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의 설계도
“시장으로서는 오늘이 마지막이고 내일부터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하, 신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셈이군요?”
“그런 건 아니죠.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후보가 된 거니까요. 아무튼, 당장 신분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목표가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서울시라는 도시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단위로 더 큰 생각을 해야 할 때니까요.”
“그렇겠죠. 대통령 공약이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그런 것이 필요할 테니까요. 뭐, 남북통일 후를 대비한다든지 말입니다.”
남북통일이라는 말에 김현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했다.
“통일문제는 까다로운 문제죠. 솔직히 제가 임기 내에 처리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요.”“역시 그런가요?”
당내에서 비주류라는 평가를 받는 그답게 통일문제에는 큰 흥미가 없어 보였다. 지금의 여당 쪽에서는 여러 가지 거창한 계획을 가진 모양이지만, 대신에 김현석 시장은 미래 신기술에 기대를 하는 모양이었다.
“대북사업 같은 것은 일단 우리가 주도해서 뭔가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분야죠. 우리가 먼저 다가간다고 그쪽이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북측에 큰 변화가 먼저 선행되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에 비해서 첨단 기술을 개발해서 미래먹거리를 만드는 거라면 더 쉽다는 겁니까?”
진수의 말에 김현석은 미소를 지었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노력을 해서 성과를 낼 수는 있는 분야죠. 특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에너지와 모빌리티 산업입니다.”
“저희 이카로스그룹과 연관이 많은 분야죠. 태양광사업도 그렇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태양광 사업은 효율성에 의문이 있어요. 한국은 산지가 많고 기본적으로 넓은 땅이 없는 나라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죠.”
산을 깎아서 억지로 태양광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친환경 에너지라는 취지를 생각하면 과연 의미 있는 정책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보다는 바다의 해상발전소를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아틀란티스의 해상발전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현석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국토에 억지로 태양광 발전소를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다에 대규모 해상발전소를 건설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진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태양광 발전이 친환경에너지임에는 의심할 바가 없지만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해서는 넓은 면적이 필요하고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 같이 사용하지 않는 넓은 황무지가 있는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개인주택에 전원을 공급하는 정도로 소규모 발전용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대체할 수준의 태양광 발전소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바다에 말입니까? 하지만 한국 같은 곳은 여름에는 태풍도 많이 불고 그다지 안정적인 환경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에 해상발전소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태풍이 없고 굉장히 잔잔한 바다죠.”
“그래요? 하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예를 들면 꼭 우리나라의 바다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요. 바다는 지구상에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면적을 가지고 있고 공해상이라는 개념도 있으니까요.”
“공해상 말입니까?”
“아무튼, 어떤 방법이든 친화경 에너지이면서 기존의 전력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고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대선 공약으로 에너지 문제도 중요하니까요.”
“친환경 에너지 말인가요?”
“그 외에도 전기차 같은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도 중요하고요. 아무튼 기존 산업을 대체할 미래 산업이 필요한 시대니까요. 저 역시도 대통령이 대기 위해서는 그런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겠죠.”
“공약이야 정치인들이 만드는 거 아닌가요?”
김현석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공약만으로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디테일의 문제라고나 할까요.”
김현석 시장은 차기 대권 공약을 위해서 특히 미래산업에 대한 비전을 원했다. 그리고 전기차와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뭔가 눈에 띄는 공약을 선점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피라미드처럼 눈에 띄는 공약이라는 건가요?”
“예, 추상적으로 미래산업에 투자한다는 말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죠. 그것보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합니다.”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라오들이 별다른 기능도 없는, 그러니까 사람들 말처럼 곡물 창고로도 쓸 수 없는 피라미드를 왜 그렇게 막대한 비용과 노동력을 투자해서 건설했을까? 결국 그것이 통치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사막 한복판에 건설된 피라미드는 산이 없는 사막의 지평선 위에서 우뚝 솟아오른 모습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피라미드처럼 김현석 사장도 눈에 띄는 빅씽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선 공약도 눈에 띄는 단순하고 거대한 것을 준비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공약이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마치 도시의 랜드마크처럼 크고 단순한 게 필요한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한 아틀란티스가 제가 원하던 스타일이죠.”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홍해에 건설한 인공섬 아틀란티스는 기대했던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 덕을 가장 크게 본 것은 빈 살만 왕세자였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으로 해외에서는 그에 대한 이미지가 무식하고 욕심 많은 중동의 왕족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친환경 정책을 선언한 아틀란티스의 부상으로 그의 이미지도 국제적으로 급부상을 한 셈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서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그린 에너지와 탄소저감 정책을 중동의 대표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앞장서서 실현하는 모습이 그들의 이익과도 부합이 되었고 부정적이었던 유럽과 미국 등의 여론도 그에게 호의적이 된 것이다.
