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회귀자의 착각 (1)
그 시각 윤아가 속해 있는 SGP 엔터테인먼트의 사옥.
5층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도축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윤아 역시도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와. 독하다. 이래도 안 풀어?”
“…….”
“지금이라도 풀면 다른 사람은 살려 줄게. 하지만 끝까지 안 푼다면 죄다 살가죽을 벗기고 토막 내서 돼지 사료로 던져 주마.”
“…….”
윤아는 말없이 결계를 유지했다.
결계를 푼다 해도 이득은 전혀 없고, 오히려 보호하고 있는 수십 명을 위험으로 내몰 뿐이다.
그들이 있는 곳은 5층 연습실. 거울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정사각형의 방이다.
윤아가 펼친 결계는 선을 긋듯이 반을 가르고 있었고, 그 결계를 포위하듯 두 사내가 충혈된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믿고 계속 시간 끄는지 모르겠는데, 시간은 너희 편이 아니거든?”
하필이면 이곳이 5층 연습실이라 도촬을 막기 위해 창이 따로 없었으며 방음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바닥을 때려봐도 누군가 이변을 눈치채고 와 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벌써 여덟 시간 째네. 그만하면 많이 버텼다. 니들 목은 안 마르니? 화장실은 안 가고 싶고?”
게다가 급하게 결계를 치느라 벽을 등진 상태였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말대로 물도, 음식도 없었으며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차라리 결계 안 사람들은 사정이 좋았다. 미처 결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악마의 손에 붙잡힌 어린 양과 같은 처지였으니까.
“이봐. 사장님.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돌이 사장님 버리는데요? 한 말씀 해 주시죠.”
“끅…… 끅…….”
“말을 하라고!”
빠각!
사내는 사장의 마지막 남은 손가락까지도 잘라내 버렸다.
“으으으으…….”
사장은 비명도 내지 못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형. 근데…….”
“뭐?”
“마스터 이가 오면 어떻게 해요?”
“미친 새끼야. 걔가 여길 왜 와?”
“우리도 회귀했으니, 걔도 회귀하지 않았을까요? 여기 사람들도 죄다 회귀한 것 같고…….”
“닥쳐. 너도 뒤지고 싶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둘은 개작두와 백골이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헌터 형제였다.
전 회차엔 워낙 많은 범죄를 저질러서 마스터 이가 직접 출동해서 죽였을 정도였다.
회귀한 지금, 제일 먼저 복수를 하려고 했으나, 그가 이 시점에 어디서 뭘 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팀에서 가장 유명한 윤아를 찾아왔지만, 그녀의 결계에 막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태였다.
“씨발. 뭔 놈의 회귀를 개나 소나 다 하는 거냐…….”
동생인 백골의 읊조림이 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들은 흉신악살 같은 모습과 다르게 무척 초조한 상태였다.
여기 있는 사람이 죄다 회귀했다면, 마스터 이 역시 회귀했을 거라 보는 게 당연한 추론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윤아를 사로잡아야 한다. 인질이라도 없으면 또다시 살해당할 것이다.
“손가락을 다 잘라 버렸으니, 이제 발가락을 잘라야 하나?”
“형님. 그 새끼는 그냥 죽여버리고 다른 애로 해 보죠.”
“대체 몇 명이나 더 잡아야 저 좆같은 결계를 풀려나.”
“이기적인 년이네요. 지만 살면 다 뒤져도 상관없는가 봅니다.”
“저런 년이 어떻게 최강의 팀에 들어갔지?”
“마스터 이에게 잘 대줬겠죠.”
“하긴. 얼굴은 반반하니까. 나한테만 비싸게 구네. 개 같은 년.”
저들의 상황을 알기에 윤아는 심한 모욕에도 절대 결계를 풀지 않았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반응을 보이면 녀석들은 더 심한 욕을 할 것이고, 자극하면 인질을 더 잔인하게 고문할 테니까.
하지만 이쪽이라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계는 저들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도 했지만, 이쪽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전파도 방해했기에 외부의 도움도 요청하지 못한다.
덕분에 계속 교착 상태다.
“윤아야…….”
