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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자격-143화 (144/151)

#143. 최후의 결전 (1)

“수호 형이 누군지 모른다고?”

“누군지는 알지. 한국 헌터 부대 대장이잖아.”

“그러면 왜…….”

“네가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한 사이인가 해서.”

“……혹시 이거 몰카야? 나 놀라게 하려고?”

“이런 시기에 장난칠 이유가 어디에 있어? 정말 아는 사람이야?”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꿈이라면 질 나쁜 악몽이다.

“저…… 죄송한데,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옆의 여성분도요.”

기억이 덧씌워진 것처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상한 걸까.

사람들이 이상해진 걸까.

“혹시 형수님은 기억합니까?”

“형수요? 제 아내를 말하는 겁니까? 전 결혼한 적이 없는데요.”

“…….”

그 말이 쐐기를 박았다.

아무리 푸념을 많이 했어도, 형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확실한 사람이다.

이런 거로 장난치거나 연기하지는 않는다.

“리디아.”

“응.”

“네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지?”

“엄마랑 아빠.”

“그리고?”

“나 외동이잖아.”

인류의 99%가 죽은 와중에, 살아남은 사람조차 이상 현상을 보인다.

목숨을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마저 조작할 수 있다니.

“왜 그래?”

“내 잘못이야.”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밖을 돌아다녔더니, 그 사이 내부는 무언가에 의해 좀먹히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능 간섭]을 써 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괜찮아?”

“그래. 괜찮아. 괜찮아야 하지.”

나만은 절대 무너질 수 없으니까.

그토록 노력해 왔는데…….

이번 회차도 그른 것 같다.

문제는 회귀하려면 말쿠트의 뿔이 필요하다는 것.

과연 이 상태로 다섯 보스의 힘을 흡수한 말쿠트를 잡을 수 있을까?

“리디아.”

“미안.”

“왜 네가 미안해?”

“나도 당해 버려서.”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어.”

“상관없어. 만약 네가 이상한 거라면 우리의 운명은 이미 끝난 것일 테니까.”

리디아의 눈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총명하게 빛났다.

대단하다 싶었다.

기억이 조작된 상태에서도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약속할게. 나를 의심할지언정, 너만은 절대로 믿는다고.”

“나도 약속할게. 이제부터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생존자가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상황이다.

내게는 죽은 자보다 산자가, 생존했을 수도 있는 사람보다 생존이 확실한 사람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반드시 너희를 살리겠다고.”

참담한 심정을 차가운 분노로 태웠다.

아직 분노를 터뜨릴 때가 아니다.

남은 시간은 약 8개월.

올해 다가올 겨울은 유난히 혹독하고 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25년 2월 21일.

하늘에서는 때아닌 폭설이 펑펑 내렸다.

“결국,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네. 기억 혼란의 이유.”

“괜찮아. 심해지지는 않았으니까.”

리디아가 아쉬운 듯이 말했지만, 나는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은 걸 안도했다.

나 역시도 많이 약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묘하다.”

“뭐가?”

“멀쩡한 도심 한가운데에 나와 너 둘뿐이니까.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야.”

전 회차에 말쿠트가 나타났던 장소, 여의도 국회 의사당은 한적했다.

내가 다 퇴거시켰으니까.

이전과 같은 결사대도 없었다.

주요 병력은 모두 죽거나 기억 혼란으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옛날 생각나네.”

“어떤 생각?”

“네가 늘 주장했었잖아. 보스로 향하는 길을 열 때는 1만의 정예병이 필요하고, 보스를 상대할 때는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다섯 개 필요하다고.”

“전 회차와는 사정이 다르잖아.”

“알아.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어쩌면 진짜 회귀자는 너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

“회귀의 특권이 없어서 그래.”

로또 번호를 미리 안다든가.

기연이나 숨겨진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든가.

누가 인재인지 알아보고 미리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든가.

적의 약점이 무엇인지 안다든가.

인간은 물론 괴물까지 죄다 회귀해 버리니 이러한 강점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권이 없기에 여실히 드러나는 거지.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조연인지, 누가 들러리인지.”

