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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부는 바람 (180/200)

사막에 부는 바람

마침,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을 방한하게 되었다. 진수를 만나러 오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자격으로 한국에 온 것이었다.

청와대에서의 만찬도 있고 대통령도 만나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투자협정을 맺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투자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좀 특이한 사례로 돈이 많은 자원부국인 사우디는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석유 산업 이후를 생각하는 다양한 투자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산업투자는 주로 친환경 에너지와 관광산업 같은 곳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화석에너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석유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우디가 가장 빠르게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면에는 풍부한 일조량과 건조한 사막기후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태양광 같은 발전시설을 만들기에도 최적을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그 외에 풍력이나 지열을 이용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풍력 발전도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소음 문제로 실용화가 어렵지만 사우디의 사막에는 그런 풍력도 가능하죠. 사막의 바람이 거세기도 하니까요.”

“일교차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더군요. 낮과 밤의 일교차가 공기의 흐름을 만든다고 말입니다.”

거기에 빌딩이나 건물 산들이 없는 거침없는 사막의 평원지형도 큰 몫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산업에서 차세대 그린 에너지 산업으로 크게 전환하는 시점이었고 거기에 이카로스그룹에게도 좋은 기회가 찾아오고 있었다.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던 빈 살만 왕자가 다음 날 찾은 곳은 센트럴 빌딩의 이카로스그룹 본사 건물이었다.

국빈 자격으로 한국에 온 것이기는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이카로스그룹의 최진수는 빈 살만에게도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1층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인상적이군요. 저는 처음에는 공사 중인가 오해를 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센트럴 빌딩에 1층에 유적 전시장을 보고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하하, 한국은 지난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죠.”

“하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죠.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한국에게 역사라는 것은 아무래도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강탈당할 시절이 가장 뼈아픈 일일 것이다. 그런 것처럼 사우디의 역사도 근대사에서 서구의 침략으로 식민지배를 받은 기억이 있으니까 그런 것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사우디도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세로부터 자주적인 국가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민도 그런 거죠.”

“고민요?”

“예, 지난 50여 년을 돌아보면, 석유자원을 국유화하면서 그런 석유의 힘으로 서구 세력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나름 이슬람의 전통을 지켜낸 시간들이었죠.”

진수는 빈 살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우디 같은 이슬람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왕족들이 석유자원을 독점하면서 절대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서구로부터 이슬람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들이라고 자신들을 생각하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한 것은 분명합니다. 석유의 힘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고요.”

빈 살만 왕세자의 말로는 아직도 석유의 시대가 완전히 저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래의 자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진수의 생각도 마찬가지였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동의하는 것이었다.

석유에 기반한 내연기관 내지는 탄소 에너지의 시대는 이제 환경오염 문제로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석유는 이 빌딩의 아래층에 전시된 유물처럼 박물관에나 볼 수 있는 것이 될 날도 이제 멀지 않았을 겁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말에 진수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지금의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박물관 같은 곳에 내연기관 엔진을 가진 자동차를 전시하면서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날이 올지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도 친환경 에너지에 투자를 많이 하시는 거군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죠. 우리에게만 알라신이 더 많은 시간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알라신은 이슬람인들에 더 관용을 베푸는 것은 아니었나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죠. 알라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공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수학처럼 말이죠. 이슬람에서 수학과 기하학이 발달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은 기괴한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죠.”

“그럼 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런 형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에 내재된 질서 그 자체인 것이죠. 시간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신의 의지를 따른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나 기도를 드리는 예식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인공섬의 설계도는 마음에 드십니까? 최근에 설계작업을 마무리하고 바로 왕자님에게 자료를 보내드렸는데요.”

“예, 이름이 아틀란티스더군요.”

“이슬람 문화권에서 괜찮은 이름인가요?”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도 기본적인 설계작업은 마무리 단계였고, 일단 진수의 승인을 받은 설계도면이 빈 살만 왕세자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돈을 투자하는 것은 진수였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특성상 왕족이나 최고 권력을 가진 빈 살만의 허락도 필요했던 것이다.

“이름은 상관없습니다. 이슬람은 모든 걸 포용하는 종교니까요. 인공섬 아틀란티스의 설계도 인상적이더군요. 실제로 만들어지면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지만, 마음에 듭니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러면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는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빈 살만의 승낙을 받았으니 이제 본격적인 건설 작업만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다. 건설 시공이야, 대성건설과 신성건설이 나누어서 하기로 한 일이니까, 이제 내가 신경 쓸 일은 그다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구상한 아틀란티스가 상상 속의 설계도면에서 실제 현실의 실체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틀란티스는 그렇다 치고, 다른 사업 이야기도 하고 싶군요.”

