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25화 (26/151)

#25. 모의전 (2)

생매장된 인원 15명은 더는 전투 속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한울이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곧바로 땅속에 묻힌 15명을 구출해서 윤아에게 데리고 갔다.

“저 녀석이 벌써 이만큼 컸네.”

윤 씨 가문의 인터넷 죽돌이이자 방구석 여포.

그 아이에게 윤갤러라는 별명을 붙여 줬었다.

윤갤러가 큰 힘을 써서 잠시 무력화된 사이, 김저격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미간을 쐈으면 죽었을 터.

그의 사망 선고를 하고 윤아에게 보냈다.

“김저격, 쟤는 상황 판단 능력도 그렇고 실력 진짜 많이 올랐다.”

“스승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내가 가르쳤다면 일주일 내에 이렇게 크지는 못했을걸?”

“A그룹은 전체적으로 노력파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몰아세우는 방법을 모릅니다.”

“하긴. 사람은 바닥에 떨어져 봐야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위를 바라볼 수 있지.”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B그룹은 어때?”

“그들은 기본적으로 원만성이 무척 낮습니다. 따라서 지휘 통제가 안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사부의 진심이 통한 모양이군요.”

“통한 게 저 정도야? 완전 개인 플레이인데?”

“그래도 자신의 역할에 맞게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금태양을 비롯한 비글계 애들이 앞에서 시선을 끌고, 곳곳에 배치된 헌터들이 알아서 상황파악을 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게임을 예로 들자면 마치 A그룹은 최상위 팀 랭크를 보는 것 같았고, B그룹은 최고 실력자들의 솔로 랭크를 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결국, B그룹은 소소한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전술과 전략에 밀려 버리겠지만요.”

5인 1개 조로 이루어진 A그룹 인원들은 시시각각 필요한 거점을 제압해 가며 차근차근 B그룹을 압박해 가고 있었다.

“좀 더 보자. 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금태양이 있었다.

벌써 지쳐서 헥헥거리다가 물러난 다른 선봉대와는 다르게, 오직 그만이 끊임없이 날뛰고 있었다.

상대 중에 진짜 실력자가 있었다면 단번에 제압되었겠지만, A그룹에서는 그를 압도할 능력자가 없었다.

“그래 봤자 한 명. 그래 봤자 개인입니다.”

“때로는 하나가 모든 것일 수도 있어.”

***

“젠장. 젠장. 젠장하아알!”

금태양은 입에서 끊임없이 단내를 토해 내며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이것들은 지금 자신을 이기려고 드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발을 묶어 놓고 다른 곳에서 승리를 얻으려는 계획이다.

“저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

체육관 지붕 위에서 한발씩 쏘아 대는 김저격.

저 녀석 때문에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던 애들도 계속 놓치고 있었다.

“깔짝깔짝 대지 말고 한꺼번에 오라고!”

“멍청한 너랑 어울려 줄 것 같냐?”

“……너 누구냐?”

“고창덕이다!”

아아. 이제 기억났다.

확실히 안경 쓰고 여드름 풀풀 난 돼지 자식이었지.

거봐라. 운동 열심히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니까 여드름도 덜 나고 살 빠지니까 사람처럼은 보이잖냐.

못생긴 건 마찬가지지만.

“많이 컸네. 매번 쫄기만 하더니, 대들기도 하고.”

“넌 그대로네. 멍청하니까 발전이 없는 거지.”

“치사하게 다구리 놓고 있으면서 입만 살았어.”

“팀 게임에서 혼자 개돌한 니가 바보지.”

혼자 개돌한 것은 아니었다.

같이 돌격한 애들이 다 탈진해서 리타이어 한 거지.

답답한 상황이다.

미친개는 오랏트의 군단을 혼자서 때려잡은 적도 많았다고 하던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뭘 멍 때리고 있어!”

“시끄러워! 생각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는 자신의 낮은 공격력과 속도다.

미친개였다면 순식간에 접근해서 한 방에 때려 눕혔을 텐데, 자신은 따라가기도 벅차다.

체력이 떨어지면 금방 잡으련만, 저들은 5명씩 조를 이루어 2개 조로 번갈아 상대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술래잡기만 하다가 게임 끝나게 생겼다.

