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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자격-144화 (145/151)

#144. 최후의 결전 (2)

<훌륭하다. 전사여. 하지만 나는 모든 이를 전사로 본다. 인생이라는 전장에서 싸우는 전사.>

“뭔 개소리야?”

<싸움은 너와 나만이 아닌 모두가 행하게 될 것이다.>

성인 남자 픽토그램처럼 생긴 말쿠트의 몸 곳곳이 종양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이내 밖으로 터져 나와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했다.

그의 군대다.

말쿠트의 장군은 다른 보스와 비견되는 힘을 지녔고, 병사는 다른 보스가 거느린 장군급과 비슷한 힘을 낸다.

이런 군대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양심 없게도 말쿠트 본인은 어느 괴물보다 강하다.

<가축이 주인을 물었으면 살처분당해도 할 말이 없겠지.>

“누구 마음대로 가축이냐?”

<아니라면 증명하면 된다. 승자는 전사로 대접받을 것이고, 패자는 가축이 될 것이다.>

그의 말과 함께 녀석의 군대가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호오. 막으려고 발버둥 칠 줄 알았건만…….>

“이럴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설마 저 멀리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믿는 것이냐. 그들로는 안 될 텐데?>

“그러다 죽으면 제 팔자지.”

<변했구나. 아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세계가 죄다 파괴된 상황에서 꿍꿍이는 얼어 죽을.”

사실 계획은 있지만, 그보다는 회귀를 염두에 두고 말쿠트만큼은 확실하게 잡을 방법을 궁리했었다.

그가 뿔을 버리고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측 못 해서 문제였지.

“다 끝났으면 어서 싸우자.”

내 안에 쌓아 둔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니까.

<오라!>

“여전히 위에 있는 듯한 말투. 내가 아직도 네 밑으로 보이냐!”

극도로 [가속]하여 녀석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는 다른 보스와는 달리 가볍게 받아 내었다.

그가 사라졌다.

뒤에서 가슴을 뚫고 그의 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전에는 아니었으나, 이제는 확실히 밑이지.>

“과연 그럴까?”

내가 거리를 벌리자 뻥 뚫린 가슴은 순식간에 아물고, 반대로 녀석의 가슴에 구멍이 났다.

<반사계 능력인가…….>

“네가 다섯 보스의 힘을 흡수하는 동안 나 역시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지.”

무려 5,600만명 분의 스킬을 흡수했다.

지난 1년간, 그 스킬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노력했다.

개중에는 좋은 기능인데 저평가된 것도 있었고, 그다지 좋지 않은 스킬임에도 사용자의 기량이 뛰어나서 고평가된 스킬도 있었다.

“다시 말해 봐. 누가 누가 밑이라고?”

그가 정권을 지른다.

일직선으로 모든 것을 꿰뚫으며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긴 구덩이가 파인다.

<네가 내 밑이다.>

***

1회차 때는 졌고, 2회차 때는 가까스로 이겼다.

두 번이나 목숨 걸고 싸웠음에도 나는 녀석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녀석도 마찬가지다.

매 회차 스킬이 바뀌는 내 특성상 녀석도 나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더욱이 그를 의식하여 다른 보스를 상대할 때는 늘 같은 스킬만 써 왔으니까.

<대붕괴.>

여의도가 통째로 무너지며 한강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공간 절단].”

그러거나 말거나 검을 휘둘러 녀석이 있는 공간 자체를 베어 낸다.

잘린 사진처럼 녀석이 사선으로 흘러내려 갔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다시 원상 복구가 된다.

<천공의 왕.>

“[등평도수].”

<쯧. 굳건한 대지가 없어지면 네 놈도 별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재주가 많아졌구나.>

“이런 건 스킬 없어도 별문제가 안 되거든?”

괜히 신경 쓸 걸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능 간섭]은 여전히 껄끄럽구나. 직접 공격이 아니면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니 참으로 귀찮게 되었어.>

“이젠 그거 없어도 된다. [화신]도 얻었으니까.”

