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울시장 (181/200)

서울시장

서울 시장실.

“바쁘신 분을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공무로 시간이 없으신데 제가 와야죠.”

김현석 시장으로부터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그리 바쁘지도 않아서 내가 그의 집무실로 찾아가기로 했다.

대선이 내년이라 차기 대권 주자인 그가 이카로스그룹 회장실을 방문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전부터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진수 회장님의 이카로스그룹은 매우 흥미로운 곳이더군요.”

“하하, 그런가요?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김현석 시장은 자리를 권하고 비서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커피가 나오자 잠시 커피를 마시고 계속 이야기가 이어졌다.

“혜성처럼 나타난 기업 아닙니까?”

“혜성요?”

“예, 지금은 한국 굴지의 대기업 집단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최진수 회장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이카로스 그룹에서 대해서도 전혀 정보가 없었죠.”

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편의점 알바였던 진수, 그에게 행운의 여신, 티케의 행운이 깃든 행운의 과자와 화수분으로 행운의 과자가 샘솟는 과자병이 주어지면서 그의 인생은 크게 유턴을 한 셈이었다. 지금은 완벽한 럭셔리한 재벌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혜성 같이 떠오른 것은 김현석 시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로 말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의미였지만 일부러 대통령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예비 후보 등록이 안 된 관계로 사전 선거법 위반 문제가 있다고 들은 것 같았다.

“하하, 차기 리더로 자격이 있다는 건가요?”

“이미, 서울시에서 능력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말이다. 실제로는 고래가 춤을 추고 쑈를 하는 것은 칭찬 때문이 아니라, 학대에 가까운 가혹한 훈련 때문이고 그 때문에 정신병을 앓고 자살하는 고래나 돌고래도 발생한다고 한다.

자본주의 세계의 참혹한 현실인 것이다. 돈을 위해서는 뭐든 가능하고 그리고 그런 잔혹함과 폭력이 철저하게 은폐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에 폭력이 없는 세계는 없다. 폭력은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에너지다. 자연의 세계라고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정치는 가장 효율적인 폭력의 방식인 셈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인 것이다.

“덕담이라고 듣겠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장으로 일을 하다 보니 중앙 정치권에서 멀어지는 것은 문제죠.”

“대중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거군요?”

“예, 아무리 서울시가 천만의 대도시고 수도라고 해도 청와대나 국회 같은 중앙기관들에 비하면 그다지 큰 이슈가 없는 편이죠. 진짜 큰 일은 정부가 국회가 다 처리하니까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서울시에 뭘 하는 지는 저도 서울에 계속 살고 있지만 가늠하기가 어렵더군요.”

“원래 시정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주로 기존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들이 많아서 해도 티가 나지 않죠.”

김현석 시장은 뭔가 눈에 보이는 치적을 쌓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돌려 말할 것은 없었다.

“한강드론택시 사업이라면 눈에 띄는 일 아닌가요?”

“하하, 드론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가 화제성이 크죠.”

“서울시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신다면 차기 리더가 되는 데도 도움이 되겠군요. 대통령 말입니다.”

“아,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예비 후보도 아닌 상태니까요.”

“조심하죠. 아무튼, 드론택시 사업이 잘 되려면 한강을 따라서 충천 스테이션의 설치가 더 필요합니다.”

김현석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범적으로 하는 건데 여의도 일대에만 충전소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드론택시 사업은 단순히 드론자동차를 개발하는 수준의 사업이 아니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진정한 목적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었다.

전기차 사업은 엄청난 이슈 몰이를 하고 있지만 관련 기술들의 발달 속도는 더디고 인프라는 더더욱 느리게 성장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전기차 시대가 올 것처럼 말하지만, 예상보다 업계도 정부도 전기차 인프라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하, 드론택시가 이카로스그룹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김현석 시장님의 최종목표가 서울 시민들이 한강을 편히 이동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김현석 시장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현석이라는 사람의 그릇이 그렇게 작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종 목표가 아니라면요?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요?”

“저도 그렇고 신성자동차도 그렇고 다가올 미래의 가장 큰 화두라면 전기차겠죠.”

“전기차요?”

“그렇습니다. 전기차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들을 내놓고 있지만 그저 미래가 저절로 다가온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단순히 배터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생산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충전소 같은 인프라가 없다면 전기차가 있어도 무용지물이겠죠.”

김현석 시장의 말에 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습니다. 전기차 기술은 어느 정도 상용화가 되었지만 인프라는 전세계적으로 부족하죠. 우리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카로스그룹은 배터리 사업도 하고 있죠?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이라면 대성이노베이션 시절부터 배터리로 유명하던 곳이니까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배터리 생산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장,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규모 충전소 사업을 건설할 계획도 있고요.”

“충전소를요? 사우디에 말입니까?”

진수는 김현석에게 최근에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것을 설명해 주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이카로스그룹을 찾아갔다는 거군요. 저도 청와대 만찬에서 만나기는 했는데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시장님도 아시겠지만 사우디는 전기차 시대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가죠. 어찌되었든 사우디를 굳건히 지켜주던 석유사업은 이제 종막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까지 축적한 석유자본의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려고 한다더군요.”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면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역설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 빠르게 전기차 인프라를 확충하려고 하죠.”

