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80화 (81/151)

#80. 반격 (2)

인류는 회귀했다.

헌터를 중심으로 대비했고, 어느 때보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괴물도 회귀했다.

이전보다 강력해졌으며, 인간을 경험한 그들은 인간을 상대할 새로운 전술을 사용했다.

위장, 유인, 매복.

그들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전 방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전을 실행했다.

***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다! 이 괴물아!”

투두두두!

까가가강!

“히이익!”

아무리 총을 쏘고, 주포를 갈겨도 녀석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스겅!

반면 전차는 장군급도 아닌 고작 병사들에게도 쉽게 동강 났다.

“우린 졌어. 인류는 이제 도태된 거야…….”

쾅!

푹!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에 케테르 병사가 단숨에 목숨을 잃었다.

“관통…… 했다? 저 외골격을 뚫고?”

망연자실한 인도군 위로 전투기 편대가 지나갔다.

같은 인도군의 전투기 편대였다.

전투기들은 한 바퀴 선회하더니 근처에 있는 케테르 병사와 일꾼들을 일방적으로 벌집으로 만들었다.

“사, 살았다. 살았어!”

까가가강!

하지만 장군급은 뚫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전투기는 돌아갔다.

“야! 그냥 가면 어떻게 해!”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어찌할 수 없었던 장군급은 결국 남겨진 전차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꽤 아팠는지 강렬한 살기까지 띠고 있었다.

“하하……. 죽이려면 그냥 죽여! 언제까지 희망 고문할 거냐!”

“이번까지가 아닐까?”

“여, 여자?”

“나처럼 섹시한 남자도 있나?”

보호의와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분명 여자였다.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인데…….

“뭐해? 빨리 후퇴해.”

“여긴 위험합니다.”

“오우. 젠틀한데?”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장군급을 가리켰다.

순간 공중에서 멋대로 무기가 생성되더니 일제히 발사되었다.

콰콰콰쾅!

푸푸푸푹!

보는 사람이 허무해질 정도로 장군급들은 모두 관통되어 쓰러졌다.

“무, 무슨 마법을 부린 겁니까?”

“마법이 아니야. 과학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기가 나타나는 게 과학입니까?”

“아. 그건 스킬. 하지만 현실에도 있는 무기야.”

그녀는 인도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지옥에서 탈출한 걸 축하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철갑탄이 안 통하는 걸 보고 성형작약탄으로 바꾸라고 했어. 장군급에게는 안 통하니 전투기는 돌아간 거고.”

“장군급을 죽인 무기는 뭡니까?”

“미합중국 전통 무술, 세이보야.”

“세이보요?”

“현존하는 포탄 중 표적 파괴는 원탑인 물건이지. 날개 안정 분리 철갑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케테르 잡기도 시간 모자란 데 내가 왜 이런 걸 설명하고 있지?”

“케테르를…… 잡는다고요?”

“내 남자 건드렸으면 피를 봐야지.”

“내, 내 남자?”

“앵무새야?”

“그게 아니라 당신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게 신기해서……. 아!”

떠올랐다.

이 목소리는 GG의 CFO, 리디아 브레튼우즈의 목소리다.

현존하는 최고의 헌터 중 하나.

“하하하. 저 진짜 살았군요.”

“…… 아니. 곧 내 손에 죽을 것 같은데?”

***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한 놈이라도 데리고 가겠다!”

전차가 파괴되어 내동댕이쳐진 전차병이 눈에 독기를 품었다.

탄띠에 단 한 발 있는 수류탄을 들었다.

녀석에게 잡아먹히면서 입 안에 터뜨리면 아무리 괴물이라도 죽겠지.

“멍청아. 가족도 있는 놈이 무슨 자폭 공격을 하겠다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됐고, 넘겨. 난 가족도 없다.”

“전차장님이 죽는 걸 볼 바에야 차라리 제가 죽겠습니다.”

“닥치고 내놓으라고! 명령이다!”

“거부합니다!”

그 사이 케테르 군세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빨리 안 내놔!”

“싫습니다. 오래오래 사십쇼!”