‘뭐야.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진 거야? 우리 태양이 이제부터 개돼지네~ 일단 순해지라고 고자부터 만들어 볼까?’

태양의 머릿속에서 미친개가 비웃음 가득 지으며 놀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끝없는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이럴 때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너는 지치지 않는다. 매우 훌륭한 능력이지.’

‘개미가 지치지 않아 봐야 호랑이를 이길 수는 없잖아요.’

‘벌써 포기하고 있구나. 넌 개미가 아니다. 고양이 정도는 된다.’

개도 못 이기는 고양이가 되어 봤자 아무 의미 없다고!

태양이 분노를 터뜨릴 때, 그 틈을 노려 적이 달려들었다.

“집사 자식이 어딜 감히!”

그 즉시 무릎으로 턱을 찼다.

급하게 차느라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비틀거리는 녀석을 마무리하려고 달려가자,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김저격이 방해 사격을 해 온다.

아으. 화난다. 화나.

‘네가 고양이인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일이다. 언제든 호랑이가 될 수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

‘그 언제가 대체 언제죠?’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지. 홀홀.’

어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움은 안 되고 빡만 치네.

진짜 그 할아버지가 눈이 좋은 거 맞아? 늘 침침한 것 같던데.

‘너의 장점을 생각해라.’

‘여자를 잘 꼬시는데요.’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강해지지 않느냐.’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이 단단해지긴 하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꽤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뭐라고 했었지?

“무리하지 마. 어차피 이놈만 잡아 두면 우리가 이겨!”

“아, 좀 조용히 해 봐! 깨달음을 얻고 있잖아!”

후회된다. 그때 잘 들어둘걸.

그 미친개가 나름 공손히 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할아버지라는 걸 짐작은 했는데 몸이 따라가질 못했다.

‘싸움에 있어 흥분은 불필요한 움직임을 만들고 지나치게 힘을 쓰게 한다. 즉, 쉽게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지.’

‘전 흥분할수록 일이 잘되던……. 아닙니다. 화분 내려놓으세요.’

‘마음의 강함이 곧 힘으로 이어진다. 너는 어떠하더냐.’

아아. 이제 알겠다.

할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지치더냐?’

나는 지치지 않는다.

따라서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강해진단 뜻이다.

그러니 더는 자제할 필요 없다.

“크아아아악!”

“와. 저 자식 눈 돌아갔다.”

“게거품도 무는데?”

법 때문에 참고 사는 것에 익숙하다.

나름 자유분방하게 살았기는 하지만, 진짜 강자한테는 상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법이 정한 선을 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치정 싸움에 얽혀 쌍방 폭행 사건으로 여기에 잡혀 들어왔다.

분명히 내가 선빵을 맞았으니 정당방위였음에도 이 나라는 그걸 인정해 주지 않았다.

화난다.

나를 우습게 여기는 녀석들을 모두 갈아 마시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으리라.

오직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퍼퍼퍽!

무술 따윈 의미 없다.

싸움은 선빵이고, 깡이다.

주먹으로, 무릎으로, 필요하다면 박치기로!

“누가 좀 막아봐!”

“김저격! 어따 쏘는 거야!

“대기 인원 다 나와!”

순식간에 세 명을 쓰러뜨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섯 명까지 합세하여 총 일곱을 상대하는 꼴이 되었다.

전혀 무섭지 않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려줄 제물을 보는 것 같아 더욱 흥분된다.

“너흰 이제 다 뒤졌어.”

전세 역전이다.

나 혼자서 다 때려눕혀 주마.

체육관 안으로 난입하려는 순간, 미친개가 나타나서 입구를 막았다.

“한참 흥이 올라온 듯해서 미안한데 거기까지다. 이미 B그룹의 깃발은 뺏겼다. 승부는 결정됐어.”

그 역시 무섭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나를 수없이 괴롭혔던 만큼 분노가 용솟음친다.

지금이라면 신이라도 죽일 수 있다!

“감히 내 앞길을 막…….”

퍽!

“켁!”

“이 새끼가 미쳤나. 쫄다구 몇 잡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얘한테는 안 되는구나.

분노 조절 잘해야겠다.

단 한 방에 정신을 잃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승리는 A그룹으로 돌아갔다.

금태양이 마지막에 각성하면서 역전할 뻔했으나, 이미 B그룹의 깃발은 뺏긴 뒤였다.

