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의 자격-139화 (140/151)

#139. 아포칼립스 세계 (1)

“데려가 달라고요?”

강수연의 외침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예. 아시다시피 저도 헌터예요. 청각이 좋아서 다 들었어요.”

“위험합니다. 뭐가 있을지 몰라요.”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잖아요.”

“덜 위험한 곳은 있죠.”

“한국은 이제 가장 위험한 곳이잖아요. 아닌가요?”

“아직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다른 나라는 재앙급 천재지변이 지나간 곳이고, 한국은 아직 재난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다.

1년 뒤에 어느 곳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겠지만.

“부탁드려요. 오빠를…… 오빠를 찾아야 해요.”

강수연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녀는 [확률 왜곡]이라는 희소한 스킬을 가진 헌터긴 하지만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내 힘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수준이니까.

오히려 거치적거릴 것이다.

그녀가 내 걸음 속도를 따라올 수도 없을 테고, 나와는 달리 계속해서 휴식 시간도 줘야 할 테니까.

<자신밖에 믿지 않으니 그리 불안한 것이다.>

<태양 빛이 강하면 달빛은 보이지 않나니. 그대가 이토록 강대한 까닭에 정작 다른 이들은 여느 때보다 약해졌나니.>

호드의 말이 떠올랐다.

가장 옳다고 생각한 길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길이.

어쩌면 반대로 인류의 발목을 잡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강수연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상복을 입지 않았다.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뜻.

“이거 가져가.”

뒤따라 나온 리디아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뭐야 이건?”

“작전 명령서를 요약했어. 이동 경로를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

2차 방어선은 네바다주에 있는 넬리스 공군 기지.

3차 방어선은 버지니아주에 있는 항공 전투 사령부.

언제든 티페레트의 봉인을 풀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이렇게 짠 것이었다.

물론 적이 이쪽으로 온다는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이어 4차 방어선 영국, 5차 방어선 스위스 등등 만일의 만일을 대비한 방어선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작전 내용이나 진형 같은 정보는 모두 삭제되고 위치만 쓰여있었기에 한 장의 종이로도 충분했다.

“갈게.”

“한 명 살려서 데려올 때마다 키스 한 번씩 해줄게.”

“립밤 잘 발라줘라. 수없이 해야 할 테니까.”

“딸기 향으로 발라둘게.”

우리 식으로 작별 인사를 마쳤고,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었다.

***

분명 좌표대로 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사막 그 자체였다.

곳곳에 건물 잔해가 조금씩이나마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면 잘못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근처에 있던 산이 없어졌네요. 지도를 다시 그려야겠어요.”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할 겁니다. 근데 여기 지형을 아세요?”

“게임에서 본 적 있어요. 폴 아웃이라고.”

“아 네…….”

요즘 게임은 정교하다고 하니까.

나름대로 참고가 되겠지.

“이제 어떻게 하죠?”

“땅을 파봐야죠.”

“제가 포크레인을 만들게요.”

“만든다고요?”

“기초적인 구조라면 전부 꿰고 있으니 [확률 왜곡]으로 재료를 변형해서 만들 수 있어요.”

“그게 됩니까?”

“한 번도 안 해봤지만 될 거에요. 계산은 자신 있거든요.”

대단하다.

사학도인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고도의 지식이었다.

전설의 공순이네.

“괜찮습니다.”

“네?”

“포크레인보다 더 효율…… 적인 게 있으니까요.”

이제는 효율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안 된다.

이러다가 또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에 빠질 것 같았다.

당면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 의지에 따라 마나가 움직이고, 저절로 스킬이 발동되었다.

대지가 층층이 나뉘어 조심스럽게 하늘 위로 올라간다.

대지가 벗겨지자, 뒤집혔던 땅 아래에 잠들어 있는 건물이 차근차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칠 새도 없이 그대로 짓눌려 죽어버린 시신들이 하나둘씩 지표면 위로 나타났다.

“대단하네요.”

“괜찮습니까? 그…… 시신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단하다고요.”

“네?”

“형태로 보아 아무도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한순간까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썼던 거로 보여요.”

시신의 상태는 처참했다.

내장이 빠져나오고 머릿속이 훤히 보였으며, 이름 모를 벌레가 살을 파먹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이런 시신을 보고도, 눈을 돌리거나 헛구역질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숙하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이 근처에 있는 천으로 염습했다.

“죄송해요. 씻겨드리지 못해서. 영웅을 대접하는 데 소홀해서.”

“이럴 시간은 없습니다.”

시신에 다가가 군번줄을 떼어냈다.

여유가 된다면 군번줄을 죄다 모아다가 탑이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장례를 원하신다면 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오직 화장(火葬)입니다.”

“죄송해요. 혼자 감상에 젖어버렸네요. 그렇게 해요.”

“…… 죄송할 일도 많군요.”

혹시 비난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감성이 풍부하면서도 내면은 무척 강인한 사람이다.

이윽고 모든 땅이 죄다 헤집어지고 공군 기지 본연의 모습이 나타났다.

생존자 없음.

내게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일까.

군번줄을 모두 분리한 후, 시신을 전부 한곳에 모았다.

내 의지에 따라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난다.

용광로보다 뜨거운 불 앞에, 살도 뼈도 모두 녹아 간다.

그래도 이들은 군번줄이라도 남겼는데, 죽은 시민들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아무 의미 없음을 알아도 그 작은 점 하나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

2차 방어선에 이어 3차 방어선, 4차 방어선까지 전부 헤집었다.

시신만 나올 뿐, 아는 사람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5차 방어선.

무너진 알프스를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시간도 늦었고, 강수연도 많이 지친 것 같아 잠깐 쉬기로 했다.

