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69화 (70/151)

#69. 해방의 비 (1)

브뤼셀 회의는 30분 앞으로 다가왔다.

나와 윤아는 배정된 대기실에서 기다렸고, 리디아와 라푼젤은 사전 교섭, 수연 씨는 만날 사람이 있다고 나갔다.

“또 회의인가…….”

“기운 내.”

“오랏트랑 싸우기 전에 멘탈 터질 것 같아.”

오랏트랑 싸우는 게 택배 상하차와 같다면, 높으신 분들과 회의하는 건, 수능 전날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하는 것과 같았다.

“소피아는 어떻게 됐어?”

“프랑스에서 맡겠다고 했어. 곧 재판받겠지.”

“잘했어. 그녀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니까. 죽였으면 정말 말이 엄청 많았을 거야.”

“내가 그런 거 따지는 사람이냐.”

단지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고 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을 뿐이다.

마치…….

이런 류의 직감이 든 적은 없어서 비유를 못 하겠네.

“나타스 핵심 간부는 모두 죽였으니 된 거 아니야?”

“수장은 누리는 게 많은 만큼 책임질 것도 많아야 해.”

“넌 적당히 좀 짊어져.”

“네가 대신 짊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으로 충분해.”

욕먹는 건 하나면 충분하고.

악역은 익숙하니까.

“네가 관광 포기하고 봉사 활동을 해 준 덕에 우리를 좋게 보는 사람이 많아졌잖아.”

“파리에는 콘서트로 몇 번 와봐서. 별로 재미없더라.”

거짓말은…….

같이 관광 다닐 때 보니까 소풍 온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더만.

“그래서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러 돌아다녔냐?”

“어차피 마나는 금방 회복되니까. 쓰면 쓸수록 마나량도 늘어나고.”

“덕분에 GG의 사기도 높아지고 있다더라.”

나도 힘내야겠지.

머리 아픈 회의는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의제가 뭐였지?”

“오랏트 방위 대책.”

“딱 그것만 의논했으면 좋겠다.”

나아가 헌터와 일반인의 공존에 대해서…… 이런 거 말하면 테이블 엎어 버린다.

그런 건 제발 살아남고 의논하자.

“안찰스 왕세자가 오는 걸 보니 참 걱정돼.”

“이제 왕 아니야?”

“아. 그렇지.”

쭉 왕세자로 남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마음이 반영되었나 보네.

어떻게 된 게 그보다 아흔이 넘은 엘리자드 여왕이 훨씬 결단력 있고 배포가 큰지 모르겠다.

60년 넘게 왕세자로 살아서 그런가?

“슬슬 회의시간 됐어.”

“머리 아픈 일이 없기를 빈다.”

***

유럽 연합의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어째 이번에도 정치인 위주로 모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공사다망한 와중에 이렇게 모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장역은 이탈리아의 정치인, 데이비드 바소리.

“원래라면 덕담부터 나눠야 하겠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계속 진행했다.

“유럽에 나타나는 보스는 케테르, 헤세드, 호드 이렇게 3개체입니다.”

“헤세드는 두 개체로 이루어져 있으니, 4개체라고 함이 옳습니다.”

“그렇군요. 정정하겠습니다. 4개체입니다. 먼저 케테르의 방위에 대해 논하겠습니다.”

의장이 옆을 바라보자, 장성급 정복을 입은 이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케테르는 군체입니다. 여왕, 장군, 병정, 일꾼, 특수종으로 나뉘며, 전부 암컷입니다. 보통은 여왕만을 가리켜 케테르라 합니다.”

“수컷도 있지 않습니까?”

“수컷은 먹이를 받아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이해를 정확히 하기 위해 태클 거는 건 좋은데…….

굳이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 하나?

설마 기본 지식도 없이 온 건 아니겠지?

“케테르는 기본적으로 개미와 비슷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왕밖에 알을 낳지 않죠.”

“전 회차 때는 병정이나 일꾼도 알을 낳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여왕이 죽어 생식을 억제하는 페로몬이 없어졌기 때문이라 추측됩니다.”

그 말에 모두가 잠깐 나를 쳐다보았다.

여왕을 죽인 게 나니까.

“그렇다면 버킹엄 궁전 일대를 소이탄으로 불태우면 되겠군요.”

“필요하다면 백린탄의 사용 허가도 내려야 합니다.”

