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8화 (9/151)

#8. 죽음은 사람을 바꾼다 (3)

회관 밖으로 나온 우리는 흡연장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혼 전이네요. 형수님은 어때요?”

“아직 전화 안 했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현재까지 상황으로 봤을 때, 분명 형수님도 회귀했을 텐데…….”

“그렇겠지.”

“왜 이혼하셨었죠?”

내 말에 수호 형은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마음고생이 심한가 보다.

“돈 때문에.”

“하긴. 형이 제대하고 한 달 뒤에 오랏트 사태가 터졌잖아요.”

“전 세계 경제가 아작이 났지.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못 구할 정도였으니까.”

최악의 공포라는 보스를 상대할 때도 용맹하게 앞장섰던 형이, 취업난 앞에서는 쭈구리가 되는구나.

이 경우 마누라 앞에서라고 해야 하나?

“지금이라면 괜찮아요. 리디아가 든든하게 지원해 주겠죠.”

“돈 때문에 이혼하자고 한 사람을 다시 믿을 수 있겠냐? 내 지갑이 비면 언제든 떠날 사람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미련은 남는지 죽상을 쓰며 담배만 피워 댔다.

“내가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를 꼽으라면 흡연과 결혼이다.”

“후우. 너네는 이런 거 하지 마라…… 이런 건가요?”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어지간하면 하지 마라.’라는 느낌이야. 그런 의미에서 너는 좋겠다.”

“왜요?”

“윤아든, 리디아든 돈 때문에 이혼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내 생각에 확신을 새기려고 수호 형을 찾아온 것이었는데, 어째 위로해 줘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순신아. 명심해라. 결혼은 판단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다.”

“이혼은요?”

“인내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하는 거지.”

“재혼은요?”

“기억력 상실이지.”

피우던 걸 중간에 전투화 뒤꿈치로 끄더니 쓰레기통 안에 집어넣었다.

2년 만에 재입대한 셈인데 각이 잡혀있었다.

“고민이 뭐냐.”

“에?”

“내가 너 하루 이틀 보냐.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고 쓰여 있구만.”

역시 나는 좀 약았다. 형이라면 알아봐 줄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춥네요. 안으로 들어가죠.”

“그래. 커피라도 한잔하자.”

“점심은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됐고. 용무 끝나면 얼른 돌아가라. 할 일이 많잖아.”

그리고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

회관으로 돌아온 나는 계획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전 회차에 대죄를 저질렀던 거악들을 일소하는 계획을.

“……그렇게 된 거예요.”

“네가 망설이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지네. 뭐가 문제야?”

“말쿠트의 마지막 말이 걸려요.”

“너 밖에 못 들은 말이겠구나. 뭐라고 했는데?”

“‘네 선택으로 인해 이보다 더한 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영원한 고통의 순환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마.’라고 했어요.”

수호 형의 얼굴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회귀를 겪은 지금은 말쿠트의 말이 마냥 허세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 뒤에 ‘다시 보게 될 때를 기대하지.’라고도 했고요.”

“아무래도 대규모 회귀 사태는 그 녀석이 수를 쓴 거라고 봐도 무방하겠네.”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무나 막 죽이다 보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전 회차의 죄인을 죽인다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어 보였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이틀간 열심히 생각해 봤어. 왜 4월 22일로 회귀되었는지를.”

“결론은요?”

“오랏트의 첫 보스가 나타나는 시점이 내년 2월 22일이잖아. 뭔가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니?”

“형이 제대 후…….”

“그거 말고.”

2022년 2월 22일.

황신의 가호가 가득한 날인가?

“표정을 보니 전혀 짐작을 못 하는 것 같네.”

“말씀해 보세요.”

“오랏트의 보스는 회귀된 날로부터 정확히 10개월 뒤에 나타나. 그리고 세상에는 10개월이라는 시간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많지.”

“음…… 일말상초라 헤어지기 쉬운 시기…….”

수호 형의 이마에 혈관 마크가 나타났다.

‘군인 신분만 아니었어도…….’ 라는 표정이었다.

“임신을 말하는 거다.”

“오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잠깐만…… 설마 오랏트의 보스가 누군가가 낳은 아이라는 건가요? 그게 말이 돼요?”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셨는데 안 될 건 또 뭐냐.”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가시지는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회귀 된 4월 22일에 세상에 있는 누군가가 첫 번째 보스인 케테르를 잉태하였다. 그게 내 결론이다.”

“금돼지도 죽기 직전에 비슷한 말을 하긴 했어요.”

“……역시 그거 너였냐? 총기 사고에, 수십 명이 학살된 사건. 뉴스 1면을 장식했더만.”

“저 말고는 할 사람이 없죠.”

“아무튼. 근거가 빈약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케테르를 잉태한 사람은 영국인이겠지.”

“케테르가 버킹엄 궁전에서 나타나니까?”

“그래.”

잠깐만…….

버킹엄 궁전에 개나 소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러면 마지막 보스인 말쿠트는 어때요? 국회 의사당 상공에서 출현하는데, 당시 여의도에는 임산부는커녕 민간인도 없었어요.”

당시 서울 시민들의 주요 피난처는 관악산 인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도 방위 사령부가 근처에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여의도는 국회 의원이나 기업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므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다.

덕분에 한 방에 싹 쓸렸지.

다행히 주요 장성들은 대전 인근 계룡대에 모여 있어서 전투 지속은 가능했다.

“왜 임산부라고 생각하냐. 배가 불러 오지도 않을 텐데.”

“에?”

