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이봐, 만호 여기 마실 것 좀 가져오지”
“네, 어르신. 박 기자님은 커피?”
“네, 감사합니다.”
낯선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린 박성훈이 만호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이리로 앉으세요.”
“네, 어르신.”
현정옥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가득했다.
‘이런. 실수하면 안 되는데…….’
현정옥의 기세에 눌려 인사도 악수도 늦었다.
자칫 예의 없어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조그마한 실수에도 예민하다.
초보도 아닌 자신이 이런 실수를 한 게 의아했다.
실수를 연발한 그를 향해 현정옥이 다시 한 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많이 긴장하신 것 같은데 긴장 푸세요. 누가 안 잡아 갑니다.”
“네, 어르신. 감사합니다……. 방이 좀 더운가 왜 이리 땀이 나죠.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을 때 김만호가 뜨거운 커피와 맑은 녹차를 테이블에 놓았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문화일보 박성훈 기자입니다. 먼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기회를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현정옥은 일수업자에서 명동의 거인이 되기까지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성훈 기자는 어느새 그녀의 삶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의 노력과 집념, 드라마 같은 반전과 경쟁자들의 위협들이 그녀의 삶에 가득했다.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서 도달한 정상엔 그 끝에 이룬 거대한 부.
한 편의 스펙타클한 드라마 같은 삶이었다.
그녀가 이야기를 마치고 앞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넋을 놓고 그녀의 삶에 빠져들었던 박성훈 기자도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휴, 어르신 정말 영화 같은 삶이었네요.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여사님처럼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하하.”
분위기를 전환할 겸 농담을 한다.
“돈보다는 이제 가족이 중요하죠. 박기자 님도 결혼하셨죠?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네. 결혼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습니다.”
“예쁘겠네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 말을 한 다음 현정옥은 고개를 돌려 무심히 창밖을 보았다.
“휴, 가족이 제일 중요하죠.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만큼 중요하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녀의 말을 잘 듣지 못한 박성훈 기자가 되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크흠, 어르신 차 더 드릴까요?”
김만호가 분위기를 전환하려 현정옥에게 물었다.
“허허, 내가 정신을……. 하여튼 가족이 중요한 거죠.”
“네. 맞습니다. 어르신.”
박성훈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지갑에서 있는 사진을 현정옥에게 보였다.
개구쟁이의 얼굴을 한 두 아이가 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제가 요즘 요 녀석들 보는 재미에 삽니다. 어르신도 손주들 보는 재미…….”
“박기자 님도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김만호가 갑자기 말을 끊고 물었다.
당황한 그가 현정옥의 얼굴을 보았고 그때 그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녀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비극적인 사건이 있음을 직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몰랐겠죠. 자 그럼 인터뷰를 계속 이어 가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겠군요.”
현정옥 여사의 손끝이 잠깐 떨렸다.
천천히 입을 연 그녀는 믿기 어려운 연속된 불행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박성훈 기자는 그녀가 겪은 일을 듣고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현정옥의 표정도 믿기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남편의 죽음. 연이은 자식들의 사고사.
어렵사리 살아남은 아들과 며느리의 교통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은 손자의 납치 및 실종으로 귀결되었다.
거대한 성을 쌓은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한 집안에 이런 일이 한꺼번에 있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옛날이었다면 굿을 하거나 조상의 묘를 이장했을 만큼 비극적인 사건들이 연속됐다.
“후우, 오랜만에 이야기하니 기분이 좀 그렇구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만호를 보고 손을 들었다.
재빨리 녹찻물을 준비한다.
“기자 양반, 이런 기구한 인생도 부러운가요?”
대답할 생각도 잊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박성훈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닙니다.”
“후우”
긴 한숨을 쉰 그녀가 고개를 들어 기자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을 삶. 내 모든 걸 걸고 손자를 찾아야겠어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모든 걸 포기한 듯했던 현정옥의 두 눈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이 인터뷰는 사실 손자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의 시작이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정옥은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늘 인터뷰를 사회면에 크게 실어 주세요. 내 재산을 최대한 부각해 주세요.”
