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상담 (2)
제자로 받아 달라는 금태양을 보니 전 회차 때 생각이 절로 났다.
“제자라…….”
전 회차 때는 내 제자가 많았다.
스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본능만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체계적이지는 않았으나, 경험과 감각으로 어떤 것이 가능하겠다는 정도는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마스터 이라는 별명도 나중에야 대장군 같은 느낌이 되었지, 원래는 스승이라는 의미로 출발했다.
“너. 내 제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아냐?”
“글쎄요.”
“대충 세도 백만은 될 거다.”
지금도 나를 스승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제가 101만 번째 제자가 되죠. 뭐.”
“백만하고도 첫 번째 제자겠지. 남자 친구 있는 여자보고 발정하지 않을 자신 있냐?”
“그건 본능입니다.”
“가라.”
“잠깐만요. 제가 뭐 범죄를 한답니까? 그냥 정정당당하게 남자의 매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겁니다.”
대체 이 자식을 언제 사람으로 만들지?
“유부녀와 불륜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빡빡하게 하십니까?”
“법만 지키면 뭘 해도 되는 거냐? 너에겐 상도덕이라는 게 없어?”
“형님은 법도 잘 안 지키잖아요?”
“다 세상을 위한 거다. 내 사욕으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지간한 개자식이라도 그 사람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갱생시키고 있었다.
훈련소를 맡은 것도 그 이유이고.
“또한, 이건 속죄이기도 하다.”
“형님이 뭘 잘못하셨는데요?”
“전 회차 때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뻔히 보이는 폭정과 착취를 묵인했으니까.”
그 때문에 피눈물 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거기에는 분명히 내 책임도 있었다.
만약 그때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려고 했다면, 지금 이렇게 개판이 되지도 않았을 테지.
말쿠트만 쓰러뜨리면 회귀할 수 있다는 건 알았는데, 설마 다른 사람들까지 회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체 1회차와 2회차에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역시 말쿠트의 농간인가?
“이것 좀 볼래?”
태양이에게 편지로 가득 찬 커다란 상자를 보여 주었다.
“이게 뭐예요? 연애편지?”
“그런 건 나에게 있을 수가 없어.”
“그럼 팬레터입니까?”
“팬레터라면 팬레터지. 스카우트 제안을 담은 내용이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지지 않은 내 이메일로도 엄청나게 왔다.
특히 어제, 오늘은 역대급으로 많이 왔다.
“저번 훈련소 습격 사건. 분명히 기밀로 처리했는데 벌써 알 만한 곳은 다 알더라.”
“FBI? CIA?”
“몰라. 그런 거. 그냥 개나 소나 다 알더라고.”
특이한 점이라면 활약은 우리 강아지들이 했는데 주가는 내가 올랐다는 점이었다.
노답들을 쓸모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특히 미국하고 중국에서 러브콜이 어마어마해.”
“형님 강한 거야 회귀자라면 다 알고 있죠. 근데 이걸 왜 보여 주시는 거예요?”
“단순히 내가 강하다고 이렇게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까?”
“에이. 형님 정도의 힘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오죠.”
“오랏트가 나타나면 어차피 난 세계를 떠돌아다닐 건데도?”
따라서 힘 이외에도 두 가지 요소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인재를 키워 내는 능력.
이건 이미 전 회차에서 증명된 능력이다. 실은 1회차 때의 기억에 많이 도움을 받았지만.
다른 하나는 인성이다.
성인군자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어딘가에 사는 노답 먼치킨처럼 생각 없이 다 때려 부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예로 들어줄게. 이토 히로부미 알지?”
“아. 지루한 이야기는 됐어요. 안중근 의사 만만세!”
“…….”
“전 사실 역사를 참 좋아해요. 말씀하세요.”
“이토 히로부미는 여자 관계가 참 난잡했어. 그래서 일제에서는 상당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안중근 의사에게 죽자 신문에는 그를 조롱하는 온갖 글들이 올라갔지.”