내일이면 또 엄청난 마나를 써야 할 테니, 추운 밤바람을 막기 위해 모닥불을 피웠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참 강인하시네요.”

“저요? 수연 씨가 훨씬 더 강할 것 같습니다만.”

“아니에요. 저따위보다 훨씬 더 강하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눈을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정면에서 바라보기 힘들어서.

죽음을 담아두기 무서워서.

“아까 시신을 화장할 때 느꼈어요. 순신 씨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요.”

“아직…… 이요?”

그녀는 포기했다는 뜻인가?

“첫 시신을 봤을 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절망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군인분의 모습이 오빠와 겹쳐 보여서 어떻게든 수습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수연 씨가 정상이고, 제가 비정상입니다.”

“제게는 죽은 자를 신경 쓸 시간에 지금 당장 구조를 원하는 누군가를 찾겠다는 결의가 느껴졌어요. 희망을 조금도 버리지 않으신 거죠. 저와는 다르게 말이에요.”

추운 건지, 무서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은 2월 말이다.

그것도 알프스 ‘였던’ 산의 정상.

춥지 않을 리 없었건만, 너무 내 위주로 생각해버렸다.

그저 방해되지 않게 참고 있었던 것에 불과한데.

대지를 움직여 흙집을 짓고, [차원 수납]에서 주전자와 물통 등을 꺼내 코코아 한 잔을 타서 넘겨주었다.

“당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어깨너머에는 빛나는 세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착각입니다. 제 앞에는 타오르는 지옥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온몸으로 틀어막고 계셨던 거네요. 그 지옥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책하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훗.”

“왜 그러시죠?”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거센 비난에도 당당하신 분이, 작은 칭찬에는 어쩔 줄을 모르시네요.”

“살면서 칭찬받아본 적은 손에 꼽아서요.”

내 부모님도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기는 했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칭찬은 내게 너무나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동료들에게서 비슷한 걸 받았지만, 그건 칭찬이라기보다 경외 같은 거였다.

“그런 말이 있어요. 여자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동물이고, 남자는 인정 받기를 원하는 동물이라고.”

“인정이라…… 그렇군요. 받아보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에는 순수하게 인정해준다기보다, 결과를 바탕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하려는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사소한 질문인데 해도 되나요?”

“하세요.”

“늘 궁금했던 건데, 왜 검을 쓰시나요? 다른 무기는 별로인가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원래는 총도 쓰고, 야포도 쏘고 그랬어요. 믿기지 않겠지만 전차나 전투기도 몰 수 있습니다.”

1회차 때 배웠다.

그때는 나도 쓸 수 있는 건 죄다 써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총은 별로 인가요?”

“총은 총탄 수만큼만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힘이 이렇게 강해진 뒤로는 총보다 칼 휘두르는 게 더 세더군요. 칼만 단단하다면.”

최근 들어서는 수행 도구로서의 의미도 있고.

“그건 왜 물으시나요?”

“그냥 궁금했어요. 늘 바빠 보이셔서 사적으로 궁금한 건 여쭤보기 힘들었거든요.”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원래라면 담아두었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태도를 믿고 조심스레 물었다.

“원망하지는 않으십니까?”

“원망이요? 왜요?”

“제가 오빠분을 끌어들였으니까요. 게다가 적에게 농락당해서 이런 피해를 만들었고…….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용서할 수 없어요.”

“이해합니다.”

용서 못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용서하는 게 대단한 거지.

“순신 씨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요.”

“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제가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뜻이었어요. 용서는 잘못한 사람에게 해주는 거니까요.”

“하지만…….”

“잘못은 적이 한 거예요.”

“전쟁에서는 막지 못한 것도 죄가 됩니다.”

전쟁은 결과가 전부다.

노력도, 과정도 아무 의미 없다.

“그렇다면 모두가 죄인이겠네요. 누군가는 막았어야 했는데, 결국 순신 씨가 나서기 전엔 아무도 막지 못했으니까요.”

“…….”

“다른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고 해도, 순신 씨만은 죄가 없어요. 유일하게 승리하신 분이니까요.”

그녀와 대화를 할 때면 공감이라는 게 뭔지 느껴진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 실책이 있었는데, 그걸 따스하게 덮어주니까.

이래서 ‘공감공감’하는구나 싶었다.

그동안 공감이라는 게 무척 안 좋은 건 줄 알고 있었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뭔가를 내놓으라 하고, 배려를 강요하니까.

왜 그동안 나는 이런 걸 누리지 못했던 거지?

스슥.

모닥불의 온기는 느끼지 못해도, 감정의 따스함을 느끼고 있을 때, 무언가가 주변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친절한 이웃은 아닌 것 같으니 뜨겁게 환영해줘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소리 내지 말고 계세요.”

“설마 생존자인가요? 저도 갈게요!”

“절망했다고 하시더니 금방 불타오르시는군요. 안타깝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동물?”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동물이라기보다는 괴물 같군요.”

악령 류가 살아있는 걸까.

아니면 헤세드에 의해 좀비가 된 이들이 배회하는 걸까.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

[차원 수납]에서 권총을 꺼내어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쓰려고 특수 제작한 대구경 권총으로, 무게만 해도 소총보다 두 배는 무거운 8kg짜리다.

권총이라기보다 핸드 캐논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그녀도 헌터인 만큼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이쪽으로 오면 쏴버리세요.”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흙집 바깥으로 나가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멀리서 불빛을 보고 다가온 모양인데, 내가 접근하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이건 또 뭔…….”

괴물이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

“생존자를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인가 보네.”

훈훈함은 사라지고 살의가 가득 차올랐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나온다면…….

달라질 것은 없겠네.

어차피 다 죽여버릴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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