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화
문상객과 상주가 서로의 예절에 따라 맞절을 했다.
상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라도하고 가시죠”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슬픔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향냄새 가득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복도를 가득 채웠지만 여전히 밀려드는 화환과 밀려드는 하객들.
엄청나게 많은 수의 문상객을 맞이하는 상주는 한 명뿐이다.
그는 고인의 핏줄이 아니다.
고인의 밑에서 열심히 일한 이형중, 우리 회사 사장님이다.
“사장님. 저 고구마신용정보 과장……”
이름을 말하려 할 때 고개를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본다.
사장이 이름만 알고 있어도 감지덕지할 만큼 하위직에 있는 만년과장.
곰곰이 생각하던 이형중 사장님은 결국 내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윤정훈입니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기 가서…… 아니다……. 술 한 잔 올리고 가라!”
“네?”
당황스럽다. 방금 인사했는데 왜 술을 올리라고 하는 거지?
‘현정옥, 명동의 철혈 여제. 고구마신용정보 회장’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명동에 있는 사람들에겐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북에서 내려와 단신으로 명동을 장악한 여인.
돈 냄새 하나는 귀신같이 맡는 재주를 가져 현금왕으로 통했다.
지금은 한물갔지만 한때는 국내 1위 재벌도 그녀가 부르면 바로 달려왔다고 한다.
그녀의 눈 밖에 난 기업의 어음을 풀면 순식간에 그룹이 휘청거렸다.
소문에는 몇몇 중견기업이 그렇게 날아갔다고 한다.
“와서 술 한 잔 쳐라!”
“……네”
‘네? 제가요?’
라고 생각했지만 사장님 말을 거역할 필요가 있을까?
한 번 절하고 사진을 본다.
잔뜩 굳은 얼굴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내게는 인자한 옆집 할머니 그 자체였는데.
두 번째 절을 할 때 사진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 정훈 왔습니다. 윤정훈요. 전에 밥 먹이셨던 정훈요”
힐끗 본 사장님의 얼굴, 장례식 장에 어울리지 않는 비릿한 웃음.
사이코패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가운 웃음이다.
그러게 왜 밥을 먹었을까?
한 달 전에 명동 여제의 인자한 웃음과 함께 저녁을 먹은 다음 날.
나는 부장 진급 대상자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후 틈틈이 명동여제의 관심 덕분에 하는 일도 잘되고 어깨에 힘 좀 들어갔다.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장난감 취급이었지만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제 오늘로 끝이지만.
원래 그렇다.
‘화양연화,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은 언제나 벚꽃처럼 짧다.’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머리가 좋고 싸움을 잘했다. 고아라는 처지가 그렇듯 시간이 부족하고 돈이 모자랐을 뿐이다.
보육원을 나오며 받은 정착금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당장 내일 밥값을 걱정해야 할 처지.
편의점 알바보다 많이 준다길래 주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벌이가 쏠쏠했다.
그러다 우연히 술에 취해 시비 거는 남자를 가볍게 정리했었다.
진짜 그날 생각하면, 술취한 사람도 싸움을 잘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다.
하여튼 결국 그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데 그게 소문이 났다.
그 술 취한 사람이 인근 조직의 행동 대장이었다.
뒤끝이 심했다.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고 이를 눈치 챈 상대 조직에서 나를 스카우트했다.
나는 그들의 품에 숨었다.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최선을 다해 내 힘을 숨겼다.
언제나 주먹보다는 머리를 쓰고 싶었다.
왜?
조직에 딱 1년만 있으면 보인다.
전쟁터에서 이골이 난 상, 병장들은 이등병을 항상 측은히 여긴다.
잘해 주긴 하지만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곧 죽을 놈들 잘해줘 봐야, 정을 줘 봐야 마음만 아프다.
살아남는 법을 모르는 병아리들 80프로는 국기에 싸여 나무상자 속 항아리에 담겨 집으로 돌아간다.
주먹 잘 쓰는 친구들이 딱 전쟁터의 이등병이다.
