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행동으로 (4)
위대한 진화 1단계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전투형 헌터들이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사이, 지원형 헌터들은 출중한 사무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피의 숙청에 대한 소식은 현대 사회답게 참 빠르고 정확하게 퍼졌다.
세계는 경악했고, 비난 여론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죽은 사람의 명단과 그들의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지, 그 증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공표해도 비난은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난은 나나 GG에게만 몰려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헌터들에게까지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시선이 늘어났다.
……계획대로다.
잘 되어 감에도 입맛이 텁텁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난 정치할 팔자는 아닌가 보다.
***
홀로 오랏트 대책 협회 본부로 향했다.
이것은 책임자의 영역.
모두가 비난의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다.
“돈 많네.”
협회의 건물은 돈이 썩어 나는지 유리 외벽으로 된 마천루였다.
이미 있던 것을 매입한 듯했는데, 후원자들이 후하게 후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후원했을까?
“돈은 요리 미튜버에게 화장품 광고를 하게 만들 수도 있지.”
입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협회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협회에 상시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까지.
내가 나타나자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며 적의가 담긴 환영을 해왔다.
“끔찍한 일을 벌이셨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거죠.”
“해야만 한다고요?”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하고요.”
제일 앞에선 사람은 협회의 회장, 마리아 페이스(Maria Faith).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며 독일 국적의 시리아 난민 출신 여성.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독일에서 난민 대표로 활동하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당신은 협회가, 수많은 헌터들이 쌓아 올렸던 신뢰를 모조리 무너뜨렸어!”
“그것이야말로 필요도 없고,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강렬한 적의를 내뿜는 그녀에게 간단히 받아쳤다.
“신뢰가 필요 없는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대체 신뢰가 필요 없는 질서가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아직은 기존의 질서가 작동하고 있어서 착각하시나 본데, 그 질서…… 곧 없어집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렇게 되겠지.
“곧 없어질 질서에서나 통용될 대중의 신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가치한 것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고요하다.
기자와 카메라맨들이 보내오는 적의도.
지금도 수없이 달리고 있을 인터넷의 비방들도.
그저 하찮게 느껴진다.
“당신은 미쳤습니다! 역사상 어떤 악당도 당신만큼 악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난 더이상 너희의 이해를 구하지 않아. 너희의 칭송도 바라지 않고.”
그런 기분 때문이었을까.
머리를 거치지 않고 심장에서 바로 나가는 말에는 존대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사과도 없다.”
“쌓아 올린 헌터와 비헌터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법과 사회와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필요 없는 것이라고!}
내 의지를 담은 언령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살의를 담지는 않았기에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심약한 사람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준비된 자들의 단결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 준비를 앞당기기 위해 범죄자를 처단한 것이고.”
“…… 무고한 시민보다 범죄자를 잡는 게 더 중요한가요?”
“범죄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들로 인해 준비가 늦어지거나 방해받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저들이 비난하는 이유는, 지금의 시스템이 무너져서 자신이 피해를 볼까 봐.
혹시 어떤 헌터가 힘을 믿고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따라서 너희들이 입이나 손가락을 잘못 놀려서 활약해야 할 헌터가 억압된다고 해도 같은 잣대가 적용된다.”
카메라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건 경고다.
법과 시스템은 더는 너희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경고.
“협회장.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당신은 충분히 이상합니다.”
“현재 기준으로 누가 봐도 명백히 잘못하고 있는 나를, 왜 대부분의 인류가 따를까?”
하나같이 잠재적 범죄자라서?
힘만 숭상하는 야만인들이라서?
“왜 그럴까?”
마리아 페이스 앞에 섰다.
내 키가 10cm는 더 컸기에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무감정한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신의 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겉으로는 따를지언정, 뒤로는 욕을 하고 어떻게든 막을 고민을 했겠지.”
뒤를 돌아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괴물들과 싸워 본 경험이 있을수록, 힘이나 사회적 위치를 불문하고 나를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그만큼 적들은 강하고 무서웠으니까. 고고한 이상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으니까.
“자신의 억울한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그러나 아무리 힘을 모아도 막기 어려운 절망적인 강적.”
사람들은 상상 못 할 것이다.
그들이 겪은 오랏트 괴물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내가 1회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조기에 처리했기에 진짜 강력함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
“그 기억이 너무 끔찍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으니까! 그걸 막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나에게 기대는 것이다!”
몸을 돌려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아무리 입 아프게 설명해 봤자 오랏트가 얼마나 강한지 넌 짐작도 못 하겠지. 넌 후방의 안전한 곳에 있다가 죽었으니까.”
“저도 충분히 들어서 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
웃기지도 않는다.
멸망을 앞둔 시기에 ‘오랏트 대책 협회’의 회장으로 내세운 기준이 고작 ‘정치적 올바름’이라니.
