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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198/200)

12월 19일

운명의 12월 19일,

대선 당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전 주쯤에는 매번 대선 열기로 뜨거웠던 느낌이었다.

진수는 혼자서 스카이 캐슬의 70층 펜트하우스에서 조용하게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대선 결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미, 자체 조사에서 김현석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큰 격차는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투표에서는 차이가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진수의 생각이었다.

TV를 켜자 출구조사가 발표되고 있었다.

TV 화면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확연하게 구별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모든 결과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김현석이 10% 정도 앞서나간다는 출구조사였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미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는 것이 방송사들 패널들의 반응이었다.

물론, 야당에서는 아직 끝까지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진수는 채널을 돌리다가 TV를 껐다.

요즘 그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현실의 세계보다는 가상현실의 세계 메타버스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세워진 아틀란티스를 시작으로 이카로스그룹에서도 메타버스를 개발하는 것에 큰 힘을 쏟고 있었다,

특히, 이카로스테크의 로봇슈트와 전신센서슈트 같은 기술이 잇달아 완성되면서 메타버스 전체의 판도에 큰 변화를 주고 있었다.

진수는 거실에서 메타버스에 접속하기 위해 전신슈트를 갈아입고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이카로스월드에 접속을 하자 세계 각지에 있는 이카로스리조트를 선택할 수 있었다. 진수는 브라질의 바타타의 리조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능동형 체험을 선택하자 주변의 환경이 바타타의 리조트로 바뀌었다.

바타타라면 이미 많이 가본 곳이었지만 이렇게 서울에서 브라질까지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순간이동보다는 빠른 접속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바타타의 리조트에 접속하자, 바타타의 리조트는 이른 아침을 맞고 있었다.

바타타에 있는 로봇슈트에는 접속자의 간단한 정보가 표시된다. 물론, 원하지 않으면 익명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진수가 움직이는 로봇슈트에는 최진수라는 정보가 표시되고 있을 것이다. 사진과 함께 말이다.

“회장님이시군요?”

브라질과의 시차는 12시간, 브라질은 오전 7시를 조금 넘긴 아침이었다. 열대 지방의 리조트는 7시면 거의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다. 몇몇 직원들이 리조트 정리를 하고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가끔 이 시간대에 자주 리조트에 나타나는 진수를 알아보고 직원들이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진수는 로봇슈트를 움직이며 리조트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물에도 들어가서 수영을 시작했다.

개량형 로봇슈트는 물속에서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방수기능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수영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접 센서를 작동시켜서 수영을 하는 것은 어려워서 수영모드를 작동시켜야만 했다.

그래도 최근에 가장 흥미로운 기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수는 메타버스의 리조트를 방문할 때마다 수영을 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확실히 기능도 계속 업그레이드 되고 있었고 수영하는 동작도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거기에 물에 닿는 촉감이나 물의 온도도 잘 전달되고 있어서 전신슈트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물에 들어간 감각이 복제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수영을 즐기고 나자 리조트에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수영을 즐기거나 아니면 해변으로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진수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 무리에 끼어서 해변으로 이동을 했다.

바타타 리조트가 로봇슈트를 이용한 메타버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리조트의 풍경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로봇슈트를 이용한 능동형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해변에는 로봇슈트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낯선 로봇들을 불편해하던 사람들도 있지만,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지구상의 어느 곳과 VR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다른 사람들도 이 로봇슈트를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로봇슈트는 완벽한 기계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음성인식으로 대화도 가능하고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 VR 조정자의 얼굴 사진을 넣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인간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능동형 메타버스 체험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 직접 이카로스리조트를 방문하는 경우도 늘어나면서 이래저래 로봇슈트들은 이카로스리조트를 대표하는 시그니처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해변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브라질 쪽의 리조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엔젤라 누네스였다. 지금은 일과시간이기는 하지만 리조트라는 특성 때문인지 엔젤라는 비키니 수영복 차림이었다.

“지금은 일하는 시간 아니었나요?”

내가 작동하는 로봇슈트에는 지금 나의 얼굴이 전송되고 있었다. 기존의 헤드셋이 좀 더 기능이 강화되면서 헤드셋 사용자의 얼굴 화면을 전송할 수도 있었다.

엔젤라 누네스도 로봇슈트에 비치는 나의 얼굴 화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브라질의 바타타와 서울의 펜트하우스라는 시공간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같은 시공간에서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마치, 양자물리학에서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중첩의 개념처럼 메타버스 기술은 서울과 브라질이라는 두 개의 시공간에 진수라는 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물론, 몸은 서울에 정신은 브라질에 분리가 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었다.

