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유죄추정의 원칙 (3)
방 밖으로 나가니, 식탁 위에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음식들이 차려 있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상다리 휘어지겠습니다.”
딱 봐도 전부 수제 요리인데 담음새부터 맛까지 보통이 아니었다.
살다 살다 여동생이 만들어 주는 밥을 얻어먹는 오빠는 처음 본다.
그건 소설이나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설정인 줄 알았는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본명은 좀 부끄러우니 Mr. Lee라고 불러주세요.”
“강수연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미친놈으로 보였겠지만 의외로 정상입니다.”
강수연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어요. 오빠가 많이 이야기해 줬거든요.”
허허.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 줬을까아.
“뭐라고 하던가요?”
“싸울 때는 이보다 믿을 만한 동료가 없다고 하셨어요.”
“전장 외에서도 국밥 같은 남자입니다. 든든-하죠.”
내 말에 모두가 웃었지만, 마스터 위저드의 다크써클은 한층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 오늘 인천 공항에서 15명의 국회 의원을 포함해 100여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 어떤 남자는 자신이 범인이라 주장하였는데요. 반성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박경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타이밍 좋게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자 괜히 머쓱해졌다.
슬쩍 자학 개그를 덧붙였다.
“말아먹기 좋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SNS에서도 큰 화제였어요. 오빠가 어제부터 신경이 곤두선 이유도 알겠고요.”
“넌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그의 말에서 생략된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 줄 테니까.’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내색하지 않고는 있지만 어쩐지 시스터 콤플렉스 같았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니까요. 때로는 충격 요법도 필요한 법이죠.”
- 인터넷상에서는 그를 한국의 조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구세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습니다.
- 그를 영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방 범죄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현상을 취재했습니다. 김지한 기자입니다.
“사회에는 에어백과 같이 심한 충격을 막아 주는 장치가 없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풋.”
수연은 작은 웃음을 터뜨리고, 마스터 위저드는 나를 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 눈빛은 전 회차에 윤아를 스카우트하려고 할 때,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향해 보내 왔던 시선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성숙한 시민이 아닙니까. 곧 제정신을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 모방 범죄는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서 특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 학생끼리의 싸움은 물론, 학생과 선생 사이에도 심각한 수준의 폭력이 오가고 있습니다. 신기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성년자는 가치관이 미성숙한 경우가 많으므로 충동적으로 변하기 쉽죠.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놈의 TV 좀 꺼 버릴 수 없나.
“언론인들도 다 회귀했을 텐데 왜 저렇게 저를 나쁘게 포장할까요.”
회귀자라면 내가 누구고, 저들이 어떤 쓰레기인지 뻔히 알 텐데.
“미디어 윤리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자를 감쌀 수는 없죠.”
“그런 게 아직도 남아 있었나요?”
“있긴 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전 회차 때 금돼지 일파의 나팔수 역할만 했었던 것 같은데요.”
“목숨이 아까우니까요.”
“오호. 저는 내버려 둘 줄 알고 배짱 장사 하고 있다는 거죠?”
전 회차 때도 그랬다.
오랏트의 괴물과 목숨 걸고 싸웠는데 ‘피해자가 몇이니, 피해가 얼마니’하며 제대로 막지 못한 너희들이 살인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나중 가니까 헌터들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무서워해서 싸움을 포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주로 유럽 쪽에서 많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 새끼들 다 잡아다가 괴물 앞에 던져 버리고 싶었는데, 주위 헌터들이 극구 말려서 겨우 참았다.
“저 새끼들은 다 잡아다가 피해자 앞에 던져 줘야겠네.”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는 단순한 모방 범죄가 아닙니다. 제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어날 일들입니다.”
“전 회차에 쌓이고 쌓였던 증오가 회귀와 스킬이라는 신비를 매개로 폭발하는 현상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도 저렇게 방송한다는 건, 70%를 차지하는 비(非)헌터들이 미리 헌터들에게 족쇄를 채우겠다는 뜻입니다.”
마치 야생견을 사냥개로 길들이는 느낌이랄까.
나를 공격하는 건, 헌터의 대표 격인 내 반응을 통해 간을 보겠다는 것이고.
“저는 몰라도 어떤 감수성 풍부한 헌터는 저 손가락질이 무서워 못 나서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지들이 나서서 싸울 것도 아니면서 뒤에서 손가락질만 한다면, 그 손가락을 다 부러뜨려 줘야죠.”
“어떤 법으로도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앞으로 4년간은 제가 법입니다.”
