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131화 (132/151)

#131. 선악과 (5)

셰릴다를 포함해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신입들은 모두 밴에 탑승했다.

운전석에는 본사 직원이, 조수석엔 셰릴다가, 나머지는 뒤에 탔다.

“저…… 질문이 있습니다.”

“해.”

“사장님은 대체 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셨을까요?”

“너희들 모두 이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았으면서 의도를 묻네? 뭐가 문제야?”

전 회차에 이름을 날렸거나 장래가 촉망되는 이들은 이미 GG나 정부에서 흡수했다.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들 대부분 새로이 능력을 얻은 이들이었다.

왕유옌처럼 이제야 능력을 꽃피우기 시작한 아이도 있었지만.

“힘을 주더라도 사람을 가려서 줘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헌터가 있잖아요. 그분들을 통해…….”

“우리가 가능성을 마음대로 재단해서 꺾어 두자고?”

“어중간한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악인이 될 위험이 극히 높다면 미리 걸러야 하지 않을까요?”

“듣기 좋게 포장해 줄까? 아니면 속내를 말해 줄까?”

듣기 좋게 포장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교화론’에서 말하듯 사람은 누구나 교육이나 환경을 통해 갱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말 그대로 듣기에는 좋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았다.

“속내를 부탁합니다.”

“너무 깨끗한 데서 살면 면역력이 약해지니까.”

“네?”

“혹시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미국 아이의 폐가, 흙먼지 많은 후진국 아이의 폐보다 약하다는 이야기 들어 봤니?”

“하지만 일부러 주변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오랏트 사태가 끝난 뒤였다면 그랬겠지. 근데 앞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청나게 더러워질 거거든. 비유하자면 백신을 놔서 항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죽을 사람들은…….”

모두를 지킬 수 없는 거야 신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다지만, 일부러 위험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좋아. 그대로 내버려 뒀다고 치자. 그런데 호드가 한국에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호드요?”

“아. 너희는 잘 모르지. 호드는 [투기장]이라는 스킬을 써. 무조건 ‘일대일’로 싸우게 만드는 엿 같은 스킬인데, 전 회차엔 이거 한방으로 유럽인들이 전멸했어.”

다시 말하자면 유럽인 중 누구도 일대일을 이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보스가 아니라 그 부하들에게 말이다.

“운 좋게 호드가 다른 나라에 나타났다고 치자. 예소드가 나타나면 지구 전체에 산소 밀도가 급격히 올라. 사람 대부분은 과호흡 증상으로 떼죽음 당하지.”

보스 피해를 직접 받지 않았던 한국인조차 이 시기를 넘어 살아남은 사람은 200만 이하다.

“당장에 티페레트를 생각해 봐. 걔는 문명을 봉인해. 냉장고 같은 건 차치하고, 오밤중에 가로등 하나 안 켜지지. 그때 범죄로 사람이 얼마나 죽었을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열도 침몰 때 극초대형 쓰나미에 맞고 죽어서…….”

“잔인한 말이지만 어차피 약한 사람은 죽어. 그러니 어쩌겠어?”

“살릴 사람만 살린다…….”

“아니지. 약한 사람을 강제로라도 단련시켜 줘야지. 그래야 살아남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모두에게 힘을 주었다는 뜻이었다.

도움이 되면 좋고, 방해된다면 연습 상대로 써먹기 위해서.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었지만 셰릴다는 무서워졌다.

역시 거인들이 발아래의 개미를 숫자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저희야 GG에 입사했으니 앞으로도 성장할 기회가 많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럴 기회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빌런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알게 되겠지. ‘아!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구나.’라는 진실을. 그걸 깨달아야 점점 힘을 갈구하게 될 테고.”

“힘을 갈망한다고 해서 힘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생겨.”

“예?”

“생각하는 단백질이니 뭐니 하지만, 그건 트리거일 뿐이야. 그 바탕은 마음가짐이지. 정신 상태라고 해야 하나?”

그때 치유사도 말했다.

셰릴다처럼 힘을 원하는 자는 강력한 힘이 생길 확률이 높고, 대신 부작용도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현재까지 결과로 봤을 때 선진국의 국민일수록, 지적 능력이 높을수록,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강력한 능력이 생겨.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거지. 왜 그런 것 같아?”

“……알고 있으니까?”

“그래. 자기가 뭘 원하는지, 뭘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야. 오랏트 사태가 터지고 바로 헌터가 된 사람은 운에 따른 요소가 컸지만, 새로 헌터가 된 이들은 위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 역시 달라진다는 거군요.”

“대충 그런 거지.”

그의 말에서 셰릴다는 직감했다.

“신세계는 이미 열렸군요.”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죽는다.

오랏트 사태가 끝나게 되면 양극화는 점점 더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고,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시대를 역행하는 이들은 몰락하게 될 테니까.

완벽한 디스토피아다.

“저는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단한 꿈이네. 너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오랏트 사태 이후의 세계도 꽤 괜찮아질지 모르지.”

“추적자…… 아니, 김치 워리어님은 어느 쪽을 택하실 겁니까?”

앞으로의 세상은 강자들에 의해 재편된다.

이제 셰릴다도 강자라면 강자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아주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반면 본사의 직원쯤 되는 강자는 큰 톱니바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세계가 달라지리라.

“네 말대로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네.”

“그럼 GG가 해체된다면…….”

유토피아를 위한 조직을 만들 생각이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김치 워리어의 대답이 더 빨랐다.

“힘을 보탤 생각은 없어. 이쪽은 오랏트 사태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거든.”

“……네. 본사의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글쎄? 사람마다 다르겠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니까 그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는 저 멀리에 있는 폐공장을 가리켰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먼 미래를 생각하기 전에 네 앞가림부터 걱정하는 게 어떨까?”

