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마녀사냥 (1)
전쟁이 일어나면 늘 전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무용담은 계속해서 회자되고, 어떤 이는 역사에 기록되어 대대손손 칭송받는다.
전투가 끝나면 유능한 행정관이나 외교관이 조명을 받는다.
어떤 이는 승리를 활용하고, 다른 이는 패배의 후유증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이 전쟁은 달랐다.
인류는 승자가 되었어도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다음 전쟁을 대비해야만 했다.
패자는 사라질 뿐, 어떠한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보스전이 끝나고 나면 치유사가 각광받았다.
손짓만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평생 병상에서 살아야 할 병자도 순식간에 일으켜 세우니까.
그리고 그 정점이 윤아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다음은 어디죠?”
“이제 좀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 진짜 쓰러지십니다.”
“전염병은 초기에 잡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 손 쓸 수가 없게 돼요. 지금 고생하더라도 움직이는 게 좋아요.”
현재 중국의 상황은 심각했다.
헤세드 암컷으로 인해 수억의 좀비가 생겨났고, 좀비에게 물리면 멀쩡한 사람도 한 시간 이내에 좀비로 변한다.
귀찮은 점은 좀비와 접촉이 없더라도, [붉은 비]가 내렸던 지역에 오래 있는 것만으로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럽의 상황도 심각하다고 들었어요. 지원할 여력이 있을까요?”
“여기보다는 괜찮습니다.”
“그래요? 몇몇 수도가 통째로 날아갔다고 들었는데요?”
“예. 그래서 사망자는 많아도 부상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신 방사능에 오염된 곳을 정화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슬로베니아에 쓴 핵은 지중해 일대에 영향을 미치고, 런던에 쏜 핵에 의해 북해가 오염되었다.
그나마 리디아가 2차 핵 공격을 무력화했기 망정이지, 그것까지 허용했다면 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곳의 정리가 끝나면 알아서 오겠죠.”
모쿠슈라 같은 치유사도 있고, 모자이크처럼 스킬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자도 있다.
상황이 더 악화하지만 않는다면 한 달 이내에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다음은 후난성입니다. 차에 타세요.”
“한시가 급하니 [공간 도약]으로 가죠.”
“여기서 후난성의 성도, 창사시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길 추천드립니다.”
“알았어요. 배려 감사해요.”
후난성은 광동성 바로 위에 있기에 [붉은 비]의 영향이 강한 곳이다.
[공간 도약]했다가는 또 잠시도 쉬기 힘들 것이다.
윤아는 비서가 수배해 온 차에 올라탔다.
긴장의 끈을 놓자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
차가 멈췄다.
깊은 잠에 빠졌던 윤아는 본능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깨닫고 눈을 떴다.
“잘 잤어?”
“……어라?”
분명 차에 탈 때만 해도 자신과 비서밖에 없었는데, 어느 새인가 마스터 이가 옆에 있었다.
“네가 왜 여깄어?”
“급한 일 마무리하고 왔지. 또 무리하고 있을까 봐.”
급한 일이라는 건 인간들 사이에 숨은 괴물들을 도륙하는 것.
“잘 됐어?”
“생각보다 많지는 않더라.”
“그래? 대충 계산해도 개체 수가 천만 단위는 된다고 하지 않았어?”
“정상급 위치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뜻이야. 대부분은 민간인들 사이에 숨어 있겠지.”
“그거 내버려 둬도 괜찮아?”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최대한 어떻게 해 봐야지.”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어. 극복할 수 없다면 적응하게 만들고, 잘 적응한 사람을 위주로 살려야겠지.”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너무 태평한 거 아니야?”
“넌 책임감이 너무 강해.”
“네가 너무 무책임…… 아니,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전 회차 때는 이러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보고 어떻게든 살리려고 기를 썼다.
이번에는 상당히 많이 살아남았기 때문일까, 목숨을 좀 가벼이 보는 경향이 생긴 것 같았다.
그 점이 너무나도 괴롭게 느껴져서 그녀가 더 무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네. 그런 거 아니야. 한 명 살리려고 무리하다가 열 명이 죽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려는 거지.”
“알았어. 너니까 잘하겠지. 근데 한국에는 안 가도 돼?”
“왜?”
“국내에도 도플갱어나 악령 같은 괴물들이 많을 거 아니야.”
“없어. 전혀.”
“진짜?”
다른 나라에서는 괴물을 찾아내기 위해 눈이 벌게졌다고 들었는데 왜 한국은 무사한 걸까.
그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비나가 일부러 한국에는 만들지 않았나?
“정확히 말하자면 있었는데 없어진 거지.”
“왜?”
“네가 다 정화했으니까.”
“내가? 그런 기억 없는데?”
“얼마 전에 네가 광역으로 성역을 구축했잖아.”
“아~”
기억났다.
거의 모든 이가 비나의 꿈속에 들어갔을 때, 윤아는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일찍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로 마스터 위저드가 [이능 간섭]으로 깨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기분 정말 최악이었어.”
“왜?”
“꿈속에서 본 마지막 장면은 배신당해 암습 받은 거였거든. 깨고 나니 현실이었으니 기분이 더럽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늘 조심해.”
사실 이는 꿈 세계의 특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군가 깨어나면 그 존재는 꿈 세계에서는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꿈 세계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꿈 세계에서는 죽거나 혼수상태가 되게끔 만든 모양이었다.
“아무튼, 네가 마스터 위저드와 힘을 합쳐서 한반도 전체를 성역으로 만들었잖아.”