걸 그룹 동료인 혜경이 안쓰러운 눈으로 윤아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힘들지 않아?”
“……힘들어.”
마음이 힘들 뿐,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마나량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얼마든지 더 결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저들은 더 미친 짓을 할 것이 분명하기에 일부러 힘든 척하는 것이었다.
“다음 놈 데려와. 니미. 인질도 이제 둘밖에 안 남았네.”
“더 잡아 올까요?”
“멍청한 새끼야. 피에 절은 채로 돌아다닐래?”
“저 녀석을 데려가죠.”
백골이 인질 중 한 명을 가리켰다.
“누군데?”
“[최면]관련 스킬을 보유한 헌터입니다.”
“하?”
“여자 연예인 어떻게 해 보려고 왔나 본데, 그리 강하지는 않더군요.”
“하여간 최면 관련 새끼들은 하나같이 강간만 생각하지. 더럽다. 퉤!”
“히익!”
개작두가 다가오자 최면 술사는 공포에 떨었다.
회귀하고 나서, 당분간은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큰 착각이었다.
그는 처참하게 난자된 열 구의 시체를 보며 저항을 포기한 상태였다.
저들은 악마다.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진짜 악마.
“아! 그 방법이 있었군.”
“어떤 거요?”
“쟤 데리고 가서 여자들 위주로 잡아 와 봐.”
“예?”
“남자는 뒤지든 말든 신경 안 쓰는 것 같으니, 여자로 해 보자고.”
“그 꼴 보면 더 안 열지 않을까요? 자기가 어떻게 될지 알 테니.”
“그래도 안 열면 애새끼 잡아 오고.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 보자.”
윤아의 낯빛이 급격히 흐려졌다.
한국인은 위험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선악의 경계가 없는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오래 살았기 때문이었다.
즉, 한국인은 평화와의 괴리가 가장 심한 회귀자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점점 더 미친 짓을 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알면서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윤아야…….”
보호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윤아의 안색을 살폈다.
윤아가 포기하는 순간 자신들은 저기 굴러다니는 그로테스크한 시신과 같은 운명이 될 테니까.
“강해질 거야.”
“응?”
“앞으로 더 강해질 거야. 다시는 이런 일 겪지 않게…….”
윤아는 사람마다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치유사이자 서포터.
그렇기에 공격 능력은 굳이 연마하지 않았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적은 괴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동안 이런 일을 겪지 않았던 이유는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최강이 이런 상황을 전부 배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치채 줘. 순신아…….”
결계로 인해 통신 신호가 잡히지 않는 핸드폰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
[영혼의 사냥개]를 따라 달리다 보니 논현동에 있는 어느 한 건물에 도달했다.
“SGP의 사옥이네요?”
“윤아가 있는 걸 그룹, GG가 SGP 소속이니 당연한 거지만…….”
SGP는 탑클래스 아이돌 그룹을 다수 보유한 국내 최고의 연예 기획사.
하지만 퇴근 시간임에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해요.”
“나도 느끼고 있어.”
“윤아 누나는 몇 층에 있죠?”
“5층.”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카페나 굿즈샵,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영업하고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계단을 따라 올라갈수록 불길한 느낌은 강해졌다.
“여기 싸운 흔적이 있어요.”
한울이가 가리킨 것은 5층 비상 계단의 문고리였다.
“싸운 게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망가뜨렸어.”
“어떻게 하죠?”
“내가 힘으로 뜯어낼게. 문이 열림과 동시에 윤아를 찾아서 보호해.”
무슨 이유에서인지 윤아는 5층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간다.”
“예.”
“3, 2, 1. Go!”
쾅!
한울이와 마찬가지로 [가속]을 쓰며 안으로 들어갔다.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영상처럼 주위 모든 것이 수백 배로 느려졌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연한 옥빛으로 이루어진 벽과 같은 결계.
그 뒤에서 윤아가 초조한 얼굴로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어디서 본 듯한 두 남자가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굴러다니는 시체들로 보아 좋은 녀석들이 아님은 분명했다.
단번에 한 녀석의 정강이를 깨고, 목을 틀어쥐었다. 그사이 다른 한 명은 한울이가 제압했다.
