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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자격-44화 (45/151)

#44. 광기의 정의 (5)

내 질문에 금공명은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한 억측입니다.”

“의뭉 떨면 죽인다고 했다.”

여기는 재판장이 아니고, 몸이 보내는 신호는 생각보다 정직하다.

“말할 생각이 없나 보네. 잘 가라. 만나서 반가웠다.”

“이, 인체 실험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요!”

“…….”

“수없이 말했습니다. 이 길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이지적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되었다.

“지금이라면 동물 실험부터 차분히 연구해도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지식의 등불을 배신한 이유를 물은 게 아니야.”

그 건은 둘이 알아서 풀 문제다.

내가 참견할 이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나를 왜 배신했냐고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빠각!

“크아악!”

역시 지휘 전문 헌터라서 그런지 육체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가 보네.

어깨가 부서지는 정도로 이리 엄살을 떨어 대는 걸 보면 말이야.

“클리포트가 뭐냐?”

“모릅니다.”

빠각!

“크윽!”

“어깨 두 쪽이 날아갔으니 이제는 무릎이다. 네 목숨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살려 주십시오. 저는 아직 할 일이…….”

“살고 싶으면 솔직하게 말 해.”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네가 유다라면, 예수는 누굴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지식의 등불이다.

금공명의 스승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부정했다.

자신은 예수가 아닌 악마라고.

“정말 별것 아닌 이야기인데, 그가 생각하는 구세주가 누군지 너무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금공명이 뒤처리하는 동안, 리디아에게 말해 지식의 등불의 계정을 뒤졌다.

숨기고 숨겨도 모자랄 판에, 그는 유명 포털 메일로 자신의 연구를 누군가와 주고받고 있었다.

숨길 생각도 없었고, 숨겨져서도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겠지.

“그는 구원자(The one)라고 쓴 적은 없어. 하지만 ‘네오(Neo)’라는 인물을 종종 언급하더라. 누구일 것 같아?”

“…… 당신입니까?”

“정황상.”

일본 정부의 누군가, 주일 미군의 누군가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내 언급을 꽤 많이 했다.

가장 대표적인 말은 ‘네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유다의 관계가 걱정된다는 말도 하더라.”

“그분은 정녕 저를…….”

“유다의 최후처럼 궁지에 몰려 자살하지 않기를 바라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살길을 찾으라고 연구 자료까지 보낸 거고.

그걸 알아낸 리디아는 즉시 금공명의 모든 정보를 털어 내었다.

사내 메일뿐만 아니라 개인 메일. 그의 PC 데이터 등 전부.

심지어 오프라인 조사도 병행했다.

그가 우리를 배신하지는 않았기를 바라면서.

“머리 쓰는 건 자신 있는 것 같은데……. 너, 행동이 좀 어설퍼.”

하지만 그는 우리를 배신했다.

지식의 등불로부터 받은 연구 자료를 누군가에게 발송했다.

수신인은 중국에 있는 누군가.

GG의 사원은 아니었다.

“지나친 억측입니다!”

“후방에 있다 보니 잘 모르는 모양인데, 세상에는 이성보다 직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그들의 감각은 슈퍼컴퓨터를 돌려 예측하는 것보다 미래 적중이 훨씬 더 높다.

금공명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듯했지만 이내 체념했다.

어차피 내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고, 나는 확신만 있다면 증거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처음 말했다시피 아무 말 안 하면 넌 죽어.”

“……살고 싶었습니다.”

“날 배신하면 클리포트인가 뭔가 하는 조직이 널 살려 준다 하디?”

“아닙니다.”

각오한 듯, 그가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의 색이 반전되었다.

“제가 배신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썩어빠진 이곳의 정신 상태입니다.”

중전차와 똑같은 모습…….

역시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구나.

반전 상태로 변할 수 있는 헌터가 조직을 꾸렸다면 심각한 위협이다.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클리포트라는 정체 불명의 조직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수없이 설득했고, 수없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혜택을 보장받았다.”