“애초에 인간의 배에 오랏트 같은 거대한 괴물이 들어갈 리 없잖아. 제일 작은 말쿠트만 해도 성인만 한 크기인데.”

“그러면요?”

“꼭 여자가 아니라 남자일 수도 있고, 동물이나 곤충, 심지어는 하늘이나 땅일 수도 있지.”

하늘이나 땅이 잉태했으면 그건 괴물이 아니라 신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재미있는 가정이네요. 왜 잉태된다고 생각하신 지는 모르겠지만.”

“상징.”

“예?”

“케테르부터 말쿠트에 이르기까지 보스의 모든 이름은 베르사유의 성녀가 이름 붙였잖아.”

베르사유의 성녀는 [예언]의 능력을 보유한 프랑스의 헌터다.

상당한 수준의 이상론자이기에 나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그녀는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붙였다고는 했는데요.”

“아무 이유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 이름들은 그녀가 새로 창조해 낸 단어가 아닌, 원래 있던 거거든.”

“에…… 그래요?”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더라.”

고학력자 출신이라 그런지 그런 것도 하나하나 찾아본 모양이었다.

난 그냥 어떻게 죽일지만 고민했을 뿐, 다른 건 신경도 안 썼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찾아보고…… 보스의 이름은 인간이 수양을 통해 열어 갈 수 있는 영적 관문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고.”

“깨달음 같은 건가요?”

“대충 그런 느낌. 그러니까 육체적인 잉태가 아니라 영적인 잉태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수호 형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편하게 말했다.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이니 대충 감으로 판단해 봐. 내 가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곧 파탄 나겠죠. 이건 감이 아니라 기정사실.”

“너어는 진짜 나빴다.”

도대체 저 유리멘탈인 수호 형이 어떻게 버티는 건지 모르겠다. 나라면 진즉에 탈영하거나 자살했다.

아! 형은 자살도 못 하지?

몸이 강철보다 단단해서 총알도 튕겨 내니까.

“농담이고요. 군 생활이 좀 편하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4월에 제설하면서, 레밀리터리블 찍고 있는데 편해 보이냐?”

“형 능력이면 제설이든 훈련이든 다 껌이죠.”

“몸이 아니라 정신이 힘들어.”

하필이면 회귀한 시점이 제대하기 전, 눈 그치기 전, 이혼하기 전, 금연하기 전이라는 건 정말…….

사탄도 ‘아, 그건 좀…….’이라고 생각할 만한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해탈하는 법이다.

나중을 생각하면 이건 정신력을 단련할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겠다.

나라면 절대 안 하겠지만.

“장난은 그만하고. 진짜 내 가설이 현실성 없다고 생각하냐?”

“현실성은 당연히 없지만, 어쩐지 사실일 수 있다는 느낌은 들어요.”

“역시 그렇지?”

“이 건에 대해서는 리디아랑 마스터 위저드에게 전달해 둘게요.”

“그래. 고생한다.”

“고생은 형이 하죠. 저야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거니.”

이제 대충 확신은 섰다.

일단 잡아 죽이고, 죽이기 전에 위화감이 드는 사람은 가둬 두자.

그런 생각을 하자,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군대에서도 핸드폰 쓸 수 있죠? 전화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알았어. 일과시간에는 전화하지 말고 문자나 깨톡으로 남겨라.”

“윤아나 리디아랑 함께 행복하게 노는 사진 많이 보내 드릴게요.”

“넌 진짜 악마다.”

♪~ ♬~

핸드폰을 꺼낼 때, 타이밍 좋게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마스터 위저드.

뭔가 일거리가 생긴 모양이구만.

“여보세요?”

- 강채라입니다.

“알고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 지금 당장 인천공항으로 가주십시오.

“왜요?”

- 잔당들이 단체로 국외로 도피하기 위해 준비 중인 모양입니다.

“……당당하네요. 밀입국하려면 배를 탈 것이지.”

- 사람 많은 곳에서는 자신들을 어쩔 수 없으리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내가 금돼지를 죽인 걸 보고,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은밀히 처리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죠.”

“왜?”

“형. 저 먼저 가 볼게요.”

“어디?”

“돼지 새끼들 잡으러요. 같이 가실래요? 지금 한 손이라도 부족한 시점인데.”

“내가 나가면 탈영이다.”

“그러니까요.”

탈영이라고 해도 형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수호 형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에겐 미안하지만, 탈영은 안 될 것 같다.”

“군 생활이 마음에 들었나요?”

“그건 아니고. 네가 그 깽판을 쳤고, 앞으로도 칠 테니 나라도 준법정신을 보여 줘야지.”

“이 시국에 준법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우리를 통제 불가능한 권력 집단이라고 여기면, 우리는 또 다른 오랏트가 될 뿐이니까.”

스스로 우리의 제동 장치를 자처하겠다는 뜻이다.

유리멘탈로는 감당하기 힘든 역할인데 괜찮을까?

“그리고 정리할 생각도 있다. 다음에 만날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될 테니 형을 믿어라.”

“언제나 믿고 있어요.”

“그래. 최소한 지금의 너만큼 강해지지 않으면 이번엔 더 힘들어질 테니 좀 더 열심히 해 봐야겠다.”

역시 형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구나.

생각이 정리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몸과 정신 모두 불굴의 요새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우리가 시간을 벌어 줘야겠지.

“저 진짜 가 볼게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너도 고생해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죽음이 사람이 변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

모든 사람이 한 번씩 죽었으니, 다들 많은 면에서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본성만큼은 안 변한다.

부대 밖으로 나온 나는 곧바로 [영혼의 사냥개]를 불러들였다.

사냥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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