유죄 추정의 원칙이다.
전장에 나가야 할 전사가 저들 때문에 못 나서게 된다면, 저들은 전사 하나를 죽인 셈이고, 그 전사가 지켜야 할 수많은 사람도 같이 죽인 셈이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면, 펜을 함부로 휘두르는 건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려 줘야겠지요.”
그의 반응을 살폈다.
반대한다고 해도 움직일 생각이지만, 그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문제를 보았을 때,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본체를 봐야지요.”
“말씀해 보세요. 본체는 뭡니까?”
“어떤 국가든 3단계의 문제를 겪습니다. 1단계는 생존, 2단계는 사회 안정, 3단계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근래에 인권, 인권 그랬던 거군요.”
“한국은 불과 7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고, 이후 군부 독재와 IMF로 인해 사회가 매우 불안정했으니까요.”
“생존과 사회 안정은 지났으니 이제 인권의 차례다?”
“네. 요즘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도 그 때문이죠. 저 방송 역시 인권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더니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는 꼴인가.
“어차피 죄다 폭삭 망할 텐데요.”
“바로 그것입니다. 10개월 후면 어떤 나라든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생존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조차도요.”
“오랏트 사태가 터지면 알아서 입을 닫을 테니, 우리는 우리가 할 것만 하면 된다?”
“저들은 구름입니다. 하루살이로 이루어진 구름. 일일이 상대하면 본인만 지치게 되지요.”
태연한 음색으로 말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편치 않아 보였다.
“정치인의 생각은 그렇군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어떻게요?”
“저 하루살이들은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전사들의 사기를 깎습니다. 저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요.”
일일이 상대하기 어렵다면 화염 방사기를 갈겨서라도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
전사가 다 죽거나 싸움을 포기한 다음엔 인류는 멸망한다.
“만약 저들이 그렇게 신념 가득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아닙니까?”
“저들은 전 회차 때 금돼지 일파에 편승했던 쓰레기들입니다. 이번엔 그가 없으니 어떻게든 한몫해 보려는 하이에나 같은 마음일 뿐이죠.”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이니, 자기들에게까지 손을 대진 않겠지.
이런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쿡쿡 찔러 보는 것이다.
“기레기가 나대면 뒤질 수도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보여 줄 겁니다.”
“어려운 길을 택하시는군요.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저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흩어질 것입니다만…….”
“역사적으로 자국의 영웅을 죽이는 건 자국의 간신들이었습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가 종이 몇 장을 들고나와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헌터들이 여러 커뮤니티나 SNS를 중심으로 단체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대로 우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또 전쟁 병기로 착취당한다.’라는 것이었다.
“저들이 하루살이라면, 이쪽은 실질적인 위협입니다.”
“헌터들이 조직을 만들어 권력 집단이 될 것 같습니까?”
“사익이 목적인 집단은 반드시 이권단체의 성격을 지니게 되며, 기존의 기득권들이 그리하였듯이 자신들만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들겠죠.”
정부는 그걸 막을 수도, 막을 힘도 없다.
“그리고 권력은 나 대신 누군가의 등을 밀어 버릴 힘이 있죠.”
“이대로 가면 헌터들이 비헌터들을 사지로 내몰고, 마지막까지 싸우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렇습니다.”
1, 2회차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오랏트 사태가 터지면 통신이 마비되어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어지니까. 또, 헌터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 만큼 총에 맞으면 죽기 때문이었다.
총을 무시할 수 있는 헌터는 전투형 헌터 중에서도 극소수뿐이다.
“간단하네요.”
“어떻게 말씀이시죠?”
“제가 그 집단의 장이 되죠.”
아무리 뭉쳐봐야 이제 갓 2회차인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전투 경험도 적고, 보스와 싸워 본 경험도 없다.
혼자서도 다 깨부술 수 있다.
“하하하.”
내 대답에 그는 환하게 웃었다.
“예. 바로 그것입니다.”
“네?”
“굳이 손에 언론인의 피를 묻히지 않아도, 굳이 헌터들의 조직을 부수지 않아도, 당신께서 헌터들의 수장이 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이제야 눈치챘다. 그가 이 자료를 보여 준 이유를.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였지만, 헌터라는 공통점을 통해 둘 다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이게 큰 그림이라는 건가?
