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마녀사냥 (4)
총기가 사용된 지점은 보육원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누군가 목격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윤아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일부러 크게 했다.
예상대로 눈에 띄게 반응한 아이가 있었다.
“[변신]으로 얼굴을 좀 바꿀까?”
누가 봐도 친근하고 해가 없어 보이는 얼굴로.
내 얼굴 보고 애가 자지러질 수도 있잖아.
난 스스로 훈남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그 믿음이 흔들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들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기겁하니까.
밤이 되자, 몰래 보육원의 담을 넘었다.
방으로 찾아갈 필요는 없다.
내가 목표로 한 아이는 보육원의 놀이터에 앉아 있었으니까.
“착한 아이는 잘 시간이란다.”
“늦어요.”
“뭐가?”
“아저씨가요.”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마 나를 기다렸다는 건가?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하네.”
담을 넘은 나를 보고도 놀란 기색이 없는 것부터.
여태까지 본 아이 중 가장 훌륭한 마나의 재능을 지닌 것까지.
“이름이 뭐니?”
“왕 유옌(Wang Yùyán)입니다.”
예의도 바르네.
지금은 보육원에 있지만,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으며 잘 컸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 날 기다렸다는 건, 내가 올 거라고 예상했다는 거지?”
“우웅……. 예상한 건 아니고 보였다고 할까요? 아저씨는 언니랑 친하잖아요. 그렇죠?”
언니란 윤아를 말하는 것 같다.
나랑 윤아는 동갑인데, 왜 나는 아저씨고 윤아는 언니냐.
“그래. 엄청 친하지. 혹시 봤니?”
“선생님이 밖에 못 나가게 하셔서 보지는 못했어요.”
“……그렇구나.”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나.
“하지만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는 알아요.”
“정말?”
“네. 저도 언니가 무사하시길 바라니 적극적으로 협조해 드릴게요.”
그제야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부스스해 보이는 단발에 12세 정도의 평범한 외모였다.
하지만 눈이 굉장히 신비롭게 반짝여서, 어쩐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귀여움이 있었다.
“근데 네가 어떻게 아는 거니?”
“그냥 보여요. 이렇게 움직이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예언이나 예지 계열의 능력인가?
“알았다. 널 믿을게. 어디로 가야 하니?”
“한 번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길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때마다 방향 역시 달라져요.”
“그럼 어떻게 하지?”
소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널 데려가기엔 상당히 위험한 곳일 것 같아서 그건 어렵겠는데.”
“괜찮아요. 전 죽을 자리를 찾아 걸어가지는 않으니까요.”
“…….”
“지금은 아저씨의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에요.”
하긴.
지금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
특히 이 근방은 칙칙한 악령의 악취가 곳곳에서 나는 만큼, 제대로 된 보호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그래. 같이 가자.”
“감사합니다.”
“혹시 네 능력이 뭔지 아니?”
스킬명은 본능적으로 떠오른다.
정체성이 모호해서 다른 누군가가 이름 붙여 주는 예도 있지만, 이 소녀처럼 강력한 능력자는 스스로 잘 안다.
“[길잡이]예요.”
***
윤아는 부자유스럽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대접을 받았다.
다만 이 와중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여기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어. 가능하다면 보스를.”
“그는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왜?”
“저는 그래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그는 증오로 미쳐 버렸거든요.”
“미친 사람을 따르고 있다고?”
“서로의 목적이 같기에 협력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윤아가 보기엔 비서인 아라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미쳤다고 평가할 정도면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 걸까.
“그의 목적은 뭐지?”
“신세계입니다.”
“질문을 잘못했네. 그는 무엇을 증오하고 있지?”
“세계 전부를 증오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정부를 극도로 증오하고 있지요.”
현 정권의 정적(政敵)인가.
소수 민족의 분리-독립운동가인가.
아니면 중국 국경과 접하고 있는 약소국의 국민인가.
개인적으로는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까지 증오하고 있다면, 분리-독립운동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국제 사회는 사실상 그들에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나?”
“물론이지요. 아마 전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강하지 않을까요?”
“순신이보다 강하다고?”
“그건 아닙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소년이 들어왔다.
머리를 박박 민 것이 동자승처럼 보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암울한 기운은 마나를 움직일 수 없어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에 한 번 붙어 본 적이 있거든요. 도저히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붙어 봤다고요?”
“네. 류 페이를 비롯한 영웅문의 잡졸들을 모조리 처단할 기회였는데, 그가 난입하면서 실패했지요.”
말을 차분히 하는 것으로 보아 생각만큼 미친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상할 정도로 그에 대한 원한은 없어 보였다.
강자를 숭상한다는 이념 때문일까?
“이 단체의 이름은 뭐죠?”
“딱히 정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들이 우리를 마교(魔敎)라 정의했으니, 원하는 대로 마교가 되어 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들어 본 적 있다.
무림 프로젝트를 설계하면서, 외부에 거악(巨惡)을 만들어 놓기 위해 억지로 설정했다던가.
실상은 소수 민족을 완전 통합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였지만 말이다.
“절 풀어 줄 생각은 없죠?”
“있습니다.”
“네?”
“당신께서 한족은 절대 구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 주신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
윤아는 일시적으로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는 아라가 언급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사람이다.
