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130화 (131/151)

#130. 선악과 (4)

“리디아. 이 프로젝트 이름이 선악과 프로젝트잖아.”

“근데?”

선악과 프로젝트다 보니, 비헌터를 아담과 이브라고 지칭한다.

“왜 선악과라고 지은 거야?”

“그 사람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권력을 쥐여 주라는 말이 있지. 이 경우 세피라와 클리파의 인자 때문에 훨씬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테고.”

“흐음.”

“문제 있어?”

“‘신세계…… 신세계 프로젝트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

“네 취미를 업무에 반영하지 말아 줄래?”

리디아의 핀잔을 흘려들으며 상황 보고서를 보았다.

딱히 모난 구석은 없어 보였다.

“현재까지는 순조롭네.”

“이제 곧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터지겠지만.”

“역시 그렇겠지.”

힘이 없어 이리저리 흔들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큰 힘을 얻었다.

그들의 다음 행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하지만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정도로 내가 낙관적이지는 않다.

“슬슬 다음 단계도 병행해야 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인재를 선발 중이야. 이 좋은 연습 상대를 사무적으로 처리하면 아깝잖아.”

다음 단계란 가지치기다.

힘을 얻어서 악의적으로 날뛰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처리할 필요가 있으니까.

“신입 사원들에게 실전 경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건가?”

“그렇지. 만약을 대비해 하이 랭크 헌터도 곳곳에 배치할 거야. 문제는 그거네. 정확히 상황을 파악할 오퍼레이터가 부족해.”

“대부분 전투나 생산계 능력을 얻었으니까.”

“아무튼, 새로 뽑은 사람들을 위주로 토벌 작전을 준비할 거야. 실력 키우는 데는 실전만 한 게 없지.”

탐지계 헌터는 비나의 악령에 의해 씨가 마른 상태였다.

게다가 필요한 곳도 많았다.

치안이 무너진 만큼 범죄 헌터도 많았고, 보스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만큼 그 조짐을 체크하기 위해 전 세계에 뿌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살아남은 탐지계 헌터는 늘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

“우리가 나가 싸우는 사이 본진이 초토화되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근데 누구를 토벌할 건데?”

“일단은 지금 있는 빌런들. 그리고 새로 생길 빌런도 잡아야겠지.”

빌런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원의 부족이다.

굶어 죽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에 라면 하나로 버티고, 씻기는커녕 물도 충분히 섭취 못 하는 삶을 3년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내가 나서서 싹 쓸어 버릴까?”

“하지 마. 시간 있을 때 신입 사원들을 키워 놔야 다음이 편해. 보스가 나타날 때가 되면 우리는 거기에만 신경 써야 하니까.”

자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보스는 말쿠트를 제외하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후방.

우리가 나가 싸우는 사이, 빌런에 의해 후방이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보스는 살인마고, 빌런은 병균이다.

어느 쪽이든 싸움에서 지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니 살인마와 맞서 싸우기 전에 면역력을 키우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입에게 원하는 거 있어? 사장님 특별 말씀이라고 하면서 가이드에 집어넣을게.”

“닥쳐올 멸망에 맞서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비장미.”

“야근하라는 뜻이지?”

“주말 출근도.”

이렇게 말하면 진짜 블랙 기업이 따로 없겠다 싶겠지만, 사실 사원들을 위한 것이었다.

잘 키워 놓은 인재가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한다면 본인에게도, GG에도 손해니까.

현재 GG의 사원 중 7할은 비 전투형 헌터인 만큼 더욱 그랬다.

“잘 부탁해. 근데 난 뭐하지?”

“할 거 없어. 티페레트가 나타날 때까지 푹 쉬어.”

“진짜? 나 뭐 안 해도 돼?”

“원래 수사자는 큰일 있을 때만 나서는 거야.”

“괜한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서.”

“그것 역시 경험이야…… 라고 하고 싶지만, 기껏 뽑은 인재를 이런 데서 잃을 수는 없지. 좋아. 그럼 넌 대기조로 있어 줘. 언제 어디든 지원 나갈 수 있게.”