<가축을 잘 키워 놨는데 네 놈이 그걸 홀랑 먹어 버렸어. 이런 걸 보고 죽 쒀서 개 줬다고 하던가?>

“틀린 말은 아니네. 게다가 너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개는 널 잡아먹을 사냥개란다.”

그의 손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졌다.

헤세드 수컷이 쓰던 그 검이다.

“헤세드 힘을 가진 애들은 그 검 참 좋아해. 그렇게 커서 맞기나 하겠냐?”

<몰랐나? 헤세드의 본체는 너희들이 말하는 수컷도 아니고 암컷도 아니다. 바로 이 검이지.>

“하?”

그가 검을 휘둘렀다.

가볍게 피했으나 몸 곳곳에 [불괴]를 뚫고 피가 솟구친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육체의 고통이었다.

“뭐지? 공간 베기도 아니고, 시간 차 공격도 아닌 것 같은데.”

<이 검은 새로운 구조와 질서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규칙만 바꾼다면 네가 아무리 재빠르다고 해도 베지 못할 이유는 없어지지.>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엿 같은 힘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상처는 났지만 금세 [치유]로 회복했다.

그리고 돌격했다.

그의 검을 피하고, 내 검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손에 별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나. 새로운 규칙이라고.>

다시 한번 내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분명 피했는데…….

“싸움 진짜 X같이 하네.”

<최고의 칭찬이군.>

“욕 처먹는 거 좋아하냐?”

그가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왼손으로 막았다.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손바닥이 그대로 잘린다.

가까스로 몸을 젖혀 머리가 베이는 것만은 피한다.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재미있는 일이지 않나. 만약 그 여자가 헤세드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만 있었다면 네자흐가 그리 날뛸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랬다면 너희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넘어간 꼴이었겠지.>

“못 다룰 거라는 걸 알고 넘겨줬던 거냐?”

<그래. 그래야 이렇게 내 손으로 돌아올 테니까.>

[치유]로 잘린 손을 복구했다.

아주 살짝 감각이 둔해진 것 같긴 하지만, 금방 적응할 것이다.

<너에게 승산은 없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그 말과 함께 녀석의 몸도 곳곳에 베였다.

피가 나오진 않았고 금세 아물긴 했지만, 그래도 공격할 방법은 찾아내었다.

<놀랍군. 네게 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할 머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냐? 어떻게든 잘 쑤셔 넣으면 되는 거지.”

<하하하. 맞다. 역시 훌륭하구나! 전사여. 입만 산 녀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해.>

말쿠트가 다시 대검을 들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어떻게 막을 거냐?>

그리고 휘둘렀다.

검은 단순한 베기가 아닌 검무를 추듯 현란한 궤적을 그렸다.

나도 그의 움직임에 맞춰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내 몸에서 또다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도 상처가 수없이 생겨났다.

“막을 필요가 뭐 있어. 먼저 죽이면 되는 거지.”

<그 고통 속에서도 웃는가. 정말 타고난 전투 광이로구나!>

“타고나? 너희가 날 이렇게 만든 거다.”

<우리가 대화로 나올 때 잘 들어줬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건 전 회차의 그 새끼 문제다. 내 잘못이 아니다.”

<대단한 자기 합리화로구나. 네가 말한 ‘그 새끼’가 없었다면, 이렇게 강대한 힘을 얻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을.>

“이건 내가 잘해서 얻은 거고.”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네 탓인 건 만국 공통의 진리다.

과거의 나든, 미래의 나든, 지금의 나와는 별개의 존재고.

<헤세드와 게브라의 힘까지 보여 줬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말쿠트가 하늘로 떠오른다.

네자흐처럼 극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돌진했다.

콰쾅!

서울 전체가 붕괴할 듯이 흔들렸다.

어쩌면 서울을 넘어 한반도 전체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네자흐는 나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진짜 무서운 점은 승리할 때마다 강해지는 특성에 있지.>

“날 이기고 더 강해지겠다고?”

<그는 이미 거의 모든 인류를 몰살하면서 극도로 강해졌다. 지금은 나에게 힘을 넘겼고.>

내가 가진 스킬 중 가장 빠른 스킬은 한울이의 [가속]이다.

