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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 (191/200)

변화의 바람

KBC 방송국 사장실.

“KBC보다는 넷플릭스를 선택하신 건가요?”

“하하, 뭐, 그렇게 됐습니다.”

박영수 사장은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드는 새로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것에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그의 관심은 대선에 쏠려있었다.

“유튜브도 그렇고 여기저기 방송국들의 경쟁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도 드라마쪽 시청률을 잠식하고 있고요.”

“방송국의 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면서요?”

박영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체 환경이 변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예전에는 뉴스와 예능, 드라마, 영화, 다큐까지 모두 방송국이 독점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물론 신문도 있고 다른 경쟁 미디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뉴스는 포털과 SNS에 빼앗기고 예능을 보던 시청자들은 유튜브에, 드라마 시청층은 넷플릭스에 모두 빼앗기고 말았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세상은 변하고 있고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방송국도 이제는 스스로 변화를 해야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어갈 사람으로 바로 제가 적임자가 아니겠습니까?”

박영수 사장은 방송국의 미래보다는 본인의 미래가 더 걱정되는 것 같았다.

“김현석 시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박영수 사장님의 연임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 아닙니까?”

KBC에서는 최근에 노골적으로 김현석 대통령 만들기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진수로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김현석 사장이 추진하는 한강드론택시가 성공한다면 이카로스그룹과 신성그룹이 함께 만들어가는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거기에 김현석 시장이 차기 대권까지 손에 넣는다면 더더욱 드론형자동차 내지는 전기차 사업 쪽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었다.

“하하, 뭐, 그렇게만 되면 좋고요.”

드림엔터테인먼트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있었지만 박영수 사장이 있는 한 KBC와의 관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차기 대선이겠군요. 박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진수의 말에 박영수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이카로스그룹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하, 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는 않겠죠. 정치라는 것이 개입하지 않는 분야는 없는 거니까요. 최진수 사장님은 젊은 분이라 정치권과 얽히는 걸 꺼리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 말들이 떠도나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의 한국의 재벌들은 수직계열화된 그룹을 운영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때로는 부실기업을 운영하기도 해야 했기 때문에 금융권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각종 행정규제를 통제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자연스럽게 연줄을 대고 있었고, 소위 말하는 정경유착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진수가 설립한 이카로스그룹은 일단 설립 초기부터 충분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이는 것들이 많아서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가 그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 대선에서는 김현석 시장이 당선되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리의 사업에 유리하다는 건가요?”

“드론택시 사업도 그렇고, 그보다도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이나 신성자동차에서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전기차 사업 아닙니까?”

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수 사장의 말대로 앞으로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의 핵심은 전기차 사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전기차 인프라는 많이 부족한 편이었고 정부에서도 인프라 설립에는 그다지 적극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쉬운 문제는 아니죠.”

“그럴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고 이제부터는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야 할 텐데, 문제는 기존 산업에 종사자들의 반발이 엄청날 거라는 거죠.”

박영수 사장도 대충 지금 업계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겠죠.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되면 자동차 생산 과정도 단순해지고 부품수도 줄어드는 거니까요. 결국, 협력사나 자동차 산업의 생산인력의 감원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정치권에서 그런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나마 평소 성향으로 봐서 전기차 같은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쪽은 김현석 시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박영수 사장님은 김현석 시장에게 배팅을 하실 생각인 모양이군요.”

“예, 저는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죠.”

***

거제도, 이카로스조선소.

조선소의 도크에는 이미 완성단계의 배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아틀라스호를 처음 건조할 떄만 해도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호화 요트를 생산한다는 것은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이미 아틀라스호와 셀레스호 외에도 5척 이상의 메가 요트들이 진수를 마치고 주인을 찾아 떠난 후였다.

그리고 거제도도 고급 메가요트를 만드는 요트 생산의 메카로 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오늘도 BBC의 취재팀이 이곳을 찾아 조선 설비들과 생산을 마친 메가 요트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곳에 와보니까, 과연 명성대로 대형 요트들이 많이 보이네요.”

BBC의 서울 특파원인 제인 스타인은 마침 조선소를 방문한 진수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고 진수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유럽에서 고급 요트들이 많이 생산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유럽은 생산비도 비싼 편이고 조선 사업도 이제 사양세니까요.”

“영국 기자로서는 아쉬운 이야기이지만, 제 생각에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조선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에 그런 유럽을 대신해서 고급 요트 생산을 하게 될 거라고 보시나요?”