“크흠.”

안찰스 왕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어차피 버킹엄 궁전은 없어질 건데 미련 두지 마시지.

난 청와대나 국회 의사당을 태워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고 손들 자신 있는데.

“그러나 그들이 불길을 빠져나오면 2차로 런던 전역을 폭격해야 합니다. 그들이 시외로 빠져나가는 순간 진정한 지옥이 시작될 겁니다.”

“런던이 소멸하겠군요.”

“드리스덴 폭격 같은 일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그때와는 다릅니다. 민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대피한 후 행해질 테니까요.”

“크흠.”

“폭격 이후, 헌터 부대를 투입하여 여왕을 비롯한 살아남은 군단을 제거합니다. 이것이 대 케테르 작전의 기본 골자입니다.”

작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저들 중 케테르와 싸워 본 사람이 없다는 것.

우리 팀도 나를 빼면 마찬가지.

그때는 팀이 결성되기 전이었으니까.

“한마디 해도 됩니까?”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동시에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은커녕, 장군급만 되어도 네이팜탄이나 백린탄 같은 소이탄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외골격이 지나치게 튼튼하고, 불에 내성이 있다.

1, 2회차 때도 영국군이 결사의 각오로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었으나 결국 모두 전멸했다.

“예상된 사항입니다. 집중 폭격이 끝난 후, 그때 헌터 부대가 돌입하여 싸우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왕은…….”

이건 보스와 싸워 본 사람만 아는 내용.

“병정이나 일꾼이 죽으면 힘이 증폭됩니다.”

“증폭이요?”

“크기는 그대로인데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해집니다.”

소이탄으로 군세를 다 죽인다?

그러면 호드와 비슷한 수준의 케테르를 상대해야 한다.

호드와는 달리 [투기장]을 쓰지는 못하지만.

“또, 특수종 중에는 불을 흡수하는 개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핵은 어떻습니까?”

누군가가 제안하자,

쾅!

빡친 안찰스 왕이 테이블을 후려쳤다.

“영국민들이 대륙으로 피난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핵을 쏘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이대로 가면 영국은 다시 멸망할 겁니다!”

“그렇다 해도 핵은 용납할 수 없소. 만약 쏘겠다면 EU에서 영국민들의 피난을 받아 주겠다고 약속해야 할 거요!”

고성이 오가는 회의장.

능구렁이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편하다.

솔직하니까 좋잖냐.

“마스터 이께서는 최대로 증폭된 여왕을 상대로 싸울 수 있습니까?”

싸울 수야 있다.

이길 자신도 있고.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급격히 강력해진 여왕은 특별한 알을 낳는다.

그 알에서는 공주들이 태어난다.

이들은 날개가 달려있고, 여왕의 페로몬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자유롭게 알을 낳는다.

이것이 섬나라에 케테르가 나타났음에도, 1회차 때 전 유럽이 초토화된 이유.

그걸 막으려고 2회차 때 여왕을 먼저 잡았더니 단체로 알을 낳아서 영국이 멸망했고.

문제는 내가 3회차 회귀했다는 걸 숨기고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냐는 건데…….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만…….”

그냥 자신 없는 척하는 게 낫겠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다음 보스에 대해 논의하죠.”

의장이 정리하자 군인 정복 아저씨는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헤세드는 두 개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편의상 수컷과 암컷이라 하겠습니다.”

동유럽을 초토화하고 나아가 중동에까지 피해를 끼쳤던 보스.

“수컷은 매우 강력한 공격을 하며, 암컷은 회복과 정신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수호 형이 개고생했지.

형의 [불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단단하지만, 정신 공격에는 쥐약이었으니까.

“문제는 수컷을 먼저 죽일 경우, 암컷은 석상이 되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석상은 뭐고 눈물은 뭡니까?”

“석상이 되면 방어력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마스터 이조차도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칠주야가 걸렸습니다.”

“눈물은…….”

“정신이 약한 이들은 자살하고, 곳곳의 시체는 좀비가 되어 인간을 공격합니다. 영화처럼 좀비에게 물리면 인간도 좀비가 되어 버립니다.”

“러시아 혈전이 그것이군요.”

모두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전 회차 때 내가 수컷을 먼저 죽였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암컷을 먼저 죽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아마 수컷도 특수한 공격을 하리라 예측합니다.”