“OK.”

신입 사원 명단을 보던 나는 뻘하게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얘 이름 되게 웃기다. 조셰릴다래. 발음 잘못하면 남자에게 치명적인 이름인데?”

“이번에 새로 뽑힌 탐지계 헌터야. 괜찮은 능력이라 각 부서나 팀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더라고.”

“그렇게 괜찮은 능력자야?”

“그 정도는 아닌데, 탐지계 헌터가 부족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제일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뭔데?”

“어떤 사람이 세피라의 인자를 가졌는지, 클리파의 인자를 가졌는지 알 수 있어. 즉, 히어로가 될지, 빌런이 될지 판단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속으로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전자를 보고 미래를 판단하여 원인을 제거한다.

SF 장르 중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나오는 흔한 설정.

오랏트 사태가 끝나더라도 인류는 평온을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

셰릴다와 한강식은 동시에 GG에 입사했다.

배치되는 부서는 달랐다.

한강식은 오직 홍보부에서만 원했던 반면, 셰릴다를 원하는 곳은 많았으니까.

셰릴다는 고민하다가 전략 기획부에 들어갔다.

다른 회사와는 달리 GG의 전략 기획부는 오랏트의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는 부서이다.

물론 신입인 그녀는 주로 빌런을 파악하고 때려잡는 업무…… 의 잡일을 맡았지만.

“셰릴다. 할 만해?”

“힘들어. 엄청.”

둘은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아 휴게실에서 만났다.

둘은 동거하게 되면서 많이 친해졌고, 이에 따라 말도 놓게 되었다.

연애 감정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동거한 만큼 아직은 약간 거리감이 있었다.

“홍보부는 생각보다 괜찮더라. 오히려 금융 쪽에서 일할 때가 더 빡셌어.”

“전략 기획부는 쉴 틈이 없어. 총성 없는 전쟁터야.”

하지만 밖은 지옥이니 그래도 여기가 더 나았다.

“거긴 GG에서도 바쁘기로 유명한 부서잖아. 왜 거기에 들어간 거야?”

“무력이 있는 사람과 친분을 쌓을 수 있으니까.”

하긴. 지금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자에게 빌붙는 것이다.

뭐라 할 생각은 없었지만, 같이 동거하는 사이에 그런 말을 듣는 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강식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괜히 말다툼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여기서 일하니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나 역시도.”

“아쉬운 건 아직도 황제 폐하의 존안을 뵙지 못한 것이랄까.”

“황제?”

“사장님 말이야. TV에서는 봤지만 실제로는 못 봤으니까.”

그는 몰랐지만, 마스터 이를 황제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았다.

GG라는 제국을 다스리니까.

본래 기업이란 정부 정책이나 세계의 추세에 따라 흥망성쇠가 바뀌기 마련이지만, GG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는 게 공통의 견해였다.

물론 스스로 해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삐빅!

“가 봐야겠다. 호출 왔어.”

“벌써?”

“이 부서는 이래. 사고가 예고하고 터지지는 않으니까.”

“고생이 많네. 힘내.”

“힘은 언제나 내고 있어. 힘을 내도 해결하기 힘든 일이 많아서 문제지.”

“오늘 늦어?”

“모르겠어.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연락할게.”

셰릴다는 거의 달리듯이 위로 올라갔다.

어쩐지 신분이 역전된 것 같은 느낌에 조금은 상실감이 찾아왔다.

“신분이라니……. 몰랐는데 나도 좀 나쁜 구석이 있었네.”

씁쓸하게 웃는 그였다.

안 좋은 생각을 털어 버리듯 고개를 흔든 그는 그녀에게 뒤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한편 전략 기획부로 달려간 셰릴다는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익숙한 듯, 벌써 전부 모여 있는 상사를 보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 왔군. 현재 안산시에서 토막 살인을 일으킨 빌런이 발견되었다. 경찰에서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용의자는 이 녀석이다.”

“아…….”

화면에 보이는 용의자의 몽타주를 보며 셰릴다가 침음을 흘렸다.

“셰릴다 사원. 아는 사람인가?”

