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문제
포클랜드 제도. 제이콥섬.
플라잉 폭스는 브라질의 자구아눔에 남아 있었다. 포클랜드에 온 것은 진수의 신형 메가 요트인 아틀라스호였다.
플라잉 폭스가 좀 낡기도 했고 각종 장비를 운용하기에는 최신형 요트인 아틀라스호가 더 적합한 것 같았다.
제이콥 섬을 중심으로 인근의 무인도들의 좌표를 분석을 했고, 그 중에서 행운의 과자로 뽑은 섬들에서 황금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번에도 작업 방식은 로봇슈트를 보내서 VR 제어 시스템을 이용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VR 헤드셋을 끼자 주위는 차가운 남극해의 섬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수가 방금까지 있던 곳은 아틀라스호의 VIP룸이었지만 완벽하게 구현된 가상현실로 제이콥 섬 남단의 무인도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주위를 확인해 보니, 사전에 작업을 해둔 창고 건물들이 눈에 뜨였다. 여기에서 자동차를 타고 황금 발굴 예정지로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로봇슈트는 전체적으로 약간 덩치 큰 남자 정도의 크기였다.
일반 승용차를 타고 운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형 픽업 트럭은 문제없이 탈 수가 있었다.
그렇게 픽업 트럭에 올라 조심스럽게 자동차 운전을 시작했다. 차를 운전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해보았지만 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벌써 3번이나 사고를 낸 것이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사고를 낸 적이 없었는데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조정하는 로봇슈트는 조정이 제법 어려웠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로봇슈트를 조정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 운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위험한 것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 로봇슈트가 망가지는 정도나 자동차의 손상 정도가 문제가 되는 정도였다.
사고가 난다고 해도 아틀라스호에 있는 내가 다치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한편으로는 편리한 기술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원격으로 조정되는 로봇이라는 개념이 살짝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VR로 조정하는 로봇슈트는 현실의 세계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안에서 픽업 트럭을 몰고 절벽으로 돌진을 해도 내가 죽을 일은 없는 것이다. 뭔가 완벽한 현실세계지만 그와 동시에 비현실인 기묘한 증강현실 세계인 것이다.
지금은 이카로스테크의 기술력을 포클랜드에서 황금을 발굴하는 데 쓰고 있었지만, 앞으로 이런 증강현실과 로봇 제어 기술은 더 많은 곳에 다양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면 무기를 통제하는 시스템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지만, 자동차도 그렇고 각종 차세대 모빌리티 기술에서 로봇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인공지능 제어시스템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인간을 대체할 정도로 높은 수준까지는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한 것이다. 인간의 능력에 거의 근사치에 도달하기는 할 수 있지만, 인간이 가진 최종적인 판단을 대체할 정도까지는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인간 자체가 신이 창조한 인공지능이고 그 인간의 능력 가운데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능력들이 판단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예측이 단순한 영역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재의 인공지능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 어쩌면 운에 미래를 맡겨야 하는 그런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기준은 바로 인간 자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인의 판단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존재이고, 실제로 그의 판단에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물론, 모두가 올바른 판단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야마시타 골드로 유명한 야마시타나 히틀러 같은 인물들 모두 정상적인 판단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오판을 하더라도 후에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야마시타는 전시에 저지른 책임에 대한 처벌로 필리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으니 말이다.
히틀러 역시도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서 인공지능은 오판 가능성도 문제지만 그의 오판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그 문제는 결국 인공지능의 실수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인공지능을 제조해서 판매한 기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사책임은 물론이고 형사책임까지 인공지능의 일으키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어떤 기업도 어떤 개인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진수 역시도 그런 이유로 인공지능형 로봇기술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인 문제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완전한 인공지능보다는 인간이 간섭하는 VR 기술을 응용한 로봇제어 기술이 오히려 더 실용적이고 미래에 상용화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인간이 조정을 하게 되면 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인간이고 그런 이유로 로봇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해지게 된다는 것이 진수의 판단이었다.
아무튼, 아직은 이런 VR 제어시스템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벌써 3번이나 교통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무인도에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따로 법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도심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면 진수가 그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진수는 천천히 픽업 트럭을 몰았다. 약간은 기묘한 상황이었다. 제이콥 섬 남단의 무인도는 제이곱 섬보다도 더 남극에 가까워서인지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수는 멀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아틀라스호의 VIP룸에 머물고 있었다. 당연히 따뜻하게 난방이 되고 있었고 차가운 바람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진수의 의지로 로봇슈트를 움직일 수 있었고 차까지 운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우, 오늘은 사고가 안 났군,”
로봇슈트에서 전송되는 시각정보들로 재구성이 된 가상현실은 완벽했지만 로봇슈트를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어색한 일이었다. 몇가지 센서와 리모콘을 이용해서 작동을 시키고는 있었지만 사람의 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고 특히, 자동차 운전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가장 어려운 자동차 운전에 성공을 한 셈이었다. 차에서 내려서 땅을 파는 일은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무인도에서 나치의 황금, 늑대의 눈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동굴 앞에 다가섰다. 그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진짜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고 360도로 촬영되는 화면이 재구성된 가상현실이었다.
