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70화 (71/151)

#70. 해방의 비 (2)

예소드가 등장하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바로…….

“야생 동물이나 가축들이 괴물로 변합니다. 그리고…….”

이게 핵심인데.

“석유가 공룡으로 변합니다.”

내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또한, 석유가 공룡으로 바뀜과 동시에 지구의 산소밀도는 급격하게 높아집니다.”

몸이 약한 사람들은 과호흡으로 떼죽음 당한다.

“범위는…… 범위는 어떻게 됩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럽은 확실하게 영향권 안일 겁니다.”

“맙소사.”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든 동물이 괴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요?”

“양자역학 아십니까?”

내 질문에 안찰스 왕이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동물이 괴물로 변하는 것도 불확정해요.”

석유가 공룡으로 변하는 것도 불확정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네?”

“공룡이 석유가 되었다는 건 옛날 학설입니다. 현재는 해양 플랑크톤이 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공룡이 살던 시기의 중동은 바다였습니다. 공룡이 대량으로 살 수는 없죠.”

오호. 여기에도 이과가 있었구나.

“그런데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오랏트 사태에 왜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를 따지십니까?”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우리는 똑똑히 봤습니다. 유전 지대에서 공룡이 깨어나는 모습을요.”

당시 그걸 본 우리는 모두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어쩌면…….”

“네?”

“석유는 현대의 가장 보편적인 연료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뜻도 됩니다.”

한 마디로 ‘석유와 공룡이 연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매개체로 삼기 편해서.’라는 추측이다.

“석탄은 안 변하던데요?”

“혹시 정제된 석유도 공룡으로 변합니까?”

“그건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에너지원이라는 추측도 빗나간 셈이군요.”

“추측은 과학자들에게 물으시고, 우리는 대책을 의논하죠.”

예소드의 등장으로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확인 사살당했으니까.

“마스터 이께서는 예소드에 이어 말쿠트까지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예소드가 나올 시점엔 세계가 거의 멸망한 상태였을 텐데…….”

“남은 사람을 모아서 어떻게든 잡았습니다.”

예소드는 등장 효과만 특이하지,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그 시기에는 나도 먼치킨 수준이었고.

“그러니 예소드에 대한 대책도 의논하죠. 이집트도 강하긴 하지만, 자력으로 잡는 건 무리입니다.”

중동에는 공룡 떼가 나타나고, 아프리카는 몬스터 월드로 변하니 살아남기도 급급하다.

나조차도 구할 엄두를 못 낼 정도였으니…….

“미국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예소드 등장 후에는 안 가 봐서 공룡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네자흐를 상대하기도 벅찹니다.”

“이번에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저보고 케테르, 헤세드, 호드와 싸울래? 아니면 네자흐랑만 싸울래? 하면 무조건 전자를 고를 겁니다.”

“하지만 예소드가 나올 때쯤이면 유럽도 그들을 도와줄 여력이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우리보고 알아서 해라?

도움은 도움대로 받고?

“잠깐만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윤아가 발끈했다.

“회의라고 하면서 사장님께만 모든 짐을 떠넘기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이러려고 그렇게 비난하고 괴롭게 하셨습니까? 아무리 위기라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윤아야…… 너…… 마누라 같다.

자기는 늘 바가지 긁으면서, 남이 나를 갈구는 꼴은 못 보고.

“잠시만.”

“넌 조용히 해!”

거봐. 너는 막 대하잖아.

“최소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유럽이 이렇게 후안무치한 곳이었어요?”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과하긴 뭐가 과해요? 그동안 사장님께서 들으셨던 말에 비하면 별것도 아닙니다!”

윤아가 진심으로 화난 듯 분노를 발산하자 회의실 집기들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의 마나량은 나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수준.

아무리 살의가 없다고 해도, 그 압력은 어지간한 헌터도 버티기 힘들 정도다.

“EU에서는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언론을 통해서 비난 여론을 조장하셨죠.”

“이번에 있었던 나타스 사건만 해도 불문에 부쳤습니다.”

“아쉬운 게 있으니 그러셨지 않습니까?”

“이곳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자유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쪽을 도와주지 않아도 될 자유도 있겠네요?”

역시 윤아.

헬조선 출신이라 갑질 당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여차할 때는 역갑질도 잘하는구나.

“GG의 경영자 중 한 명으로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무엇을요?”

“혼자만 이득 보고 내빼는 행위. 절대 용납 못 합니다. 그러니 선택하셔야 할 겁니다.”

지난 5개월간의 여정.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었지.

그 시간, 그 경험은 이타적인 윤아조차도 인간불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답답한 상황도 많았고, 끔찍한 상황이 많았으니까.

“같이 살든가, 혼자 죽든가.”

이제는 안락의자에 앉아 훈수와 비난만 하던 인간들에게.

역으로 선택을 강요한다.