자신이 약속을 어길 경우를 대비해 안전장치를 해 둘 것이고,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와 싸워 봤다고 했죠?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도 했고요. 저를 잡아 두는 건 악수가 아닐까요?”
“어차피 우리는 사라집니다. 다만 혼자 사라질 수는 없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려는 것이죠.”
“사라진다고요? 왜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왜 우리가 GG도 모르고 있는 미스트랄 기술을 갖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국제법을 무시했기 때문이겠죠.”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연구를 할 인프라 자체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아!”
윤아는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연구를 못 하는데 기술은 갖고 있다.
어디선가 빼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의 방향성으로 보아 대상은 중국 정부일 가능성이 컸다.
“그들이 미스트랄로 무장한 군대를 이끌고 온다면 우리는 토벌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미스트랄로 무장하여 상대에게도 큰 출혈을 강요한다.
아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군대 자체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면 된다.
국가란 강력한 조직이지만, 국민이라는 기반이 없으면 생각보다 쉽게 망가지는 속성이 있으니까.
“아라 씨.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약속을 이행하세요.”
“때?”
“전 세계적으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거든요.”
Witch-hunt.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었기에 마녀사냥으로 번역되지만, 원래 Witch란 성별에 상관없이 악마를 섬기는 이들을 가리킨다.
지금의 경우 악령에 의해 빙의된 사람을 가리킨다.
문제는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이다.
중세나 근세 때 일어난 마녀사냥처럼 무고한 이들이 학살될 위험이 있었다.
“멍청한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게 만드세요.”
“아라에게 뭘 시키는 거야!”
정신 계열의 헌터라면 모를까, 격투 계열의 헌터인 그녀에게 뭘 시키려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 한 방울만 흘려 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눈물?”
“모르셨습니까?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계승하였습니다.”
윤아가 비서를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헤세드의 힘과 지혜를 말이지요.”
***
그녀는 끝없이 자신을 희생한다.
전시에는 최전방에서.
싸움이 끝난 뒤에는 피해자에게 구제의 손길을 내민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이들을 구해 줄 가치가 있는가.
“책임이 뭐라고. 의무가 뭐라고.”
그녀를 보다 보면 먼저 떠나 버린 연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해맑게 웃던 그의 미소도 함께.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보는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
선의로 손을 내밀어도 원망하고, 질투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 싸움 때문에 내 자식이 죽었어!”
“아아. 집이 무너졌어. 너희가 제때 지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대체 이걸 어떻게 보상할 거냐. 너희 때문에 난 모든 걸 잃었다고!”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
하지만 윤아는 담담히 받아넘겼다.
그때마다 주먹이 떨렸지만, 그녀의 제지로 인해 움직이지 못했다.
저런 인간은 구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구해 주면 감사하다는 마음보다 피해당한 것부터 계산하여 책망하는 사람들이니까.
“생존은 그런 거 아니었나요? 불공평하고 탐욕스러운 거. 왜 당신은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시나요?”
그녀의 등을 볼 때마다 자기 혐오가 떠오른다.
“나는 왜 그때 자신을 희생하지 못했을까요.”
부모가 강요했다고는 하지만, 끝까지 거부했다면 어떻게든 내 아이를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인이 죽고, 부모가 연을 끊겠다고 하자, 혼자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못 이기는 척.
그래.
강요받아 어쩔 수 없는 척 받아들였다.
그 결정이 가슴 한구석에 한이 되어 버렸다.
광동성에서 헤세드와 싸울 때, 그녀 역시도 그 자리에 있었다.
윤아를 보호하는 게 그녀의 임무였으므로.
전력으로 보호막을 치고, 부상자를 [치유]하느라 전장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몰랐으니까요.>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는 전장인데.
한 존재와 눈이 마주쳤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석상과.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서 주변을 살폈다.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건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신이 사랑을 알았다면 목숨조차 내던졌겠지요.>
석상, 헤세드 암컷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수컷이 위험할 때마다 저 강력한 공격을 대신 받아 내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만 해도 엄청난 수준인데, 런던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헌터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손꼽는 강자들의 공격을 모두 받아 내고 있는 셈이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죠?”
죽어 가고 있는 적에게 묻는다.
어리석기 그지없지만, 그만큼 그녀는 절박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의지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망설이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난…….”
약하다.
이제는 맨주먹으로 전차를 부수고, 강철을 찢어 버릴 수 있다고 해도 부족했다.
사랑하는 이는 늘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뒤를 쫓기가 너무 벅찼다.
지금도 보라.
경호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보호받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에게 그럴 각오가 있다면, 제힘을 드리겠습니다.>
지독한 무력함이 그녀를 끝없이 괴롭힐 때 악마의 유혹이 들려왔다.
안다.
저들은 없어져야 할 존재이고, 세상이 혼돈에 빠져들게 한 원흉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은가.
자신은 알고 있다.
각국은 GG에 협력하고 있지만, 뒤쪽에서는 미스트랄 무기를 개발해 언제든 GG를 몰아낼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사랑하는 이는 살해당할 것이다.
“사랑이란 죽음마저 내던질 수 있는 것.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또다시 무력함에 괴로워하고 남몰래 우느니, 지탄을 받더라도 반드시 구해 내겠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석상은 빠른 속도로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날뛰던 수컷은 점점 그 힘을 잃고 추락했다.
그럴수록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