“전부 주인공이야. 각자의 이야기에서는.”

“풋. 같은 일을 겪었는데, 장르는 제각각이겠네.”

“장르는 모두 같지. 회귀 아포칼립스 물.”

“인생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인생?”

“우리는 모두 과학적으로 우리는 최소 2억분의 1, 어쩌면 조 단위의 확률을 뚫고 태어났잖아.”

“하긴. 존재 자체가 기적이지.”

문제는 그런 사람이 80억 명 넘게 있다 보니 특별하다고 못 느끼게 되어버렸다는 것.

회귀도 마찬가지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인데, 개나 소나 하다 보니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에 또 회귀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불안 요소를 때려잡기보다 사람들을 단련시키고 싶어.”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다고?”

“응.”

나뿐만이 아니라, 리디아를 비롯해 인재들을 죄다 갈아 넣었는데도 한순간에 폭삭 망했다.

네자흐는 그렇다 치더라도 [붉은 비]에 죽은 사람이 얼마인가.

사람들이 강해지지 않는 한, 인류를 최소 30% 살린다는 목표는 영원히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도 좋네.”

“그것도?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숙주를 전부 찾고 싶어.”

“찾아서 뭐하게.”

“완성인지 뭔지를 한다면 그 보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문제는 완성이 뭔지 모른다는 거지.”

대충 짐작하기를 자신의 영혼을 관조하여 그 안에 있는 보스와 샤바샤바 하는 것 같은데…….

그 샤바샤바가 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서는 호흐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다 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긴. 저 괴물들도 처음 나타났을 때는 답도 없다고 생각했지.”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쉬운 게 너무 많아. 한 번만 더 회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해.”

“인생은 원래 후회의 연속이라고 하잖아.”

“넌 후회하는 거 없어?”

“있지.”

“뭔데?”

“효율.”

그토록 효율을 추구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효율이라는 단어가 꺼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예를 들어 한 명을 구하려다 수십 명이 죽고 다치는 경우가 있지. 그 경우 차라리 한 명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더 효율적일 거야.”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거?”

“비슷해.”

“확실히 정치적인 목적을 제외하고 숫자로만 보면 효율적이진 않네.”

“하지만 그 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게 될지도 모르지.”

내버려 둔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더 큰 손실을 불러올 수도 있고.

“어떤 게 진정으로 효율적인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었어.”

“그래도 국밥은 효율적이지 않아?”

“그것만 계속 먹는다면 영양 불균형으로 식비보다 더 비싼 병원비를 내게 될지 모르지.”

“네가 국밥을 마다하다니. 진짜로 생각이 바뀌었나 보네.”

“한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게, 나중이 되니 악수가 되어버리는 걸 자주 봤으니까.”

“그래서 만약 회귀하게 되면 어떻게 하게?”

“한 발 뒤로 물러서려고.”

내가 아무리 강해져 모든 것을 챙겨 줄 수 없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답답해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은 주되 간섭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진짜 회귀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될 거야.”

그렇게 만들 테니까.

시계가 자정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시계는 멈춰 버렸으며, 주변의 불빛은 죄다 소등되었다.

말쿠트가 티페레트의 힘을 흡수한 탓인지, 문명의 봉인도 똑같이 일어나나 보다.

거센 눈발을 뚫고 하늘에서는 열 십(十)자 모양의 빛이 타올랐다.

마치 태양처럼, 세상을 대낮과 같이 밝힌다.

“드디어 최종장이네.”

“이기자.”

“당연하지.”

적은 하나.

우리는 둘.

적은 다섯 보스의 힘을 흡수한 최강의 보스.

우리는 수많은 인류의 힘을 전달받거나 매입한 최강의 인간.

확실히 진다는 보장은 없으며, 이긴다는 장담도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녀석의 뿔을 잘라서 다시 처음부터 할 수 있을…….

“어?”

“왜?”

“뿔이…… 없어.”

하얀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신호등의 픽토그램처럼 생겼던 말쿠트.