감방으로, 영안실로 남자의 평균수명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친구들은 너무 빨리 별이 되었다.
이등병이 죽으면 연금이라도 나오지 여기서 죽는 건 개죽음이다.
급할 때 쓰는 1회용품.
그 꼴을 당하기 싫어서 조직에서 운영하는 신용정보회사에 들어갔다.
물론 그 전에 배 한 번 따이고 다리도 한 번 썰려서 힘도 잘 못 쓰는 상태긴 했다.
쉽게 내보내 줄 놈들 아니었으니.
신용정보회사는 절대로 개인의 신용을 관리해 주는 회사가 아니다.
채무자를 탈탈 털어서 빚을 독촉하고 받아 내는 회사다.
하지만 사채꾼과는 다르다.
모든 걸 합법적으로 진행한다.
뭐 공식적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꽤나 합법적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채무자를 마른 오징어처럼 쥐어짜 빚을 받아내면 그 중에 몇 프로가 나한테 떨어진다.
우리 부장, 작년에 3억 벌었다.
악랄한 놈이다. 협박은 안 한다. 꼭 주변으로 가서 빚 이야기를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제일 쉽게 받아 내는 방법이다.
저기 최 과장, 작년에 1억 천만 원. 그 전해에는 5억 찍었다.
우리 회사 기록이다.
5억 찍은 다음 해에 악몽에 시달리고 헛것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1억 천만 원으로 급강하.
하여튼 이 바닥도 돈 벌기가 쉽지 않다.
돈 되는 채무자를 발굴해서 합법적으로 돈을 받아야 한다.
아무나 잡고 돈 내놔라?
돈 없는 사람은 진짜 없다.
그럼 이제 돈 되는 채무자가 궁금할 테지?
서류, 스토리를 보면 돈이 있는지 없는지 나온다.
서류의 행간을 읽고, 법률적인 용어를 숙지하고 법리에 통달하면
견적 나온다.
나는 싸움도 잘했지만 머리도 비상하게 좋았다.
기억력은 포토그래픽 메모리.
알고 있나?
사진 찍듯이 모든 일을 기억하는 능력인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뛰어난 기억력과 추론능력으로 돈을 나쁘지 않게 벌었다.
그리고 잘해 봐야 마음만 아파서 적당히 먹고 살 만큼, 능력을 사용했다.
우연히 심부름을 갔다.
임신한 와이프의 출산 때문에 급히 병원에 가야 했던 후배의 부탁.
그거 안 들어주면 개새끼지.
별것도 아니었다.
성북동에 있는 우리 회장님.
사진으로만 봤던 명동 여제 현정옥 회장님 집에 서류하나 전달하면 되었다.
그 날 오후, 서류를 집에 전달하고 대문을 나섰을 때였다.
마침 집으로 들어오던 얼음 같던 명동여제인 우리 회장님, 나를 보고는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아 씨발, 엿 됐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를 보고 표정이 안좋다는 건 불길한 신호가 분명하다.
불안은 그날밤부터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몹쓸 몸뚱어리 하나 남았는데 여기서 잘리면…….
아름다운 바다 옆에서 불지옥처럼 말라죽는 염전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데 식사 초대를 받았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궐 같은 집에 들어가자
산해진미가 나를 기다렸다.
인자한 할머니가 주는 저녁을 반주랑 기분 좋게 먹었다.
그녀의 집요한 호구조사에는 사실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양념을 버무려 이야기 해줬다.
최소한 밥값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날 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고 훨훨 나는 꿈을 꿨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던 운 없는 내 인생.
대운이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은 모든 게 좋았는데.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은, 보다시피 너무 늙어서 소리 소문 없이 끊어졌다.
장례식장에 앉아 맛있는 시레기 된장국을 소주 안주 삼아 먹을 때였다.
“윤정훈씨?”
낯선 남자가 내 앞에 와서 앉았다.
“변호사 고현민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았다.
로펌 대서양 대표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내 인생에서 만난 법률가는 검사와 판사가 대부분이었다.
아, 변호사도 있었는데 대부분 국선이라서 한 번 인사하면 끝이었다.
