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이론
“에메럴드 프린스가 넷플릭스 아시아 1위라는 건가요?”
“예, 지금 최고의 인기입니다.”
윤아영은 어딘지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하긴 윤아영이 드림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을 맡고 있고 드림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한 드라마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에머럴드 프린스는 이카로스그룹의 개발한 산 페르노의 리조트를 배경으로 만든 일종의 신데렐라 드라마였다.
기본적인 드라마의 줄거리는 평범한 여성이 우연히 방문한 산 페르노의 에메럴드 캐슬 리조트에서 억만장자인 리조트 사장과 사랑에 빠진다는 흔한 스토리였지만, 산 페르노의 리조트를 통째로 촬영장으로 활용한 화려한 화면과 인기스타로 떠오른 다니엘 박의 인기에 힘입어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채은성 감독의 연출력도 안정감을 찾으면서 넷플릭스에서 아시아지역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한류의 힘이 대단하군요.”
“어머, 한류라뇨, 우리가 드라마를 잘 만들어서 그런 거죠.”
“하하, 그런 것도 있고요.”
아무튼, 넷플릭스를 통한 드라마의 배급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진수의 목표는 단순히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
이키로스테크 사장실.
서종수 사장은 진수에게 새로 개발한 센서슈트를 내밀었다.
“이게 새로 개발한 센서슈트인가요?”
“예, 피부의 감촉을 전달하기 위해서 냉열센서를 달았죠. 아직 미세한 감각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차가움과 따뜻함이라면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습니다.”
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의 메타버스 사업의 핵심은 기존의 VR이나 AR 혹은 MR 같은 기존의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상현실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VR기술이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정보에 머물렀다면 이카로스그룹의 신기술은 촉감까지도 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 첫 단계로 차가움과 뜨거움 같은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센서슈트를 개발한 것이었다.
“이건, 옷을 벗고 입어야 하는 거겠죠?”
“예, 겉옷 정도는 벗는 편이 좋을 겁니다.”
센서슈트는 마치 잠수복처럼 전신을 감싸는 형태였다. 그리고 몸에 밀착되는 슈트를 통해서 온도를 재현하는 것이다.
옷을 입는 게 좀 귀찮기는 했지만, 그리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된 건가요?”
몸에 좀 밀착되기는 했지만 신축성이 있어서 슈트는 편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헤드셋을 끼자 메타버스로 접속이 되었다.
오늘 갈 곳은 이번에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세를 치른 산 페르노 인근의 무인도였다. 전에 야마시타 골드를 발굴하기 위해 진수도 가 본적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그때 만들어둔 작은 리조트를 수리해서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타버스에 접속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열기였다.
열대 지방의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모래처럼 발바닥에 뜨거운 온기가 느껴진 것이다. 물론, 모래 특유의 촉감까지는 완벽하게 재생하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치 양말을 신고 모래 위를 걷는 느낌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무인도의 해안에는 이미 로봇슈트가 작동하고 있었고 VR 기술로 진수의 눈앞에 무인도의 환경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주변의 온도까지 냉온센서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발전입니다.”
진수는 눈앞에는 안 보이지만, 자신의 옆에 있을 서종수 사장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천천히 바다로 향했다.
로봇슈트는 기본적으로 금속으로 만든 기계, 또 복잡한 전자기계이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로 열대의 해변이나 무인도에 리조트 체험을 하도록 보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마냥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카로스테크에서는 방수 기능을 대폭 강화한 신형로봇슈트를 개발했고, 그런 이유로 메타버스에서 조정을 하면서 물 속을 체험할 수도 있었다.
수영까지 할 생각은 없었고, 진수는 천천히 열대의 에메럴드빛 바다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의 열기처럼 물 속에 들어가자, 시원한 바닷물의 온도가 느껴졌다.
거기에 로봇슈트에서 보내는 시각정보로 바닷속에 들어간 것 같은 체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냉온슈트로 느껴지는 물을 온도는 현장감을 강화해 준다고 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는 시원한 느낌도 있고 좋군요.”
“아직, 개선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만 해도 큰 발전인 것 같습니다.”
진수는 헤드셋을 벗었다. 필리핀의 무인도에서 다시 서울의 이카로스테크 사장실로 돌아온 것이다.
“센서가 달린 슈트의 가능성은 커보이네요?”
진수의 말에 서종수 사장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겠죠. 센서슈트는 아직은 차가움과 뜨거움, 냉온 온도의 개념에 머물고는 있지만, 좀 더 연구를 통해서 촉감이나 압력 같은 다른 감각도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다른 세계, 다른 시공간에 내가 전이하는 것 같은 체험도 가능하겠네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문제는 효율성이 아닐까요? 기술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 몰라도, 사업화를 하려면 대당 단가라든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으니까요.”
