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GG (2)
마스터 위저드와의 대화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저쪽 일은 그가 알아서 해 줄 테니, 이제는 우리의 계획을 짤 때다.
“헌터 조직 만드는 건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이제 곧 광고하려고.”
“지구를 구할 용사를 모집합니다. 이런 광고?”
“무력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면 광고 제재할 수도 있으니 회사를 차리려고. 거기 사원으로 모집할 거야.”
“오오. 히어로 컴퍼니인가?”
리디아가 세력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시큰둥했었는데, 히어로 컴퍼니라고 하니까 흥미가 생긴다.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지.”
“형 같은 먼치킨한테도 우리 같은 개미가 필요해요?”
한울이는 이게 참 아쉽다.
실력에 비해 자존감이 너무 떨어진다. 여유 있을 때 어떻게든 자존감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어떤 장군에게도 병사는 필요해. 하물며 너희는 병사가 아니고 같은 장군이잖아.”
“세상의 헌터 전부가 달려들어도 형 하나 못 이길 것 같은데…….”
“리뉘지를 봐라. 핵과금러 한둘 있다고 해서 전쟁 씹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거 하셨어요?”
“아니. 미튜브에서 봤어.”
내가 그거 할 돈이 어디 있냐.
짝!
말이 딴 데로 새자, 리디아가 박수를 쳤다.
“간략하게 계획을 말해 주자면, 우선 CEO는 네가 할 거야.”
“경영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굳이 CEO로 할 필요가 있나?”
“우리 아들 결혼 정보 업체 등급 올려야지.”
“마마!”
히어로 컴퍼니면 적자 기업일 텐데 오히려 등급이 떨어지지 않을까?
“장난은 그만하고. 진짜 목적은?”
“네가 CEO로 있어야 홍보 효과가 좋으니까.”
“그럼 너는?”
“재경 부분을 총괄해야 하니 CFO.”
아무리 적자라고 해도 리디아가 있으니 그다지 문제는 없겠구나.
리디아의 재산이 50조쯤 된다고 했었나?
“나는?”
얌전히 듣고 있던 윤아가 물었다.
“COO. 특히 홍보랑 인사를 집중적으로 담당해 줘.”
“COO가 뭐야?”
“한국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구나. 대충 일상 업무를 총괄한다고 보면 돼.”
CEO, CFO, COO는 3대 최고경영인으로 각각 경영, 재무, 업무를 담당한다.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입사해 본 적이 없어서.
“저는 뭐하면 될까요?”
“한울이는…….”
한울이가 좀 애매하다.
나처럼 전투 말고는 특기가 없으니까. 그나마도 암습이나 속도전 위주라 인지도가 높지도 않고.
“산업 스파이를 하자.”
“와! 저 그거 해 보고 싶었어요.”
리디아의 말에 한울이는 반색을 지으며 기뻐했다.
……태클 걸 게 참 많지만, 본인이 만족했으니 된 거겠지.
“대충 골격은 이렇고, 이제 회사 이름을 지어야 해.”
“알아서 해.”
“유감스럽게도 난 네이밍 센스가 없어서.”
“나도 없어. 특별한 아이디어 없으면 그냥 히어로 컴퍼니로 하자.”
“이미 그 이름을 선점한 곳이 있더라고.”
“벌써 헌터를 모으는 곳이 있어?”
“아니. 굿즈 제작 회사였어.”
비일상이 익숙하다 보니, 일상에 적응이 안 된다.
이런 게 왜 문제가 되지?
“대충 초인 동맹이라고 하자.”
“초인은 영어로 오버맨(Overman)이잖아. Over‘man’이라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야.”
“에이. Man은 남자라는 뜻도 있지만, 인류라는 뜻도 있잖아.”
“파이어맨(Fireman)은 파이어 파이터(Fire fighter)로, 폴리스맨(Policeman)은 폴리스 오피서(Police officer)로 바뀌었지.”
“아 씨. 그냥 파워레인저라고 해, 그럼.”
“그것도 저작권에…….”
두통이 오려던 차에 윤아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GG라고 하자.”
“뭐의 약자야?”
“굿 게임.”
어쩐지 싸우기 전에 패배를 인정하는 느낌이었지만 대충 하자.
윤아가 전에 활동하던 아이돌 그룹 이름이 GG다. 걸스 제네시스(Girls Genesis)의 약자.