게임으로 치자면 스택을 어마어마하게 쌓아서 이제 무쌍 좀 찍으려고 하는데 본진이 터진 꼴이다.

“그러게 팀플레이를 했어야지.”

“홀홀. 졌구먼.”

“졌지만 잘 싸웠습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원래 이런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진 건, 진 거다.

패배에는 어떠한 이유도 붙일 수 없다. 하지만 모의전처럼 다음이 있는 싸움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는 있었다.

“둘은 조금만 더 훈련하면 간단한 실전에는 넣어도 될 것 같네요.”

“저도 놀랐습니다. 특히 그 경박한 녀석이 각성할 줄은 몰랐군요. 마음 같아서는 영춘권 제자로 들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기관총 펀치로 유명한 영춘권이라면 녀석에게 딱 맞긴 하겠네. 중국으로 유학 보낼까.”

영춘권은 연사력도, 타격력도 좋은 대신 체력 소모가 굉장히 심한 무예. 지치지 않는 태양이와 상성이 좋다.

오랏트를 상대로 무술을 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워 두면 쓸 일은 분명히 생긴다.

적은 괴물만 있는 게 아니니.

“보내 주신다면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

“귀국하게?”

“더 머무를 생각이었습니다만, 여기에 있다 보니 저도 빨리 돌아가 제자를 육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조금 더 다듬어야 하기도 하고, 그 녀석의 의향도 물어봐야 하니 나중에 알려 줄게.”

류 페이는 포권을 하더니 그대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A그룹과 함께 승리를 만끽하기 위해 축하 파티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제 나는 B그룹을 개돼지 취급해 주러 가면 되는 건가.

***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공간.

무저갱을 구현해 놓은 것 같은 깊은 지하 동굴에서 한 점의 불꽃이 타올랐다.

[일어나라.]

불꽃이 지나갈 때마다, 흙인지 잿가루인지 모를 무언가가 진홍색으로 고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쉴 때가 아니다.]

“…….”

잿가루와 진홍색 에너지는 걸쭉하게 섞이며 검붉은 타르처럼 변했다.

이윽고.

그것은 하나의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어서 오게. 나무의 껍질이여.]

“……나에게 안식은 없는 건가.”

[그것이 네가 받을 저주니라.]

“어처구니가 없군. 나는 분명 절대적인 강함을 대가로 받겠다고 했을 텐데?”

온전히 형체를 갖추자, 불꽃에 비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죽었음이 분명한 중전차였다.

“절대적인 강함은커녕, 그의 일격도 받아 내지 못했다.”

[네가 가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뉘일 곳 없는 몸에도 가진 게 많다는 것인가?”

[네 목표를 제외한 모든 것을 지워라. 그리해야 왕을 죽일 수 있다.]

“내 목표는 그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이 지옥을 끝내는 것이다.”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허상을 좇지 마라. 껍질일수록 진짜를 좇는 것은 본능이겠지만. 큭큭.]

중전차는 말없이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이 일으킨 바람에 불꽃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이내 다시 타올랐다.

[네가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의 진정한 목표 외엔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 진정한 목표가 뭐지?”

[왕을 끌어내리는 것.]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네가 섬길 왕을 찾아 헤매고, 찾아낸 왕을 능지처참하는 것.]

불꽃을 보는 중전차의 눈빛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리하여 진정한 왕이 되는 것.]

“헛소리.”

[오……. 아직도 자신을 속이는가. 늘 허상으로 자신을 채우니 늘 질투하고, 늘 질 수밖에.]

불꽃의 속삭임에 애써 외면했던 속마음을 떠올렸다.

나는 어째서 이번에는 그를 따르지 않았는가.

전 회차에 그가 나보다 일찍 죽어서 실망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의 등 뒤에 서는 곳조차 어려울 거라 생각해서?

그가 전 회차의 내 행동을 이해해 주지 못할 거라고 미리 단념했나?

아니면…… 속삭임대로 그를 질투했기 때문인가.

[한때는 진실했을지 모르나, 너는 신성을 부정하고 이 길에 섰다. 되돌아갈 길은 없다.]

중전차의 발밑에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그 뒤로 거꾸로 자라는 나무의 문양이 그림자처럼 생겨났다.

[가라. 왕을 처형하는 것은 늑대의 역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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