사실상 GG 일본 지부의 총지부장이다.

회사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지만,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다.

“그러나 경험 있는 인재는 모두 해외나 정부에서 빼돌리고, 남은 것은 패배에 찌든 비관주의자들뿐이었습니다.”

“팀이 트롤이고 너는 정상이라면, 네 팀은 왜 항상 질까?”

“저는 당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네 한계일 뿐이다.”

똥을 싸도 똥을 싼지 모르니, 언제나 팀 운이 없지.

“재능이 있었겠지.”

언제나 엘리트 코스를 달렸고, 노벨상 수상자의 제자가 되었다.

“노력도 했겠지.”

오랏트 사태라는 천재지변 속에서도 훌륭한 성과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던 것뿐이야.”

인체 실험을 막지 못해 좌절하고,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두려워했다.

멸망과 죽음을 두려워했고, 자신만큼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인정하지 못했을 뿐, 너는 네가 비난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아니야! 아니야! 나는!”

“그간 달려왔던 성공 가도와 알량한 자존심이 인정 못 하게 만들지?”

천천히 [개미지옥]을 전개했다.

나를 중심으로 검은 기류가 나선형으로 퍼져 나가며, 이윽고 결계가 형성되었다.

“곧 인정하게 될 거다.”

***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기는 힘들어지는 단순한 결계.

[개미지옥]

단순한 만큼 그 효과는 강렬하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상관없었어. 정부와 내통을 하든, 나라를 팔아먹든 아무 상관 없었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저한테 이러시는 겁니까?”

“그놈들은 아니니까.”

반전 상태가 어떤 조건으로 발동되는 건지, 그들이 조직을 꾸려서 무엇을 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욱 위험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막강한 힘까지 소유하고 있었으니까.

“넌 그 자료를 넘기면 안 됐어. 애초에 네 것도 아니었잖아?”

지식의 등불도 답답한 양반이다.

제자가 배신한 걸 알면서도 옛정이랍시고 자료를 넘기고 앉았으니.

“후쿠시마에서 도망친 열 명의 헌터를 불러와라. 그래야 네가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테니까.”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상대가 생각보다 약했잖아. 그런 적을 상대로 경찰이나 자위대, GG의 사원까지 실종되었다?”

그들의 실력은 최소 통신도 못 하고 잡힐 정도는 아니었다.

“수를 써서 실종된 척, 지식의 등불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던 거지?”

“흐흐흐……. 하하하!”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주변에 대기해 두었던 열 명의 헌터를 [개미지옥] 안으로 들여보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발버둥이라도 쳐 보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난 모든 사람이 그러길 바라고 있어.”

대상은 내가 아니라 저 하늘에서 떨어질 괴물들이지만.

“너희에게 살길을 열어 주지.”

딱!

손가락을 튕기자 21명의 헌터가 새로이 안으로 들어왔다.

지식의 등불에게 부탁받은 개조헌터들이다.

일반인 출신인 만큼 상대보다는 확실히 약하다.

대신 수는 두 배.

“세상이 죄다 미쳐 간다면, 내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

나 역시도 광기의 물결에 휩쓸려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 나는 광기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역사적으로 집단에는 예외 없이 광기가 존재했다. 그리고 정의 역시 언제나 존재했어.”

“광기 속에서 정의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왜 없겠어. 언제나 이긴 쪽이, 살아남은 쪽이 정의였는데.”

그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넘어라.

그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난 직접 참여하지는 않을 거야. 부디 열심히 발버둥을 쳐 보라고.”

내가 살짝 진각을 밟자, 21명의 개조 헌터들이 내 주위로 원을 그리며 섰다.

지식의 등불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 나타났다.

“사냥 개시.”

개조 헌터들은 그간 쌓였던 것이 많았는 듯, 열 명의 헌터들을 보며 강하게 분노하며 이를 드러냈다.

“[풍림화산]!”

금공명도 질 수 없다는 듯 마나를 쥐어짜며 스킬을 사용했다.