대충 새로운 걸그룹의 시대를 열겠다는 뜻이다.
“그럼 GG로 하자. 단, 굿 게임이 아니라 굿 가디언즈(Good Guardians)로. 다른 사람들은 어때?”
“난 괜찮아. 똑같이 GG이니 뭔가 좀 친숙한 것 같네.”
윤아는 찬성.
“한울이는?”
“다크라든가 플레임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더 좋지 않을까요?”
“우리 중에 어둠이나 불에 관련된 능력을 쓰는 사람은 없는데.”
“다크 나이트 같은 이름이 더 멋있잖아요.”
“그건 인정.”
나도 순간 혹했는데, 윤아와 리디아는 완전히 질색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2병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들의 시선이었다.
“그러면 회사 이름은 GG로 하고, 너는 다크 나이트 팀의 팀장으로 해 줄게.”
리디아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제안하자,
“그럼 저도 찬성이요!”
한울이는 바로 찬성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나라에서 툭하면 태스크 포스를 만드는 이유를. 이름 짓기 귀찮아서 그랬던 거였구나.
태스크 포스 앞에 ‘~~ 전담’이라고만 붙이면 되니까.
***
모든 것이 정리되자 오히려 할 게 없어졌다. 서류 작업은 내가 도움 줄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같은 신세였던 한울이가 스윽 다가왔다.
“형. 그러면요. 인천 황제의 스킬을 얻은 거예요?”
어쩐지 흥분한 것 같다.
먹을 것 외에 이렇게 의욕을 내는 모습은 오래간만이네.
“얻었으니까 전에 리디아랑 장난을 치지 않았겠니.”
“저 키 좀 늘려 주세요.”
한울이는 고2인데 키가 165cm로 평균보다 작은 편이다.
“얼마 정도로?”
“180cm요!”
짜식. 남자네.
15cm라. 가능할까?
되면 정말 많은 사람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텐데.
우리 팀에 가입하면 키 15cm up, 탈모 완치, 발기 부전 해결!
“한번 해 보자.”
“와아!”
나도 5cm만 더 커서 180cm 채우고 싶긴 하지만, 언제 강적과 싸울지 모르니 전투 감각은 항상 유지해야 한다.
1, 2회차와는 달리 벌써 이상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으니.
한울이는…… 실력에 비해 자존감이 없는 게 문제였는데, 그게 채워진다면 감수할 만한 리스크였다.
할 것도 없겠다, 당장 하기 위해 한울이의 방으로 갔다.
“혹시라도 아프면 말해.”
“예. 형.”
편한 추리닝을 입은 한울이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내 몸을 관조했다.
스킬의 이름은 [신상필벌].
공이 있는 자에게는 그에 맞는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
능력의 기본색은 검은색.
검은색은 지식을 상징하며, 어떤 색과 섞여도 물들지 않기에 공정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단순히 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구체 주위에는 붉은색과 자주색의 파장이 튀었는데, 이는 법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다.
“[신상필벌].”
180cm의 키.
그에 걸맞은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
한울이가 원하는 모습을 이미지 하며 천천히 힘을 불어넣자, 한울이의 몸이 서서히 변해 갔다.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지는 않네?”
그동안 한울이가 세운 공적이 커서 마나 소모량도 적은 걸까.
미리 표시해 둔 곳까지 한울이가 자라나자 힘을 주입하는 것을 멈췄다.
“끝났어.”
“와. 저 진짜 커졌어요.”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오히려 개운하네요.”
한울이는 곧바로 일어나서 이곳저곳 움직여보며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이게 180cm의 시야구나.”
“네가 나보다 커지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다.”
아들이 장성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친동생에게 키 크는 유전자를 강탈당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했다.
“동네 한 바퀴 달려 보고 올게요.”
“그래라. 옷 사러 가야겠네.”
미리 추리닝을 입혀 놔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꽉 끼어서 민망한 꼴 볼 뻔했다.
한울이는 윤아와 리디아에게 자랑하더니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기세를 보니 한동안 안 돌아올 것 같다.
“와우. 진짜 성공했네?”
“생각보다 쉽더라고.”
얇은 네글리제 잠옷을 입은 채로 서류를 보던 리디아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리디아의 방은 원래 내 방이었는데, 난 거실로 쫓겨나고 그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곧 큰 집을 새로 구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참는 수밖에.