내가 골라야 했던 선택지보다는 훨씬 쉽다.

최선과 최악 중에 고르면 되는 것이니까.

“마스터 이.”

“말씀하세요.”

“당신께서도 같은 생각입니까?”

그러나 그 선택조차 하지 못하고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약 4개월 전, 서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기억합니다.”

“제가 회담을 엎어 버리고 한국을 벗어난 이유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한다. 따라서 국익을 철저히 우선시한다.”

정치가들은 표를 얻기 위해 그들의 의견을 따랐을 뿐이다.

“그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오랏트에게 살아남으려면 부족하겠다. 그런 한계를 느꼈습니다.”

권익을 누리다가 멸망할 것인가.

처참해지더라도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과거 덩케르크에서 그리하였듯이 지금은 생존이 최우선입니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이 확실히 살아남는 방법만 생각하지요. 회의의 내용이 증명하듯 말입니다.”

할 만큼 했다.

이제 아군과 방관자를 확실히 구별해야 할 때다.

“그러니 협조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곳에는 저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겠습니다.”

“협조는 합니다.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또한, 도움만 받고 도와주려는 시늉만 하는 나라에게는 받은 것 이상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 줄 것입니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께로 넘어갔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 확신이 든다.

리디아가 GG를 설립한 건 신의 한 수였다고.

“결정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한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결정권자들 아닙니까?”

“이런 중대한 사항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뭘 그리 망설이십니까? 여러분들은 민주주의에 따라 국민에게 위임받지 않았습니까?”

선택은 한 명이.

“여러분들이 한 선택의 대가는 여러분들을 뽑은 국민이 같이 치르게 된다. 그뿐입니다.”

책임은 모두가.

그래서 눈앞의 이득만 보고 사람을 뽑으면 안 되는 것이고.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무서운 것이다.

“아무래도 대답하실 생각이 없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결정은 둘째치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저 생각만 묻는 자리에서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슬픈 일이지요. 이제는 정치가가 자신의 신념도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요.”

그것도 위기의 순간에 말이다.

“원하신다면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지요. 열심히 여쭤보세요.”

“그렇게 압박하지 않으셔도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독일의 앙헬 총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일을 했습니다. 마스터 이.”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그곳에는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브뤼셀 회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매우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어째서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악플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욕하는 악플도 있었고, 나를 욕하는 악플은 정말 많았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참다 참다 못해 폭발한 윤아마저 욕을 먹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다시금 인내심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니들은 정말 구해 줄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제 아군이 된 나라는 모두 전시체제로 돌입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아군의 전력을 깎아 먹는 사람은 전부 찾아내어 입을 찢어 놓을 겁니다.”

나만 욕먹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동료들마저 손가락질받고 돌을 맞는 이상 절대 참을 수 없다.

“나치와 매우 닮은 모습이군요.”

“동의한 나라에서만 합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존중하니까요.”

“비판 없는 성역은 반드시 썩습니다!”

누군가가 건수 잡았다는 듯이 크게 반발했다.

“인권 단체, 동물 보호 단체, 환경 보호 단체 전부 그렇지 않았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비판하면 공공의 적이 되어 사회에서 매장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당신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권리는 없고 책임만 가득한 독재자겠지만요.”

기껏해야 면책 특권인데, 이것도 부여받은 게 아니라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약해지면 저들은 언제든 죄를 물으러 올 것이다.

“고결한 영웅은 할리우드에 가서 찾으시고요. 전 억울해서 더는 이렇게 못 살겠습니다.”

말씀이 길어지시는 것을 보니 좀 후달리시나 본데…….

“그냥 선택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예.’하면 간섭도 많고, 내부적인 반발도 심할 것이고.”

대신 최강이 도와주러 오겠지.

“‘아니오.’를 하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실 겁니다.”

대신 죽을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겠지.

“억울해하실 것 없습니다. ‘동의 안 하면 죽인다.’가 아니라, ‘동의 안 하면 안 도와주겠다.’니까요.”

원래의 계획보다 너무 강수를 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제 와서 욕 좀 더 먹는다고 해도 새로울 것도 없다.

악역은 익숙하니까.

“아무래도 여러분들은 책임질 생각이 없으신 것 같으니…….”

권력의 분산은 책임의 분산으로 이어지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의 위기에는 극도로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무리를 이루어야 강해지는 인간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낸 위대한 정치 체제, 민주주의.

하지만 머릿수가 의미 없는 적을 만났을 때.

그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주의 시민들이 얼마나 성숙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지 봅시다.”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안찰스 왕을 보았다.

놀랍게도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민 중 절반 이상이 브렉시트가 뭔지도 몰랐다지?

***

회의는 사흘의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열렸다.

그사이 유럽 각지에서는 투표를 시행했다.

“좋은 날입니다. 유럽의 운명이 결정되기에는 더욱 더요.”

그들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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