하지만 진수의 눈에는 로봇슈트가 들어간 동굴의 상황이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물론 카메라 촬영을 위해서 조명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환경은 일정한 광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자연적으로 빛이 있거나 아니면 인공적으로 조명을 비추는 것만 전송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굴이든 지하 토굴이든, 로봇슈트의 카메라로 전송되는 화면에는 어둠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빛이 없으면 카메라도 작동할 수 없고 그러면 시각정보를 전송하지도 못 한다. 당연하게 VR로 시각정보를 재구성할 수도 없고 말이다.
현재의 VR 시스템으로는 어둠을 구현하지는 못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전처럼 어둡고 불안한 느낌의 지하 토굴을 경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황금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는 것에는 이런 로봇슈트와 VR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토굴 입구를 찾기 위해 일단 동굴 바닥에 여러 개의 선을 그어서 공간을 분할했다. 그리고 각 분할된 공간에 숫자를 부여했다.
그리고는 진수는 VR 헤드셋을 벗었다.
“다시 현실세계인가?”
무인도의 동굴에서 화려한 VIP실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로봇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행운의 과자로 행운의 번호를 뽑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면 기계나 인공지능에 밀려 인간의 역할이 없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진수의 생각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세상의 일들이 단순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문명의 발달은 치명적인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느낌이었다.
복잡성도 증가하고 책임의 문제도 더 많아지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필연적으로 소송이 증가하고 법률시스템도 같이 발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법률의 가장 근간은 인격이다. 인격을 가진 존재만이 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물론 법인격을 부여해서 법인을 설립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법인조차도 인간에 의해서 운영이 되는 존재이지 인간이 없는 법적 권리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임의 한계가 있을 지는 몰라도 모든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인격에 기반한 책임으로부터 그 권리의 행사가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인공지능보다 더 뛰어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그런 법적 책임을 감수할 수 있는 인간만이 미래의 세상에서도 모든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한 판단력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행운이었다. 도박을 할 수 있고 미래의 불완전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고 도전할 수 있는 인간만이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진수는 행운의 과자의 병을 열었다. 과자는 언제나처럼 새로운 맛과 향이 나고 있었다. 오늘은 뭔가 SF적인 그런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달콤한 과자의 향이지만 어딘지 차갑고 절제된 느낌이었다. 달지만 풍부한 맛은 아니고 우주인의 식량 같은 필수불가결한 영양소로 채워진 그런 단단한 맛이었다.
“이건 좀 맛이 좀 계산적인 것 같은데. 마치 인공지능이 만든 것처럼 말이야.”
어쨌든, 그렇다고 해도 인간미가 좀 없을 뿐 달콤한 맛은 여전했다. 그리고 절제된 달콤함이 사라질 때쯤 입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37이군. 좋은 숫자야.”
진수가 과자병을 내려놨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VR 헤드셋으로 끼고 작업을 할 때는 문을 잠가놓고 있었다.
일단 시야가 가려지는 상황이라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멀리 수 킬로미터 떨어진 무인도에서의 상황은 파악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눈앞에 누가 나타나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VR 헤드셋을 끼고 있으면 약간 바보 같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스스로는 중요한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도 옆에서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VR 헤드셋은 혼자 있는 곳에서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정한 시간에는 반드시 노크를 하고 들어오도록 되어 있었다.
“누구죠?”
“마르티나예요. 아직도 일하시는 거예요?”
“아, 뭐, 잠깐 휴식을 해도 괜찮겠죠. 들어와요.”
아틀라스호의 마사지사인 마르티나였다. 특별히 고된 일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VR 헤드셋을 끼고 작업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목이나 어깨가 아프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은근히 몸이 긴장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머, 어깨가 또 이렇게 솟아 있어요. VR 게임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가요?”
“게임이 아니라 비즈니스라니까요.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뭐, 그렇다고 마르티나에게 이것저것 복잡하게 설명할 것은 없었다. 마르티나는 별다른 허락도 받지 않고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도 딱히 그녀의 손길을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행운의 번호로 37이 나오기는 했지만 작업이 한 두 시간 지체돼도 상관은 없었다.
무인도에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동굴 속에 가만히 멈추어져 있을 로봇슈트가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로봇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라도 나를 불만 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침대에 엎드리세요. 제대로 마사지를 해드릴게요.”
“그럴까요?”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넓은 침대 위로 몸을 쭉 피고 엎드렸다. 그리고 이내 부드러운 손길에 등과 척추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