“오랏트 사태가 터진다면 모두가 당신을 의지하겠죠. 당신은 유일한 ‘승자’니까요. 이 중요한 타이틀을 썩힐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그는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려고 일부러 여러 자료와 질문을 던져가며 답을 유도한 것이었고.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그 보상으로 마스터 위저드를 헌터 조직의 참모로 내정하겠습니다.”
말이 참모지, 앞으로 골치 아픈 일 있으면 죄다 떠넘기겠다는 뜻이다.
바로 의도를 알아챈 그의 얼굴이 썩어들어 갔다.
***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식사 시간이 길어졌지만, 무사히 잘 마쳤다.
“수연 씨. 식사 잘했습니다.”
“입맛에는 맞으셨나요?”
“물론이죠.”
윤아나 한울이랑 있으면 늘 인스턴트 아니면 배달 음식으로 때운다.
이 정도 수준의 집밥을 먹으니 없던 기운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결혼하면 사랑받으시겠습니다.”
“음식만으로 뭐가 되나요.”
“저라면 30년은 거뜬합니다.”
게다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단아한 미인상이다.
“어머. 그러면 제가 시집갈까요?”
“4년 뒤라면 환영합니다.”
오랏트 사태가 끝날 때까지, 내게 로맨스는 없다.
서로 장난치고 있는데, 마스터 위저드가 갑자기 불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이런 대형 사고를 칠 때면 미리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10년은 늙는 기분입니다.”
아까 다 용서해 놓고,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그냥 빵 터트려서 한 방에 정리하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결단력 같았다고 할까요?”
“누구도 풀 수 없는 복잡한 매듭을 칼로 단번에 끊어 낸 일화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 덕에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에서 인더스강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죠.”
“그렇다면 그의 사후에 제국이 곧바로 붕괴한 이유는, 제대로 풀지 않고 잘라 내었기 때문입니까?”
말발 보소.
윤아같은 일반인과 말싸움 하다가, 국회 의원이라는 천상계 사람과 말싸움을 하려니 너무 힘들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명, 한 명 설득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역시 그렇죠? 제가 임기응변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딱 지금이다 싶은 시점을 잘 안다고 할까요?”
“미리 상담해 주셨으면 다른 효과까지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요.”
그의 눈빛이 싸늘하다.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걸까.
“오빠. 손님에게 실례예요.”
“흠흠. 죄송합니다. 잠시 발끈했던 것 같습니다.”
금세 풀려 버린 그의 표정을 보며, 단번에 이유를 알아챘다.
내가 수연 씨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서 그랬구만!
이런 시스콘 자식.
“시스터 위자드.”
“왜 저를 수녀로 만드시는 거죠?”
“말실수였습니다. 그보다 저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인천 황제를 만나러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등을 돌려 나가려는 내 어깨를 그가 꽉 잡았다.
그의 손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시스터…… 혹시 시스터 콤플렉스를 생각하신 건 아니겠지요?”
머리 회전은 더럽게 빠르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나는 시스콘을 떠올렸지, 시스터 콤플렉스를 떠올린 게 아니다.
고로 거짓말은 아니다.
“그럼 왜 시스터 위저드라고 하신 거죠?”
“오타입니다.”
“이게 무슨 타자입니까?”
“누군가에게는 타자일 수 있어요!”
짝!
“식사 다하셨으면 치울게요.”
무척 난감하던 차에 강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한 번 치더니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참으로 훌륭한 여동생이다.
마치 선녀 같구나!
“저도 같이…….”
“인천 황제를 만나러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은근슬쩍 묻어 가려고 하자, 그가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눈을 부릅떴다.
“너도 대충 치우고 가서 쉬어. 설거지는 이따가 내가 할 테니.”
내가 미묘한 웃음과 함께 그를 쳐다보자, 쑥스러운 듯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변명했다.
“오해가 없도록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건 밥을 차려 준 사람에게 으레 하는 예의일 뿐입니다.”
“가족끼리도 예의는 참 중요하죠.”
더 놀렸다간 두고두고 갈굼 당할 것 같아서 적당히 넘어가 주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얼른 가세요. 배웅은 없습니다.”
수연 씨가 날 걱정하는 눈빛으로 인사하자, 마스터 위저드의 눈빛은 한층 더 싸늘해졌다.
와…… 중증인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조금씩 고쳐 주는 수밖에.
“수연 씨, 다음에 또 봐요~!”
찡긋.
“언제든 환영할게요.”
다행히 수연 씨는 현명하게 잘 받아 주었다.
그가 폭발하기 전에 얼른 집 밖으로 나갔다.
목표는 인천 소래 포구.
자칭 황제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