긍정적으로 변한 것은 외부의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내부적으로도 빈 살만의 개혁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보수 세력 내지는 반대파들도 아틀란티스의 성공으로 국민 여론이 빈 살만 쪽으로 기울자 반대할 명문을 잃고 세력이 축소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변화가 아틀란티스라는 랜드마크의 성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고대의 파라오들처럼 거대한 건축물은 권력의 강화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현석 시장님, 아니, 이제 후보님이라고 불러야 하겠군요. 김현석 후보님이 원하는시는 거대한 빅씽은 어떤 것입니까?”
진수의 말에 김현석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저도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면 서울 한복판에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은 어려울 겁니다. 이제 선거도 얼마 없고요.”
김현석의 말대로 단기간에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할 수는 없는 일이다. 피라미드도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건설된 것들이고 아틀란티스도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에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토지를 구하고 인허가도 문제고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효과가 있는 거대한 미래 비전이 필요합니다. 너무 복잡한 기술도 그렇고, 지금으로서는 국민들에게 익숙하면서 또 미래지향적인 배터리가 좋을 것 같습니다.”
“배터리, 전기차 배터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전기차야 이제 서울 시내에서도 자주 보이는 정도니까요. 그리고 전기차의 핵심 기술이 배터리라는 것도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잘 알려져 있고, 더구나 우리나라는 배터리 분야의 강점이 있는 나라 아닙니까?”
김현석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과 그 외에 전기 배터리 기술과 연계된 차세대 모빌리티 그리고 그 배터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각종 에너지 사업까지 모든 것을 연계하는 거대한 미래 성장 계획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걸 이카로스그룹이 기획해 달라는 건가요?”
“정치 보좌관들이 어설프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역시 디테일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정책이라는 것, 한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나가는 정책이니 실현 가능성과 예산 문제도 있고, 구체적인 단기 목표와 단계도 필요하고요.”
“저희 이카로스그룹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하하, 정치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문제인가요?”
“미래에 관한 문제입니다.”
“미래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그런 정치 혐오론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치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엄청납니다. 특히, 대선 같은 경우에는 그렇죠.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기는 하겠죠.”
김현석의 말대로 다들 정치인들을 우습게 아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가진 권한이라는 것은 가히 엄청난 것이다. 특히, 예산을 집행하거나 미래의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는 것이 주로 정치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진수도 정치인들에게 대해서는 비호감을 느끼고 여야, 할 거 없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는 있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에 무관심 것만이 답일까? 라는 것은 의문이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구조적인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에 기업이든 개인이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메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기업 집단이나 이익 단체들의 정치 로비도 일어나는 것이고 말이다.
정경유착이라는 개념이 단지 특정한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한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력을 이용하는 로비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카로스그룹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권에 줄을 댈 생각은 없습니다.”
“하하, 최진수 회장님의 인품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을 멀리하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김현석 후보님 말씀대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미래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와, 배터리, 메타버스, 모빌리티 산업 같은 분야에 막대한 투자와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원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도 필요할 테고요.”
“바로 그 말입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정치인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민간 기업들과의 연계가 중요하죠. 정책을 만드는 것부터 말입니다. 그래서 최진수 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차피, 재벌기업 내지는 글로벌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의 왕세자든 한국의 대통령이든, 정치 권력을 가진 이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빈 살만을 통해서 사우디에서 각종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처럼, 김현석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카로스그룹의 사업은 물론이고 배터리에 기반한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도 날개를 달고 급성장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비단, 이카로스그룹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큰 이익이 되는 일이고 말이다. 그건 차기 대통령에 국정 운영에도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좋습니다. 듣고보니,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 것 같군요. 이카로스그룹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부당한 정치자금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정책수립과 미래비전을 위한 전문가 그룹의 자문이라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대의 피라미드처럼 구체적으로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단순하고 거대한 미래 비전 말이겠죠?”
진수의 말에 김현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단순히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 미래에 실현 가능한 디테일을 갖춘 거대한 설계도도 준비해야 합니다. 진짜 그것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렇겠군요. 피라미드의 설계도가 필요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