하지만 [가속]을 극한으로 운용하고, 다른 스킬까지 병행해도 그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떻게 된 건가 전사여!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대검을 휘둘렀다.

눈이 아닌 감각으로 어떻게든 피했지만, 그런데도 엿같은 헤세드의 힘 때문에 계속 상처가 생겨 난다.

[불괴], [불굴의 요새], [갑각], [강철 피부], [충격 분산] 등의 방어 스킬.

[치유], [신체 재생], [자가 회복], [영원 추구], [위안의 바람] 등의 회복 스킬.

할 수 있는 건 죄다 때려 박아가며 어떻게든 버틴다.

하지만 내 움직임이 굼떠질수록 녀석은 점점 더 빨라진다.

극초음속을 넘어 측정 불가의 영역으로 넘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충격파만으로 대지가 붕괴한다.

공기와의 마찰열만으로도 빌딩의 잔해가 녹아버린다.

그런 와중에도 녀석은 대검을 휘둘렀으며, 내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기 위해 지진까지 일으켰다.

하늘에서는 불의 비가 쏟아졌고, 땅에서는 용암이 터져 나온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

익숙한 풍경은 사라졌다.

한강 대신 용암의 강이 흐르고, 문명의 잔해 대신 새까맣게 타 버린 돌만 굴러다녔다.

늘 저 멀리 보이던 산 역시도 없어진 채 붉은 지평선만 보였다.

그런데도 난 살아 있었다.

아직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죽지 않았는가.>

“씨발……. 이런 데서 뒤질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만약 네가 투쟁심이 아닌 지도력을 키웠다면, 나와 함께 완성할 수도 있었을 것을…….>

“대체 그 엿같은 완성이라는 게 뭔데?”

<두 영혼이 무결하게 하나로 합쳐져, 하나를 자유롭게 다루는 존재. 그것이 완성이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걸어 쓰러진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넌 스페어였다. 어떤 가능성도 내포하였지만, 담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

“…….”

<그런데 너는 가능성의 그릇을 오직 피로 채웠구나.>

“보고 배운 게 그거뿐이라서. 혹시라도 오해는 하지 마라. 하나도 안 미안하니까.”

<네가 가장 죽이고 싶은 게 나겠지. 하지만 그 뒤는 어쩔 셈이지?>

“그 뒤?”

<네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우리 없이 그들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들은 부활하고 또 부활하여 결국 너희를 집어삼키겠지.>

그가 대검을 들어 올렸다.

마무리를 지을 셈인가 보다.

<따라서 네가 나를 이겼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너는 너의 소중한 사람을 네 손으로 차근차근 죽이게 될 테니까.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게 네가 겪어야 할 영원한 고통이다.>

“이긴 것 같다고 해도 개소리는 하는 거 아니다.”

<나중엔 고통이 느껴지지 않겠지. 하지만 느껴지지 않을 뿐 차곡차곡 네 안에 쌓일 터. 그렇게 서서히 너를 깎아 버릴 테고, 나중에는 목표도 잃어버린 채 살육만을 갈구하는 괴물이 되겠지.>

“너처럼?”

<내 숭고한 목표를 너와 같은 선상에 두지 마라!>

“뭐가 아닌데? 스위스에 괴물을 보내 죄다 인간을 학살하고는 인간인 척 의태해 놓은 거? 거참 대단히 숭고하기도 하시네.”

그가 분노하여 대검을 내리치려다가 그대로 멈췄다.

<뭐라?>

“그놈의 전사 타령했으면 차라리 엿같은 명예를 외치며 죽이든가. 내 동료들의 기억도 죄다 바꿔 놔서 가족도 못 알아보게 만들어 놓고서는 뭐가 숭고하다고 물었다!”

<…….>

녀석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사실 말쿠트는 눈, 코, 입이 없기에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진심으로 당황했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마엘……. 네헤모트……. 벌써 나타났는가…….>

그가 잠시 멈췄을 때,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붉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리디아의 신호탄이다.

정말이지…….

버티느라 개 힘들었다.

이 새끼, 진짜 존X 쎄네.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푹.

그와 동시에 그의 검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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