일반인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웅이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입을 나불대는 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게 뭔지 알겠어?”
하늘에 검붉은 피의 구체가 생겨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하고,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겠지.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고통을 [환상통]이라는 스킬로 구현한 것이다.”
1회차, 2회차, 그리고 3회차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이도 안 바란다. 딱 1만분의 1만 버텨라. 그러면 너희를 인정해 주지.”
혹시나 기대했지만, 역시나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닿지도 않았는데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자진해서 겪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해 보겠어?”
말로는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를 중시하고 힘에 따른 책임을 누누이 강조한 기업들도 돈에 의해 비겁자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 현실.
금공명의 유언장에 쓰인 문장이 떠올랐다.
<그대는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 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안정된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멸망하는 세계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이 고개를 쳐든다.
그 상황을 두 번이나 겪었기에 저들의 근거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안다.
그렇기에 나는 생존이야말로 정의라 정의했고, 그에 대한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 각오가 섰다.
마리아 페이스.
너는 어떠냐?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냥 참고 살아.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욕이든, 복수든 다 받아 줄 테니까.”
천천히 뒤로 돌아서자, 악에 받친 음성이 들려왔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아는 만큼 보인다.
저 수확자나 고고한 이상주의자인 시몬 시뇨레조차도 엄두도 못 내는데…….
구현한 [환상통]에서 일부를 떼어 협회장에게 던졌다.
“먹어 봐. 분명히 말하는데, 너 같이 입만 산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
그녀는 핏발이 선 눈동자로 그것을 바라보더니 단번에 삼켰다.
“꺼…… 끄…….”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지러졌다.
열을 세기 전에 쇼크로 죽겠지.
“살려 주세요!”
시몬 시뇨레가 재빠르게 정신 차리고는 부탁을 해 왔다.
목표는 달성했으니 굳이 피를 볼 이유는 없을 터.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이능 간섭]으로 [환상통]을 해제하고 [치유]까지 해 주었다.
하지만 난 윤아가 아니라서 마음이나 영혼까지는 [치유]하지 못한다.
“하하…… 하하…….”
살아난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누운 채로 눈물을 쏟아내었다.
“우린 다 죽을 거야…… 히히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환상통]의 매개는 기억.
내가 느꼈던 고통은 물론, 적에 대한 공포나 절망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 사람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다.
같은 말만 망가진 자동인형처럼 반복하던 그녀는 자신의 정장 안쪽 주머니를 더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자동 권총 글록 17.
“막을 수 없어……. 어차피 죽을 거야……. 다 죽는다고!”
그녀는 자신의 턱 아래 총구를 가져다 대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다시 말하지만 그럴 일 없을 거다.”
그녀는 죽지 않았다.
총탄은 내 손바닥에 가로막혀 조금도 전진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있으니까. 그러려고 움직인 거니까.”
훌륭하다. 협회장.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어.
GG의 인재들이 계획한 각본대로…….
그녀에게서 총을 빼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처리를 부탁하죠.”
아무도 막지 않고.
아무도 셔터 누를 생각도 못 하는 인파의 길을 지나 동료들의 품으로 향했다.
***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데, 리디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계획대로 엄숙한 수확자가 협회의 회장이 되었어.”
“돈은 요리 미튜버에게 화장품 광고를 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엄숙한 수확자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이상을 가졌다고 해서, 협회의 직원들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나 들었어?”
“다 합쳐서 1억 달러 정도.”
“지속해서 쥐약이 들어가야 할 텐데 재정은 괜찮아?”
“펑펑 쓰지 뭐. 어차피 반년 뒤면 휴지 조각이 될 텐데.”
안전 보장도 아니고, 무기도 아니고, 보존식도 아니고.
고작 잘 만들어진 종이 쪼가리에 욕심을 낸다는 것부터 멸망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 하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밀어붙이지 않아도 헌터의 시대는 빠르게 오겠네.”
“그것도 죽음을 극복해 낸 자의 몫이지.”
“피곤하다. 조금 잘게.”
“자장가 불러 줄까?”
“사양할게.”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옆에 누웠다.
“그럼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어 줄게.”
“엄마냐?”
“엄마 이상, 애인 미만.”
난 애인보다 엄마가 위에 있는데.
“이제 유럽으로 갈 차례인가?”
“최대의 난관이지.”
“내일 바로 가자.”
“괜찮겠어?”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최근 들어 더 절실히 느끼는 건데…….
인간을 상대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자신과 관계된 일은 빠르게 손익을 계산하지만, 남이 하는 일에는 습관처럼 입바른 소리만 쉽게 내뱉고.
단 하루도 살아남기 힘든 절박한 상황을 상상할 수 없는 인간들을 상대할 때는 더더욱.
“잘 자. 내 꿈 꿔.”
“네 돈 꿈 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