하여튼 똑똑하게 생긴 변호사가 내 앞에 앉아서 하는 말을 나는 믿지 못했다.
“그러니까 제가 저 분, 명동여제 손자라구요?”
내 말을 들은 고현민이 약간 당황한다.
“아니요. 손자가 아니라 손자 후보입니다. 그래서 저번에 할머니 댁에서 식사했을 때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아? 그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내일 서류가 도착하니 변호사 사무실로 나오시죠. 오후 3시에 뵙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사라졌다.
멀어져 가는 그를 멍하니 보며 나는 한동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우리 사장도 그를 보고 있었다.
엉겁결에 인사를 하자 당황한 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아니 갑자기 유전자 분석이라니”
“고현민 변호사가 회장님과 윤정훈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눈썹을 파르르 떨며 남자는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후우, 왜 안 하던 실수를 해서 젠장.”
막아야 했다. 지금까지 잘 막았는데 이제 곧 목표를 이룰 수 있는데…….
“결과는 언제 나온데?”
“1주일 후입니다.”
일주일이면 아주 빠듯한 기간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형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과만 좋으면 상관없다. 예정된 시나리오를 조금 빨리 진행하면 된다.’
처음에는 윤정훈을 먼저 없애려 했다. 하지만 현정옥의 예감 때문이었을까?
항상 주변에서 은밀히 그를 경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회장을 먼저 보냈다.
회장이 사라지면 윤정훈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질 건 분명하다.
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평소 먹던 건강 보조제에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독약을 조금 섞었다.
천지회에 부탁하자 다음 날 약을 보냈다.
흔적이 남지 않는 약으로 몇 개국의 비밀 정보 조직에서만 사용한다고 했다.
‘천지회’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조직.
조선 후기 결성되어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은 와중에도 막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조그마한 땅의 영원한 지배자.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다.
김형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천지회 이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차후에 수장에 출마할 자격을 갖게 된다.
10년 안에 지금의 회장은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5년 안에.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장애물은 죽여서라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가족도 일가친척도 없는 현정옥은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려 했고 변호사와 유서를 작성했다.
그녀의 유산은 분명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재단으로 기부될 것이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면 모든 게 완벽했다.
천지회는 1조가 넘는 그녀의 공식 재산을 합법적으로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눈엣가시 같은 현정옥을 제거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했는데 윤정훈과 현정옥의 만남으로 모든 게 어그러졌다.
핏줄의 냄새를 맡은 걸까? 한 번에 자신의 손자를 알아본 그녀.
그녀는 순식간에 일을 처리했다.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윤정훈을 멀리서 경호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다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넌지시 고현민에게 손을 떼라고 했지만 천한 흙수저 출신 때문인지 쓸데없이 직업 윤리가 투철했다.
어쩔 수 없지.
“형님 어떻게 할까요? 내일 확인 한다는데요”
“싹 쓸어, 뒤는 천지회에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
“차 드세요”
여유로운 웃음을 띤 고현민은 긴장한 윤정훈에게 차를 권했다.
“생각보다 크진 않네요”
사무실은 윤정훈의 상상과 달리 작았다.
명동여제의 법률 상담을 맡은 변호사라면 못해도 국내 5위 안에 드는 로펌이라 생각했는데.
비서 한 명을 둔 1인 변호사 사무실. 로펌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하하하, 제가 얼마 전에 독립했습니다. 그전엔 김&이 파트너 변호사였죠. 어르신의 권유로 이렇게 나왔습니다만…….”
순간 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강력한 스폰서가 이렇게 사라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겠지.
‘국내 1위 김앤이 파트너 변호사면 실력은 최고겠지.’
설렘과 피곤함이 공존하는 휑한 얼굴.
윤정훈은 거칠어진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말했다.
“이제 확인하시죠”
어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로또 1등을 백 번 이상 해야 이 할머니가 가진 공식적인 재산과 맞먹는다.
1조가 넘는 금융자산.