잠시 후, 11대 21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

“와……. 이건 좀 처참하네.”

정상 회담을 끝내고 귀국했는지, 오카다가 지부장실로 들어오며 한마디 했다.

그는 도쿄 지부의 부지부장이다.

“처참하기는.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하구먼.”

“그게 더 무서운 거지. 분명 여기저기서 마나의 파장이 새고 있는데 겉으로는 멀쩡하니까.”

“연락은 받았지? 오늘부터 네가 총지부장이다.”

“안 그래도 무척 바쁜데…….”

“사람 더 충원해.”

오카다는 대외 이미지도 좋고, 나름대로 상황 파악도 잘한다.

아무래도 금공명에 비하자면 머리 쓰는 것은 좀 약하지만, 잔머리 안 굴린다는 점에서 더 좋다.

“실무 회담은 어떻게 됐어?”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더라.”

그놈의 레퍼토리는 어떻게 변할 생각을 안 하냐.

미국 연방 의회에서 알아서 태클 걸어 주겠지만, 들을 때마다 빡친다.

“꺼지라고 해. 이번 기회에 다 같이 막 나가 보자고.”

“그걸로 괜찮겠어?”

“한마디 해 줄 생각이다.”

“뭐라고?”

“‘나도 미국 안 간다. 개자식들아.’라고.”

실제로 안 갈 수는 없겠지.

네자흐는 날아다니는 만큼 북미를 다 때려 부수고 나면 바다를 건너 날아올 테니까.

녀석이 바다로 향하는 순간 대재앙이다.

“진짜 안 가는 건 아니지?”

“똑같이 스트레스받아 보라고 하는 말이야.”

“똑같이 하면 똑같은 사람이…….”

“그럼 더 할까?”

“말을 말자.”

미국으로 가서 백악관이나 펜타곤을 다 때려 부술 용의도 있는데.

“근데 왜 너 혼자 왔냐. 시노자키 씨는?”

“파견 요청이 와서 GG 중국 지부로 갔어.”

“GG에 중국 지부가 있어?”

“상하이에 딱 하나 있어. 구멍가게 수준이긴 하지만.”

왜 난 CEO인데 몰랐지?

맞다. 자꾸 바지사장이라는 걸 깜빡깜빡한다.

“구멍가게에서 시노자키 씨는 왜?”

“영웅문에서 협조 요청했다더라.”

“영웅문? 무협지냐?”

“중국에서 GG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회사야.”

류 페이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회사인데 굳이 문파 같은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나?”

“중국 청년들이 그걸 좋아하니까.”

중국이 무협 좋아하는 거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한데, 그걸 현실에 반영할 줄이야.

“그쪽은 상태는 어때? 거의 내전라고 들었는데.”

“말도 마. 하필이면 텡그리 지역과 티바트 지역에서 난리가 났다.”

텡그리와 티바트의 경계는 호흐마가 출현하는 곳이다.

초기에 제대로 대응 못 하면 나중에 피해가 심각해진다.

“너도 중국으로 가기 전에 확실히 정해야 할 거야.”

“뭘?”

“중국 정부의 편을 들지, 반군의 편을 들지.”

“알아서 지지고 볶으라고 해.”

마지막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다 같이 망할 테니까.

나는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하면 땡이다.

“혹시…….”

“응?”

“영웅문으로 가는 건 아니지?”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게 되겠지.”

GG는 중국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영향력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적이든 악당이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의향이 있다.

“근데 아까부터 뭘 보는 거야?”

“이거?”

손에 든 한 장의 종이를 흔들었다.

“유언장.”

“누구의?”

“금공명. 타케나카 모리나베의 유언장.”

여러 말이 쓰여 있었고, 덕분에 스킬 [풍림화산]도 받아 낼 수 있었다.

다만…….

마지막에 쓰인 글귀가 조금 신경 쓰였다.

<그대는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 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그가 입사했을 때의 각오.

안타깝게도 그는 초심을 지키지 못했다.

겨우 두어 달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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