똑똑하네.

RPG처럼 적을 공략할 때는 힐러부터 잡는 게 기본이다.

그래서 1회차 때, 회복과 정신공격을 하는 암컷을 먼저 죽였다.

수컷은 엄청나게 분노하더니 광범위 공격을 무차별로 폭격했다.

심지어 공격력도 크게 강화되었고.

동유럽은 물론, 우랄산맥 너머와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지도에서 사라졌지.

“그러면 동시에 잡으면 되지 않습니까?”

“마스터 이가 하나를 상대할 때, 그에 맞춰 다른 하나를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만 한 무력을 가진 이가 없지.

결국 내가 속도 조절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 얼마나 피해를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헤세드가 나타나는 지점에 핵을 쏘면…….”

“자국에 핵을 쏘겠다는 겁니까!”

슬로베니아 사람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분개했다.

“핵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합시다.”

의장이 핵 만능론을 주장하는 사람의 입을 닥치게 했다.

의장은 이탈리아 인.

이탈리아는 슬로베니아와 접경 국가다.

“그러면 어떻게 방법이…….”

다들 나를 쳐다봤다.

분명 똑똑한 사람들일 텐데, 왜 이렇게 멍청해 보이지?

“혼자서 둘을 죽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겁니다.”

그사이 어떤 식으로든 피해는 커지겠지.

“피해를 줄이려면 다른 개체를 상대할 정예는 꼭 필요합니다. 헤세드의 아이들을 상대로 길을 열 군대도 필요하고요.”

이것이 내 경험으로 만들어진 오랏트를 상대하는 공식.

길을 여는 일만의 정예병.

다섯 명씩 다섯 팀으로 이루어진 보스 전담팀.

길을 열 필요가 없는 보스는 오직 바보인 호드뿐이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다음 보스에 대해 논의하죠.”

복붙한 것 같은 대사다.

“다음 보스는 호드. 사실상 제일 무서운 존재입니다.”

허허. 이 양반이 말쿠트랑 안 싸워 봐서 헛소리하네.

다른 보스 다 합쳐도 말쿠트가 더 무섭다.

“호드를 상대로 피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유럽인들을 임시 피난시키는 것입니다.”

호드는 바보라 정정당당한 것을 좋아한다.

제 부하들도 엄청 많은데, 반드시 상대의 인원수만큼만 소환해서 일대일을 즐긴다.

그래서 인터넷상으로는 막고라(일기토) 성애자라고 불리기도 하지.

“문제는 미국은 멀고, 중동은 위험하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명령해서 위험분자들 싹 정리했고, 대신 좋은 사람들로 채웠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나를 바라보는 눈이 힘만 센 무식한 학살자에서 선견지명 있는 현자로 바뀌었다.

양아치냐?

“하지만…….”

“뭐가 문제죠?”

“중동의 난민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해 왔습니다. 그곳에 유럽인들이 간다면…….”

“대충 참으세요. 호드의 군대랑 싸우는 것보다 차별당하는 게 낫죠.”

정의구현도 되겠다, 돌아오면 멀쩡한 집이 기다릴 테니.

“돈이나 빽 있으면 미국이나 캐나다 가라고 하고요.”

“그렇다면 호드는 어떻게…….”

“일대일로 잡겠습니다.”

오랏트를 상대하는 공식은 오직 호드를 상대할 때만 예외다.

바보니까.

“정말 쉽지 않군요. 오랏트의 괴물들은.”

“그래도 이번에는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있을 것 같다니요. 확실합니다. 하하.”

회의장에서 나와 윤아, 그리고 장성급 아저씨 빼고 모두 웃었다.

지들 싸우는 거 아니라 이거지?

나중에 삽질하기 전에 찬물을 끼얹어 줘야겠군.

“예소드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예소드요?”

모두의 눈이 장성급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예소드는 호드 다음으로 나타나는 아홉 번째 보스입니다. 이집트에서 나타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집트면 지중해 국가니 유럽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군요.”

“어떤 특징을 가졌습니까?”

“그건…….”

장성급 아저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소드가 나타나는 시기는 세계가 90%이상 멸망한 수준이다.

당연히 정보도 적다.

“제가 대신 설명해 드리죠. 이집트에서 예소드가 나타나면…….”

하…….

그때를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얘네들이 이해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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