“내 가슴 사이즈도 커지게 해 줄 수 있으려나?”
“넌 오히려 줄여야지. 전투에 방해된다.”
“노출도와 방어력이 비례하듯이, 바스트의 크기는 공격력에 비례해.”
“뭔 개소리야. 오랏트를 상대로 미인계라도 쓸 거냐?”
“사람을 상대로 써야지.”
“……아.”
우리 팀의 교섭은 리디아가 전담하는 만큼 고충도 많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결정이네?”
리디아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잘 부탁해.”
“가슴 사이즈만 키우면 되냐?”
“놉! 허리도 줄여 주고, 주근깨도 제거해 주고, 피부는 탱탱하게. 그리고 잔주름도 없애 주고, 필요 없는 털은 영구 제모까지 부탁해.”
“바라는 것도 많다.”
“사람들은 아름다울수록 더 친절해지니까.”
“네가 고생이 많다.”
리디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What? 왜 어깨에 손을 대? 그 부위에 대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면 충분하다.”
“쳇. 에로스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정신 차리세요. 마마.”
리디아도 공적이 많은 덕인지 그다지 힘이 많이 들어가진 않았다.
원하는 걸 전부 해 줬는데도 한울이보다 힘이 덜 들어갔다.
원판이 좋아서 그런가?
“헤이. 마스터 이.”
“왜?”
“눈치 없게 바로 쉬러 가지 말고, 윤아한테도 확실히 해 줘.”
“안 그래도 그렇게 할 거야.”
요즘 킥복싱 배우면서 근육 만드느라 고생하는데, 미리 만들어 주면 훨씬 쉽게 적응하겠지.
이렇게 보니까 개사기 스킬 같다.
인천 황제가 그 괴팍한 성격에도 괜히 인기를 얻은 게 아니구나.
“GG 잘 부탁할게. 최대한 좋은 사람들로 모아 줘.”
“OK. 나 내일부터는 또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니까 이 방은 다시 써도 돼. 내 체향을 음미해도 좋아.”
“비워 둘게. 언제든 돌아와도 되도록.”
리디아가 다시 돌아올 때쯤이면 새로운 집을 구한 상태겠지만.
아무 의미도 없음을 알아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또 뭐?”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뭘 슬퍼하겠냐?”
“인천 황제의 죽음이라든가. 중전차를 허무하게 잃은 것이라든가.”
“난 어떤 죽음도 추모하지 않아. 슬퍼하지도 않고.”
그동안 너무나도 많은 죽음을 봐 왔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음이 부서진 사람도 수없이 보았으니까.
“오히려 칼날을 세우고 있다.”
“누구를 향한 칼이야?”
“모두를 향해서.”
회귀자는 모두 죽음과 멸망을 겪었고,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다른 정의를 주장하거나 거짓을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각각의 정의를 인정해 줄 여유는 없으며,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상태에서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 시간은 없다.
가만히 놔두면 오랏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자멸할 것이다.
그 꼴을 보느니,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전부 도려내 버릴 것이다.
난 유일한 승자이자 최강이니까.
“네 말이니까 따르겠지만, 이해는 잘 안 된다. 무엇을 위해서 그런 가시밭길을 걸으려고 거야?”
“모두를 위해서.”
난 유언을 짊어지는 자니까.
휘이잉.
이제 5월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밤 바람은 아직 좀 쌀쌀하다.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별의 향연은커녕 별 한두 개도 보기 힘들었다.
***
가정의 달 5월.
아이들은 놀 생각에 기분이 들뜨고, 직장인은 나갈 돈에 머리를 쥐어 싸매는 달.
2021년의 5월은 달랐다.
먼저 본래라면 4월 첫 번째 수요일에 치러야 할 보궐 선거가 5월 12일에 치러졌다.
후보가 한 명뿐이라 전부 무투표 당선되었기는 하지만.
다음 날인 5월 13일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오랏트의 출현을 공식으로 선언했고, 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지만, 겉으로는 군인과 경찰을 대폭 확충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많은 면이 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처벌.
다른 범죄는 그대로 유지하였지만, 헌터의 범죄에 한해서는 특수한 법률이 적용되었다.
최근 치안에 불안을 느끼는 국민이 많았으므로 별다른 소음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실상을 알거나, 사회를 보는 식견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생존을 위하여 자유와 평등을 희생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