“다른 사업이라면 역시 친환경 에너지 쪽인가요?”

빈 살만 회장은 인맥을 중시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진수에게 새로운 사업의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오고 있었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그린에너지 사업을 위해서는 고성능의 배터리도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만들어낸 전기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기존의 석유에서 전기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 전기차는 물론이고 전기차 운행을 위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들의 투자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전기충전 시스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토는 넓고 인구는 적은 편이죠. 쉽게 말해 큰 대도시 중심이 아니라 작은 부족 단위의 마을들인 산재해 있는 것입니다.”

“음, 그런가요?”

작은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면 전기차를 운행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전기차의 성능은 많은 기업들이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테슬라는 물론이고 후발 주자들인 전기차 분야의 벤처 기업들, 그리고 기존의 내연기관을 생산하던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기차 기술도 실제보다 부풀려서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 시장을 내다보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일반인들이 생각보다 전기차 기술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상태고 어쩌면 전기차 시대가 10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거기에 기존 자동차 회사들의 직원들의 고용이나 협력회사들과의 거래 문제 등등, 전기차 산업의 미래에는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존의 배터리 업체와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한 부품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싶어하는 자동차 회사들 간의 알력도 있고 이래저래 전기차 산업은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사우디 같은 환경에서 일단은 전기차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고속도로에서만이라도 전기차 사용이 쉽도록 고속도로 주변에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 계획이죠.”

빈 살만 회장의 말에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일단 주요 도로를 따라서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자는 말이죠? 어차피 자동차는 큰 도로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먼저 도로 주변에 충전소를 만들면 도움이 되겠군요. 하지만 집이나 공공건물이 아니라 도로 옆의 주유소 같은 형태라면 충전을 하기 위해 오래 기다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주유소도 그렇고 가장 좋은 위치가 도로변이라는 것은 맞지만 전기차 충전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휘발유처럼 빨리 넣고 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다른 전기차들이 몰려서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면 충전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렇죠. 더 빠른 초고속 충전시스템도 필요하고, 또 충전인프라 자체도 많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의 요구조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요?”

빈 살만 왕세자가 나를 만나러 온 이유는 그런 것이었다. 사우디에 건설될 전기차 충전소 사업에 이카로스그룹이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꽤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 있었다.

***

이카로스이노베이션 사장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속 충전시스템과 도로를 따라 다수의 충전 시설들을 건설해 달라는 거군요?”

이동준 사장은 내가 빈 살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예, 속도도 빨라야 합니다. 건설시를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어야 하고, 충전소는 소형이지만 전자동으로 자동차가 주차되면 다른 조작 없이도 자동으로 충전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자동으로 충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사막에서 부족생활을 하는 나라다, 대도시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문맹률이 높고 교육수준도 높지가 않다. 한국과는 달리 교육을 받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구조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사우디아라비아에 최첨단 전기차 충전소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빈 살만 왕세자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었지만 사업이 성공하려면 쉽고 빠르고 누구나 자동으로 전기차 충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전기차 충전 시간은 그렇다 쳐도, 자동차 충전을 사막의 유목민들도 쉽게 하기 위해서 자동화된 시스템을 원하고 있었다.

이동준 사장은 서종수 사장을 쳐다보았다.

“이카로스테크 쪽은 어떤가요? 그쪽은 로봇기술이나 그런 게 있으니까. 거기에 드론 충전 스테이션이라는 것도 있고요?”

이동준 사장과 서종수는 대학 동기로 사석에서는 반말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사업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 존칭을 쓰고 있었다.

“드론과 전기차는 좀 다르기는 하죠. 드론은 자체에 인공지능도 작동하고 있지만, 전기차는 운전자가 있는 거니까요. 오히려 자동화된 충전을 하기에는 더 까다로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최근에 세진로보틱스와 합병하면서 로봇과 관련된 기술력 많이 보강되었으니까, 로봇기술을 적용한다면 자동 충전시스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이 친하기도 하니까, 함께 좀 연구를 해서 새로운 자동충전시스템을 개발해 보세요.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다면 이카로스그룹도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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