셰릴다의 스킬 [스캔]에 찌르르한 살기가 감지되었다.

살인마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자칫 실수하면 신입 사원 전부가 그에게 살해당하리라.

김치 워리어의 말이 맞았다.

힘의 바탕은 마음가짐이라고.

문제는 선한 마음뿐만 아니라, 얼마나 악하냐에 따라서도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원…… 전투 준비.”

신입 사원들은 셰릴다의 지시에 따라 모두 차에서 내려 배운 대로 전투 태세를 세웠다.

***

이상은 본사 직원 앞에서 저런 강적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바라는 세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

현실은 그의 도움 없이는 누군가가 죽을 가능성이 컸다.

팀원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생각한다면, 제압보다는 생사를 불문하고 강력한 선제공격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상대는 현행범이 아닌 용의자였다.

자신의 판단만으로 범인일지 아닐지 모르는 상대를 공격해도 되는가.

만약 저자가 범인이 아니었는데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죽거나 치명상을 입는다면 뒷감당할 수 있는가.

팀원들은 모두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의 목숨뿐만 아니라, 팀원의 목숨까지도 자신의 말 한마디에 걸려 있다.

얼마 전까지 흔한 서민으로 살던 그녀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신입이 실수하는 건 당연한 거다. 그냥 질러 버려.”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신입 사원들에게 김치 워리어가 느긋하게 한마디 던졌다.

“좋은 세상 만들고 싶다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수나 실패가 나오겠냐. 그에 비하면 쟤는 간단한 장애물에 불과해.”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니면? 네 앞가림도 못 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그저 ‘좋은 세상 만들어 줘!’라고 떼쓰고 있는 것뿐이었나?”

“…….”

“목표를 정했으면 망설이지 말고 나아가라.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이제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한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하기 그지없어서 오히려 비범하게 느껴졌다.

어떤 수라장을 겪어 온 것일까.

“가겠습니다.”

“힘내라.”

셰릴다와 신입 사원들은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천천히 접근했다.

상대가 시야에 보이자 먼저 셰릴다가 [스캔]을 시전했다.

“상대의 스킬은 [광란]. 광기에 빠져들수록 신체 능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능력입니다.”

광기에 빠져들기 전에 선제공격한다면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다.

“신호를 내리면 [시야 차단]과 [근육 마비]를. [패링] 헌터는 앞의 두 사람과 함께 제압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남은 능력은 [소각].

살상 스킬이다.

이 능력을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소각]은 대기.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되면 선조치도 허가합니다.”

살인마는 아직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한 듯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 이제부터는 무전으로 지시하겠습니다. 조용히 스킬 사정거리만큼 접근하세요.

셰릴다를 제외한 네 명이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

최대 사정거리만큼 접근했으나, 첫 임무인 만큼 긴장하여 실수할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접근시키기로 했다.

다행히 극도로 주의한 까닭인지 이상한 것을 밟는 등의 실수는 하지 않았고, 안정적으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했다.

- 지금!

셰릴다의 명령과 동시에 [시야 차단]과 [근육 마비]가 사용된다.

하지만…….

“앙?”

녀석은 태연하게 움직였다.

눈 전체가 까맣게 된 것이 [시야 차단]은 먹힌 듯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근육 마비]는 통하지 않았다.

“새로운 장난감인가?”

“힉!”

살인마가 얼굴을 돌리자 신입들이 일제히 놀랐다.

그럴 수밖에.

녀석은 새로운 희생자를 해체하는 중이었으니까.

- 정신 차려! 녀석은 현행범이다! 죽여도 돼! 스킬을 전부 때려 부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소각] 능력자가 스킬을 사용했다.

살인마는 네이팜탄에 맞은 것처럼 온몸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 상태로 달려들었다.

“하하하. 좋아. 같이 죽어 보자고! 이 좆같은 세상에서 미친 듯이 놀아 보자고!”

녀석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달고 날뛰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불타고 있는지라 [패링]은 커녕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 발포 허가. 모두 총기를 사용하세요.

이런 시기임에도 대한민국은 아직 총기에 민감했다.

특히나 경찰이나 군인이면 몰라도, 사기업인 GG의 사원이 총기를 사용한다면 꽤나 큰 부담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틈이 없었다.

나중에 시말서를 수백 장 쓰더라도 일단은 살아야 했다.

피융! 피융! 피융!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놀랍게도 살인마는 재빨리 움직여 총알을 모두 피했다.

엄폐물을 이용하는 데다가 갈지(之)자로 움직이니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접근한 그는 가장 앞에 있던 [시야 차단] 능력자를 낚아챘다.

“잡았다.”

“놔! 놔!”

“왜? 같이 뜨거워지자고.”

신입 사원들은 이미 공황 상태다.

조금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셰릴다는 상대적으로 괜찮았지만, 조급하고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 [소각]을 해제해! 동료가 타고 있잖아!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당면의 문제에만 집중했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여기서 잠시 찬스 타임.”

김치 워리어가 휙 하고 살인마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가볍게 발로 차자 저 멀리 튕겨 나간다.

“괜찮냐?”

“예…….”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아이템을 사용하니 화상으로 짓눌린 [시야 차단] 능력자가 금세 회복된다.

하지만 이미 전의는 죄다 꺾인 뒤였다.

“다들 표정을 보니까 도망치고 싶은가 보네? 도망쳐도 돼. 무서우면 그럴 수 있지. 근데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도망칠 곳은 있어?”

살고 싶으면 무기를 들어라.

그리고 싸워라.

“지금 도망치면 평생 제자리다. 평생이라고는 해도, 그리 오래가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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