딱 봐도 엄청나게 지루해하고 싫어하는 게 보여서 간결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선 신문에 실린 게 아니야. 당시 일제 신문에 이토 히로부미의 여자 문제를 조롱하는 만화나 사설이 실렸을 정도라니까?”
“그런데요?”
“하반신 관리 잘하라고. 거기를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남자의 인격이 갈린다.”
“그러니까 남자 친구 있는 여자한테 손대지 않으면 제자로 받아 주신다는 거죠? 거참 말 빙빙 돌려서 하시네. 까짓거 그러죠. 뭐.”
태양이가 갑자기 거만해졌다.
안 되겠어, 이 자식.
어떻게 하지 않으면…….
“제자 탈락. 넌 너희 형 밑으로 전출 결정이다.”
태양이는 가정 상담이 필요 없다.
앞으로 매일 하게 될 테니까.
***
오늘 마지막 가정 상담 대상자는 김저격이었다.
김저격은 언제나 모범 생활을 해왔고, 모의전과 훈련소 습격 사건 때 큰 공을 세운 만큼 특별히 가정 방문으로 전환했다.
그의 부모님이 하시는 초밥집이 맛있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윤아랑 둘이서 왔지만, 집이 아닌 가게로 찾아갔지만 절대로 사심은 없었다.
“한 잔 더 드셔야죠.”
“아이고 아버님. 저도 한 잔 올리겠습니다.”
김저격의 아버지와 한 잔 주고받는데, 옆에서 윤아가 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공무원이 1인당 3만 원 이상 받아먹으면 불법인 거 알지?”
“난 공무원도 아니고, 내 돈 내고 먹을 거니 걱정 노노염.”
나에게는 인피니티 블랙 카드가 있으니까. 푸하하!
“저…… 근데 우리 애는…….”
옆에 앉아있는 김저격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격이는 걱정하지 마세요. 얘가 워낙 모범생에다가 에이스예요. 에이스.”
“저격이요?”
“진혁이의 별명입니다. 스킬이 [엘리트 스나이퍼]니까요.”
내가 아무리 칭찬해도 감옥 같은 곳에 자식이 있다 보니 안심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부모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짐작은 한다. 그러니 좀 더 안심시켜 드려야겠지.
“저격이는 곧 밖으로 나올 겁니다. 조건부겠지만요.”
“어떤 조건이죠? 돈이라면…….”
“보석은 아니고요. 군대나 경찰, 혹은 GG에 입사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이 조건은 강제가 아니라고 해도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다.
어차피 어지간한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는 오랏트 사태 이후 돈 벌기 힘들어지니까.
내수가 강한 나라는 어떻게든 하는 것 같은데, 한국은 자원도 없고 내수 시장이 약하다 보니 더 심각한 감이 있었다.
땅덩이 넓고 석유 등 원자재도 풍부한 미국이 멀쩡할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돌아가긴 했었는데…….
“소장님이 보시기에는 진혁이가 어디로 가는 게 안전할 것 같습니까?”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곳이라면 계룡대 인근이지만, 여기도 안전하다는 확신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좋은 헌터를 후방으로 뺄 여유가 없는 만큼, 김저격이 안전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질문을 잘못 드렸군요. 어디가 가장 좋을 것 같습니까?”
“저격 능력자는 어디에서든 환영합니다. 따라서 본인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가장 수요가 많은 곳은 전위다.
제일 많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자 중 상당수가 전위에 속하므로, 공급이 많은 만큼 어떻게든 유지는 된다.
반면 저격은 희소한 재능이었다.
마치 야구에서 좌완 파이어볼러처럼 지옥에서 데리고 오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GG에 입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군이나 경은 대부분 한국에서만 활동한다.
반면 GG는 전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므로 실력을 크게 향상할 좋은 무대가 된다.
그만큼 죽을 가능성도 크겠지만.
