 홍보하느냐에 따라서 명품이 되기도 하고 싸구려가 되기는 하는 게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박영수 사장은 김현석 시장이 대권 가도로 가기 위해서 이번 한강드론택시 사업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 거라고 했다.
“그리고 드론 택시가 잘 되려면 언론의 보도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박영수 사장님도 원하는 게 있고 말이죠?”
박영수는 KBC에서 이번 드론택시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는 것이었다. 명분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최첨단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드론형 자동차, 이른바 나는 자동차라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고,
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최근의 탄소 중립 정책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강의 새로운 교통수단이라는 점도 KBC에서 소개를 하고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할 이유가 되고 말이다.
“드론택시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시고 박영수 사장님이 얻게 되는 건 뭔가요?”
“하하, 저야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나이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방송국 일뿐이죠.”
“KBC 사장으로 연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생각해보면 진수로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김현석 시장과 박영수 사장을 적당하게 이용하면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을 더 쉽게 이끌어 갈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정치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카로스그룹이 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었다. 특히,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은 기존의 내연기관을 탈피해 전기충전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었고 이것은 단순히 돈만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인프라가 아니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공공기관들도 전기충전 인프라 건설을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자원들을 투입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쉽게 말해 정치권, 더 정확히는 차기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일이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저도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을 위해서는 여러 곳의 도움이 필요하던 참이니까요. 같이 손을 잡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