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104화 (105/151)

#104. 분열 (4)

2022년 11월 30일.

공영 방송 HBS 방송국 스튜디오.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설전이 시작되었다.

장 대통령과 마스터 이는 자신의 정의를 연설하고, 그 뒤에 서로의 의견에 반박하는 등의 토론 과정을 거친다.

그 후 국민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투표한다.

그 투표에 따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된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국민이 그걸 바란다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 예를 들어 국력의 쇠락이나 심지어는 멸망에 이를 위험이 있다고 해도 실행한다.

그 때문에 민주주의는 양날의 검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라고 말한다.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러한 의문을 가진 채, 무표정한 얼굴로 강채라 의원은 단상 앞에 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국회 의원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중 한 명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국회 의원이 아닌 한 명의 국민이라고 강조한 까닭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사회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고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했고, 이러한 위기를 앞에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미증유(未曾有).

일찍이(曾) 있던 적이(有) 없음(未).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위기이기에 참고할 자료가 없다.

하지만 실패가 용납되는 사안이 아니다.

실패란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의견이 하나로 모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럴 때 국가가 분열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만큼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사전에 공지했고, 방송의 자막으로도 계속 송출하고 있다.

이 방송이 끝나는 다음 날 투표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대한민국의 방향성이 정해진 다고.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인 장 대통령님은 무력은 반드시 정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올린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고귀한 가치는 절대 포기할 수 없고, 포기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오른쪽에는 장 대통령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장 대통령은 저렴하지도, 비싸 보이지도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정장은 물론 넥타이에 이르기까지 한 점의 주름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깔끔했다.

구두 역시도 ‘거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광을 낸 상태였다.

“인류 최강, 혹은 인류의 선봉장이라 불리는 마스터 이는 생존만이 절대 과제이며, 이를 위해선 아무리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이라도 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마스터 이가 조금은 불량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복장에서도 차이가 났다.

그는 누가 봐도 집에서 뒹굴고 있다가 바로 나온 사람처럼 적당한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강채라는 이 부분에서 국민 중 많은 이가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옷의 차이는 그들의 마음가짐의 차이를 나타낸다.

장 대통령은 투표에서 진다면 사실상 모든 걸 내려놔야 하니, 절대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나왔다.

반면 마스터 이는 진다면 한국을 버리고 딴 나라로 가면 되니, 반쯤은 방관자 같은 마음으로 나왔다.

하지만…….

결사의 각오로 나온 사람이 적당한 마음으로 나온 사람을 이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정치 참여의 권리, 투표권입니다.”

기권 표를 던지거나 투표에 불참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역대급 투표율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수식어가 아닌, 정말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투표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두 분의 토론을 들어 보고 부디 신중하게 결정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먼저 장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위기를 마주했습니다.”

오랏트 사태 역시 살면서 수없이 마주했던 위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위기감을 조금이나마 낮춘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 끝났을 때 최빈국으로 떨어졌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이 100년이 지나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들 말했습니다.”

불가능을 언급하고, 이를 가능으로 바꿨음을 아는 국민에게 자부심과 함께 기대감을 부여한다.

“군부 독재의 시대, 우리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았고 헌법에도 명시된 권리를 억압당했고, 과연 빛은 언제 오는지 한탄할 정도로 암울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동시에 저쪽을 선택했을 경우, 어떠한 미래가 올 수 있는지 불안을 심는다.

“외환 위기 시대. 기업이 줄지어 도산하고 대량의 실직자가 발생했으며 대한민국의 경제를 IMF에게 맡기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국민들이 직접 겪은, 혹은 부모가 겪은 최악의 위기를 언급하여 이번 위기 역시도 잘 이겨 낼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리하여서 뿌려 놓았던 씨앗들을 회수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G20의 회원국으로 국제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수석으로 합격했든, 꼴등으로 합격했든 합격했다는 사실만큼은 같다.

국력의 차이는 실감하기에는 막연한 요소이기에 이러한 서술 방법은 한국의 위치를 실상보다 훨씬 위로 끌어 올리는 효과를 보인다.

“또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국가로서 현재는 여러 개발 도상국의 모범이 되고 있지요.”

이번 토론에서 장 대통령의 전략은 국민에게 강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끌어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외환 위기요?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위기에 얼마나 강한지를 세계만방에 보여 주었으며, 조기 상환으로 IMF 시대를 벗어난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장 대통령이 보여줄 만한 패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그동안 줄곧 있었던 일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인터넷의 보급이나 정보의 확산 등으로 좋게 말하면 똑똑한 국민, 나쁘게 말하면 속이기 힘든 국민이 늘어난 상황.

“이번 위기 역시도 우리는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힘을 모으면, 이겨 내지 못할 위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애국심에 호소하고,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음을 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이상한 점을 눈치챌 것이다.

관념적 표현만 하고 구체적인 방법이 누락되어 있음을.

“눈앞의 고난이 힘겹고 어렵다고 해서 본질적인 자유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라도 국민을 하찮게 여긴다면, 그리고 그것을 국민이 용납한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일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물론 마스터 이가 진행하는 방식이 지닌 위험성을 말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임은 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의 의지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감히 단언합니다.”