“이게 의좋은 형제인지 뭔지 하는 그건가…….”

둘은 갑작스럽게 껴든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누, 누구십니까?”

“어둠 속에서 지구를 수호하는 자, 다크 나이트.”

“에?”

“다. 크. 나. 이. 트. 라고요.”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은 게 너무 현실적입니다만…….”

“강철 인간(Iron man)의 슈트 같은 거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더는 태클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케테르의 군세가 코앞까지 다가왔으니까.

“위험합니다!”

“훗. 애송이들. 이 칼이 보이나?”

그는 단검 두 개를 꺼내며 으스대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총도 안 통하는 데 무슨 단검이란 말인가.

“칼을 봤으면 이미 늦은 거야.”

그 말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윽고 나타났을 땐 장군급을 제외한 모든 군세가 쓰러졌다.

가공할 정도의 속도다.

“저기요.”

“네?”

멍하니 그걸 보던 인도군은 어느새 나타난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하죠?”

“무슨 말씀입니까?”

“장군급은 껍질이 두꺼워서 칼날이 다 박혀도 안 죽는데…….”

“저희 죽은 겁니까?”

“아뇨. 권총 있으세요?”

옆에 있던 전차장이 홀린 것처럼 권총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다크 나이트라서 총은 안 들고 다녔는데, 권총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할까 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권총 따위가 통할 리 없을 텐데…….”

“녀석들은 탱크의 주포도 튕겨내는 괴물…….”

탕!

총소리가 들리고 장군급 하나가 쓰러졌다.

“말도 안 돼…….”

탕! 탕! 탕!

이어 열여섯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열여섯 개체의 장군급이 쓰러졌다.

“저기요…….”

“네!”

이번에는 마치 사령관을 본 것처럼 자동으로 군기가 바짝 들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죄송한데 총알 좀 더 주세요. 다 썼네요.”

“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칼로 구멍 내고, 거기다가 쐈어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구멍을 낸 건지가 궁금한 겁니다만.”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멋지게 뒤로 돌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전 다크 나이트니까요.”

“여기 탄창 있습니다.”

“아! 고마워요. 깜빡하고 그냥 갈 뻔했네.”

“기억하겠습니다. 다크 나이트.”

“훗. 아디오스.”

인도군들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할까…….

병신 같지만 멋있다.

***

박수호는 한국의 정예를 이끌고 [개미지옥]의 중심이었던 곳으로 공간 이동했다.

목적은 이윤아의 보호.

“와……. 이게 핵이구나.”

“대략 2~30만 정도 죽은 것 같은데?”

“수호 오빠는 보면 알아요?”

“핵의 반경을 넓이로 계산해서 병사나 일꾼의 크기로 나누면 대충 나오지.”

“병사나 일꾼의 크기는 어떻게 계산해요?”

“공업 수학이라고 근삿값으로 대충 구하는 수학이 있어.”

천천히 걸어가던 그녀는 유난히 깊게 원형으로 파인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틀림없다.

여기에서 핵이 터졌다.

“수호 오빠. 여기예요.”

“전군 밀집 방어 태세로!”

“예!”

대한민국 육군 소속, 특수 헌터 부대 300명이 일제히 움직였다.

방진이 삽시간에 완벽하게 짜이자 윤아는 방독면과 보호의를 벗었다.

이런 대규모 작업을 할 때는 좀 많이 방해되니까.

“집중해야 하니까 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돼요.”

“걱정하지 마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해 줄 테니까.”

“시작할게요. 끝날 때까지는 아마 옆에서 뭐라 해도 못 들을 거예요. 급한 일 있으면 쳐서 깨우세요.”

“알았다. 별일 없을 것 같으니 힘내라.”

그녀의 스킬은 [치유].

생명을 치료하고, 영혼을 치료하며, 마나만 충분하다면 세상까지 치료할 수 있다!

윤아가 제대로 힘을 쓰자, 그녀의 몸이 살짝 떠오르면서 엄청난 빛이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그 빛은 방사성 낙진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정화하며 크기가 점점 커졌다.

“오오.”