“자자. 어두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아버님은 이제 자제분이랑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세요.”
우물쭈물하는 부자를 일으켜 세워서 등 떠밀었다.
“저는 옆의 아름다운 레이디와 야경을 보며 데이트나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소장님.”
꾹 입을 다물고 있던 김저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소장님께는 그런 대사가 진짜 안 어울립니다.”
참 나.
친근하게 대해 주니까 다들 나를 물로 본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말이야. 엉?”
“마음먹으면, 뭐?”
“초밥 10인분도 먹을 수 있다고.”
나 좋다는 여자들이 줄을 섰다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차마 윤아 앞에서 말할 수는 없었다.
참자. 이것도 다 지구를 위해서다.
“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어서 부자간에 좋은 시간 보내세요. 내일 아침에나 데리러 오겠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외국 나가면 나의 매력을 아는 여자들이 참 많은데, 왜 한국에는 별로 없는 걸까.
특히 미국에서의 내 인기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히어로를 좋아하는 미국인들 특성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내 인기다.
“윤아야.”
“마음 안 먹은 모쏠아. 왜 부르냐.”
“이 세상.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107층에서 보는 서울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황제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고.
둔감한 바보가 아니니 그녀의 마음도 안다.
“언젠가 세상에 다시 평화가 오게 된다면…….”
대충 4년 정도 뒤겠지.
“그때는 진지하게 네 마음에 답해 줄게.”
난 아직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하니까.
“……내 마음이 그대로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
“그건 또 그때의 이야기겠지.”
***
김저격의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가정 상담 및 가정 방문을 모두 마쳤다.
이제 마무리 작업만 하면 우리는 훈련소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훈련소에 남을 사람, 군부대나 경찰에 전출 보낼 사람, GG에 입사할 사람을 모두 분류했고…….
“아. 진짜 소장님. 형님. 제발!”
“아, 진짜?”
“아니요. 전능하시고 위대한 영웅 각하. 제발 미천한 저에게 자비를 내려 주십시오.”
유일하게 태양이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고 있었다.
참으로 딱하고 미련한 중생이로다.
“이미 나온 결과를 어찌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냐!”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고요. 진짜 착하게 살겠습니다. 좀 봐줘요.”
이렇게 싫어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러고 싶어졌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잘라 내야 한다.
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나의 추상같은 눈빛을 본 태양이는 벌떡 일어나서 귓속말했다.
“형님. 제가 진짜 좋은 여자 소개해 드릴 수도 있는데…….”
“어허! 이것이 어느 안전이라고!”
“저도 함락하지 못한 진짜배기입니다. 남자 친구 있는 여자는 아니고요. 진짜 착한 애입니다. 물론 얼굴도, 몸매도 완전 착해요.”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하얀 이를 빛내는 그의 모습에서 그야말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금태양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괜찮다는 뜻이다.
“……누군데?”
“제 친형의 절친의 여동생입니다.”
대체 몇 다리를 건너뛴 사이냐.
“이름이…… 강수연이었지 아마?”
“……혹시 네 형 친구분의 이름이 강채라니?”
“어떻게 아셨어요? 와. 이제는 관심법도 쓰시네.”
대한민국 참 좁구나.
설마 금태양의 형과 마스터 위저드가 친구 사이였다니.
“너 뉴스 안 보고 살지.”
“뉴스요? 그런 걸 왜 봐요? 어차피 내 삶이랑 별 상관도 없는데요. 괜히 걱정만 되지.”
“좋아. 만약에 그 형 친구분에게 여동생의 소개팅 허락받아 오면, 전출 취소하고 내 제자로 받아 주마.”
“진짜죠? 약속한 겁니다.”
“그래. 약속한다.”
잘 가라. 금태양.
다음에 만날 때는 부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진짜? 마스터 위저드가 여동생의 소개팅을 허락했다고?”
이제 내가 죽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