몸과 정신이 분리가 된다면, 과연 진짜 최진수라는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기술의 발달은 기묘한 철학적 과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금은 재밌는 장난감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런 메타버스 기술이 더 발전하고 현실을 더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현실과 가상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기술력이 정교해진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구별도 무의미하다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일하는 시간 아니냐고요? 주위를 보세요.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이곳은 바타타의 휴양지의 해변이었고, 대부분이 엔젤라처럼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남자들은 빼고 말이다.

“그렇기는 하네요. 여기에 적합한 드레스 코드군요. 하하. 아무튼, 로봇슈트가 점점 더 정교해지는 것 같아요.”

“예, 저도 회장님이 아까 수영하는 걸 봤어요.”

“그래요? 쓸만하던가요?”

“제법 잘하시던데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동수영 모드로 한 거예요. 아직은 수영은 좀 어렵더라고요. 현실에서도 수영은 잘 못 하거든요.”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배영 정도였다. 물론, 물에 둥둥 떠 있을 수 있는 배영 정도만 할 줄 알아도 익사는 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수영이라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로봇슈트로 수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로봇슈트로도 수준급의 수영 실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요, 하긴, 회장님 수영 실력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엔젤라는 브라질 교포라서 그런지 바다나 수영에는 익숙하다. 엔젤라 정도의 실력이라면 로봇슈트를 조정해서도 한 마리의 인어처럼 수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서울의 저녁 시간에 브라질의 해변을 돌아다니며 해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독특한 경험이었고, 그런 특별한 경험을 즐기는 사람들을 해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엔젤라와 헤어져서 다른 로봇슈트들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날씨가 좋군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스웨덴에는 비가 내리고 있죠.”

“스웨덴 분이군요?”

“예, 스톡홀롬에 살아요. 브라질에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어서 못 가고 있었죠.”

자기를 데니스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스웨덴에서 사는 우체국 직원이라고 했다. 물론, 여름 휴가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는 동료들이 많은 편이지만, 데니스는 보통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했다.

“여행은 안 좋아하나요?”

“어머니 때문이죠. 몸이 안 좋으시거든요.”

“병 간호나 그런 건가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멀리 여행을 가는 걸 불안해 하시죠. 아버지와 오래 전에 이혼 하셨거든요.”

데니스는 스웨덴의 보통 남자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을 해서 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마을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메타버스를 통해서 가상의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카로스리조트의 가상체험이었던 것이다.

“이건 놀라운 혁신이에요. 나 같이 집을 떠나기 어려운 사람들이에는 지구 반대편까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을 하지 못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평소에 여행을 많이 즐기는 여행 매니아들도 있었다.

율리아라는 러시아 여자는 세계 여기 저기를 시간이 날 떄마다 여행하고 있었다.

“여행은 제 취미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곳을 다 갈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한 번 어떤 곳인지 와보는 것도 재밌잖아요.”

“일종의 사전답사인가요?”

율리아의 로봇슈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브라질에 미리 와보고, 진짜로 여행을 올 건지 결정을 하는 거죠.”

율리아는 다행히, 바타타의 해변과 자구아눔 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직접 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게 브라질의 해변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TV에서는 이미 당선자 발표가 이루어진 후였다.

얼마 후 진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카로스이노베이션의 이동준 사장이었다.

“당선이 결정되었습니다.”

“나도 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군요. 내일이나 당선확정이 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표의 격차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면서 자정을 막 지날 무렵에 이미 당선확정이 결정되었다. 물론, 최종 개표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사실상 개표는 김현석 시장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이제 우리 사업에도 날개가 달리겠군요.”

이동준 사장은 김현석 후보, 아니, 이제는 당선인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아무튼, 김현석의 옆에서 각종 공약들을 자문해준 자문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당연히, 김현석과 친분도 더해져서 앞으로의 사업에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정부에 너무 큰 기대를 할 건 없습니다. 정치인들이라는 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기본적으로 진수는 정치권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 그다지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장기적으로 숙고해서 현명한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선거라는 이벤트가 있고, 이 비합리적인 이벤트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자꾸 무리수를 던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튀지 않는 정치인들은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고 말이다.

결국, 권력을 잡는 방식이 선거에 있는한, 장기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 진수의 생각이었다.

“회장님은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군요?”

“정치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거죠.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준 사장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집단을 이루는 생명체는 서로 동조화를 하게 된다고요. 그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미인의 얼굴은 그 시대 얼굴의 표준 얼굴에 가깝다고요.”

“결국, 선거를 통해 선택을 받는 것은 옳은 정책이 아니라 그 시대의 가장 무난한 정책이라는 건가요?”

“뭐, 대충 그런 해석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우리가 할 일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대신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할 수는 있겠죠. 아무튼, 그거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김현석 대통령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동안 김현석 캠프와 이야기했던 미래 사업들은 추진이 되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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