“당장, 메가요트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있고 또 고급 요트라는 건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같은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탈리아의 아즈무트 베네티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그렇습니다. 배를 만드는 것이라면 한국의 조선 기술도 최고수준이지만 고급 인테리어라는 것은 또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요.”

진수의 말처럼 고급 메가요트 시장은 배를 건조하는 기술력 외에도 최고 수준의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과 인테리어 시공 능력이 필요로 하는 복합적인 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선 능력을 갖춘 중국이나 일본도 아직, 메가 요트 생산에는 도전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이 독점하던 시장에 한국의 이카로스조선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며 멋지게 성공을 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을 했다는 건가요?”

“예, 요트 분야에서는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이나 레저 분야에서 요트의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보시는군요.”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돈이 많은 부자들은 고급차로는 만족을 하지 못 하죠. 부자들이 늘어나면서 고급 소비재 시장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고 요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성장세가 빠른 산업입니다.”

“그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유럽에서는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는 조만간 생산과 판매가 중단될 것으로 예고가 되었고요. 요트도 바다 위에 떠다닌다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내연기관에 의존하는 방식 아닌가요?”

제인 스타인의 질문에 진수를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자동차 시장이 이제 전기차로 전환을 맞고 있다면 요트 시장도 이제 전기요트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아직은 요트나 선박 산업에까지 탄소규제의 바람이 불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선박 시장도 전기 배터리에 기반한 방식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전기요트로 변하게 될 것은 개인용 고급 요트 시장이라는 것이 진수의 생각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 진수는 이카로스조선 사장실로 향했다.

옆에서 아까부터 진수의 인터뷰를 듣고 있던 최기형 사장은 궁금하게 여기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까 BBC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에 하신 말씀 말입니다.”

“어떤 거요?”

“전기요트 말입니다. 정말, 요트 시장도 전기요트가 주류가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자동차에 비해서는 아직은 그 시장이 크지 않은 요트 산업에 아직 엄격한 환경 규제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같은 내연기관 방식으로 작동하는 요트의 엔진도 이제 본격적인 규제의 바람이 불어올 것은 분명했다.

“어차피, 자동차를 시작으로 모든 내연기관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변화에 맞서려고 해봐야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기는 하겠죠.”

최기형 사장도 이미 조선업계의 변화로 한 번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체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변화의 큰 조류를 거스를 수는 없는 거죠. 그보다는 변화의 시기에는 한발 앞서 스스로 변신을 하는 편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회장님은 전기요트 쪽으로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큰 변화의 흐름은 바꿀 수 없는 일이고, 기왕이면 전기요트 시장에서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거라는 것이 진수의 생각이었다.

“아직, 대형 메가 요트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 기존의 수주를 받은 것도 있기 때문에 어렵겠지만 중소형 요트부터라도 전기요트로 전환을 해야겠죠.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의 주력이라면 대형 메가요트 사업이니까요. 선제적으로 전기메가요트 개발을 시작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음, 전기메가요트라는 건가요?”

기본적인 구상은 간단한 것이었다. 기존의 메가요트를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배터리로 동력원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배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대용량의 배터리 시스템이 필요했다.

“물론, 배터리는 이카로스이노베이션과 기술협력을 통해서 대형 선박용 배터리를 개발해야 할 겁니다.”

“그렇겠군요.”

미래의 모든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은 바로 배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자동차 분야를 시작으로 모든 움직이는 운송수단은 이제 전기 배터리로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었고, 메가요트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카로스그룹이 이런 변혁의 시기에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었고, 대형 메가요트 시장에서도 그것은 강점이 될 터였다.

“어쨌든, 이제는 모든 움직이는 것들은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될 겁니다. 선박 시장도 예외는 아니죠.”

진수의 말에 최기형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겠죠. 이제 화석에너지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는 셈이니까요. 선박 산업에도 큰 변화가 일게 되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이제 유조선이나 LNG선의 수요도 줄어들게 될 겁니다. 대신, 레저 분야의 수요는 늘어날 테니까요.”

기존의 유조선을 많이 생산하던 이카로스조선도 그런 변화의 가장 선봉에서 새로운 전기에너지 시대를 맞고 있었다.

유조선과 LNG선을 생산하던 이카로스조선소가 이제는 전기로 움직이는 요트들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곳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변화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빠르고 적극적이면 더 좋은 거죠. 새로운 전기요트를 개발할 때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카로스이노베이션과 협력해서 새로운 전기요트를 개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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