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야 너두? (2)
“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나?”
“쉬운 주먹 놔두고, 왜 니네가 만든 법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혈기는 알겠네만, 법을 무시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걸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그러면 더욱 해서는 안 되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본질은 사적 제재를 금하는 것이거든.”
하여간 혓바닥 굴러가는 건 천하제일이다.
“자네의 행동을 보아하니, 세계는 곧 나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겠군.”
“널 살려 주면 유지될 수 있다고?”
“이미 끝났다는 말이었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하루아침에 힘을 얻은 무능한 인간들이 얼마나 되리라 보는가?”
“누굴 말하는 거냐?”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떠들며 비난만 일삼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청한 인간들을 말하는 것이네.”
몇 년 전, 금돼지가 TV에 나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2030 청년들을 향해 한 말이었다.
저런 말을 하고도 국회 의원에 당선되는 걸 보며 할 말을 잃었었지.
“그들이 받은 불합리는 무능하게 태어났고, 무능을 이겨낼 노력이 없고, 문제를 직시할 용기도 없다는 것 말고는 없는데 말일세.”
“제일 꿀 빤 세대가 그런 말을 하니 나도 좀 열 받으려고 하는데?”
“고도 성장의 덕을 보긴 했지만, 나만큼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배신하는 새끼 다 죽였으니까 그렇겠지.”
그는 내 말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자네도 조심하게나. 그런 인간들은 성공한 사람을 깎아내리고, 추락한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네. ”
“시끄럽고 묻는 말이나 대답해라. 왜 도망가지 않았지?”
“나는 문제를 두려워하여 직시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직시했다 치고. 어떻게 해결할 셈인데? 날 설득하게?”
“내가 죽는 순간 일어날 사실을 말해 줄 걸세.”
금돼지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하지만 난 그의 생체 신호까지 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입술이 말라 갔으며,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녀석도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지. 말해 봐.”
“자네가 날 죽이면, 영웅의 발자취를 따라서 분노와 증오가 터져 나올걸세. 세상은 곧 복수와 증오의 연쇄 고리에 들어가겠지.”
“국회 의원이면서 국가 시스템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니냐.”
“자네는 수십, 수백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겠지.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느껴질 터.”
금돼지는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였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하나의 모습을 갖추게 되겠지. 광기라는 형태로.”
“비약이 너무 심하네.”
“광기에는 정확한 인과 관계가 필요 없네. 필요한 것은 확신을 가져다줄 어떤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 쉽게 말해 스위치일세.”
그러니까 내가 금돼지를 죽이면, 광기의 스위치를 누르는 셈이다?
“광기가 퍼지는 순간,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죄악이 되지. 그렇게 세상의 운명은 끝날 걸세.”
“대~단한 예언자 납셨네.”
“예언이 아닐세. 자네의 행동에 따라 확실하게 일어날 미래지.”
“잘 들었다. 그래서 내게 할 만한 제안은 있어?”
“내 손을 잡게. 자네와 내가 손을 잡는다면, 기존의 질서를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게 되겠지.”
그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려고 할 때, 교차하듯이 재빠르게 그의 목을 낚아챘다.
“미래를 잘 아는 것 같으니 묻자.”
“켁켁!”
“내가 널 죽일까? 살려 둘까?”
“대체…… 왜…….”
“왜냐고?”
내 주먹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마저 무너뜨릴 힘을 담은 주먹이.
“난 사이다를 좋아하니까.”
퍽!
쇠망치로 고깃덩어리를 두들기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의 머리는 멀쩡했다.
내 주먹이 금돼지의 얼굴에 닿기 직전, 그가 막아 내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이것 참.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친구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신사답게 행동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너무 역겨워서 말이야.”
“뭘…….”
“난 다 알고 있거든.”
퍽!
“컥!”
먼저 한 방, 명치를 후려친다.
“네 놈 새끼가 헌터라는 것도!”
빠각!
두 방째, 쇄골을 부순다.
“회귀자라는 것도!”
쾅!
세 방째, 땅에 메친다.
“전부 다!”
우드득! 우드득!
네 방째, 무릎을 밟아 관절을 으깬다.
“너의 스킬은 [성(性) 약탈]. 범한 여자의 스킬을 약탈하는 스킬. 덕분에 참 많은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을 뺐지. 안 그러냐?”
“그걸 어떻게…….”
“나도 나름 커넥션이 있으니까.”
녀석은 자신의 능력을 심복에게까지 숨길 정도로 철저하게 숨겼다.
하지만 난 1회차 때 녀석을 죽인 적이 있었기에 안다. 경호원이 다 죽어 나가도 끝까지 숨기다가 마지막에 사용했지.
“회귀자는 다수다.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지.”
개중에는 전 회차에 미처 활약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고.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네가 너무 방해된다.”
“나보다 무능한 것들을 믿겠다고?”
“무능한 것인지, 능력을 발휘할 상황이 아닌지는 열어 봐야 알겠지.”
무엇보다 수많은 능력자가 함께해 줄 10개월‘이나’ 되는 시간도 있다.
혼자 바둥대다가 허무하게 지나가는 10개월‘밖에’가 아니라.
“자, 잠깐. 거래하자. 나는 아무도 모르는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어!”
“무슨 비밀?”
“먼저 약속해라. 알려 주는 대신 날 살려 주고 건드리지 않겠다고.”
“필요 없어. 그냥 죽어.”
내가 발을 들어 그의 머리로 향하자 그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오, 오랏트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고 있다!”
“탄생…… 이라고?”