“한국에서도 인프라 건설이 빨라지시기를 바라겠군요. 이카로스그룹도 그렇고 신성자동차도 그렇고 말입니다.”

“어차피,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전기차로 전환은 빠를수록 좋은 일이죠. 그리고 김현석 시장님도 서울 시장으로 끝낼 분은 아니고 대통령을 하실 거 아닙니까?”

“하하, 글쎄요. 대통령은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한마디로 하늘이 내는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시대정신이나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일단, 대권에 도전하시려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이슈가 필요할 테고 드론택시 사업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여의도 주위를 오고 가는 정도가 아니라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이 연결되면 더 좋을 테고요.”

“규모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울시 의회는 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예산을 편성하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 더구나 저의 대권에 도움이 될 사업이라면 더더욱 제동을 걸 겁니다.”

“필요한 재원 문제라면 이카로스그룹이 전액을 투자하겠습니다.”

“전액을요?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있나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두죠. 김현석 시장님 같은 훌륭한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이 더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너무 먼 미래까지 보시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kbc의 박영수 사장님도 이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박영수? kbc 사장요?”

“누군지는 아시죠?”

“몇 번 뵌 적은 있죠. 그분도 이번 사업을 돕겠다는 건가요?”

“예, 박영수 사장님도 평생 방송국에서 일하신 분이니까요. 일을 그만두면 할 일도 없다고 하더군요.”

“하하, 그렇군요.”

김현석 시장은 잠시 뭔가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일단은 대선까지는 할 일이 많으니까요. 나중에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저를 도와주신 분들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일단은 한강드론택시 사업부터 말입니다.”

“서울시에서도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하죠.”

“잘 될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업은 시장님의 치적이 될 테고요.”

***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강당.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소강당은 직원들이 단체로 모일 일이 있거나 아니면 평소에는 연기 연습실 정도로 쓰이는 곳이었다.

오늘은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주최하는 공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공개 오디션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사전 예선을 거친 본선 오디션이었다.

진수도 심사위원석에서 참가들의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대부분은 현직 아이돌이라는 거죠?”

윤아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것은 진수를 비롯해서 윤아영과 채은성 감독 그리고 드림엔터테인먼트 임원 몇 명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심사권을 가진 사람은 진수와 채은성 감독 그리고 윤아영 이 세 명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최종적인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진수의 몫이었다.

예선을 거친 참가자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속사가 있는 아이돌 가수였고 tv에서도 자주 얼굴을 비추는 아이돌들이었다.

“예, 연기는 그 정도면 훌륭합니다. 다음 분...”

오디션은 간단한 연기를 테스트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부분 가수들이라 연기는 다소 어색한 수준이었다.

오디션을 지켜보던 채은성 감독의 표정도 살짝 어두운 것 같았다.

“채 감독님, 너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어차피 긴 호흡의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짧게 짧게 나오는 거니까요. 편집만 잘하면 오히려 더 신선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하, 뭐, 그렇겠죠.”

오디션을 이렇게 심사까지 하는 건 처음이었다. 거기다 다들 상큼한 걸그룹의 그것도 소위 말하는 센터를 책임지는 인기 아이돌들이었다.

심사를 하는 동안 이래저래 진수의 눈이 호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아영 씨가 보기에는 어때요? 내 눈에는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뭐 별거 있겠어요? 다들 고만고만한 아이돌그룹 출신들이고, 연기력은 크게 기대할 게 없고. 사장님이 맘에 드시는 애들도 뽑으면 되겠죠.”

“하하, 그래요? 그래도 이거 은근 고민인데요. 누굴 뽑을지 말입니다.”

마치 아이돌 키우기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다들 예쁘고 상큼한 소녀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더 키워주는 것이다. 어쨌든, 나름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들이지만 연예인으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다들 가수보다는 연기자를 지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심 끝에 주관적인 기준으로 5명을 뽑았다.

“다 걸그룹 멤버들이네요.”

윤아영은 내가 뽑은 합격자들을 살펴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일반인들은 아무래도 차이가 나는 것 같더라고요. 연기를 더 잘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냥 내 맘에 드는 걸그룹 멤버들로 뽑았습니다.”

“뭐, 남자들 눈이 다 비슷비슷하겠죠. 제가 살펴보니까, 다들 남자들이 좋아할 외모들이네요. 실제로도 그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멤버들이고요.”

내가 뽑은 5명은 현재 한국 걸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다들 최고 인기 멤버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섯 명을 뽑은 것만으로도 슈퍼 걸그룹이 탄생한 셈이었다.

“채 감독님은 어떻습니까?”

“제가 따로 말할 건 없겠죠. 회장님 뜻대로 하십쇼.”

그렇게 한국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5명의 걸그룹 멤머들이 이번 영화의 조연들로 선발이 되었다.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5명을 아시아 익스프레스걸즈라고 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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