그게 잘하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자 그럼 윤정훈 씨가 1조 원 로또에 당첨됐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고현민은 황색 서류 봉투의 입구를 찢었다. 하얀색 종이를 꺼내 읽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서류 확인한다.
한줄 씩 읽어 가는 고현민의 눈을 쫒는 윤정훈의 긴장된 눈길.
고현민의 굳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약간 거리를 두던 눈빛에 더없는 친근함이 나타났다.
이제 윤정훈은 잃어버린 동아줄을 대체할 새롭고 튼튼한 금줄이었다.
“역시 여사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유일한 혈육이 맞네요. 축하합니다. 1조 로또 당첨!”
윤정훈이 서류를 건네받았다.
고현민은 변호사로서 자신의 의무를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새롭게 시작될 삶을 상상하기 바쁜데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눈앞에는 포르쉐, 아니 페라리와 롤스로이스가 둥둥 떠다녔다.
한강이 훤히 보이는 초초고가 아파트에서 눈뜨는 자신이 눈앞에 그려졌다.
“윤정훈 씨”
고현민이 노란색 포스트잇을 전달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얼굴에서 불안함이 묻어 있다.
“이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그쪽을요”
메모지를 가리켰다.
[天地會 천지회]
하늘 천, 땅 지, 모을 회
‘회 자가 있는 거 보니 조직이나 단체 같은데, 뭘 조심하라는 거지?’
고현민의 불안한 얼굴이 신경 쓰였지만 곧 잊혀졌다.
돈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는 지금, 걱정은 나중 일이다.
아마 할머니 돈을 노리는 녀석들이겠지.
조심하면 된다. 돈으로 경호원을 처바르면 될 단순한 문제를…….
변호사라는 양반이 참 걱정이 과하다. 1조 원이란 돈의 무게를 모르는구나.
“아, 그리고 예전에 여사님께서 태어나신 손자 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계좌입니다. 적지 않은 돈이 있을 겁니다. 마카오에 있는 돼지 은행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입니다.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가 나에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네? 도장이랑 신분증이 필요 없나요?”
고현민이 나를 보며 피식하며 웃었다.
신분이 드러나면 곤란한 사람들을 위한 사설 은행입니다. 번호가 계좌 주인을 증명하죠.”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봉투를 열었다.
[ID : 19611963198304261155 pw : 1981 ]
‘19830426? 내 생일인데 앞에는 뭐지?’
익숙한 숫자들이 보여서 질문을 했다.
“숫자에 의미가 있나요?”
“네. 부친과 모친의 출생년도랑 정훈씨가 태어난 날과 시간입니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1963년생이 내 아버지고 65년생이 내 어머니인가?
22살 20살에 나를 낳았구나.
많이 급했던 인생이었구나.
빨리 낳고, 또 그 만큼 빨리 가셨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부모님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 퍼어엉
눈앞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이고 그 다음에 소리가 들렸다.
나의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축복하는 폭죽으로 생각했다.
그러기엔 너무 강한 충격파가 몸에 느껴졌다.
강한 폭발음이 들렸고 눈앞에 고현민의 몸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아니다.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강한 바람에 밀려 창문을 뚫고 종잇장처럼 멀리멀리 날아갔다.
시끄러운 이명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사무실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 한가운데에 누워 있다.
강한 폭발에 여기까지 날려 온 게 분명했다.
눈앞의 고현민은 조그마한 미동도 않고 쓰러져 있었다.
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다행히 고통은 없었다.
다만 천천히 눈이 감기고 있었고 저 앞에 우리 사장님이 보였다.
‘사장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와 천지회 대단하네요.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을 그냥 폭파해 버리다니…….”
비릿한 웃음과 함께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천지회?’
***
“허억”
오늘도 악몽 같은 폭발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손에 잡혔다 사라진 페라리와 한강 조망 70평 아파트 때문일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보육원이라는 공간 때문인 걸까?
포기하고 인정한다면 이 빌어먹을 악몽도 끝이 날까?
한 달 동안 지켜본 결과 확실한 것 한 가지.
이 지옥 같았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왜 하필이면 이런 시팔(18)년 전으로 되돌아왔을까?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