“그래! 오랏트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분명한 인과 관계가 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10년. 자네가 말쿠트를 쓰러뜨린 후에도 나는 그 지옥에서 10년은 더 살았다.”
내가 죽은 시점이 회귀의 종착지가 아니라고?
“이 정도면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이야기지 않나?”
“대단하다. 제 살길은 정말 확실하게 만드는구나.”
“칭찬으로 받겠네.”
“너희 전부를 살려 줄 수는 없어.”
“나 하나면 충분하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를 믿고 따랐던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눈을 크게 뜨며,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너희는 아는 거 없냐?”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 둘만 아는 사실일세. 하나는 나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찾을 수 없는 인물이지.”
아까 주웠던 진검을 뽑았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금돼지를 제외한 모두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말해 봐.”
“약속이 먼저다.”
“약속하지.”
그는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오재연은 나의 사후 내 스킬 [성 약탈]을 이순신에게 넘긴다.”
이것은 내 스킬, [유언]을 발동시키는 주문. 워낙 유명하니, 녀석이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할 건 없다.
하지만 왜…….
“뭐 하냐?”
“‘마스터 이’가 아니라 자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네.”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만약 자네가 약속을 어길 경우,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 두었을 뿐이지.”
“네 스킬을 준 게 왜 대가지?”
“내 힘은 상시 발동이라 의지로 제어할 수는 없거든.”
“그래서?”
“자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헌터라면 끝없이 근심하게 될 거야. 그녀의 힘을 빼앗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약속을 깨고 이 녀석을 죽이면, 내가 고자가 된다……. 그런 말인가?
***
“자네가 말쿠트를 쓰러뜨렸을 때, 인류의 99.99%가 죽고, 약 80만 정도만 살아남았네.”
“거기까진 알아.”
“하지만 남은 사람 역시도 10년 이내에 다 죽었지.”
“왜?”
“다음에 이야기해 주겠네.”
“말을 왜 하다 마냐.”
“궁금해야 날 살려 두지 않겠나.”
“천일야화 쓰냐?”
끊임없이 궁금한 점을 만들어 자신의 목숨을 연장한다.
천일야화의 히로인 세헤라자드가 하는 짓과 똑같았다.
“난 약속을 어기지 않아. ‘정직과 신뢰는 가장 큰 무기다.’라는 게 내 아버지의 유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문제 될 건 없겠지. 아무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죽은 이유는 타살일세.”
“그때 너는 상당한 스킬을 약탈한 상태였을 텐데 살해당했다고?”
말쿠트와의 결전.
당시 살아남은 강자들은 죄다 결사대에 참여했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자연스럽게 금돼지가 세계 최강이 되었을 텐데 타살이라…….
“누가 죽였지?”
“말해 줄 수 없네. 자네도 알고 있는 여자라는 것만 말해 주지.”
“그렇게 여자들 피눈물 빼더니 꼴좋다. 근데 그녀가 그렇게 강했어?”
“강했지. 그야말로 완성된 헌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네. 힘도 강했을뿐더러 머리도 똑똑했거든.”
“혹시 그 여자가 오랏트에 대해 밝혀낸 거야?”
“그렇네. 놀랍게도 오랏트의 보스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낼 정도였지. 열화된 개체였지만 말일세.”
문명이 죄다 파괴되고,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런 게 가능하다고?
“그런 사람과 어떻게 협력할 수 있었지?”
“실험에는 수많은 재료와 연구실이 필요했고, 당시 그걸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그 대가로 정보를 받고?”
“이제 좀 신뢰가 생기나?”
아까 말했던 둘만 아는 진실. 나머지 한 명이 그 여자인 모양이구나.
“그녀도 회귀했을 테니 이제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네.”
“그녀는 회귀할 수 없네.”
“어떻게 확신하지?”
“……그것도 비밀이라고 해 두지.”
“빌어먹을 세헤라자드!”
세헤라자드가 50대 남자라는 게 더 짜증 나게 만든다.
“핵심은 오랏트가 인간의 영혼을 제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네.”
“…….”
“정말일세.”
“그럼 오랏트 사태가 누군가의 장난질로 일어났다는 거야?”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개소리하지 마!”
인류가 죄다 죽어 나간 그 끔찍한 사태가 누구의 장난이었다고?
“진정하게. 나는 그 누군가가 인간이라고 한 적은 없어.”
“아니면?”
“신과 같은 존재겠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오랏트 사태가 일어난 시점에서 현실성을 따져 봐야 의미는 없다.
“그리고?”
“끝일세.”
“……장난하냐?”
“보스에게는 각각의 상징이 있고, 그에 해당하는 영혼이 필요하다. 이 이상 어떤 정보가 필요하지?”
“어떻게 막느냐가 빠져 있잖아.”
“그건 자네가 생각할 일이겠지.”
내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이자 그는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봤는데…….”
“말하게.”
“너보다 그 여자를 찾아서 묻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
“그녀는 어디에도 없네.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거야.”
“난 감이 좋아. 네가 그 여자를 언급하는 순간 꽤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어.”
천천히 검을 들었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굳이 찾지 않아도 내 앞에 나타나겠지.”
“잠깐! 약속이 틀리지 않는가!”
“알맹이가 없는 정보였어.”
“나는 자네에게 오랏트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려 주고, 자네는 날 살려 준다. 그런 약속이었을 터였다!”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피치 못하게 어겨야 하면,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만들지.”
“날 죽이면 넌 평생 여성 헌터와는 맺어지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어차피 쓸 일 없으니까.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을 보면, 이제야 그의 바닥이 보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