“하하, 뭐, 그건 일단 원천 기술을 확보한 후에 응용의 영역이겠죠. 하지만 저는 방향은 이렇게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카로스테크의 기술력, 특히 로봇과 VR 기술은 최근 들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원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세진 로보틱스 시절의 기술력도 상당한 편이었지만, 진수가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개발한 로봇슈트가 상당한 기술적인 진보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실용성보다는 야마시타 골드나, 나치의 약탈 황금을 오지에서 혼자 발굴하기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로봇들이었지만, 이미 황금들을 다 찾은 후에도 다른 분야로의 발전 가능성이 보이면서 진수는 로봇분야와 VR 기술, 거기에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최신 기술들을 개발하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를 했었고,
그런 결과들이 신기술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진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VR을 넘어 촉감까지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센서슈트였다. 센서를 단 전신슈트를 말하는 것으로 로봇슈트에서 전송하는 다양한 시각정보 외에, 온도나 현장의 환경으로부터 전달되는 다양한 감각들을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
센트럴 타워, 26층, 진수의 회장실.
“김현석 후보가 아주 열심히군요.”
“하하, 대통령이 되려면 열심히 뛰어야겠죠.”
대선을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야당 측의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기는 했지만, 조만간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질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다.
“결국, 후보 단일화로 가는군요.”
“대선은 제로섬 게임이니까요. 3등을 한다고 해서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이동준 사장의 말에 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의 당선자를 뽑는 대통령선거라는 제도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패배하는 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에, 야당 측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후보를 단일화 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선거는 결국 국민들 전체에게, 적어도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층의 총의를 묻는 거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유권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어떻습니까? 이동준 사장님의 생각에는 집단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집단 지성말인가요? 어려운 문제군요. 이런 건 과학계에서는 혼돈이론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요?”
“혼돈이론요?”
이동준 사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민주주의를 모독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집단생활을 하는 생물들은 어느 정도는 군집을 통해서 집단의 행동을 모방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를 들어서 반딧불이 같은 것들만 해도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개체가 집단으로 발광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단으로요?”
이동준 사장은 인문학이나 정치학, 심리학의 개념이 아니라 오직 생물학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전제로 미국에서 있었던 반딧불이에 대한 연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름밤에 흔히 볼 수 있는 반딧불이의 군무를 말하는 겁니다. 하나하나의 반딧불이는 아름답고 신비롭기도 하고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기도 하죠.”
“그렇겠죠. 하지만 집단이 되면 달라진다는 건가요?”
“반딧불이 같은 단순한 생물들도 신체 내부의 생체시계가 있어서 각종 호르몬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서 한밤중에 발광, 빛을 내보내는 주기 같은 것도 옆의 다른 반딧불이의 영향을 받는 겁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동준 사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서 바딧불이의 집단발광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존재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죠.”
“집단발광요?”
미국 남부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들은 여름이면 한밤중에 수십, 수백만의 개체들이 일정한 주기에 맞추어서 집단으로 불빛을 내뿜는 이른바 집단발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동준 사장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일종의 동조화 현상으로 생물계에 흔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여성 직원들이 많은 회사에서는 친한 직원들끼리는 생리주기가 같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죠.”
“서로 닮아간다는 겁니까?”
“뭐, 집단생활을 하는 생물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은연 중에 옆 사람들을 보고 배우죠. 그래서 개개인의 개성을 가진 것 같지만, 점점 군집의 규모가 커지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동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중우정치로 이어진다는 말인가요?”
“하하, 집단지성이라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더한다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결국 더 복잡해질 뿐이죠. 결국 답이라는 건 단순하고 명확한 거니까요.”
“아무튼, 김현석 후보가 당선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분명하니까요.”
인간이 집단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로서는 김현석이 여론 조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은 김현석의 경제정책들을 옆에서 서포트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현석이 내세운 친환경 미래먹거리 산업들에 핵심 분야가 배터리 사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터리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은 김현석의 배터리 산업 육성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정경유착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다만 한국 경제의 강점을 더 살려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김현석의 대선 당선 가능성에 따라서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의 주가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른바 대선 수혜주로 떠오른 것이다. 비단, 이카로스이노베이션 뿐만 아니라, 이카로스그룹 전체가 김현석의 당선 시에 수혜를 볼 것이라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도 김현석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래 산업 비전으로 내세운 배터리와 태양광, 모빌리티, 메타버스 같은 분야들이 크게 각광을 받을 것은 분명했다.
이카로스그룹 내에서도 그런 김현석 후보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은밀하게 뒤에서 자문그룹을 가동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치인인 김현석의 경우에 기술 분야에 디테일한 부분은 취약했기 때문에, 정책 개발 단계에서부터 이카로스그룹의 전문가 집단이 기술적인 자문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대선 수혜주로 주가가 상승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큰 문제는 아니지만,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