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죽음은 사람을 바꾼다 (2)
강채라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추측일 뿐, 그 역시도 확신할 만한 증거는 없으니까.
“글쎄요. 잘 모를뿐더러 왜 그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네요.”
“두 질문을 한 이유는 하나를 말씀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뭐죠?”
“인류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승리한 것이라는 것을요.”
“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인류는 여전히 패배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여동생이 들어와 커피 두 잔을 내려놓았다.
나를 기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더니 말없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남매가 나란히 미남·미녀네.
“크흠.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계속하세요.”
“회귀했다는 것은 힘과 기억이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싸우다 죽거나, 억울하게 살해당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실패할 거라는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입니까?”
“예. 패배주의이기도 하고, 냉소주의이기도 하겠죠.”
“극복하든가, 무력하게 죽든가. 개인의 선택입니다.”
“제3의 선택지도 있습니다.”
그는 엄지로 목을 베어 버리는 시늉을 했다.
진심인 듯 살기까지 새어 나왔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사지로 보내진 사람들. 또, 치안이 무너지면서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는 셀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기억을 가진 채로 회귀했고요.”
“어차피 미래가 없다면, 그 녀석만큼은 반드시 제 손으로 죽여 버리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개인적인 원한까지 전부 신경 써 줄 수는 없습니다.”
내 동료들이 당한 것이라면 지옥 끝까지 가서라도 갚아 주겠지만.
“회귀 전의 기억이 있다지만 증거는 없다는 게 문제라는 뜻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금돼지처럼 악명을 떨친 인간은 그렇겠죠.”
그는 서류철을 하나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다.
“이건……?”
“어제 하루 동안 제게 보내 온 메일을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그곳에는 30만 통의 메일을 범죄별로 분류하여 정리해 놓은 통계가 있었다.
대부분이 살인, 강간, 폭행 등 강력 범죄다.
그 숫자 하나하나에서 강한 집착과 원망, 증오가 느껴진다.
“그냥 깔끔하게 다 죽여 버릴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단순한 피해 망상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데 말입니까?”
“서론이 깁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할 것입니다.”
“사법권을 무시하고 멋대로 죽여서 그런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완전히 짓뭉개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칼만 휘두르는 무식한 놈입니다. 그렇기에 아는 것이 있죠.”
검지로 서류의 한가운데를 찍었다.
살짝 타는 듯하더니, 이내 서류 전체가 완전 연소되어 사라졌다.
“모든 것을 고려하다 보면 더 힘들어지는 법입니다. 이런 문제는 핵심만 확실히 찔러야 합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해결하라는 뜻이군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고견을 들려주세요.”
“민주주의에 집착하지 마세요.”
“예?”
“민주주의로는 아포칼립스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멸망함으로써 확실히 증명되었다.
“오해 없도록 말씀드리자면, 민주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에 짓뭉개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학과 출신인 만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소중함과 위대함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있고, 그게 걸림돌이 되니 잠시 치워 두자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다시 세우려고 할 때 또 엄청난 피가 흐를 겁니다.”
“그 피의 양은 오랏트 사태 때 흘릴 피의 양보다는 적겠죠.”
여차하면 AS까지 해 주면 된다.
전쟁 끝나고 독재하려는 놈마다 족족 쳐 죽이면 되는 거니까.
“제가 보기에는 최악과 차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최악을 회피하려면 차악을 선택하는 수밖에요.”
“그게…… 당신의 진심이군요. 시험해서 죄송합니다.”
강채라는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시험이었습니까?”
“전쟁 지도자로서의 당신은 매우 신뢰하지만, 정치가로서의 당신은 그다지 신뢰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난 정치한 적도 없는데.
“아까 스스로 칼만 휘두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하셨지요?”
“제가 똑똑한 편은 아니니까요.”
“아니요. 당신은 충분히 똑똑합니다. 다만 습관이 잘못 들었습니다.”
“어떻게요?”
“매 순간 최악을 피하는 데에만 너무 익숙합니다. 아마 그동안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그는 다른 서류철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내가 원하던 데스노트다.
“생각보다는 적군요. 이게 최선입니까?”
“차선입니다.”
“최선은요?”
“전 회차의 가해자들이 모두 개과천선하고, 피해자들이 성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하면 최선이겠군요.”
“불가능하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지 마세요.”
정치인들은 원래 다 이렇나?
간단하게 표현해도 될 것을 비유에 비유를 반복하고.
“잡담은 그만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이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금돼지의 잔존 세력이 사람을 규합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귀찮아지긴 하겠지요.”
“맞습니다. 금돼지 일파뿐만 아니라, 전 회차에 폭거를 저질렀던 이들이 세력을 재정비하기 전에 쳐야 합니다. 이것이 1단계입니다.”
그들은 재력과 권력이 많았던 만큼, 인간 사냥꾼과의 커넥션 역시 튼실했다.
인간 사냥꾼은 괴물보다는 인간을 상대할 때 더 큰 활약을 하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더욱 위협적인 존재였다.
“어차피 돈으로 엮인 관계. 그리 결속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니요. 결속력은 굉장히 강할 것입니다. 지금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요.”
“하루아침에 광복을 맞이한 매국노들의 상황…….”
“이번에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대신할 사람은 많고, 그들을 도우려는 세력은 없으니까요.”
마스터 위저드는 서류철에 있는 다른 종이를 꺼냈다.
그 안에는 어제 일자로 발생한 강력범죄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다음입니다. 대다수는 사태를 관망하겠죠. 하지만 극단주의자는 어디에나 있는 법입니다.”
“폭도였던 자들도 있을 테고요.”
