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마지막 날
메타버스 아틀란티스는 대성공적이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개장한 인공섬, 아틀란티스는 홍해의 이국적인 풍광을 바탕으로 유럽의 부호들과 중동의 왕족들의 휴양지로 급부상을 했고 그와 함께 세계적인 영화배우나 팝스타들도 이곳을 찾았다.
두바이의 팜아일랜드와는 비교해서 압도적인 섬의 크기도 그렇고 친환경 에너지로 움직이는 솔라 시티, 그리고 최첨단 VR 기술을 이용한 메타버스 시티라는 개념도 사람들이 이 도시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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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이카로스그룹 본사.
“김현석 시장님이 여기까지 방문해주시고 영광입니다.”
“하하,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최진수 회장님의 명성이 대단하시더군요.”
서울시장의 방문, 이제 얼마 후면 김현석은 서울시장직을 내려놓게 된다. 아직 임기는 남아 있었지만,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가볍게 1위를 하면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시장직은 경선통과가 결정되자 바로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이제 시장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겠죠. 후보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하하, 오늘까지는 시장입니다.”
김현석 시장과 함께 추진한 한강드론택시 사업은 사업 초기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드론형 택시라는 형태도 굉장히 특이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차기 대권후보로 유력한 김현석 시장의 마지막 사업이라는 점에서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렇지만 지금의 대형 신문사나 방송국들은 경영상의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비단 한국의 문제는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기성 미디어들이 새로운 온라인 미디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기술력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의 일상의 대변혁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것은 단순히 유선전화에서 무선전화로의 변화가 아니라 정보를 전달받은 형식과 플랫폼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종이신문이나 TV채널에 정보를 의존하고 있지 않았고 이것은 사람들에게 선택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권력을 누리던 기존의 미디어들에게도 큰 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언론들의 위기는 정치권력에 더 개입하려는 행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미 새로운 미디어들에 경쟁력이 부족한 그들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권력에 줄을 대고 있는 것이다.
방송국들이나 신문들은 이미 매출 하락과 적자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더 정치화하며 권력을 통해 기존의 사업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권언유착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고, 이것은 정치성향이나 여야의 문제도 아니었고 한국에만 국한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외국의 보도채널들도 떨어져가는 자신들의 위상을 정치분야의 뉴스를 강화하며 유지하려고 하고 있고 특정 정파에 치우쳐 자극적인 정치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들이 김현석 시장님에게는 호의적인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라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예, 그런가요? 대선 레이스는 마라톤 같은 것이라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죠. 하지만 초반에는 제가 치고나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최진수 회장님과 이카로스그룹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김현석 시장의 말대로 김현석 시장이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여당의 경선 레이스에서 진수의 덕을 본 것은 사실이었다.
정확하게는 드론택시사업이 큰 주목을 받은 것이다. 서울시장으로 시정에 나름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거대한 랜드마크 같은 것을 건설하지 않는 이상,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시에서 하는 사업이라는 것이 행정서비스에 치중된 것들이라, 딱 꼬집어 김현석 시장의 독창적인 행정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말이다.
그에 비해서 한강 주위를 날아다니는 드론택시는 대중들에게 김현석 시장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하늘을 날아다니는 대형드론 그리고 사람들이 타고 한강을 횡단하는 뭔가 SF적인 이미지, 이것만으로도 한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서울 시민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준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언론에서도 연일 한강드론택시 사업을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으로 선전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KBC 같은 방송국이 대표적이었다.
물론, 박영수 사장이 연임을 노린 포석이었겠지만, 대외적으로 미래의 신기술로 미래먹거리를 개발한다는 명분이 확실한 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KBC를 비롯한 여러 여권 성향의 언론들이 김현석 시장에게 줄을 대기 위해 한강드론택시사업에 우호적인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드론택시사업은 큰 주목을 받은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마침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에 건설되던 이카로스그룹의 아틀란티스 프로젝트도 완성되면서 이래저래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언론의 지원은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경선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던 김현석 시장을 단숨에 1위로 밀어올려주었다.
“원래 1위 아니었나요?”
“하하, 개인적으로는 1위로 나오는 여론조사가 많았지만, 정치라는 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죠. 계파라든가 그런 세력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제가 1위기는 했지만 다른 후보들이 연합해서 나온다면 사실 당내 비주류인 제가 1위를 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운이 좋았죠.”
경선 시스템은 예선을 거친 후에 본선으로 이어지는데, 본선 1차에서 과반을 획득하면 바로 후보로 결정이 되고 과반이 불가능하다면 2차 본선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김현석 시장의 말대로 계파 정치가 만연한 한국에서 비주류인 김현석 시장을 막기 위해서 합종연횡이 벌어진다면 과반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과반에 실패해 2차 결선으로 가면 역시 상대쪽 후보의 단일화로 김현석 시장의 패배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본선 1라운드에서 싱겁게 김현석 시장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쉽게 경선 레이스는 막을 내린 것이었다.
