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광기의 정의 (3)
타키자와 대리의 보고를 듣자, 내 안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진짜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다.
뛰쳐나가서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죄다 박살을 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지휘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선봉이지 지휘관이 아니다.
“지식의 등불은 어디죠?”
“원전 옆의 폐건물. 그 지하에 반응이 있습니다.”
타키자와 대리의 어깨에서 손을 떼자, 의자에 주저앉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몸에 무리는 주지 않을 텐데 대량의 마나를 다뤄 본 경험이 처음이라 호흡이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그녀를 뒤로하고 다시 금공명에게 다가갔다.
“무대는 준비된 것 같군요.”
“그분이 직접 하신 일입니다. 허투루 준비하시지는 않았을 테죠.”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먼저 돌격해도 되겠습니까?”
버스가 빨라 봐야 시속 150km다.
타고 있는 사람의 중량과 방향 전환을 생각하면 속도는 더욱 낮아진다.
“건투를. 그리고 최대한 생포로 부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체화]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내렸다.
곧바로 전력으로 달려 버스를 추월하고 그녀가 가리켰던 폐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
인적이 없어야 할 곳.
곳곳에서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진다.
원망.
증오.
살의.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아는 것일까.
살기를 담은 것치고는 숨죽일 뿐 나서지는 않았다.
“간 보지 말고 나오시죠.”
퍽!
달려드는 녹색 피부의 괴물을 한 손으로 날려 보냈다.
꽤 단단하고, 꽤 힘이 셌지만 그것뿐이다.
오랏트의 일개 병사보다 약하다.
“나오지 않겠다면 이 건물 통째로 날려 버리겠습니다.”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손 위에 [중력]을 집중했다.
주변의 공간마저 뒤틀어 버릴 정도로 강한 인력이 생겨나자, 사람 한 명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곳곳에 검버섯이 피어난 추레한 노인.
사진으로 본 것과 많은 면에서 달랐지만, 그가 바로 지식의 등불이다.
“자네의 소문은 익히 들었지. 이렇게 보게 되어 영광이네.”
“이 자리가 좋은 자리였다면 저도 무척 영광이었을 듯합니다.”
[중력]을 없애고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스킬은 [명료화].
불분명한 것을 또렷하게 이해하게 해 주는 것.
추상적인 영역이기에 전투보다는 연구직에 적합한 스킬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손만 비틀어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주변이 다 폐허인데 식사는 제대로 하셨습니까.”
그 식사가 최후의 만찬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네.”
“피부를 보니 안타깝게도 영 좋지 않은 물만 드셨나 봅니다.”
걷고 걸어 그의 앞에 섰다.
원래라면 나 따위가 이렇게 내려다볼 수도 없는 천상계의 인물이건만.
어쩌다가 이렇게 뒤바뀌었을까.
“이렇게 인적 드문 곳에서 뭐 하고 계셨습니까?”
“실험하고 있었지.”
“무슨 실험입니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실험.”
내 몸 곳곳에서 푸른 파장이 튄다.
이 폐건물에는 오염 물질이 특히나 많다는 뜻이다.
화생방 보호의도 없이 이곳에서 버틴 할아버지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지옥에 던져 넣었습니까.”
“이야기를 원하나. 아니면 화풀이를 원하나.”
“저 ‘인간이었던 것’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Cs를 많이 먹였는지 매우 튼실하다. 내게는 근육 돼지에 불과하지만.
“저들은 다른 이들이 관리하고 있으니 자극만 주지 않는다면 괜찮을 걸세.”
“안 괜찮겠네요. 곧 쇼킹한 자극을 주러 올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쯧. 그 녀석이 또 쓸데없는 일을 벌였군. 자네 하나만 보내는 것이 깔끔했거늘.”
“적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나와 주지 않습니다.”
“난 자네들을 단 한 번도 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네.”
그는 별말 없이 천천히 몸을 돌려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격살하거나 잡아채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번 회차 때는 최대한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으니까.
어쩌면 그릇된 광기 속에서도 뭔가를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대접할 게 마땅치 않구먼. 그저 이야기만 들어주면 좋겠어.”
건물의 겉모습과 1층은 완전한 폐건물이었지만 지하는 달랐다.
어느 영화나 만화에 나올 법한 실험실의 모습.
이런 시설은 불과 한두 달 만에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식의 등불이 단독으로 한 일이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부탁합니다.”
내 인내심이 얼마나 길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대략적인 상황은 제자에게 들었으리라 보네.”
“그는 더는 당신을 스승이라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내 연구는 아주 간단하이.”
우리 주변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수는 대략 20여 명.
호위대인가.
아니면 실험 대상자인가.
“일반인에게도 헌터와 같은 신비한 힘을, 그리고 헌터는 그 힘을 더욱 강하게.”
“그래서 헌터와 일반인에게 골고루 실험하셨습니까?”
아까 내가 날려 버린 녹색 괴물은 분명 일반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서는 마나가 느껴진다.
아마도 헌터 출신 실험체겠지.
확실히 느껴지는 강함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질 나쁜 범죄자들을 싹 죽였지. 나는 거래를 했네. 그들로 다른 사람을 살리게 해 달라고.”
“당신과 제가 똑같다는 뜻입니까?”
“사형수를 사형한다고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들로 인체 실험을 하면 모두가 손가락질하겠지. 그러니 내가 훨씬 나쁜 놈일세. 허허.”
그는 아까부터 계속 무저항이었다.
눈빛도 죽어 가고 있고.
이미 삶의 의지를 포기한 듯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는 뜻입니까? 왜요?”
“절박함이 다르니까. 손 놓고 죽는 것보다 뭐라도 해 봐야겠지.”
“‘뭐라도’에는 인체 실험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를 활용하는 것은 포함될 수 있겠지.”