“그러니까 드라마틱한 인생보다는 지금 가지고 계신 자산을 강조해 달라는 말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자리에 전면 광고를 실어 주세요. 제목은……. ‘나의 유일한 손자를 찾습니다’, 이렇게요. 내 재산을 최대한 부각해 줘요. 방법은 유전자 검사를 위한 손톱과 머리카락을 보내면 된다고 해 주세요”
현정옥의 계획을 들은 박성훈.
‘대박이다’
참을 수 없는 미소를 겨우 감추며 인터뷰에 집중했다.
흥미진진했던 인터뷰를 마치고 박성훈 기자가 일어섰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여사님”
“오늘 인터뷰 즐거웠어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배웅하는 현정옥.
그녀를 향해 허리를 90도 꺾으며 인사한 박성훈은 조심스런 걸음으로 스위트룸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된 방안.
못마땅한 표정의 김만호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정녕 그리하실 예정입니까?”
최후의 프로젝트를 가동한 현정옥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암, 해야지. 이제 내 모든 전 재산과 함께 내 목숨도 걸어야겠어.”
***
호텔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핀 그는 입을 막고 주먹을 꽉 쥐고 흔들었다.
“앗싸. 대박”
박성훈 기자는 현정옥이 선물한 행운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특종에 견줄 만한 인터뷰로 사회부의 칭찬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광고도 땄다. 그것도 전면 광고를.
날아갈 듯 경쾌한 걸음으로 회사로 돌아갔다.
그는 부장의 애정 어린 칭찬을 기대했다.
“부장님, 인터뷰 마치고 왔습니다.”
“응, 수고했다. 가서 일 봐.”
관심 없는 부장의 반응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광고 이야기를 하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부장님 여사님께서 전면 광고를 신청하셨습니다. 흐흐흐.”
“그래? 알겠다. 가서 일 보라니까.”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 마지막 말엔 짜증도 묻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참, 인터뷰는 작게 나갈 거야. 그러니까 간략하게 정리해서 올려. 그리고 나갈지 말지도 위에서 읽어 보고 판단하겠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부장님. 이거 인터뷰 따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잖아요”
“……알아, 나도 알아. 그러니까 가서 일하라고.”
“아니 형,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그냥 가서 일하라고, 나도 좆같으니까!”
들고 있던 사인펜을 책상 위에 던졌다.
“으아아아아 니미”
붉어진 얼굴로 괴성을 지른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상의를 들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 형……. 아니 부장님. 왜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부장의 문자를 받자마자 뛰어왔다.
담배 연기를 힘껏 빨아들인 다음 길게 내뿜는 부장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냐? 고작 인물 인터뷰 하나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그러게, 남들이 보면 고위정치인 비리 정도 되는 줄 알겠네. 허허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흥행을 보장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을 인터뷰했다.
그러면 기사로 나가면 그만이다.
거기다 전면 광고까지 받아 왔다.
제목은 ‘하나뿐인 내 손자를 찾습니다.’
드라마로 치면 시청률 최소 30프로는 찍을 기사.
그런데 위에서 이걸 거절한다고?
구린 냄새가 났다.
문득 박성훈 기자는 현정옥 여사가 지나가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표적이 되면 안 되었어…….’
여사님이 말한 집단이 누굴지 궁금 해지기 시작했다.
“야,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박성훈이 정신을 차렸다.
“어, 아니 아까 인터뷰한 것 중에 걸리는 게 있어서”
“잘 들어. 이걸 인터넷에 풀어.”
“뭐? 인터넷에? 아니 그럼 내 특종 날아가는 건데”
“이미 날아갔어. 분위기 봐라 이상하지 않냐? 내 생각에 기사 못 나갈 것 같아.”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현정옥이야. 은둔의 여제, 1조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인데……. 설마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까?”
“내일 봐라. 틀림없어”
확신에 찬 얼굴이다.
“하여튼 내일 잘리면 인터넷에 풀게. 괜찮지?”