“어제 하루 제가 보고 받은 범죄 발생 수는 약 1,000건. 작년 하루 평균의 두 배 이상입니다.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겠지요.”
“경찰 업무가 마비되겠네요. 청년 실업도 심각한 상태인데 그들을 경찰로 팍팍 뽑죠.”
“그럴 생각입니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경찰뿐만 아니라 군인도 뽑아야겠죠.”
“진짜요?”
“능력 있는 헌터들을 모아 강력한 치안을 세우는 것. 이것이 2단계입니다.”
치안을 정비할 수도 있고, 나중에 오랏트 사태가 터질 때 강력한 전력이 되기도 한다.
일석이조네.
“3단계는요?”
“2단계가 완료되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쓰지 않을 수도 있는 카드이니, 자세한 건 1단계가 마무리된 이후에 말씀드리죠.”
“근데 일개 국회 의원이 군경 인력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습니까?”
“행정부의 일은 대통령이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협상을 해야겠죠.”
대통령이라…… 그 인간에게는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
유능하고, 청렴한 정치인인건 맞지만, 날 포함한 헌터들을 병기 취급하는 게 엄청 짜증 났었다.
“별로 마주치고 싶은 인사는 아니네요. 그렇다고 죽이기엔 크게 잘못한 건 없고…….”
“예. 그가 속한 민국당에는 부패 인사가 많지만, 본인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정당은 여당인 민국당. 금돼지가 속한 곳은 제1야당인 대한당. 강채라는 제2야당인 공화당.
데스노트에는 모든 당에서 골고루 이름이 올라가 있었지만, 특히 대한당의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깐깐한 사람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협상이 꽤 어려울 것 같기는 합니다.”
“편하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일입니다만…….”
“그쪽은 불편하게 생각하시고요.”
서류철에서 명단만 빼서 들었다.
“아무튼. 저는 이놈들만 잡으면 된다는 거죠?”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확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하신 것보다 빠르고 정확할 겁니다.”
그의 계획대로 하다 보면, 나도 최악과 차악이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을 얻게 될지도 모르지.
그전에…….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만나 보자.
***
다음 날.
윤아와 한울이는 집에 두고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뛰어갔다.
이럴 때는 KTX보다 빠르고 튼실한 두 다리가 있다는 게 참 편하다.
군부대 앞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엄청나게 추워지며, 눈이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4월인데 왜 똥가루가 떨어지고 있지?”
신기하다.
서울과 화천의 위도는 1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여기는 별세계인가?
“면회 신청하러 왔는데요. 대상자는 50연대 수색 중대 박수호 상병입니다.”
“여기에 성함하고 써 주시고 잠시 기다리시면 됩니다.”
내가 기다린 곳은 승리 회관이라는 곳이었는데, PX도 있고 회관이라는 이름답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약 30분 후, 회관 안으로 수호 형이 들어왔다.
“뭐냐. 너였냐.”
“군기 개빠졌네요. 군인은 ‘다’나 ‘까’로 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아……. 안 그래도 자살하고 싶으니까 그만 말해라.”
“나라면 벌써 회귀했다.”
“회귀해도 군대라는 걸 알면 안 하게 될걸?”
수호 형은 190cm의 큰 키에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지만, 무척 학구적인 얼굴이었다.
스포츠머리에 얼굴이 타서 그런지 유약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살았다. 제설 작전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귀환했다.”
전설의 영웅도 입대하면 주말에 넉가래로 눈을 치우는 슬픈 현실.
그러게 왜 늦은 나이에 입대해서.
전문 연구원에 목매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끌려오게 됐다고 했던가?
“나라면 진즉에 탈영했다.”
“너라면 진짜 그랬을 것 같다. 얌전히 탈영하면 다행이지.”
“그럼요?”
“대한민국을 엎어 버리겠지. 국회에 총기 난사를 한다든가.”
조만간 국회 의원 중 1/3을 죽일 예정인 나로서는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수호 형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실망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아나 리디아는 안 왔냐?”
“형. 회귀했으니 다시 유부남이잖아요. 왜 여자를 찾아요.”
참고로 수호 형은 22년 1월에 제대하고, 2월에 오랏트 사태가 터지고, 3월에 이혼한다.
그 충격으로 자포자기해서 오랏트랑 맞짱뜨러 유럽으로 향했다가 나와 만나 동료가 되었다.
그런데 원점으로 회귀라니.
신도 참 잔인하기도 하지.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이따위로 시련을 내린단 말인가.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아니야. 선임들도 다 회귀자더라. 나보고 윤아랑 리디아 데려오라고 난리야.”
“간덩이가 부었네요. 따끔하게 혼내 주지 그랬어요?”
“조건 반사라는 게 참 무섭더라.”
“그러니까 얼른 탈영하죠.”
“탈영해서 뭐하냐. 그냥 이대로 살다가 가련다.”
눈 떠보니 낯선 천장.
그곳이 군부대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찾아오는 절망감.
수호 형은 이미 삶의 의지를 포기한 것 같았다.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어디서 탱 노예가 도망……. 아니, 든든한 탱커가 빠지면 그만큼 힘들어지니까.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군 생활 청산을 도와주도록 하자.
“군대 가면 먹여 주지, 재워 주지, 못 나오지!”
“하지 마.”
“군대 가면 먹고, 자고, 맞고!”
“하지 말라고.”
“군대 가면 밥도 줘, 옷도 줘, 살려 줘~.”
“싸울래?”
“군인이 민간인이랑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부들부들.
“담배 한 대 피워도 되냐?”
“끊었잖아요.”
“담배 피울 때로 회귀했잖아. 몸이 다시 니코틴을 원하더라.”
아아. 신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작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