“길거리에서 잠든 사람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잠든 이들을 보호하려고 그랬지.”
“응. 잘했어. 그때 만든 성역으로 인해 비나의 괴물들이 모두 증발한 것 같더라.”
“내가 본의 아니게 비나의 계략을 분쇄한 셈이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이야기를 나누며 잠에서 완전히 깼다고 생각될 때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 근처로 모여들었다.
“영웅문이네.”
영웅문이라면 중국에서 GG를 모방해 만든 헌터 조직이다.
다른 점이라면 화약 병기가 아니라 냉병기를 쓴다는 점일까.
무림 프로젝트의 핵심이자 대표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둘은 차에서 내렸다.
대표로 보이는 장년인이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마스터 이. 성녀님.”
“페이는 어딨죠?”
“광동성을 정찰하러 가셨습니다. 곧 돌아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류 페이는 [공간 제어]와 [화신]이라는 스킬을 가진 SS랭크 헌터.
[화신]은 모든 이능에 대해 면역력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붉은 비]의 영향에서도 자유롭다.
“그 번영했던 창사시(市)가 조용해졌네요.”
마스터 이가 담담하게 감상평을 읊었다.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시는 고대에는 관우와 황충이 일기토를 벌인 곳이고, 근현대에는 마오쩌둥이 처음으로 봉기한 장소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상업, 공업의 중심지이자 주요 항구도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지만, 헤세드에 의해 죽은 자들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까?”
“전 회차에 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장년인도, 윤아도 고개를 갸웃했다.
전 회차에 여기 올 일이 없었을 텐데?
“특이 사항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붉은 비]만 정화되면 최종 목적지인 광동성으로 진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빨리 끝내죠. 윤아야. 넌 쉬고 있어.”
“괜찮겠어?”
“너처럼 완벽하게는 못해도, 힘으로 때려 박는 거야 자신 있으니까.”
그를 중심으로 빛이 반구형으로 퍼져 나갔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주던 초목들도, 미묘하게 더럽다는 인상을 주는 건물 벽도 말끔하게 씻겨 나간다.
그 장관은 최고의 치유사라는 윤아에게도 경이롭게 다가왔다.
비록 섬세함이나 영혼이 따뜻해진다는 감성은 없었지만, 정화하고 치유한다는 기본적인 목적만큼은 자신보다도 뚜렷하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야.”
“응? 뭐가?”
“아니야. 아무것도.”
말을 얼버무렸지만, 이는 윤아만이 느끼는 박탈감은 아니었다.
한때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수많은 인재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아는 몰랐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하위 랭크 헌터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비헌터가 헌터에게 느끼는 박탈감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크다는 사실을.
***
광동성이 정화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헤세드전(戰)은 종식되었다.
다음 보스는 게브라.
그 자체는 그리 강력하지 않지만, 강림할 때 대규모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보스.
이를 막기 위해 각국은 매일 같이 머리를 쥐어짜 내며 대책을 강구했다.
특히 침몰을 막으려는 일본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른 세계의 일이고, 윤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봉사 활동에 전념했다.
어차피 대책 회의에 참여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고마워요. 언니.”
[치유]받은 어린 소녀가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인다.
그 순수한 모습에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저 아이는 이번 헤세드전 때 부모를 잃었다.
이곳이 [붉은 비]의 경계였던 후베이성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그녀이기에 심장을 죄어 오는 죄책감은 더욱 심하게 다가왔다.
“여기도 끝났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비서가 차 한 잔을 건네주며 조용히 옆에 섰다.
요즘 피로 회복을 위해 자주 마시는 오렌지 자몽티.
맑은 주홍빛이 아름답다.
이곳은 후베이성의 한 보육원.
헤세드전 이후, 엄청난 수의 고아가 생긴 지라 허용 인원을 아득히 초과한 상태였다.
당연히 영양 상태도, 건강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저 아이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저 소녀는 괜찮을 겁니다.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니 여러 문파에서 앞다퉈 데려가려 하겠지요.”
그 외의 다른 아이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무척 낮다는 뜻이다.
괴물에 의한 위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정난이다 보니 모두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
그 때문에 주요 물자가 대부분 군인이나 헌터 위주로 보급되고 있고, 자연스럽게 난민이나 보육원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어떻게든 지원을 늘릴 방법을 생각해야…….”
“전무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왜죠?”
“만약 보육원에 충분한 지원을 해 준다면 폭도들이 강탈해 갈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인명 피해도 날 거고요.”
보물을 준다 해도 보물을 지켜 낼 힘이 없다.
어쩌면 없을 때보다 더한 재앙이리라.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을 때,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다.
“소동이 일어났나 보네요. 가 보죠.”
“예.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안전에 유의하세요. 사람의 목숨값은 같지 않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녀의 가치관으로는 부정하고 싶은 이야기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맞는 말이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잘 알고 말고요.”
온갖 무기가 들어있는 [차원 수납] 목걸이를 만지며 밖으로 나갔다.
보육원 밖 도로.
거기에는 한 여자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를 든 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윤아가 소리치자 흥분하여 혈안이 된 남자들의 시선이 윤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중 한 남자가 나섰다.
심하게 흥분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내 심호흡을 하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는 악령에 씌었습니다.”
“악령이요?”
“입에서 기괴한 손이 나오고, 배에서는 악령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걸 똑똑히 봤습니다.”
확실히.
그녀에게서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저들의 몸에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어느 쪽이나 이질적이고 불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물러나세요.”
사람과 괴물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윤아는 매달린 여자에게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