“순신아!”
윤아가 화색을 띠며 반겼다.
탑 아이돌답게 원래부터 예뻤기는 하지만, 전 회차엔 늘 단발로 대충 자르고 노메이크업 상태였기에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깨 너머로 자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었고, 방송이 있었는지 풀 메이크업에 슈트 차림까지 하고 있어서 진짜 연예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
“잘 있었냐?”
“누나. 저는 안 보이시나 보죠?”
“한울이도 왔구나……. 고마워.”
“인사는 나중에 하고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 얘네 뭐냐?”
정황상 나쁜 놈들이 확실했지만, 내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전에 네가 죽였던 범죄 헌터. 개작두랑 백골.”
“기억났다.”
개작두는 [절삭], 백골은 [생기 흡수]를 가진 나름 강력한 헌터였다.
헌터라기보다 인간 사냥꾼이라고 불러야 하는.
“덕분에 확신이 생겼다. 쓰레기는 역시 회귀해도 쓰레기라고.”
“여긴 어떻게…….”
“니네만 회귀했을 것 같냐?”
소설이나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멍청한 회귀자들은 똑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자신이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착각을.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에 검색만 해 봤더라도 본인만 회귀한 게 아니란 걸 눈치챌 텐데.
“또 죽일 거냐?”
“이런 짓을 하고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죽여 봐라! 다시 살아난다면 천 명, 만 명을 죽여 주마!”
개작두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너 진짜 멍청하구나.”
“뭐?”
“전 회차처럼 곱게 죽인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내 눈을 본 녀석이 몸을 떨었다.
“다시 회귀한다고 해도 그런 생각은 못 하게 정신부터 부숴 주마.”
“이익!”
그는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내버려 두었다.
“진짜 영화 많이 봤나 보네. 혀 깨문다고 안 죽는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아?”
“으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땅에 메치고 [치유]를 걸었다.
옥빛과 함께 녀석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그리고 넌 이제 죽고 싶어도 못 죽어. 말했잖아. 정신부터 부숴 주겠다고.”
“……괴물 자식. 잘못 걸렸군.”
“그래. 그러니 다음에 회귀하거든 죽을힘을 다해 도망부터 가라.”
빠각!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로 그의 관절을 전부 부쉈다.
나중에 인적 드문 곳으로 데려가 진짜 지옥을 보여 주고 죽일 생각이었다.
“사장님!”
윤아가 결계를 풀더니 누군가에게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는 손가락이 하나도 없었으며, 온갖 고초를 겪었는지 핏기없이 창백했다.
정신적 상처도 큰지, 눈에 초점 없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치유해 드릴게요.”
윤아의 손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오자, 손가락이 재생되고 눈의 초점 역시 돌아왔다.
영혼까지 치유할 수 있는 최상위 등급의 치유다.
나도 윤아와 같은 [치유]를 가졌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저 정도의 효과는 발휘할 수 없었다.
“괘, 괜찮다. 고맙구나.”
“고생 많으셨어요. 구해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현명한 선택이었다. 네가 결계를 풀었다면 통탄을 했겠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듯 원망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흔적만 봐도 그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알 것 같은데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마스터 이…… 였죠?”
“예. 사장님.”
“편히 불러 주셔도 됩니다. 영웅에게 사장 소리 들으니 간지럽군요. 감사드립니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인생을 바쳐 사업을 일구었는데… 이제는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쉰다고 생각하세요. 오랏트 사태가 끝나면 다시 하면 되죠.”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을 겁니다. 이번엔 막을 테니까요.”
“후우……. 그러길 바랍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런 것이 문제였다.
아포칼립스를 겪은 사람들은 선악의 경계가 희미하다.
그들은 어려운 내일을 극복하기보다는, 오늘만 살아가며 오직 쾌락만을 좇으며,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멸망을 겪은 사람들은 비관적이고 자포자기 상태다.
체념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헌터도 인간인 이상 보급 없이는 싸울 수 없고, 오랏트 사태를 막은 이후도 생각해야 하기에 이 문제는 범죄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아무래도 마스터 위저드를 만나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