단조롭고 특징 없는 모습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던 것이 황금빛의 뿔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훌륭하구나! 전사여. 꽤 공들여 준비했건만 그 모든 시련을 돌파해 내다니.>

“너 뿔 어쨌어?”

<뽑아서 버렸다.>

“……뭐?”

말쿠트는 당황하는 나를 보며 웃었다.

<이제 회귀는 없다.>

***

녀석을 죽일 방법만 생각했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회귀할 수 있는 매개체를 없애 버렸다.

“대체 무슨 이득이 있지?”

<호흐마가 알려 주지 않았나? 이번에는 너희를 완전히 멸할 생각이라고 했거늘.>

“그거 없어도 날 죽일 수 있겠어?”

<떠보려고 해도 소용없다. 너에게는 어떠한 정보도 내어주지 않을 테니까.>

상대는 미지의 존재다.

뿔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뿔이 없을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 하……. 진짜 엿 같은 짓만 골라서 하네.”

<내가 너를 도와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언제는 나라도 살기를 바랐잖아.”

<둘 중 하나는 살아야 한다고 했었지. 걱정하지 말거라. 이번에는 네가 죽고 내가 살 테니까.>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질 생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배수진을 치게 된 셈이다.

이제 다음은 없다.

“그래. 정보는 필요 없고 하나만 묻자. 대체 우리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호흐마가 알려 주지 않았나? 배신한 주제에 의외로 입이 무겁군.>

“대충은 들었어. 그래도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다. 이 모든 걸 계획한 게 너니까.”

<그들을 막아야 하니까.>

“그들?”

옆에서 리디아가 끼어들었다.

“클리파를 말하는 거야?”

<그렇다. 그들이 퍼지면 우리에게도 영향이 오기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

“씨발. 말로 하면 되잖아. 말로!”

<우리는 너희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말을 걸었다. 하지만 너희는 언제까지고 답해 주지 않았지. 답해 줄 능력이 없어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군.>

“더 해! 전화 좀 안 받는다고 삐져서 죽이려고 든다고?”

<다른 이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이러한 세계가 수억 번 반복되는 동안 계속 말을 걸었었지.>

한 마디로 수억 회차 동안 말 거는 것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안 받으면 직접 찾아오면 되잖아. 지금도 잘만 나타나네!”

<무리를 감수하고 너희 앞에 직접 나타났다. 하지만 너희는 미지의 존재인 우리를 공격부터 했다.>

“좀 참아. 방어력도 세니까 몇 대 맞아도 문제없잖아?”

<아무리 대화를 시도하고 믿음을 건네주어도 너희는 끝끝내 우리를 배반하고 멸하려 들었지. 너희는 너희보다 우등한 존재를 용납하지 못했으니까.>

기억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어떤 평행 세계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배신당하고 나서야 우리는 너희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뭔지 알겠나?>

“뭔데?”

<그때부터 너희가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늘 의존만 하던 쓰레기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움직이기 시작하더군.>

그동안 수없이 겪었던 일이라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일부는 끝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적극적으로 난관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은 나에게 짐을 넘긴 채 수수방관하려고 했다.

1회차 때는 그런 경향이 적었는데, 2회차 때 살짝 심해졌고, 3회차는 아예 드러누워 버렸었지.

<너희는 그런 존재들이다. 만족을 모르는 괴물. 손에 쥔 것을 포기 못 하는 우자(愚者).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쓰레기.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천한 것.>

“…….”

<그러니 너희를 지성체로 대해야겠나? 너희가 원하는 대로 가축처럼 필요에 맞게 가공해 주마.>

“그래. 다 좋다. 그러면 너희가 클리파인지 뭔지를 막으면 되잖아. 왜 우리를 꼭 끼워 넣으려고 하는데?”

<너희를 매개로 하여 우리를 침략할 테니까. 그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한다.>

“좋아. 이번에는 내가 그 새끼들 뚝배기까지 죄다 깨 주지.”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더는 회귀할 수 없으니, 나도 모든 것을 불살라서 확실하게 행동하겠다.

“그 전에 너부터 조져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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