“알겠어. 묻히는 것보다야 났지.”
“그래. 내가 아는 인터넷 신문사 있으니까 거기서는 화제가 될 거야.”
“인터넷 신문사? 이름이 뭐야? 그리고 아직 영향력이 없지 않아?”
“오마이뉴스라고 신생 언론인데, 조회 수는 꽤 많아.”
“알겠어. 그런데 이걸 이렇게까지 기사화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거야?”
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기사 나오고 여론이 형성되면 알겠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데스크에서 막고 있는지.”
박정훈의 걱정스런 표정을 본 부장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냥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해 보는거야. 딱히 위험한 것도 아니잖아.”
부장의 말대로 다음날 인터뷰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은밀히 박성훈에게 내일 인터넷 언론에 기사화될 것이라고 알렸다.
박성훈은 도리상 현정옥 여사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전에 받은 명함을 꺼냈다.
“여사님, 인터뷰한 박성훈 기자입니다.”
“네.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기사는 내일 나와요? 오늘인 줄 알았는데”
“그게, 문화일보에서는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허허허, 그럼 그렇지.”
그녀는 이미 예견한 듯 헛웃음만 지었다.
“대신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에서 내일 나옵니다.”
“잠시만요, 오마이뉴스라고요?”
“네. 혹시 아십니까?”
“아니요. 거긴 나오는 게 확실한가요?”
“네. 확실합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박정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사님, 혹시 이유를 아십니까? 제 기자 생활에 인터뷰가 잘린 건 처음이라서요.”
수화기 너머로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모르시는 게 낫습니다. 일단 오마이뉴스라는 곳에서라도 기사가 된다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정훈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거인이 된 현정옥을 꼭 알리고 싶었다.
보기 드물게 정도를 걸어온 그녀의 인생은 타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환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약속해 주고 싶었다.
꼭 제대로 된 기사를 쓰겠다고.
“여사님, 다음에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제대로 된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제가 기사를 막은 배후를 꼭 밝혀내겠습니다.”
박성훈은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아니에요. 절대로 뒤를 캐면 안 돼요. 더 이상 관심 갖지 말아 주세요.”
서늘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그렇게 하세요. 안 그러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그럼 끊죠.”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박성훈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손에 들린 전화기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눈빛을 반짝이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렸다.
다음 날 오마이뉴스 첫 페이지에 현정옥에 대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관심에 조회 수가 폭발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 메인에 자리한 기사.
그녀의 이름은 며칠간 실시간 검색 상위권에 올랐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조회 수를 보고만 있던 문화일보.
결국 현정옥 인터뷰와 손자를 찾는 광고가 사회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
“앗, 앗.”
책 넘기는 소리만 들려오던 공간에 짧은 비명이 울렸다.
옆에 앉은 은수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고 있었다.
정훈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야, 돼지털을 뭐 하려고 그렇게 뽑냐?”
“돼지털은 무슨.”
은수가 눈을 흘겼고 정훈은 은수의 자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야, 뭐 하는 거야? 미친 거야?”
은수 앞에서 족히 100개는 넘을 머리카락이 있었다.
“후후, 누가 필요하다더라.”
“누가 이 냄새나는 거친 돼지털을 필요로 해?”
“쓰읍, 돼지털 아니라니까?”
은수가 정훈에게 신문을 툭하고 던졌다.
깜짝 놀란 정훈의 두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아니, 은수가 신문을?’
문학책을 제외한 어떤 것도 관심 없던 은수가 신문을 볼 줄이야.
“정훈아, 거기 말고 사회면 봐 봐. 우리 친할머니가 나를 찾고 있다.”
“뭐? 정말 너 친할머니 찾은 거야?”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외친 정훈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머리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은수가 말한 사회면을 폈다.
[나의 하나뿐인 손자를 찾습니다.]
대문짝만 한 전면 광고.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손자를 찾는 기사를 본 정훈.
깜짝 놀라 의자를 넘어트리며 벌떡 일어났다.
‘나를…… 친할머니 현정옥 여사가 나를 찾고 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