결과?
인체 실험의 결과를 말하는 건가?
“역사를 좀 아나?”
“꽤 압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인체 실험은 수없이 진행되어 왔고, 그 결과물을 지금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아나?”
“정당성을 주장하시는 겁니까?”
“아닐세. 자네가 나를 죽여도 좋고, 법원에 던져 놔도 상관없어.”
즉, 나는 부정하고 비열한 방법을 사용해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결과물은 확실하니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내 몫이다.
대충 이런 주장을 하는 것 같았다.
뭐 이런 무책임한…….
“분노해도 좋네. 나는 학자로서 양심을 저버렸고, 인간으로서 최저의 짓을 해 버렸으니.”
“말씀이 끝나셨으면 이제 그 분노 좀 풀어도 됩니까?”
“아직 두 마디 남았네.”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드리죠. 제 인내심도 딱 거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이런 짓을 해 놓고 가족을 부탁한다느니, 국민을 부탁한다느니 하는 개소리가 아니길 바란다.
“하나. 어떤 힘이든 철저하게 중립일세. 그걸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흔해빠진 이야기입니다.”
“나는 힘없이 몰락해야 했던 우리 국민을 보았고, 그들에게 선택지를 주고 싶었어. 비슷한 처지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최저의 선택을 한 이유 잘 들었습니다. 다른 한 마디는요?”
굳이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우리를, 아니 나를 둘러싼 20여 명의 헌터들에게서 살기가 짙어지고 있었으니까.
“과연 내 연구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알고 싶네. 이건 말보다는 행동이 좋겠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20여 명이 일제히 나에게 달려들었다.
“행동으로 하시기엔 상대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저들에게서는 어떻게든 나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하지만 느껴지는 힘은 그닥 강하지 않았다.
대략 B에서 A급 정도.
대충 머리를 붙잡아 바닥에 박아 넣거나. 주요 관절을 부서뜨리거나.
어렵지 않게 차례로 쓰러뜨렸다.
좀비처럼 다시 일어난다는 것과 마치 통각이 마비된 것처럼 비명을 지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빼면, 딱히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시끄럽지 않아서 좋네.”
“역시 자네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군.”
“꽤 선방했습니다. 오랏트의 병사 정도는 상대할 만하군요.”
게다가 그렇게 깨졌음에도 아직도 일어나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21명 전부.
기시감이 든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중전차를 비롯한 범죄 헌터들의 ‘반전 상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슷한 헌터들을 한국에서도 겪어 본 적이 있는데 짐작이 있습니까?”
“짐작이 가지 않는군. 나는 그저 인위적인 혼돈을 만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했을 뿐일세.”
“혼돈?”
“말이 어려우면 불안정이라고 해도 좋네. 혹은 오염이라고 해도 좋고.”
지식의 등불은 죽어 가던 몸에서 처음으로 생기를 불태웠다.
회광반조를 보는 듯,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불사르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마지막 실험일세. 너희들도 그동안 고생했다. 이것만 끝나면 자유다.”
그가 손짓하자 개조된 헌터들은 지식의 등불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모였다.
마치 자신의 마나를 공유하듯 그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흐름이 생겨났다.
“살고 싶다면 저 거인을 넘어라.”
***
달리는 버스를 향해 수십의 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녹색, 파란색, 보라색.
딱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피부색을 가진 이들은 괴상할 정도로 온몸에 근육이 부풀어 있었다.
“전원 전투 준비!”
버스의 속력이 점점 느려지자, 더 많은 괴인이 달라붙었고 곧 완전히 멈췄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버스를 들어서 던져 버리려고 했다.
“둔기나 도검류를 쓰고, 총기는 최악의 수단에만 사용하도록!”
정부와 GG는 무기 사용에 대해 어느 정도 협약이 되어 있었다.
다만 총기는 일본에서도 까다롭게 취급하는지라 그리 쉽게 사용할 만한 것은 되지 못했다.
“[풍림화산] 개진! 전투를 시작해!”
금공명이 소리침과 동시에 일본 지부 사람들은 창문을 깨고 사방팔방 뛰쳐나갔다.
일단 윤아는 태양이와 김저격, 점순이부터 챙겼다.
“누님! 저도 좀 날뛰어도 됩니까?”
“진형을 유지해. 우리는 넷이서 한 팀이야. 팀으로 움직여!”
목적은 실전 경험이다.
그러니 최대한 시간을 끌며 버티는 게 상책이다.
윤아도 아파치 리볼버를 너클 형태로 만들며 싸울 준비를 했다.
금태양은 괜찮을지 몰라도 점순이나 저격이는 체력이 걱정이었다.
하물며 방독면까지 끼고 있으니…….
“태양이와 점순이가 전위, 내가 중간에서 보조할게. 저격이는 지원 사격을.”
“알겠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 안의 열기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화생방 보호의는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마치 사우나 안에 있는 것 같다.
윤아로서는 다 참을 만한데 그것만이 난점이었다.
“교관님. 좀 더 진형을 좁혀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김저격이 주변을 가리켰다.
저 멀리서 괴인들이 백 단위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설마 괴인 전부가 우리한테 온 거야?”
“아마도…….”
일본 지부의 사람들도 실력자들인 만큼 괴인 하나하나보다 강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차이나다 보니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적의 방어력이나 힘도 말도 안 되게 강한 만큼, 이대로 가면 분명 피해자가 나온다.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전면에 나서야 할 것 같네.”
딱 봐도 상대는 인체 실험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누가 되었더라도 상처의 원인이 된다면 자신이 미리 제거한다.
그것이 진짜 치료사니까.
“일단 한 명.”
윤아가 진심으로 날린 스트레이트는 괴인의 갈비뼈를 부수고 그대로 날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이 방독면 너머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