정치에 잔뼈가 굵은 장 대통령이 단순히 이것만으로 투표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터.

그는 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려고 할 때 이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다면, 앞으로는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등장하더라도 국민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어떠한 위기도 가뿐히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요!”

일부러 허점을 내보이는 장 대통령의 모습에 강채라는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한숨을 내뱉었다.

***

이어 마스터 이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둘의 연설이 끝나고 나면 토론이 시작되는데, 이래서야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마스터 이가 한없이 불량하고 건방진 자세로 연설을 시작한 것이었다.

“너희들이 저 말을 믿는 등신들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대화는 원래 사람이랑 하는 것이니까.”

처음부터 이길 생각이 없는 건가?

“다른 거? 뭐 좋다 이거야. 근데 IMF가 왜 왔어? 윗대가리들의 방만한 경영 때문 아니야? 군사 정권보다 약한 모습 보여 줄 수 없다고 1달러에 800원이라는 미친 환율을 방어하느라 외환을 다 때려 박아서 생긴 거 아니냐고.”

……라고 생각했는데 신랄한 어조로 독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가 이러한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대통령과 하는 설전에서도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놓고 뭐라고 했어. 국민이 수입 물건을 좋아해서, 국민이 해외여행을 좋아해서 위기가 발생했다고 했지.”

어안이 벙벙하던 강채라는 이내 깨달았다.

이것 역시 전술이라고.

‘상식을 깨라!’라는 메시지를 파격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메시지가 좋다 해도 이런 식으로 표현해서야 그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조차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이다.

“금 모으기 운동? 그것도 문제 많잖아? 열심히 모은 금을 어떻게 관리했어? 세계의 금 시세 폭락시켜서 욕은 욕대로 처먹고, 정작 외환은 얼마 못 벌었지. 나중엔 비리도 줄줄이 나오더만. 실적 뻥튀기나 부가세 포탈이라든가. 근데 처벌은 못 한다더라. 공소 시효가 끝나서. 이에 대해 ‘책임’진 사람이 있나?”

책임.

그가 강조한 단어 하나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 외에도 뭔 위기가 터져서 문제가 생기면 죄다 국민 탓으로 돌렸잖아. 한국이 물 부족 국가가 된 건 국민이 물을 너무 펑펑 써서라든가. 알고 봤더니 상수도 관리를 개판으로 해서 그랬지? 지금껏 속아 왔으면서 아직도 정부를 믿냐?”

너희는 속고 있다.

정부는 결정할 뿐 책임진 적이 없다. 따라서 앞서 장 대통령이 말한 것은 전부 거짓이다.

아주 지독한 방식으로 상대 논리의 허점을 후벼 판 셈이었다.

“저 대통령님 말씀 듣고 감동한 사람들은 지금 바로 ‘나는 개돼지입니다.’라고 복창해라. 왜냐고?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말만 했고, 그래서 어떻게 헤쳐 나갈지는 전혀 언급이 없잖아. 그걸 믿어? 그러다 실패하면?”

스튜디오 안에는 이미 장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GG에게도 절반의 좌석을 배정하려 했지만, 마스터 이가 거부했다.

혼자서 충분하다고.

“사실 이런 가정을 하는 것조차 의미 없는 게 우리 모두 멸망했던 기억이 있잖아. 설마 고새 까먹었어? 이번에는 내가 너무 잘 막아서 위기감이 안 드나?”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켰다.

다른 이들의 적대적인 시선에도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내 태도가 이렇게 건방진 이유가 뭘까?”

분위기가 변했다.

이전에는 동네 양아치 같은 껄렁껄렁한 모습에 신용이라고는 조금도 주지 못할 언행을 하고 있었으나, 눈빛과 기세에서 절대자의 위엄이 느껴졌다.

이는 TV 화면 밖에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겉보기엔 여전히 껄렁껄렁한 모습이었으니까.

“나도 알고 있어. 정중하고 차분히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방법도 있고, 열정을 담아 연설을 하는 방법도 있지. GG의 인재들이 어떤 애들인데 그런 것 하나 지도 안 해 줬겠냐.”

하지만 스튜디오 안은 달랐다.

장 대통령에게는 환호하고, 마스터 이에게는 야유를 붓던 이들이 전부 압도되어 침묵했다.

“그런데도 이러는 이유는 일부러야. 니들이 본질을 볼 줄 아느냐, 모르느냐 그걸 확인하려고. 지금 태도가 중요해? 말투가 중요해? 니들 목숨이 달린 일인데?”

이번에는 살기까지 뿜어 대었다.

여전히 화면 밖에서는 스튜디오 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장 대통령이나 강채라마저도 식은땀이 흘러나올 만큼 살벌한 분위기였다.

걸리면 죽는다.

방청객들은 그러한 느낌까지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유, 평등, 인권 다 좋아. 근데 그것도 다 살아남아야 누릴 수 있는 거 아니야? 이 문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적…… 아니, 범지구적 과제를 누가, 어떻게 더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느냐 아닐까?”

기세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한 포식자는 느긋하게 웃었다.

“자, 이제 묻지.”

그리고 이빨과 발톱을 들이밀고 선택을 요구한다.

“너희의 목숨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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