“성녀다!”

“여신이다!”

그 빛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이 아프지 않고 오히려 포근하고 따뜻했다.

매일 군대에서 남자들만 보던 이들은 성스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윤아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마치 내 여자 친구 같다.

있다고는 믿는데 보이지는 않으니까.

“빨리 사주 경계 안 하냐? 돌아가서 군기 교육대 가고 싶지?”

“아닙니다!”

“이미 임자 있으니까 괜히 헛짓하지 마라. 나중에 마음만 아프다.”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뭔데?”

“그저…… 숭배하고 싶습니다.”

해탈한 듯한 이들의 표정을 보며 박수호는 한숨 푹 쉬었다.

“에휴. 불쌍한 것들…….”

300명 전원 S급 랭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자랑!

하지만 징집병이라 최저 시급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

근데 해외에 전쟁터로 강제 파병 와서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다!

“이번 봉급부터는 ‘복무 헌터 특별법’ 적용으로 상당히 오르고, 파병 수당에 전투 근무 수당까지 해서 엄청 많이 나오겠지만…….”

그 돈은 10일에 받는다. 앞으로 열흘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쟁 중.

오늘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마음대로 해라. 내가 사주 경계 하지 뭐.”

대충 보니 순신이가 다 쓸어 놔서 적도 없을 것 같은데…….

“있긴 있네. 전원 집중!”

박수호가 일갈하기 전부터 한국 헌터들은 이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야생의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섬멸이 아니라, 한 시간 동안 버티는 것이다.”

“예!”

“그러니 공을 탐내서 괜히 앞서 나가지 마라. 어차피 공을 세워 봐야 전역하면 별거 없다.”

“예!”

“목숨 잘 간수해라. 니들 대부분 병장인데 지금 죽으면 무슨 개죽음이냐.”

“…… 예!”

말년에 전쟁이라니!

말년에 아포칼립스라니!

억울해서 못 죽는다!

한국 헌터들의 생존 의지가 급격히 올랐다.

***

패잔병을 소탕하다가 뉴델리에서 퍼져나오는 따스한 빛을 보았다.

그 빛에 닿자 케테르의 푸른 피도, 방사능으로 점철된 검은 비도 깨끗한 물로 정화되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이는 윤아 정도밖에 없지.

“부상자들 치료하느라 마나도 부족할 텐데…….”

우리가 이렇게 애프터서비스까지 해 줄 의리는 없지만.

트롤들이 싼 똥을 치우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피폭으로 사람들이 죽느니 이게 낫다.

대신 핵 쏜 인간들은 정의 구현을 해 줘야겠지.

“나도 가서 마나를 보태 줄……. 아니지.”

윤아 혼자 저기로 갔을 리가 없다.

수호 형이 보호하러 따라갔겠지.

마나가 부족해지면 알아서 보충해 줄 것이다.

“그냥 나도 하자.”

스티그마를 익힌 나이기에 윤아가 쓸 수 있는 기술은 나도 쓸 수 있다.

뉴델리를 바라보며 나 역시 [정화의 빛]을 방출했다.

“오. 처음 해 봤는데 생각보다 쉽네?”

10초쯤 써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공간을 유지해야 하는 [개미지옥]에 비해 [정화의 빛]은 그저 방출하면 되는 거라서 정신 집중도 필요 없었다.

“심심하다. 그냥 이거 쓴 상태로 마저 잡으러 다녀야겠다.”

1회차 때는 케테르가 유럽을 다 때려 부쉈을 때 참전했었다.

“그때는 케테르가 통곡의 벽처럼 보였는데…….”

2회차 케테르가 나타났을 때는 [유언]에 스킬 하나 없는 깡통 상태.

[성장]으로는 병사 상대하기도 힘들고, [호흡]으로 마나도 별로 못 모았었지.

대신 전멸당한 영국군 병기창에서 무기를 주워다가 필사의 사투를 벌였었다.

“3회차가 되니 케테르 정도는 밥이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오랏트의 괴물들마저 회귀했다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나올 놈들을 생각하면 케테르는 튜토리얼 보스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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