“본선에서 과반 획득은 어려울 거라는 말들이 많았는데, 일반인 투표에서 차이가 많이 났죠. 아무래도 드론택시사업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저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걸 좋아하죠. 그래서 파라오들도 귀찮게 이것저것 이야기하지 않고 피라미드를 건설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피라미드의 진정한 기능은 그 크기 그 자체에 있는 거겠죠.”
김현석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대 피라미드는 엄청난 크기도 그렇지만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것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쩌면 답은 고대인들 자신만이 아는 것이고 현대인들은 단지 추측을 해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치인 김현석의 해석은 거대한 홍보물 정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진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셈이었다. 이른바 빅씽이라는 생각은 전부터 했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기능이나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함, 압도적인 사이즈 차제가 이 건축물의 목적이나 기능 그 자체라는 생각 말이다.
현대의 개념으로 하자면 랜드마크인 것이다. 사실 에펠탑도 평지 지대인 파리에 우뚝 썬 그 높이와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크기 덕분에 유명세를 탄 셈이다.
철골 구조물인 이 건축물은 당대에는 흉물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크다는 것 외에는 어떤 미학적인 특징이 있는지, 예술적인 철학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주위에 산이 없는 파리라는 분지 지형 덕분에 파리 어디에서도 이 에펠탑을 볼 수 있으면서 파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었고, 이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자유로운 서유럽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 셈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틀란티스도 미래지향적인 도시 이미지를 잘 만든 것 같습니다. 특히 메타버스와 연계한 것은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김현석 시장은 아틀란티스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메타버스 아틀란티스에는 접속을 했었다고 했다.
메타버스 아틀란티스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VR 기술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방문이 가능하다.
메타버스라고는 해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방문이 진행이 되는데, 하나는 순수한 VR 체험으로 그것은 수동적인 방식으로 정해진 코스를 돌며 VR 체험을 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VR 영상을 보는 것과 원리가 같은 방식이다. 차이라면 기존의 VR 영상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화질의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정도였다.
그에 비해서 로봇슈트와 연동된 능동형 메타버스 체험도 있는데, 이것은 이카로스그룹의 독자적인 기술로 아틀란티스를 메타버스를 통해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본인이 조정하는 로봇슈트를 움직이면서 마치 진짜 아틀란티스에 있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VR 기술로 현실 세계의 아틀란티스에 실존하는 로봇슈트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것을 넘어서 자유롭게 새로운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조정한 로봇슈트가 대기 중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체험 인원은 미리 예약을 받은 소수의 인원에 한정이 되었다.
“로봇슈트를 이용한 능동형 서비스를 체험하셨다고요?”
“예, 그게 더 재밌는 것 같더라고요. 기존의 가상현실이라는 건 미리 찍은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좀 지루한 것도 있었는데, 로봇슈트를 움직이는 체험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것도 그래픽으로 만든 게임세계가 아니라, 중동의 아름다운 진짜 섬에서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하하, 앞으로는 더 기술도 향상이 되고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일종의 관광산업이라고 할 수 있죠.”
“직접 여행을 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관광사업이라는 건가요?”
“물론, 게임과 관광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VR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메타버스가 완벽하게 구현이 된다고 해도, 현실의 복제물일 뿐이죠.”
“완벽한 복제물도 아니겠죠?”
“맞습니다. 아무리 생생한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라고 해도 진짜 바다와 상쾌한 바람, 따뜻하게 밟히는 모래들 같은 것들은 재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시각적인 것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그것으로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기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아틀란티스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 새로운 신개념의 리조트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리조트와 마리나 같은 시설을 이용해서 다양한 해양 레저 체험과 관광이 가능하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리조트 시설들은 메타버스로 만들어져서
VR 기기를 이용해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가 된 것이다.
“신기하기는 한데, 실제로 유료로 이런 리조트 체험을 하는 사람이 많은가요?”
“하하, 시장님은 VIP라 무료로 체험을 하셨지만, 이미 유료 서비스가 진행 중이고요.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죠.”
가상현실 체험은 두 가지 버전으로 수동적 체험은 무료지만, 로봇슈트를 조정하는 능동형 체험은 유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수동형 체험보다는 능동형 체험을 선호해서 유료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엄청 밀려있는 상황이었다.
나름 로봇슈트 생산을 늘리며 서비스 준비를 많이 한 이카로스리조트 입장에서도 놀랄 정도로 말이다.
능동형 메타버스 체험은 로봇슈트와 연동한 개념이기 때문에 로봇슈트의 숫자만큼의 이용객만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직접 다른 세계에 와 있는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쪽은 능동형 체험이었고 그런 인기는 유료 서비스의 매출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여기까지 찾아주시고 말입니다.”
“하하, 오늘이 시장으로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대선후보로 활동하게 되죠. 그래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