“이전에 주사를 맞을 때 제 다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어떻던가?”

“인상은 호인이었으나, 내부에는 위험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고도 했었습니다만.”

신고는 묵살되었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신고는 셀 수 없이 많이 들어오니까.

불안정한 시기다.

진짜 사고 신고만 온다면 모를까, 별일 아닌데 과대 포장하여 신고하는 예도 많았기에 일일이 대응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GG가 그 사고들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니.

“꼭 좋은 힘 얻어서 나쁜 데 쓰는 새끼들이 문제라니까. 어쨌든 셰릴다 사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GG의 체면이 걸린 문제다.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예!”

“셰릴다 사원.”

“네!”

“이번 일은 네가 지휘해라.”

“네?”

“이번에 입사한 신입 사원들과 함께 가서 그를 제압하라.”

신입 사원들로만 토막 살인을 일으킨 사람을 잡으라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들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죄송합니다만, 신입 사원만으로는 불안 요소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알다시피 이번 선악과 프로젝트는 상부에서도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사안이다. 그래서 본사에서 특별히 추적자를 보내 주셨다.”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외견은 평범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스캔]에 어떤 정보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는 프로다. 이번 일 정도는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지. 하지만 신입의 실력 향상을 위한 일인 만큼, 그의 도움은 최소한으로만 받도록.”

“네.”

“목숨이 위험할 것 같으면 그가 나설 테니 긴장하지 말고 업무에만 전념하게. 이상.”

셰릴다는 업무를 함께할 신입 사원의 면면을 보았다.

[시야 차단], [소각], [근육 마비], [패링].

죄다 전투형 헌터였다.

스킬만 보면 사람 하나 잡는 거야 일도 아니겠다 싶겠지만, 그들은 아직 신입 사원이다.

전투 훈련은커녕, 제 능력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다.

“실전이야말로 가장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못 미더웠다.

다른 신입 사원의 능력도.

자신의 능력도.

“괜찮아. 괜찮아.”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본사에서 보내왔다는 추적자만은 느긋했다.

평범한 외모에 어울리는 평범한 음성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해. 죽기밖에 더 하겠어?”

“혹시 제가 추적자님을 어떻게 불러 드리면 될까요?”

“어……. 음……. 김치 워리어라고 불러.”

“네?”

“됐으니까 후딱 처리하고 쉬자고. 넌 어떻게 부를까. 음. 내가 김치 워리어니까 넌 고추 걸 하자.”

“네…….”

뭐라고 태클 걸기엔 상대는 상사다.

얼마나 위에 있는 상사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본사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만큼 굉장한 능력자일 것이다.

“일단 브리핑부터 하겠습니다.”

신입 사원들로 급조한 팀을 이끌게 된 셰릴다는 교육받은 대로 서류 내용부터 점검했다.

하지만 별 내용이 없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다는 내용밖에.

“음…….”

“다 필요 없고 마지막 장만 봐. 예언 능력자들이 써 놓은 게 있을 테니까.”

“네!”

그의 말대로 마지막 장을 보니, ‘범인은 살인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라고 쓰여 있었다.

“제가 신호를 내리면 먼저 박현진 사원이 [시야 차단]을 걸어 주세요. 도망칠 우려가 있으니 이수진 사원이 [근육 마비]도 같이 걸어 주시고요. 그사이 나머지 분들이 제압하시면 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히 어설펐지만, 어설픈 것은 본인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초장부터 팀워크를 해칠 필요는 없다.

“일단 현장으로 가죠. 제가 회사 차를 받아 오겠습니다만……. 혹시 운전하실 줄 아는 분 있습니까?”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자격증 중 하나라는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니.

“대단하다. 너희.”

추적자, 아니 김치 워리어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가 운전할게. 걱정하지 마. 이런 일로 평가를 깎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말에 모두가 깨달았다.

본사에서 파견 나온 이유는 단순히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라, 업무 평가를 하기 위해 나왔다고.

위기이기도 했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여기서 크게 활약하면 본사로 갈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신입 사원의 의욕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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