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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자격-0화 (프롤로그) (1/151)

#0. 프롤로그

2022년 2월 22일 자정.

런던 버킹엄 궁전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는 오랏트(Orat)라고 불리는 괴물 군단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총 열 개체의 보스가 지휘하고 있었으며, 일반 괴물은 몰라도 보스에게는 인간의 무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때마침 몇몇 인간이 신비한 능력을 각성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용해 인간은 반격의 효시를 날렸다.

나는 그 화살의 첨단이었다.

3년의 전쟁.

인류는 오랏트의 열 개체 보스 중 아홉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류 역시도 절멸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나타났다.

최종보스, 말쿠트(Malkuth).

최후의 싸움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이자, 유일하게 멀쩡한 도시였던 서울에서 치러졌고, 불과 한 시간 만에 마지막으로 긁어모은 결사대 전부가 산화했다.

결사대 중 오직 나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싸웠다.

그리고…….

“개자식. 드디어 잡았네.”

말쿠트(Malkuth)에게 치명타를 꽂는 데 성공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에도 그를 향해 천천히 기어갔다.

세상이 붉다.

죽음을 각오한 일격 덕에 그를 쓰러뜨릴 수는 있었지만, 왼쪽 팔과 두 다리는 잘렸고, 몸도 만신창이가 된 상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의지로 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훌륭하다. 전사여. 허나 안타깝구나. 둘 중 하나는 살아야 했거늘, 너 역시 살지는 못할 것 같구나.”

“닥쳐.”

“게다가 이것으로 완성은 실패했구나.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좀 닥치라고.”

움직이지 않는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결국 그에 닿았다.

“뭐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쓰러져 있는 그의 뿔을 잡았다.

“상관없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뭐?”

손에 쥔 그의 뿔을 마지막 남은 마나를 부어 악력으로 부러뜨렸다.

녀석은 괴성도 지르지 않고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걸로 작별이다. 다음에 만날 땐 더 빨리, 더 확실하게 죽여 주마.”

그의 뿔은 과거로 회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소재다.

이것만 있다면…….

“이건 우리가 맞이할 미래가 아니었건만, 그래서 네가 나를 쓰러뜨릴 수 있게 된 거였군.”

“뭐라고 하든 너는 졌다.”

“네 선택으로 인해 이보다 더한 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영원한 고통의 순환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마.”

“그게 무슨 말이지?”

“다시 보게 될 때를 기대하지.”

그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신 하얀 재가 되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개자식. 끝까지 밉상이네.”

말하다 마는 것만큼 사람 화나게 하는 것도 없는데.

한쪽 팔로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필생의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성취감이나 고양되는 느낌은 없었다.

“맑네.”

2월 마지막 날의 하늘이 시릴 듯이 청명하다는 생각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간 이들 중 아무도 살리지 못했다.

나 자신조차도.

“다음에는 반드시…….”

의식이 흐릿해진다.

나 역시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

더는 감회에 젖을 시간이 없다.

“3회차를 시작한다.”

각오를 다진 후, 말쿠트의 뿔을 들어 내 심장에 박아 넣었다.

***

주마등이 지나간다.

아니, 시간이 되감아 지듯 과거가 가까워지고, 미래가 멀어진다.

10에서 9로 넘어갈 때, 폐허가 된 서울은 제 모습을 찾았고.

9에서 8로 넘어갈 때, 마경이 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다시 문명이 일어섰다.

8에서 7로 넘어갈 때, 유럽인들이 살아났으며.

7에서 6으로 넘어갈 때, 철저히 파괴된 북미가 재건되었다.

6에서 5로 넘어갈 때, 남미가 아름다운 경관을 되찾았으며.

5에서 4로 넘어갈 때, 침몰했던 일본 열도가 다시 솟아올랐다.

4에서 3으로 넘어갈 때, 지옥이 되었던 동유럽이 평화로워졌다.

3에서 2로 넘어갈 때, 호주에 다시 생명이 살게 되었으며.

2에서 1로 넘어갈 때, 중국과 인도에 창궐한 좀비가 제정신을 차렸다.

1에서 0으로 넘어갈 때, 비참하게 죽어 갔던 영국민들이 부활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멸망했던 국가와 인류가 차근차근 소생한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듯한 기적을 보는 것 같다.

- 그리고 0.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 어?

이상한 불안감에 뒤를 돌아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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